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갈 수 있다

[공감신문] 흔히 휴가를 뜻하는 말로, '바캉스'를 많이 사용하는데, '바캉스'라는 말은 프랑스에서 온 말로 원래는 'vacance'다. 영어로는 vacation이다. 프랑스어에서 시작된 바캉스라는 말은 라틴어인 '바 카티오(vacation)'라는 말을 어원으로 한다. 이 단어의 뜻은 '무엇으로부터 자유러워지는 것'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바캉스'를 포함한 여행은 단순히 일을 중지하는 시간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예외를 인정하는 특별한 말이다. 바캉스는 원래 텅 비어 있는,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바캉스, 또는 여행은 어떤 의미이고 왜 가야 할까.

바캉스, 또는 여행은 권태로운 일상에서의 탈출을 위한 희망이고 그것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기 때문이다. 다만 목적어가 없어야 한다. 그냥 떠나는 것, 발길 닿는 대로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떠나야 한다. 목적어가 없는 상태가 될 때 선명한 나의 목적어가 보일 테니까.

사진=Pixabay

어쨌든 어디론가 낯선 곳으로 떠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설렘이고 해방감 내지는 행복감을 선물한다. 일상에서의 탈출, 구속에서의 해방감,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발견이 그것이다. 걸어서 가든, 기차로 가든, 지금의 공간을 벗어나는 자체가 기쁨이다.

낯선 환경에서 접하는 신선함은 경이롭다. 오래된 소나무, 낡은 벤치, 낯선 이방인에서부터 먹어보지 못한 낯선 음식들은 새로운 동기를 부여한다. 물론 새로운 것을 보더라도 관찰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하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것이 내 마음에 닿아야 새로운 정보가 되니까. 무엇을 보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야 일체감이 되어 내 것이 되니까.

꽃을 보더라도 서둘러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멈추어 서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이도 있다. 누구나 자신의 방식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느끼고 싶어 한다. 그러니 사람이라는 존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신만의 독특한 나르시스트라는 것이다. 자신의 고집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벗어난다는 것, 자유롭다는 것은 현실에서의 바깥으로 드러난 나에게서의 탈출을 의미한다. 나의 일터, 나의 집, 나와 맺어진 인간관계에서부터 벗어나는 거다. 물론 그러한 것들이 현재의 나를 있게 해 주었고, 여전히 나를 보호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나를 구속하니까. 그러기에 누구나 훌쩍 떠나고 싶어 한다. 어디론가 떠남, 왜 떠나고 싶어 할까. 그것은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이다. 가족으로부터 잠시 분리되고 지친 일상과 떨어져서 혼자 있고 싶다는 것이다.

여행의 본원이 혼자 누리고 싶은 욕망이니까. 혼자만의 바캉스, 아무도 모르는 낯선 도시에서 말도 잘 통하지 않은 낯선 곳에서의 나는 아무것도 아닌 보통의 존재가 된다. 있어도 없어도 아무도 모른 듯이 모르게 혼자만의 추억을 만들 수가 있다. 잠시만이라도 현재의 직업, 알게 모르게 얽히고설킨 복잡한 고민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를 웃게 하는 풍경들 속에서 잠시 흐뭇해지고 풍부해질 수 있다.

익숙한 곳, 익숙한 사람들과의 시간 속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지 못하고 어항 속 물고기처럼 그 안에서 늘 똑같이 헤엄을 쳐야 하니까. 가장으로, 자식으로, 직장의 구성원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마땅히 해야 하니까. 그 모두의 행복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늘 엑스맨이 되어야 하니까. 현실이 고달프고 우울하다. 온전한 나로 존재하고 싶다는 열망이 차 올라 넘쳐흐르면 떠나게 되는 것이다. 다 팽개치고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며. 

누구를 위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눈치를 보는 것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그래서 작정하고 떠나는 거다.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모든 고민과 구속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만을 생각할 수가 있다. 나를 주시하지 않는 곳, 누구의 딸, 누구의 엄마, 누구의 동료가 아닌 민낯의 나를 통해 선명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를 관찰하는 이도 없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고 유한의 시간 속에서 무한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허락받은 선택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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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관방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맘껏 노래하며 뒹굴어도 괜찮다. 사회적인 체면도 필요 없다. 오래도록 잠에 취해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아무것도 하지 앉는 게으름에 빠져도 된다. 누구 하나 나에게 관심 두지 않기에 편안하다. 

다만 간혹 고독할 때도 있다. 그러나 답답한 고독이 아니라 산뜻한 고독이다. 왜? 사회적, 도덕적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으니까. 그러니 허전한 마음을 흐뭇함으로 꽉 채워준다.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스케줄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와의 약속도, 누구를 위한 위선의 행동도 필요 없다. 허락된 시간 동안 무한한 자유인이 된다.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며 놀고먹고 자면서 맘껏 누릴 수가 있다.  

