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정환선 칼럼니스트=궁궐에는 ‘봄’과 관계되는 단어들이 많다. 선원전에서 양지당으로 들어가는 보춘문(報春門), 성정각 편액 '보춘정(報春亭)'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보춘(報春)’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후원 입구 좌측의 “망춘문(望春門)” 편액 이름에는 ‘춘(春)’자를 사용하였다. ‘왕세자’는 달리 이르던 말로 동궁, 춘궁이라 하였다.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를 ‘세자시강원’이라고 하는데 “춘방(春坊)”이라고도 하였다.

#. 진선문 앞 화단의 ‘봄을 맞이한다.’는 ‘영춘화(迎春化)’ /  궁궐길라잡이 성주경

창덕궁의 봄은 새로 잘라낸 가지에서 생강 냄새와 같은 향내가 나므로 생강나무라 하는 후원 관람지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 피어나면서 시작된다. 흔히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하는 빨간 꽃이 피는 나무를 ‘동백나무’라 하는데 지방에 따라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김유정” 작가의 단편소설 “동백꽃”에는 주인공인 ‘나’와 점순이와의 재미있는 닭싸움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나’의 수탉에게 고추장을 먹여 어떻게든지 점순네 수탉을 이기고자 했지만 – 중 략 - 점순과 ‘나’가 같이 “동백꽃” 속으로 쓰러지면서 화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의 동백은 노란 꽃을 피는 생강나무다.

#. 동궐도의 ‘인정전’과 동 행랑에 그려진 ‘관광청’

사람들은 ‘관광(觀光)’이라는 단어를 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떠나는 tour나 travel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조선 시대에는 ‘관광’을 과거(科擧)를 보러 가는 길이나 그 과정을 이르던 말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간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구경하러 가는 아주 신나고 재미나는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의 중앙 행정 조직 중 ‘예조’는 과거 관리와 일반 상례를 담당하는 부서다. 창덕궁의 “관광청”은 과거시험을 관리하는 현장 실무 부서 관청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가직 공무원 시험을 주관하는 중앙정부의 ‘인사혁신처’와 그 기능이 비슷하였다. 시험문제는 책문(策文), 답안지는 대책(對策)이라 하였으며 창덕궁에서 과거는 주로 인정전 앞마당 조정이나 후원의 춘당대에서 주로 치러졌다. 시험장으로 사용된 장소에서는 방뇨와 같은 생리현상 및 기타 사유 등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무질서한 일들이나 부정행위도 자주 발생하였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과거를 보러 갔다가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 밟혀 죽을 뻔했다고 한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어지러이 뒤섞여 떠들어 대거나 뒤엉켜 뒤죽박죽된 상태라는 의미의 ‘난장판’의 어원이 여기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과거 합격자 발표는 돈화문 앞에서 지금의 종로 3가까지 합격자 명단을 벽에 붙여서 당락 여부를 확인하는 데에도 반나절이 걸렸다고 한다. 현재의 상식으로는 통하지 않는 재미있는 사실은 시험장에 전문적으로 글씨를 대신 써 주는 사람을 ‘사수(寫手)’라고 하는데 이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은 부정행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급제의 귀재는 진사시부터 9번의 과거시험에 모두 장원으로 합격한 율곡 ‘이이’와 그에 못지않은 다산 ‘정약용’을 꼽을 수 있다.

#. 관람지 생강나무와 관람정 / 사진촬영 : 궁궐길라잡이 차동희

궁궐에 봄이 오는 길목에는 긴 잠에서 깨어나는 성정각의 ‘성정매’도 빼놓을 수 없다. 자시문 밖 매는 매년 전국의 매화 사진작가들이 1년을 기다려 셔터를 누루고 싶어 하는 인기 있는 꽃나무 중에 하나다. 이제 궁궐에서는 관광(과거시험)을 매년 재현행사로 상징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후원 입구의 ‘성정매’와 ‘산수유’, ‘돌배나무’, ‘처진개벚나무(수양벚나무)’, ‘미선나무꽃’ 등등이 절정에 이르면 화려한 봄의 꽃대궐 잔치는 훌쩍 지나가 버린다. 제발 나라를 뒤흔드는 “코로나” 전염병이 대한민국 영토에서 빨리 사라져 생기 넘치는 화려한 궁궐 봄나들이 관광을 조금이라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소원하면서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