피지(Fiji)행 야간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공감신문 조병수 칼럼] 피지(Fiji)행 야간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오후엔 일찌감치 숙소로 가서 쉬는 것이 좋을 듯했다. 난디공항에서 2~30분 거리의 소내살리 섬(Sonaisali Island)리조트전용선착장에서 나룻배규모의 모터보트로 옮겨 가는데, 저만치 야자수 늘어선 경치만해도 겨울 나라에서 온 여행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섬에 내려서자, 흩어지는 빗방울에 함초롬히 젖어드는 꽃잎들, 앞쪽으로 펼쳐지는 수영장과 연이은 바다, 그리고 해변따라 서있는 야자수가 어우러져 자연의 조화를 뽐낸다. 이런 아름다운 천지를 창조한 그 오묘함이 경이롭다. 

종업원들은 만날 때마다 “불라!(Bula:hello, welcome정도의 인사말)”라고 인사말을 건네고, 걸어가다가 길옆의 하이비스커스 꽃 한 송이 따서 머리에 꽂으며 가는 모습들도 여유롭다.

“열대성 저기압이 사이클론으로 발전하느냐 마느냐”는 일기예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빗줄기도 조금씩 굵어진다.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해변에서 피지맥주를 종류별로 한모금씩 맛보다보니, 모처럼만에 찾아오는 마음의 여유가 사르르 녹아들어간다. 

한적하고, 덜 세련되고, 상대적으로 할 것들이 많지 않은 이 바닷가에서는, 무언가 생각의 깊이를 더해 줄 것만 같은 묘한 끌림이 있다.

<Sonaisali Island소재 리조트 야경>

밤사이 몇 번씩이나 전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할 정도로 거칠어지던 비바람도 새벽녘부터 조금 잦아들었다. 정말 사람이 자연 앞에서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락가락하는 빗길을 뚫고, 난디 북쪽으로10여분 거리에 있는 ‘잠자는 거인의 정원(Gardenof the Sleeping Giant)’으로 갔다. 서양 난(蘭)을 좋아하던 미국배우 레이먼드버(Raymond Burr)가 피지에 별장을 꾸미려고, 나우소리하이랜드자락의 터에 난(蘭)들을 심은 것이 시작이었다고 하는 곳에서 열대식물들을 구경하고 싶었다.

종류만도 2천여종이 넘는다고 하는 난들이 입구에서부터 빗방울을 머금고 있고, 나무에 달린 녹색의 바나나송이부터 갖가지 특이한 꽃과 이름 모를 식물들이 무성했다.

구경을 마치고 내려온 손님들에게 자리를 권하며 시원한 과일주스 한잔씩을 제공하는 배려가 ‘사람의 향기’를 보탠다. 벽도 없는 높다란 천정을 하늘 삼아 마음대로 넘나드는 새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삶의 여유를 느끼게 만든다.

<Garden of the Sleeping Giant>

그렇게 꽃과 열대식물들의 여운을 음미하며, 포트 데나라우(Port Denarau)에 있는 해물요리 식당으로 가보았다. 인공 섬이라는 데나라우는 난디 공항근처 바닷가에 고급 휴양시설들과 골프장, 여객선 터미널 등이 있는 곳이다. 그 지역으로 들어가는 짧은 다리 너머에는 경비원들이 출입을 통제하며 서있고, 부두에는 멋진 요트들이 정박해 있다.

쇼핑센터 앞 바닷가 식당의 생선요리들은 가격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요기를 하고 있는데 둘째 딸이 갑자기 뒤쪽의 외국인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 곁에는 전날 서울에서 오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있던 분이 같이 웃고 있고... 별 미동도 없이 줄곧 앉아만 있던 그 부인도 남편의 출장이 끝날 때에 맞추어서 이곳에 온 모양인데, 딸의 직장동료 가족일 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언제 어디서 어떤 인연으로 만날지 모르는 우리네 삶이니, 늘 처신에 유의하며 살아야 함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만남이었다.

<Port Denarau 앞 바다>

여행 중에 피지의 수도인 수바(Suva)쪽으로 가는 베이스캠프 삼아서, 이틀간을 나탄돌라 해변(Natadola Beach)에 있는 리조트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비와 범람으로 수바로 가다가 중간에 되돌아오기도 하고, 생각했던 섬 일주 드라이브 같은 것들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날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시간까지 매 시간단위로 준비된 리조트의 각종 프로그램 덕분에 여러 가지 색다른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일요일 저녁 석양 무렵, 비구름이 조금씩 벗겨지는 하늘과 바람에 휘날리는 야자수를 배경으로, 바닷가에 울려 퍼지던 현지 교회성가대의 합창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어린아이들로부터 지긋한 연배의 남녀노소가 지휘자도 없는 공연을 끝내고는 관객들과 악수를 나누며 떠나는데, 앞줄에 섰던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가 다가와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정중하게 악수를 청할 때는 ‘그 신사다움’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나탄돌라 비치의 석양>
<나탄돌라 해변 소재 리조트,성가대 공연.>

남태평양에 왔으니 최소한 바다 밑 산호초 구경은 하고 싶었지만, 물에 약한 처지라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잠깐 좋아진 아침나절에 ‘유리바닥 보트(Glass Bottom Boat)’라는 프로그램이 있길래, 얼씨구나 하고 신청을 했다. 일인당 피지달러60불,우리 돈으로 3~4만원 정도에 산호초들을 구경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예약접수직원이 짐짓 이상하다는 듯이, “어차피 같은 배로 나가는데, 스노클링(snorkeling)을 왜 않느냐?가이더가 도와준다”고 권하자, 딸이 하겠다고 나섰다. 호기심이 동한 나도 엉겁결에 따라 나서고...

