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2020년.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숫자다.

2000년 '뉴 밀레니엄'을 맞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나 된 것이다! 20년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발생했던 국내외 주요 뉴스 9개를 선별해 정리해보았다.

10개까지 채우지 않은 것은 '10번'의 마지막 뉴스가 해피엔딩의 좋은 뉴스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안타깝게도 9개의 주요 이슈/뉴스 중 좋은 뉴스가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시간을 거슬러, 2000년을 맞았던 그 첫날의 기억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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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아무 일도 없었다, Y2K

뉴 밀레니엄! 21세기를 맞이 하던 당시 사회의 분위기는 설렘보단 '두려움'으로 만연해있었다. 바로 Y2K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는 시중에 사용되던 많은 컴퓨터, 특히 과거에 만들어진 컴퓨터들이 시스템 내에서 2000년을 해석 및 인식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해서 시작됐다.

이러한 컴퓨터 해석 오류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YEAR, '2K'(2000)문제, 즉 'Y2K' 또는 밀레니엄 1월 버그(MILLEMNNIUM BUG)라 불렀다. 사회 전반이 이로 인해 많은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 당장 1일 새해가 되면 '재해 상황'처럼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거셌었다.

많은이들이 새해 맞이에 앞서 라면이나 생수, 손전등 등 비상 생필품을 구비해두기도 했었다. 다행히 아무일도 없이, 우린 평화롭게 뉴밀레니엄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벌써 2020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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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특별한 이유? 분단 이후 '첫' 정상회담이었기 때문이다. 1948년 분단된 남한과 북한, 두 국가의 대표가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대화를 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전세계의 언론이 주목했을 수 밖에.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중 하나다. 북한의 외교 및 여러 이슈는 전세계의 군사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정치 및 경제 등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친다.

당시 한국의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화해협력정책'의 결과였다. 그는 북한과의 대화의 장을 연 것- 그로 인해 전 세계의 정세를 안정시킨 것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 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햇볕정책(Sunshine Policy)으로 더 잘 알려진 '대북화해협력정책'은 북한에 대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으로 그들을 지원하며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여기에는 총 세가지 원칙이 포함되었다.

첫번째는 북측에 무력 도발을 허용하지 않는 것, 둘째는 남측은 흡수 통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셋째는 남측은 북측에 화해와 협력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과 민간의 협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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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잊지 못할 참사, '9.11'

2001년 9월 11일, 뉴욕 한 복판에 자리잡고 있던 세계 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이 무너졌다.

무려 110층 규모에 달했던 이 건물을 붕괴시킨 것은 다름 아닌 항공기. 미국 국방부 역시 공격받아 약 30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어야했으며, 희생된 인원의 2배에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던 최악의 테러사태였다.

그렇다면 당시 납치되었던 비행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당일 오전, 약 80여명의 승객과 10여명의 승무원이 탑승한 여객기가 LA로 가기 위하여 보스턴에서 이륙했다. 이 승객들 중 테러범이 포함되었을 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테러범들에 의해 납치된 비행기는 원래의 목적지인 LA가 아닌, 다른 목적지를 향해 방향을 틀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자폭'테러로 끔찍한 결과를 맞이하고야 만다.

'9.11테러'의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이 항공기에 탑승했던 테러범들을 조종한 인물로 뽑힌 것이 바로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 초지인 알 카에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10월 7일, 영국과 연합해 아프가니스탄 주변에 항공 병력을 배치하며 전투를 선언하게 된다. 이것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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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진행중인 '아프가니스탄 전쟁'

현재도 진행중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위에서 언급했던 이유들로 벌어지게 됐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분류되는 이 전쟁에는, 미국 북대서양 조약 기구인 NATO(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의 회원국들을 포함해 우리나라 등 많은국가들의 파병군 지원 등 군사적인 협력이 있었다.

2001년에 발발한 이 전쟁은 벌써 20년에 걸쳐 진행중인 셈이다. 여기에 발생한 희생자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특히 이 전쟁의 발단이 된 911테러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아프가니스탄 등 지역의 민간인 피해도 적지 않다. 인류에 대한 기록이 시작된 이래- 전쟁에는 항상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이중에는 앞서 나가 싸운 군인도 있었지만 민간인의 숫자도 굉장했다. 2000년대의 발생한 전쟁이라 해도 별다를 건 없었다.

국내에서도 최악의 테러가…'대구 지하철 참사'

2003년, 국내에서도 사상 초유의- 최악의 테러가 발생하였다. 2003년 2월 18일 대구광역시 소재 대구 도시철도 1호선에서 방화범 김대한의 소행으로 일어난 '대구 지하철 참사'. 192명의 사망자와 21명의 실종자, 그리고 15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이 사고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자를 발생시킨 철도 사고이다.

또한 '세계 3대 최악의 지하철 사고'로도 꼽히고 있다.

방화범 김대한은 지하철에 오를 때부터 이미 방화를 계획하고 있었다. 휘발유를 구입해 샴푸 통에 담은 김대한은 사건 당일 오전 9시 반 무렵 열차에 탑승한다.

