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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김정한 칼럼] 나는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우는가

다시 찾아온 이 겨울에

김정한 시인 | 기사입력 2017/11/28 [10:42]

[공감신문 김정한 칼럼] 나는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우는가

다시 찾아온 이 겨울에

김정한 시인 | 입력 : 2017/11/28 [10:42]

[공감신문] 첫눈이 내렸다. 나는 보지 못했는데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느닷없이 찾아온 겨울 손님, 첫눈은 그렇게 겨울을 물어다 놓고 사라졌다. 발갛게 물든 붉은 단풍이 떨어지기 전에 가을이 떠날 준비도 하기 전에 예고 없이 날라든 낯선 고지서처럼 겨울은 또 이렇게 배달되었고, 이별을 미루던 가을은 야금야금 서슬 퍼런 발걸음으로 점령하는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화려했던 만추, 11월도 이렇게 떠나간다. 

 

흔들리는 동공에 잡힌 세상은 온통 무채색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화려하고 탱글탱글 열매로 가득한 수채화의 세상이 묵직한 한편의 수묵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꺼지기 전의 마지막 불꽃처럼 화려하게 불타오르다가 형형색색의 사연들을 다 토해내지 못한 채 막 이별을 고하는 가을은 헛헛함으로 가득하다. 가지에 채 떨어지지 못한 붉은 잎이 무엇이 아쉬운지 애잔하게 붙어 있다.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이렇게 또 한 번의 겨울이 찾아왔다. 세상은 동토의 빙하 같은 색을 머금은 채 푸른 안개로 뒤덮일 것이다. 겨울이 깊숙이 파고들어 존재감을 드러내며 세상을 뒤흔들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결실로, 누군가는 상실로 각자의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머지않아 가슴을 후려치는 삭풍과 눈보라가 몰아칠 테지만. 누군가 손 내밀어주는 따뜻함과 온전한 사랑이 있다면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을 터. 

 

청춘시절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었다. 무성한 열매를 주렁주렁 단 사과나무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 햇빛을 받으며, 바람에 흔들리며 또 수분을 빨아들여 가지 곳곳에 영양분을 골고루 나눠주며 싹을 틔우고 잎을 키우며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싶었다.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 정직하게 성실하게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키고 싶었다. 

 

어릴 적 기억이지만 시골집 앞에 주목나무가 있었다. 친구들보다 키가 작았던 나는 8살 즈음 목이 꺾어지도록 나무를 올려다보며 나무에게 작은 소망을 말한 적이 있다. '나무처럼 키가 크고 싶다고' 나무에게 기대어 속삭이던 적이 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나무에게 소망을 얘기한 덕분인지. 초등학교 5학년 즈음에 놀랄 만큼 키가 커져 아주 많이 기뻐했다. 

 

그때부터 나무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고 나무처럼 살 거라고 다짐한 것이다. 청소년 시절부터 청춘시절까지는 나무처럼 살기 위해 애를 썼다. 햇빛이 들면 놓치지 않고 가지를 뻗었고, 물이 스며들면 주저 않고 뿌리를 깊숙이 뻗었다. 

 

그렇게 이십 대 중반에서 서른 중반까지 일이 삶이라며 일에 몰입하며 승부를 걸었고 정직하게 일한 결과로 평가를 받고 싶었다. 그러나 앞으로만 가다 보니 경쟁자가 생기고 장애물도 만났다. 또 나만의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것도 아닌데 융통성이 부족한 내가 그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물론 가끔은 실력보다 인간관계가 실력을 넘어서는 능력이 될 때도 있다. 그것에 잘 적응했더라면 아마도 처음의 그 길로 쭉 갔을지도 모른다. 

 

인간관계에 유독 서툰 나는 튼튼한 가지를 꺾이는 사고를 자주 만났다. 열심히만 하면 내 뜻대로 될 것 같았는데. 세상은 극복하기 힘든 것을 내게 주문했다. 중요한 것을 잃고 나니까 심하게 좌절하게 되었고 아무 많이 방황을 했다. 

 

어느 날부터 비뚤어진 세상의 단면을 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융통성이 없는 나로서는 세상과 조금씩 멀어지는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분노를 품은 채 마음을 닫았지만 결국에는 상처 입은 새가 되어 세상을 피해 나만의 동굴을 만들었다. 몰론 그것이 또 하나의 길을 열게 해주었지만. 

 

노력하기에 따라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문을 여는 기회는 있다. 내 나무에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서도 내가 수확을 할 수가 없는 날도 있다. 생의 모든 것이 내 맘대로,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생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다. 이제는 빠름에서 느림으로, 속도가 아닌 방향을 생각하며 간다.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삶의 중턱을 넘고서야 깨달았다. 그 잘난 능력과 실력도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 평범하고 건강한 행복을 위해서는 큰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교만함도 지나친 욕망도 행복한 생을 살아가는데 독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넘치는 풍요보다는 조금 부족해야 순간순간 몰입하며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다. 천천히 가야 눈앞에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갈 수가 있으니까.

