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일상을 떠나보내는 고요한 시간, 주말추천 교양공감 포스트

[공감신문 교양공감] 벌써 8월 말이라니, 매일 느끼는 거지만 시간은 참 빠르고 부지런하다. 8월 중순을 넘겼다는 이야기를 드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8월의 마지막 주말을 앞두고 있다니.

소란했던 여름도 이제 태풍이라는 고비 하나만을 남겨둔 채 고요해질 채비를 하고 있다. 아마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언제 그렇게 ‘역대급’으로 더웠냐는 듯 기온이 완급한 하강곡선을 그릴 것이다.

참으로 속 시끄러웠던 지난 여름을 기억한다. 연인과 휴가지에서 대판 싸우고 나서, 여전히 소원한 사이라고 토로하던 친구도 있고. 직장에 유례없는 일대 위기가 닥쳐와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파도 위를 떠다녔다는 이도 있고. 비 한 방울 내 주지 않았던, 정말이지 길고 긴 여름이었다.

무더위와 열대야에 피로까지, 온갖 것들로 절여졌던 지난 여름. 비도 자주 안 오더라. [Photo by Dan Gold on Unsplash]

지난 여름, 우리는 폭염에 시달리면서 뻑뻑하고 커다란 일상의 덩어리들을 억지로 씹어 삼켜야 했다. 그 와중에 만난 여름휴가는 목 메이는 와중의 물처럼 반가웠지만, 그것도 잠시 머물렀을 뿐. 뭐가 그리 바쁜지 오자마자 갈 채비를 하더라. 결국 우린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와, 또다시 버텨내고 견뎌내야 했다. 참, 길고 긴 여름이었다.

때로는 비가 내리기도 했다. 폭염의 가운데 찔끔찔끔 내렸던 비는 땅을 적시면서, 지릿한 흙냄새를 퍼트리기도 했다. 허나 그것 역시 휴가처럼 잠시 머물렀을 뿐, 우리 한반도는 올해 역시 기억에 남을 만한 가뭄을 겪었다. 타들어가는 농심을 알 리 없는 태풍은 교묘히 우리 머리 위를 비껴 가 버렸고.

벌써 몇 번이나 적었지만 아직도 부족한 감이 든다. 올 여름은 정말 길었고, 괴로웠으며, 무더운 시간들이었다. 인젠 그것이 서서히 걷혀가고 있다. 8월 23일, 어제를 처서(處暑)라고 한다. 곧 가을이 온댄다.

귀뚜라미 우는 가을이 느리지만 착실하게,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Photo by Andrew Preble on Unsplash]

매미 소리는 빼곡하고 가득 찬 느낌을 준다. 가로수에 붙은 수십 마리의 매미가 일제히 울어 제끼는 탓에 그리 들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여름은 숨 쉴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헌데 며칠 전부터는 그 매미소리도 하나 둘씩 잦아들고 있다. 이젠 아름드리 나무 위 매미가 아니라, 저 아래 대지에서 귀뚜리가 노랠 한다. 그 소리는 매미소리에 비해 한결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바람 한 점 없던 여름밤의 한증막을 젖히며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창문을 열어두면, 언제 달아뒀나 싶은 풍경이 딸랑, 딸랑, 하고 흔들린다. 그 고풍스런 소리에 향긋한 차 한 잔이 당긴다.

이 얘길 들려드리기 위해 이렇게 멀리 돌아온 것 같다. 오늘 에디터는 여러분에게 소박한 선물을 하나 해 드리고 싶었다. 물 위에 버들잎을 띄워드리듯, 얼마 전보단 한결 고요해지셨을 여러분의 일상에 잔잔한 노래 몇 곡을 띄워드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풍경소리니, 귀뚜라미 울음소리니 구구절절 주절거린 것이다. 히히. 우리가 구구절절 늘어놓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여러분 앞에만 서면 수다쟁이가 돼 버리는 기분이다.

지글지글 여름의 팬 위에서 부대끼셨을 여러분, 곧 있으면 풍경소리가 잘 울려 퍼지는 고요하고 낭만적인 가을밤이 찾아온다. (부디)조용하고 얌전히 지나갈 이번 태풍은 집 안에서 안전하게 피하시고, 대신 오늘은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고요한 곡들을 한 번 들어보는 게 어떠신지. 곧 도래할 가을을 닯은 기타 곡들이 대부분이다. 취향에 맞으셨으면 좋겠다.