약 20분 후, 사건이 발생한 대구 중앙로 역에 도착할 즈음- 그는 라이터 불을 당겼다. 불이 옆 호차로, 또 옆 호차로 옮겨 붙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개인 택시를 몰던 김대한은 당시 건강이 나빠지며 거동이 불편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2001년에는 정신장애 2급 판정을 받기까지 했다. 결국 그는 세상을 비관한 나머지 이와같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던 건? 그가 당긴 라이터에 수많은 이들의 목숨은 희생됐지만 그는 '살아서' 체포 되었기 때문이다.

사형이 구형됐으나 재판과정에서 계속해서 죽고싶다는 심정을 토로했던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있다(?)는 점이 참작돼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그러나 약 1년 8개월 후, 앓고 있던 뇌졸증의 영향으로 급성 의식 불명 상태 등을 보이다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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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세계 무대에 출연하다

한일 월드컵, 심지어 '4강 진출'이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거머쥔 대한민국! 'BE THE REDS'. '오, 필승 코리아'의 열기가 쉽게 걷히지 않던 10월- 이라크에서는 사담 후세인이 대통령 선거에서 단독 입후보해 '100%' 지지율로 당선됐다.

사담 후세인, 그는 누구인가. 이라크의 정치인이었던 그는, 1979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24년 세월에 걸쳐 이라크를 통치한 독재자이며 출신은 수니파다. 성향은 세속적 범아랍주의, 그리고 아랍 사회주의라 볼 수 있다.

뉴 밀레니엄에도 불구하고 1인자의 자리를 고수하며 영원할 것 같던 그도 몰락을 맞게 된다. 이라크 전쟁이후 은신처를 옮겨 다니며 생활하던 그는 결국 미군에 의해 체포돼 전범 재판을 받게 된다. 결국 2006년 12월 30일, 바그다드에서 사형됐다.

국민 모두가 한 마음으로 복구에 힘썼던, 태안 기름 유출 사고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군 해안에서 유조선이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 무려 원유 12,547㎘가 유출되어 온 바다를 기름통으로 만들어버린 최악의 사고였다.

인천대교 공사를 마친 삼성중공업의 소속선 삼성 1호는 예인선 2선을 동원해 이날 새벽 철수에 들어가게 됐다.

사고 당일, 이 날은 기상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었다. 결국 예인선 2선이 제어력을 상실하여 태안 바다에 기름을 유출하게 된 것이다.

현재 태안은 복구가 되어 국내는 물론, 해외 관광객들도 찾는 인기 관광 명소로 예전 명성을 되찾는 중이다. 많은 양의 원유가 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빨리 복구가 이루어진 것은 국민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복구에 힘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과거 국채 보상운동이나 'IMF 경제위기', 그리고 한일 월드컵 등에서 보였던 '한 마음 한 뜻'의 위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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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이 등장하다!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 탄핵사태

햇볕정책을 통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이끌어내며 전세계 안보에 크게 기여하며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그의 바통을 이어받아 평화로운 남북 정책을 펼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

그는 많은 업적을 이룩했으나 '대통령 탄핵 소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각되어 탄핵 소추 64일만에 대통령의 직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탄핵 소추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그 주인공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었던 그녀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면서 첫 탄핵 대통령인 셈이다.

대한민국 제 18대 대통령이었던 박근혜가 탄핵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민간인이었던 비선실세 최순실에 의해, 박근혜 정부가 드러나기 전부터 국고의 수많은 돈이 도둑질 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부패가 있었다는 것은(..). 그녀를 지지했던 국민들, 또는 그녀를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이 사회가 아직은 정의롭다 믿었던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2016년 12월 3일이 대한민국 국회에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으며, 다음 해인 2017년 3월에 법원은 박근혜의 탄핵을 판결하게 된다. 박근혜는 대통령직 파면 뿐만 아니라 구속을 피할 수 없었다. 노태우, 전두환에 이어 세번째로 구속된 전 대통령이기도 하다.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

4월 16일은 우리 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날이다. 앞서 대구 지하철 참사나 911테러도 매우 가슴이 아프지만, '세월호 침몰 사고'가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건 희생자 대부분이 아이들이었단 사실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여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까지...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침몰 사고의 사망자는 299명, 실종자는 5명, 생존자는 172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해난사고 중 두 번째로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킨 세월호엔 당시 수학여행 길에 올랐던 안산의 단원고 학생들이 탑승 중이었다.

사고 선박인 청해진해운의 세월호의 사건 경위를 조사하던 중, 우리는 우리 사회의 매우 어두운 단면을 보게 되었다. 정말 이게 실화인가? 싶을 정도로 영화보다 영화같은 일들이 사회 어느 한 구석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꽃같은 아이들을 잃어버린 우리. 이와 같은 사태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선 '잊지 않아야'한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것을 반성할줄 알아야 한다. 다시는 이러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길 바란다.

2020년 새해를 맞이한 지 벌써 한달이다. 우한 폐렴 사태로 국내는 물론 전세계가 비상 사태다. 부디 조속하게 해결되어 새해엔 좋은 소식들이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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