 

그러다 보니 가진 것이 별로 없고 버릴 것도 많지 않다. 모든 게 가볍다. 걷는 것도 느리지만 걸어가는 길이 호젓하다. 이제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힘에 부치면서까지 급히 뛰어오르며 정상까지 올라갈 뜻은 없다. 내가 가는 이 숲길을 꾸준히 걷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목표를 수정하니까 그제야 겨울 숲도 푸르게 보이고 박하 향기가 느껴진다. 욕심을 내려놓으니 스쳐가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말을 걸며 친구가 되어 준다. 

 

지나가는 이름 모를 겨울새가, 지나가는 청아한 바람이 욕심을 내려놓은 것에 대해 칭찬을 해주듯 새는 노래하고 겨울바람은 청아하게 뺨을 스친다. 이렇게 편안하게 숲길을 거닐며 젊은 날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살짝 꼬집어 본다. 주연을 탐하면서 자꾸 위로만 오르려고 했던 그 젊은 날의 헛된 욕망의 춤을. 

 

실패했던 그때를 돌아보면 그 분야에 있어서는 조연의 능력임에도 주연을 탐내서인지도 모른다. 내면의 욕망의 크기를 정확히 가늠하지를 못했기 때문에. 진솔하고도 선명한 인정이 필요했는데 감추려 하고 그렇게 뒤틀린 자아를 또 다른 교만으로 위로받았는지도. 그래서 내가 만든 동굴 속에서 누군가를 원망하며 결핍을 부둥켜안고 오래도록 울었는지도. 

 

나이가 들만큼 들고 보니 세상의 모든 것들은 따뜻하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장미꽃을 바라보며 웃지만 누군가는 그 향기를 좋아하듯. 또 누군가는 장미를 꺾기를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있는 그대로 두고 가끔 와서 보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다만 내가 좋아하는 특별한 것을 찾아 노력하면 된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그것만 바라보면 된다. 

 

삶에 중턱에 와서 깨달은 것은 물처럼 어우러져 사는 것이 굴곡진 것들을 덜 만난다는 것이다. 물은 아무것도 탓하지 않고 묵묵히 흐른다. 흙탕물을 만나든, 깨끗한 물을 만나든 거부하지 않고 섞이면서도 결국은 스스로 맑아진다. 흐르면서 맑아지는 것이다. 가장 착하고 선하게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 물이니까. 

 

곧 12월이다. 아름다운 추억, 슬픈 기억, 아쉬움, 새로운 희망을 뿌려놓고 서서히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그럴듯한 계획을 세워놓고도 실제로 하고자 했던 것들이 정녕 무엇이었나를 고민해볼 때다. 대단한 사명을 안고 세상에 온 건 아니지만 올바르게 이루고자 했던 것들을 점검해 볼 때다. 자신과의 약속을 얼마나 정직하게 지켜왔는지도 따져볼 때다.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살랑이던 설렘의 날은 얼마 던가를, 여름 소낙비처럼 고통을 온몸으로 맞아야 했던 날은 얼마 던가를, 가을 하늘처럼 맑디맑은 기쁜 날은 얼마 던가를, 짙은 회색빛 겨울 하늘 같은 고독한 날은 얼마 던가를, 곰곰이 따져보며 반성하고 칭찬하고 응원할 때다. 충실하게 지혜롭게 행동할 때다.  

 

나무는 봄날에 품었던 소망들이 다 이 루어고 처음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온 곳, 흙으로 돌아갔다. 그 많던 잎들이 인연을 다하고 떠났다. 다시 부활하기 위해 깊은 휴식에 들어갔다. 추위와 어둠 앞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찬연한 봄을 맞을 테니까.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겨울은 침묵과 성찰, 시련의 시간이기는 하지만 또 희망을 잉태한다. 겸허히 순환하는 자연을 닮으리라. 곱디고운 한 잎의 단풍마저 다 털어내는 자연을 닮으리라. 움켜쥔 풍요로는 결코 혹독한 겨울을 건널 수 없기에. 다 털어내고 비우리라. 그리고 무엇을 채울 것인가를 고민하리라. 어차피 겨울은 몸으로 견디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견뎌야 하기에. 끝으로 "페이터의 산문"에도 인용되었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에 한 문구를 남긴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바람이 땅바닥에 낡은 잎을 뿌리면 흩어지고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녀자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어뜨리려 하는 자나, 또는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긴 자나, 모두가 다 가지 위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과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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