<Snorkel Safari, Glass Bottom Boat타러가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은 배위에서 유리바닥을 통해 바닷속 구경을 하는데, 수영도 못하는 사람이 난생처음 구명조끼에 코까지 덮는 물안경(snorkeling mask)을 쓰고, 스노클이라는프라스틱 대롱을 입에 물고, 오리발까지 신고 물속에 뛰어들었으니, 내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가관이었다.

바다에 던져진 네모난 튜브 같은 것을 붙잡고 물속으로 머리를 넣으니, 입으로 물이 새어 들어왔다. 김서림 방지제 바른 것을 제대로 헹구지 않은 탓인지 마스크로 스며든 물로 눈도 아려오고...

결국 가이더가 다가와서 스노클을자기 것과 바꾸어 주었다. 그러나 마스크는 아무리 끈을 조여도 여전히 물이 새어 들어와서 몇 초를 못 버티고 머리를 들곤 했다. 시키는 대로 오리발을 움직이고 있는데도, 가이더는 “파파, 발을 계속 움직이라”고 하고...

그래도 틈틈이 아래로 물속을 유유히 지나가는 검은 줄무늬 고기 떼들도 보고, 가이더가 내려가서 손으로 스치면 색깔이 변하는 산호와 산호초들을 보긴 했다. 그렇게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다 못한 딸이 “마스크를 코밑까지 좀더 내려써보라”고 알려주어서 겨우 나아지긴 했지만, 그때는 벌써 끝날 시간이었다.

<Glass Bottom Boat에서 본 바다밑>
<Snorkeling현장>

배 난간을 잡고 오리발을 벗기조차도 벅찼다. 한참을 끙끙대다가 겨우 올라오니까,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최소한 3~40분의 시간을 물속에서 보낸 셈인데, 몇 장면만 떠오를 뿐 거의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다. 그래도 바다 속을 들여다보고 왔음이 뿌듯했다.

방으로 돌아와서 머리를 숙이는데코에서 물이 주루루룩 흘러내렸다. 그날 저녁부터 이틀 밤낮을 타이레놀만으로 고열과 오한에 맞서 싸우다가 귀국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그래도 궂은 날씨 사이사이로 잠깐씩 해가 내비친 덕분에, 여러 가지 색깔로 반짝이는 남태평양 바다를 볼 수 있었고, 유명하다는 나탄돌라 해변에서 바다에 떠있는 무지개를 볼 기회가 있었음도 감사하다.

나탄돌라 비치에서 난디로 가다가 다시 핸들을 돌려서 움푹움푹 패인 비포장도로도 경험하였고, 맨발로 뛰노는 아이들과 일반인들의 삶을 통해 휴양시설지와는 사뭇 다른 바깥분위기를 살펴보게 되었음도 감사하다. 그러면서 관광업이 GDP의 35%, 관광업종사자들이 전체 취업인구의 32%라는 통계의 의미와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LikuriHarbour인근 이면도로 옆 주택>
<LikuriHarbour인근 이면도로 옆 상점>
<Lomawai초등학교 전경>

피지를 떠나는 날 아침은 다시 이 섬나라를 찾아오라고 하는 건지 날씨도 화창해졌고,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연 초록, 코발트 빛 바다색깔들이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겨주었다. 다녀온지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아내는 ‘나름대로 여러 곳을 다녀 보았지만, 가슴을 고요하게 하고, 잔잔한 파도가 물결치듯 마음의 여운이 남는 곳’이라고 이야기 한다.

우리로 치면 제주와 서귀포 사이를 갔다 와서 제주도와 우리나라를 운위(云謂)하는 격이지만, 그래도 그런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피지부근에서 지진발생 소식들이 연이어 들려오니 안타깝다.

며칠 전 한 목사님이 “분명 같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도, 매번 너와 나는 다른 곳에 도착한다. 각자의 깜냥만큼 보고 느낀다”라고 하던 표현이 마음에 닿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친구가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피지에 수목(樹木)을 이용한 친환경발전소를 건설 중이라는 기사가 있더라”고 알려주었다.

이렇듯, 여행을 하면서 우리와 다른 자연과 환경을 보고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활용에 착안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아침이다.

“뉴기니에서 거꾸로 된 세계지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하는 우리나라 어느 인류학자만큼은 아니겠지만, 아직도 여전히 붙들고 사는 삶의 가치와 우선순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피지로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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