낮이건, 아니면 초저녁이건 풍경이 조용히 딸랑딸랑 흔들리는 가운데 들으시는 걸 추천한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기타와 목소리. 그밖에 다른 많은 것들은 생략해버린 이 노래들은 느릿느릿하고, 듬성듬성 빈 느낌을 준다. 때문에 고요하고 적막한, 오롯이 여러분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고 계실 때 듣는 편이 더 어울린다 할 수 있겠다.

에디터는 이번 포스트에 다소 개인적인 얘기들을 조금(과연?) 담아보려 한다. 여러분은 여러분 나름대로의 개인적 감상을 떠올려 보시면 되겠다. 그렇게 태풍조차도 뚫지 못할 단단한 ‘고요의 성’을 쌓고, 뜨거웠던 우리의 여름을 찬찬이 곱씹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란다.

■ Bon Iver – Holocene

일단 1차적으로, 높은 기온이 우리에겐 참 커다란 ‘문젯거리’였다. 6월 말 쯤부터 주제도 모르고 치솟더니, 7월부터 최근까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더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두면 금방 얼음이 녹아 묽어지고, 집 앞 편의점에라도 다녀오면 가슴팍에 땀이 맺히는 게 일상이었다.

원래부터 여름을 싫어했던 이들은 아직 가을도 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겨울’을 부르짖으시더라.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면서 “그래도 여름보단 겨울이 낫지”라면서. Bon Iver의 다른 여느 곡들과 마찬가지로, Holocene 역시 겨울의 냄새가 물씬 난다. 눈 냄새, 눈에 섞인 먼지 냄새 등.

지겹고, 넌덜머리 나지만 막상 또 추워지면 이 날씨가 그리워질 걸. [Photo by Elena G on Unsplash]

우리가 “여름 빨리 가고 겨울이나 왔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날씨 말고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다. 그 이유가 뭐냐고? 음, 그건 날씨가 조금이나마 더 선선해질 다음 주 쯤에 들려드리도록 하겠다.

■ Kings Of Convenience – Cayman Islands

여름이라고 어찌 원망스럽기만 하겠나. 여름 역시 다른 여느 계절 못지않게 많은 장점과 매력을 지닌 계절이다. 특히, 방학도 없는 어른들에겐 ‘여름휴가’라는 고 사랑스럽고 깜찍한 것이 있다.

고요한 물가에 잘 어울리는 곡. 논외로 제목의 '케이맨 제도'는 조세피난처로 유명한 그곳이다. [Photo by Lotus Child on Unsplash]

이번 여름은 피서지, 특히나 물놀이를 다녀온 분들이 많으셨을 듯 싶다. 과장 좀 보태서, 살이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뜨거웠으니까. 그래서 휴가를 맞아, 바다나 계곡으로 떠나 차가운 물로 풍덩 뛰어들었다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Kings Of Convenience의 이 곡 Cayman Islands는 그때의 피서지보다는, 요맘때의 피서지가 더 잘 어울리는 곡이다. 시끌벅적한 피서객들이 모두 떠나버린, 그래서 한숨 돌리고 있을 차가운 물과 그 안을 노니는 물고기들이 연상된다. 가을에 해수욕장을 가보신 적 있는지? ‘운치’와 ‘쓸쓸함’의 딱 중간이더라. 이 곡 역시 어쩐지 그런 느낌을 전해준다.

■ John Mayer - Slow Dancing in a Burning Room

올 여름은 유난히 ‘헤어졌다’는 소식이 많이 들려왔던 듯 싶다. 앞서도 언급했듯, 지리멸렬했던 오래된 연인 관계를 끝냈다는 이도 있었고. 정리, 결별, 갈라서기 소식이 유난히도 많았던 여름이다. 그래서 ‘이런 게 이별의 계절인가’ 싶기도 했었다.

‘이미 끝났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으면서도, 애써 그것을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끓기 시작한 냄비 안의 개구리 이야기처럼, 여러 가지 문제들이 조금씩 터지고 있지만 안주하기 위해 ‘괜찮을 거야’, ‘이 정도야 뭐’라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다.

진작 떠났어야 할 곳에서 아직도 '익숙해서', '편해서'란 이유로 머물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Photo by Gianni Zanato on Unsplash]

불타는 방 안에서 느릿느릿한 춤을 추는 연인들의 모습. John Mayer는 이미 끝나버린 사랑을 부득불 이어가면서 노랫속 연인들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대로 있으면 타버린다는 걸 알면서도, 그 사실을 외면하며 느릿느릿 스텝을 밟는 연인의 모습을.

