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곡 김중경

며칠 전 선농단에 꽤나 명망있는 두 분이 찾아오셔서 제 찻상 앞에 나란히 청해 앉았습니다, 사업상 만난 두 분은 아직 그렇게 친한 친구 같지는 않습니다. 팽주인 저는 찻자리에 앉은 상대가 누구건 상관하지 않고 오로지 차를 맛있게 우려내는 데만 전념합니다.

왼쪽에 앉은 분은 차에 문외한이시고 다른 한 분은 다도를 익혀서 강의도 하신 경력이 있다 합니다. 그래서인지 왼쪽 분은 따라주는 족족 연신 드시며 처음 접하는 보이차의 향기에 신기해하십니다.

반면에 차선생님은 양손을 겹쳐 삼각형을 유지한 상태에서 한 손 위에 찻잔을 올려두고 고상하게 마시는 방법을 옆 사람에게 강요합니다. 강요가 반복될수록 상대의 미간이 좁아지며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는 모습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는 사이 보이차의 우수성에 대해 들려줄 기회는 사라지고 시간이 바쁘다며 자리를 파하게 되었습니다. 차선생님이 앉았던 자리엔 마시지 않은 찻물이 담긴 찻잔만 휑하니 남아 있습니다.

 

옛 문헌들에 빈번히 등장하는 '行茶(차를 하였다)'는 마땅히 '차를 마셨다'라는 의미입니다. 근자에 '차를 한다'는 분들 중엔 차를 마시지 않고 우리고 따르는 행위에만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치 목욕탕 가서 옷 벗고 난 후 예쁘게 접어 옷장에 챙겨 넣는 것만 신경 쓰고 정작 목욕은 않고 그냥 나오는 격이라 할까요?

우리고 따르는 행위의 근본 목적은 마시기 위함이지요. 차를 마시는 데 의미를 두지 않는 온갖 행위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 까요?

 

차는 마음이 통하는 벗과 함께 차향기와 맛을 음미하며 공감하는 얘기를 나눌 때 그 가치를 더하게 됩니다.

 

남곡 김중경
▲ 서예가, 보이차 품명가 ▲이코노믹 리뷰 보이차 연재(2014년) ▲현 성차사진품보이차 대표 ▲선농단역사문화관 전통다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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