혼자 떠난다는 것은 용기이다. 성공적이었을 때 만족감은 크다. 홀로 떠나는 도전은 종종 숭고하고 아름다운 선택으로 이어진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로스’는 도전의 대명사로 불린다. 이카로스는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최초로 실현한 인물이다. 그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 미궁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무모했지만 꿈을 이뤄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너무 높이 날다가 밀랍이 녹아내리는 바람에 추락해 목숨을 잃고 만다.

물론, 이카로스가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밀랍과 새의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준 이는 아버지 다이달로스다. 그는 이카로스에게 하늘을 너무 높이 날지도 말고 너무 낮게도 날지 말라고 충고했다. 바다와 태양의 가운데에서 적절한 고도를 유지하며 날아야 날개가 물에 젖지도 않고 태양에 녹아내리지도 않는다고. 

그러나 이카로스는 욕심을 부렸다. 그래서 추락했다. 이카로스는 분명 태양과 너무 가깝게 날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는 그의 추락에 대해 무모한 도전으로 빚어진 패배라고 말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기에 하늘을 나는 꿈을 이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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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난다는 것은 도전이다. 물론 나이에 맞게 분수에 맞게 도전해야 다치지 않는다. 장 폴 사르트르는 “우리의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고 말했다.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선택들로 채워지는 것이 여행이다. 숱한 선택의 중간에 서서 정확하게 도전해야 발견하는 행복도 선명하고 화려하다.

여행을 통한 행복은 경험의 부산물이다. 대단하다고 여기던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복잡한 것이라 생각하던 것이 단순해진다. 많은 것을 갖는 것이 행복이라 여기던 것에서 내게 꼭 필요한 것을 갖는 것이 보통의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행복은 빠름이 아니라 느림으로 보고 싶은 것을 보며 가는 것이고, 느릿하게 세상을 두발로 걸어 다니며 구경하며 가는 것. 더하여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웃으며 느릿하게 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경험으로 과거를 추억하며 현재를 깨닫게 되는 것, 한걸음 더 나아가 미래에 가야 할 길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여행은 현재와의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잠시만의 이별이다. 여행은 길을 나서는 것이기도 하지만 길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좀 더 여유롭게, 웃음을 지으며 살아가게 되는 기회의 시간이다. 어떤 곳에서는 잠자는 곳이 지저분해서 어떤 곳에서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또 어떤 곳에서는 너무 많이 걸어 발에 물집이 생기고 부르터서 걷지 못할 때도 있다. 

또 어떤 곳에서는 현금은 떨어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카드 사용이 안되어 고생하는 곳도 분명 있다. 여러 가지의 불편함이 복합이 되어 몸과 마음이 지치도 또 가고 싶고 가게 되는 것이 여행이다. 삶을 포기하지 않는 다면 여행은 계속된다. 주말에 떠났던 그 길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집을 나서는 순간 길은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진 그 길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 그 유혹은 아마도 생이 끝나야 멈추게 될 것이다. 여행은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기에. 여행은 결국 민낯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고 나아가 더 나은 나로 성숙되는 기회를 찾는 것이다. 여행은 확장성을 선물한다. 더 먼 곳을 희망할 수 있게 시야를 넓혀준다. 따뜻한 배려를 타인에게 베풀기도 하며 빠름에서 느림으로의 변화, 거기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선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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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인생과 닮았다는 것은 도전이라는 것, 모험이라는 것이다. 여행과 인생 모두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다가도 매끈한 도로도 만난다.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다만 여행은 같은 곳을 여러 번 갈 수 있지만 인생은 단 한 번이라는 것이다.

내가 걷는 이 길에서 나는 언어를 줍는다. 그 언어로 향기 있는 꽃(책)을 만든다. 낯선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토대로 나 만의 향기를 간직한 꽃(책)을 만든다. 살아 움직이는 동안 나는 길 위에서 언어를 주워 밥을 먹을 것이고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것이다. 그 누구는 길 위에서 생명의 은인을 만나게 될 것이고, 평생의 연인을 만날 것이다. 길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무엇을 선물하니까. 살아 움직이는 동안 길 위에서 서성일 것이다. 다만 서로의 방향이 다를 뿐.

길 위에 밥이 있고 기쁨이 있다. 길 위에 눈물이 있고 아픔이 있다. 마지막 그 날까지  길 위에서 서성인다. 우리 모두는. 길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갈 수 있다. 다만 나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가야 할 길은 스스로가 선택하고 결정하기에 가장 어려운 선택이다. 길 위에서 오래 서성일 수 록 명확한 자신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오래도록 홀로인 순간에 가장 선명한 나의 길을 발견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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