■ Magnolia Electric Co. - Northstar Blues

우리가 지난 여름밤을 ‘불쾌지수’니, ‘속 시끄러움’ 따위로 보낸 건 다 ‘열대야’, 요놈 때문이었다. 보통 밤은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우리 생각을 한결 촉촉해지게 만든다. 헌데 그 열대야 때문에 우리가 ‘한 여름 밤의 꿈’ 같은 낭만 타령을 덜 하게 됐단 얘기다.

본디 밤하늘의 별을 구경하길 좋아하는 에디터는 지난 여름 동안 단 한 개의 별도 찾지 못했다. 더워서 밖엘 안 나갔거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늘 쉽게 찾아내는 북극성도 이번 여름엔 보질 못한 것 같다.

'하늘에 대한 아무 이야기'도 꼭 들고 돌아올테니, 기대하며 기다려주셨으면 좋겠다. [Photo by Ihor Malytskyi on Unsplash]

기업명 같은 이름을 가진 밴드 Magnolia Electric Co.의 곡 Northstar Blues는 계절과 함께 저물어가는 늦여름, 초가을께의 어느 밤을 떠올리게 한다. 태풍이 지나가면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무지개도 뜰 것이다. 아마 청명한 하늘도 쾌적하게 보일 터이니, 이번 주말 밤에는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려 한다. 여름의 끝이 너무도 아쉬워서. 그렇게 들여다보면 다음 번엔 언젠가 ‘하늘’을 주제로 또 여러분 앞에서 수다를 늘어놓을지 모르겠다.

■ India Arie - Outro

그런가하면 이번 여름은 참 감사할 일도 많은 나날이었다. 잃어버렸던 반려견을 되찾게 돼, 그 작은 녀석을 품에 안고 엉엉 울었다던 누군가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감사 인사도 전하지 못했단다. 또,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할 만큼 큰일을 겪었던 누군가는 너무나도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감사함을 느끼면서, 재기할 수 있게 됐노라고 전해온다.

여러분이 지난 여름을 보내며 가장 감사함을 느꼈던 사람은 누구일까? [Photo by Manuel Cosentino on Unsplash]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사다난하고 ‘별일’ 있었던 여름을 보내면서, 밉고 싫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고마움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존재한다.

이 곡, India Arie의 Outro는 사실 정규 곡이라기 보단, 앨범재킷 맨 뒤에 있는 ‘Special Thanks To’에 가깝지 않나 싶다. “이 노래는 당신들을 위한 곡이다”라며 그녀가 고마워하고 있는 이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짤막하게 끝나버리는 곡.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Thanks To’ 리스트를 작성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 안녕, 내년에는 조금 덜 덥기를

올해 여름은 어떠셨는지. 이 물음에 저마다의 답변이 나올 것이다. 더위, 혹은 냉방병 때문에 골골 앓으면서 여름을 보냈다는 이도 있다. 앞서도 말했듯, 고온다습한 일상을 억지로 꾸역꾸역 삼키며 힘겹게 보낸 분들이 많으실 터다.

헌데 계속해서 언급한 대로 ‘다소 불행한’ 일만 있었던 여름은 또 아닌 듯 싶다. 누군가에겐 잊고 싶은 최악의 여름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겐 설렘과 두근거림이 시작된 계절이었으리라.

무더운 여름밤, 공원에 앉아 시끄러운 매미소리를 피쳐링 삼아 고백한 끝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는 친구가 있다. 여름의 끝을 결혼으로 맺게 됐다고 환히 웃던 키 큰 친구도 있다.

공감신문의 자랑 박진종 기자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결혼하는 친구,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친구 둘 모두에게 진심을 담은 축하를 건넨다. 비록 아직 많은 것이 서툴기에 불안해하고 있지만, 여름이 옅어져가듯 그의 불안도 희미하게 사라지길 바란다. 그와 그가 꾸려나갈 가정에, 그들이 앞으로 써내려갈 사랑의 일기장에 행복과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

공감신문 사무실에도 계절의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의 여름이 저물고 있다. 우리와 지난 여름을 함께하셨을 여러분에게 감사를 전하며, 돌아오는 가을도, 그 너머의 겨울도 잘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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