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앞두고 사상 검증으로 번질 듯…대북 철학 해명해야

[공감신문 김대호 기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코너에 몰렸다. 2007년 11월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에서 한국은 기권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사전 의견을 구했고, 문재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파장은 북한의 핵 도발로 한반도 위기상황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그의 사상 점검 차원으로 번질 전망이다. 단순하게 얼버무릴 일로 끝날 것 같지 않다. 색깔론으로 방어할 일도 아니다. 북한 핵문제로 국제공조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차기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칼러를 분명히 해야 할 상황이다.

 

발단은 노무현 정부시절에 외교통상부장관을 역임한 송민순씨의 회고록이다. 현재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는 그는 최근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이라는 회고록을 발간했다. 회고록에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2007년 10월2∼4일·노무현-김정일)이 열린 지 40여 일 후 이뤄진 유엔총회 인권결의안 표결에 대한 노무현 정부 수뇌부의 결정 과정을 소개했다.

회고록에 의하면, 2007년 11월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하자는 자신과 기권을 지지하는 다른 참석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이때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여기서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이 등장한다. 문재인 당시 실장은 김만복 원장의 견해를 받아들여 남북 경로를 통해 북한 입장을 확인해보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송 전장관은 회고록에서 썼다.

그로부터 이틀후 11월 20일 송 전장관은 백종천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으로부터 북한의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당시 북한은 "북남관계 발전에 위태로운 사태를 초래할 테니 인권결의 표결에 책임 있는 입장을 취하기 바란다. 남측의 태도를 주시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저자는 소개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4~2005년 유엔 인권위원회와 2005년 유엔 총회에서 실시된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내리 기권했다가,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하자 찬성으로 돌아섰다가 2007년 다시 기권했다. 이때 노무현 정부는 북한에게 물어보고 기권결정을 내렸다는 게 송 전장관의 주장이다.

 

여기서 의문점은 차기 대권후보자의 대북관이다. 정부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북한에 물어보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대한 문재인 전 대표의 생각이다. 2007년 회의당시 문재인 전대표는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위치에 있었다. 송민순 전장관의 회고록에 의하면 문재인 전대표는 비서실장의 입장에서 김만복 국정원장과 뜻을 같이 했다. 북한에 물어보자는 쪽에 섰다. 차라리 북한에 물어보지 않고 결정했더라면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도 한 마당에 미국과 약간의 거리를 두더라도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고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렸으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우리나라에도 북한과 대결보다는 대화를 주장하는 세력이 있는만큼,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철학을 강조할수도 있었다.

 

이 중요한 대목에서 문재인 전대표는 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당시 결정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노무현 대통령의 토론 시스템을 옹호하고 박근혜 정권의 소통부재를 탓했다. 자신에 집중된 화살을 엉뚱한데로 돌린 것이다. 현 대통령의 소통부재를 걸고 자신의 대북 철학을 덮으려 한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노 대통령은 항상 내부에서 찬반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거쳤으며 시스템을 무시하고 사적인 채널에서 결정하는 일은 없었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며 오히려 여권을 향해 역공을 취했다.

