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추석절이 가까워서인지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어린 시절의 추석은 요즘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다. 풍성함이 가득한 황금 들녘,선홍색으로 짙게 물들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가지를 축 늘어뜨린 채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홍시,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던 추억의 코스모스길이 생각난다.

지금도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릴 때면 미소가 번지고 참 따뜻해진다. 마치 가을 풍경 속의 주인공이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때 기억으로는 추석 연휴가 기다려졌다. 셀렘으로 가득해 까만 밤을 지새울 정도로.

어른이 되고, 받기보다는 주는 입장의 나이가 도고 보니 추석은 고민 그 자체이다. 여러 곳의 인사치레부터. 가족 간의 소통, 모두가 어렵다. 고민이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니 끊임없이 막히는 차들. 앞차의 브레이크 소리까지 불편하다. 언제부턴가 추석을 떠올리면 용돈부터 음삭만드는 일, 가족 간의 소통 문제까지 한꺼번에 밀려들어 고민스럽다.

추석을 생각하면 벌서부터 온몸에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듯하다. 명절증후군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식구들, 친척들, 얼굴 한번 보고 조상들에게 문안 인사드리며 함께 밥 한 끼 먹으러 길이 막혀도 차가 움직이지 않아도 7시간, 10시간을 길에서 소비하면 고향집으로 간다. 

추석절이 다가오고 선물, 추석 음식 만들기, 소통에 대해 고민을 하니까. 얼마 전 한 요리사가 방송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재료로, 가장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요리를 만들라.” “요리사란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한 그릇의 요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통제하고 감시하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참으로 느닷없이 떠오른 문장이지만 현재의 내 고민을 풀어주는 명쾌한 말이었다.

그렇다. 고향으로 몸보다 마음이 먼저 달려가는 이유도 고향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립기 때문이다. 그립다는 것은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 고향에서 나오는 재료로 마음이 담긴 솜씨로 정성껏 만들면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나눠먹으면 된다. 맛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비용을 들여 음식을 준비했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마음을 담아 준비를 하였고 또 어떤 사람과 함께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과 먹으면 맛있는 식사가 될 것이고 불편한 사람과 먹으면 맛없는 식사가 될 것이다.

뮬론 가족이라 해서 다 행복한 관계가 되지는 않는다. 분명 불편한 관계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서로 간에 주체가 되어 부딪치는 일을 피하면 된다. 잠시 요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만들고 통제하고 감독하는 요리사가 되면 그만이다. 관찰자의 입장이 되면 그만이다. 

섭섭하고 불편했던 해묵은 감정이 떠오르더라도 한 발자국 물러서서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조금 더 내려놓게 되어 양보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양보하는 마음이 생겨야 배려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내 잘못을 찾아내어 참회하게 될 테니까. 나의 반성과 참회가 먼저 이루어져야 모든 것을 용서하게 되고 내려놓게 될 테니까. 존중과 배려가 오갈 때 마음은 넉넉해지고 따뜻해질 테니까. 

어쨌든 추석은 의미가 깊다. 가족, 친척간에도 다양한 계층이 있기에. 우선 어린 시절의 추억을 찾아 뒷산에 올라가 봐도 좋을 것이고 가족, 친구들에게 나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풀어놓으며 또 그들이 꺼내 놓는 시간의 궤적들을 관찰해보아도 좋은 일이다.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그토록 찾던 생의 힌트도 얻을 수가 있을 테니까. 또 내가 차마 접하지 못한 정보들을 들으며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생 대 선배에게서도 생의 지혜를 얻을 수 있지만 나보다 20살 어린 조카에게서도 생의 지혜는 얻을 수 있으니까. 만남은 도전이다. 만남은 기회이다. 만남은 풍요롭다. 죽기 전까지 생은 늘 꿈과 희망으로 가득하다. 가슴에 불타오르는 열정이 가득하다면 도전과 기회는 존재하니까. 용기를 내서 달려가자. 

사진=Pixabay

오늘따라 달빛이 은은하다. 햇빛은 낱낱이 세상을 밝힌다면, 달빛은 보일 듯 말 듯 은은하게 스며들며 마음을 비춘다. 추석 달이 풍만하게 차오르니 벌써 마음도 고향 밭으로 가서 행복했던 어릴 적 그때 그 순간의 들판을 뛰놀고 있다. 꿈과 희망으로 차오른다. 추석 달이 차오르니, 성공해서 남산에서 만나자던 친구와의 약속도 떠오른다. 그리운 사람들을 좀 더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행복한 추석이다.

물론 고향으로 가기 위해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긴 줄을 서야 한다. 그런 불편을 다 감수 고향을 간다. 이유는 현실적인 고민을 다 품어주고 객지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털어주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이유와 존재감을 확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곳이 가족이 머무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누구 할 것 없이 나이가 들면 고향 앓이를 하다가 죽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듯. 

우리네 생이 어쩌면 연어의 생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연어는 하천에서 태어나 큰 바다로 나가 2-3년 동안 살다가 산란할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간다. 수만리 떨어진 바다를 거슬러 헤엄치며 정확하게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는다. 연어의 몸속에 어떤 GPS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마도 태어났을 때 맡은 그 하천의 냄새를 기억해내어 그 냄새를 따라 고향으로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동물은 후각이 발달했으니까. 인간이 종족 유지 본능이 있어 아이를 낳듯, 연어도 산란을 함으로써 종족을 보존하기에 그들의 본능이 아닐까 싶다. 

고향에 가면 어릴 적 맛보았던 참기름 묻은 그 익숙한 송편을 기억해내어 순수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리라. 성공을 쫓으며 달려온 것들(욕망, 다툼, 경쟁,)을 잠시 내려놓으리라. 그냥 가족, 친구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보리라. 사랑하는 가족, 그리운 친구와 함께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리라. 단순하고 순수하게 내게 온 시간을 누리리라.

사진=Pixabay

보이지 않는가! 둥근달이 떠있는 저녁, 마을 입구에 나와 자식 모습 보일까 서성이는 어머니가! 굵은 마디의 여린 손을 쉬지 않고 손 흔들며 마중하고 있을 어머니가! 들리지 않는가! 사고 나지 않게 천천히 운전해서 오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당부의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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