문 전 대표는 그러나 가장 중요한 대목인 북한에 사전 의견을 구했는지 여부, 그렇게 결정했다면 당시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문 전 대표는 당시 상황을 소개하면서 "노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10·4 정상선언이 있었고 후속 남북 총리회담이 서울에서 열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표는 "외교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계속 찬성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통일부는 당연히 기권하자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대부분 통일부의 의견을 지지했다. 심지어 국정원까지도 통일부와 같은 입장이었다"며 "노 대통령은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후 다수의 의견에 따라 기권을 결정했다"고 소개했다. 이 대목에서도 문 전대표는 당시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이어 "노무현 정부는 대북송금특검, 이라크파병, 한미FTA, 제주해군기지 등 중요한 외교·안보 사안이 있을 때 항상 내부에서 찬반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며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정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부터 2005년 동안에도 외교부는 늘 찬성하자는 입장이었던데 비해, 통일부는 기권하자는 의견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격론이 시작된 것은 2006년이었는데, 그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했기 때문이었다"며 "당시 여당도 기권 의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외교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찬성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문 전대표는 자신의 대북관을 해명해야 할 지점에서 방향을 박근혜 정부에 돌렸다. 그는 "정부, 특히 청와대의 의사결정과정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박근혜 정부는 노무현 정부를 배우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문 전 대표는 "송 전 장관의 책을 보면서 새삼 생각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참으로 건강한 정부였다는 사실"이라며 "사안의 성격상 필요하면 민정수석실과 정무수석실(후엔 시민사회수석실), 국민참여수석실 등 비외교안보 부서까지 토론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노 대통령은 언제나 토론을 모두 경청한 후 최종 결단을 내렸다"며 "대통령이 혼자 결정하는 법이 없었다. 시스템을 무시하고 사적인 채널에서 결정하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연합뉴스

문제는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다. 요즘 정치인들은 페이스북과 같은 SNS를 자주한다. SNS는 다중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소통의 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SNS는 단문을 전하기 때문에 상세한 생각을 전달하기 어렵다. 자신의 철학을 전하는 장소로는 부족하다. 문재인 전대표는 공식적인 기자회견을 열어서 2007년도 상황을 설명하고 북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여당은 회고록 내용이 전해지면서 문재인 두두리기에 나섰다. 좋은 소재다. 그렇지 않아도 극우세력들 사이에서 문재인 대권후보의 사상을 문제 제기하는 마당에 보수층은 물론 중간층까지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차기 대선에서 북한 핵 문제는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는 후보’, “북한을 추종하는 후보‘라고 낙인 찍기 딱좋은 소재다.

새누리당은 '송민순 회고록'을 문제 삼아 문 전 대표를 향해 맹공을 퍼붓고 있다.

새누리당 박명재 사무총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문 전 대표는 단순한 종북(從北·북한을 추종함) 세력이 아니라 북한의 종복(從僕·시키는 대로 종노릇함)이었다"고 맹비난했다. 박 사무총장은 "문 전 대표가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데, 이것도 북한에 물어보고 반대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이런 분이 지난 대선에 출마했고, 내년 대선에서 대권을 잡는다면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을 북한 뜻에 따라 하겠다는 것인지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자비한 인권 탄압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도 팔 걷고 나서야 할 마당에 북녘의 동포들이 겪는 끔찍한 상황을 당시 우리 정부도 잘 알고 있었다"며 "고맙게도 유엔이 표결해주겠다는데 오히려 우리 정부가 나서서 말렸다는 게 사실이라면 경악할 일"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이 사안의 진상 규명을 위해 당 차원의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TF팀장은 전략기획부총장인 박맹우 의원이 맡았으며, 금명간 TF 첫 회의를 열어 대응 방향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성원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회고록에 대해 문 전 대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가장 유력한 야권 대순 후보인 만큼, 이 문제는 과거사로 묻어둘 게 아니라 철저히 조사해 반국가적 행태가 있었는지 국민께 소상히 알려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이를 계기로 '대북송금 특검'도 본격 추진해야 한다"며 "왜 북핵 개발이 속도를 냈고, 북핵으로 우리의 존망이 위협받게 됐는지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또다시 색깔론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문제를 더민주가 색깔론으로 방어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증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이 올해 두 번이나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 세계적인 대북제재가 진행되고 있는 시기에 민감사안을 색깔론으로 덮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수 있다.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이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를 깎아내리고 권력 게이트에 쏠린 국민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정치공세를 펼치는 것은 정말 후안무치하다"라고 비난했다. 윤 대변인은 "정상적인 대북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한 것이 왜 정체성을 의심받아야 할 일인가"라고 반문하고 "문 전 대표의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의지는 지난 대선 당시 그가 밝힌 인권선언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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