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병진단 없는데도 한 번의 답변 실수로 '고지의무 위반' 딱지…소비자 "계약 해지 사유 안 돼" 사측 "사전고지 중요한 문제"

▲ MG손해보험 ci
▲ MG손해보험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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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염보라 기자 = 최근 MG손해보험에 대해 보험 계약 원상 복구를 요구하는 민원이 금융감독원에 접수됐다.

 

MG손해보험이 '고지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고객이 가입한 보험 2종을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한 데 대해, 고객이 계약 원상 복구와 공식적인 사과 등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고객은 "미인지로 인한 한 건의 답변 실수가 보험 2종 전체를 해지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반면 MG손해보험은 "고지의무 위반으로 언더라이팅(인수 심사) 권한이 침해됐다"며 충분히 계약 해지 사유가 된다는 입장이다.

 

◇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 계약 해지를 당한 A씨

지난 2018년 12월 남성 A씨는 MG손해보험에서 부인 B씨의 보험 2종을 가입했다. 이어 지난해 말 A씨의 부인 B씨는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MG손해보험은 진단비와 보험금을 지급하고, 이와 동시에 보험 2종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했다.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계약 당시 '최근 1년 이내에 의사로부터 진찰 또는 검사를 통해 추가검사(재검사)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까(계약 전 알릴의무사항 7번)'라는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부인 B씨는 보험 계약 4개월 전인 2018년 8월 모 의료재단에서 흉부CT 검사상 관상동맥석회화 의심 소견을 받은 후, 같은해 10월 서울아산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은 적이 있었다. 

표면상으로 보면 고지의무 위반이 맞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A씨 부부로선 억울한 부분이 있다.

당시 A씨는 정년 퇴직을 준비하면서 정신이 없었고, B씨는 그런 남편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검사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재검사 결과 '정상 판정'을 받았기에 불필요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례는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 계약 해지 사유가 될 수 있을까.

◇ 1건의 답변 실수가 보험 해지 사유?… 관건은 '중과실 여부'

 

계약 전 알릴의무사항이란 보험사가 계약의 체결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신의 병력(病歷)·직업 등 중요한 사항을 알려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고지의무라고도 한다. 상법 651조에 따라 고지의무 위반이 확인될 시 계약 해지·변경 사유가 발생한다.

다른 손해보험사 관계자들은 해당 건을 살펴본 뒤 "고지의무 위반이 맞다"고 봤다. 남편이 아내의 검사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알려야 할 내용을 알리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단계에 대한 물음이다. 고지의무 위반은 맞지만, 이것이 보험 계약을 해지할 만큼 큰 사안이냐의 문제다. 

 

금융감독원 분쟁조정1국 제3보험팀 관계자는 공감신문과 통화에서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사실만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는 없다"며 "고의성과 중과실 부분을 증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험사 관계자들 역시 특히 '중과실' 부분에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C사 관계자는 "(계약 전에) 재검사 사실을 미리 알렸다고 해도 계약 내용에는 변동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이 경우 계약 해지 결정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관계자가 이같이 평가한 데는 '재검 결과'가 바탕이 됐다. B씨는 이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았다. A씨는 담당 전문의의 소견서를 반증 자료로 사측에 제출했다. 당초 MG손해보험은 지난해 12월 계약해지 통보 공문에서 "추가 검사상 관상동맥 석화화 소견 사실이 확인됐다"고 언급했으나, 반증 자료 검토 후 "담당자의 착오 기재"라고 인정했다.

D보험사 관계자 역시 "(고지의무 위반 시) 원칙적으로는 계약 해지가 맞지만 재검진을 받았을 때 이상소견이 없다는 내용이라서 절충의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 MG손해보험이 A씨에게 우편물로 발송한 내용증명. MG손해보험은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내용증명에서 '재검 결과 관상동맥 석화화 소견 사실이 확인됐다'고 명시했으나, 실제 B씨는 정상 소견을 받았다. 이에 대해 항의를 했고 회사로부터 '판단 착오'라는 답변을 얻었다.    ©염보라
▲ MG손해보험이 A씨에게 우편물로 발송한 내용증명. MG손해보험은 계약 해지를 통보하는 내용증명에서 '재검 결과 관상동맥 석화화 소견 사실이 확인됐다'고 명시했으나, 실제 B씨는 정상 소견을 받았다. 이에 대해 항의를 했고 회사로부터 "판단 착오"라는 답변을 얻었다.    ©염보라

 

◇ 고지의무 위반 따른 계약 해지… 지난해만 1646건 

 

A씨는 관련 내용으로 지난 4일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냈고, 현재 MG손해보험과 14영업일의 자율조정 절차를 밟고 있다. 
 

A씨는 ▲보험 2건에 대한 계약 원상복구 ▲피보험자(B씨)의 암수술 및 암진단비지급된 보험에 대해 향후 납입료면제 계약사항 이행 ▲공식적인 사과 ▲전문의 진료신청서를 포함해 불필요하게 발생한 비용에 대한 변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계약 취소가 이대로 확정되면, 이미 암 수술을 받은 바 있는 B씨는 앞으로 관련 보험 가입이 어려워진다. 특약으로 가입해둔 '향후 보험료 면제' 혜택도 무효가 된다.

 

A씨는 "MG손해보험은 사전 통보나 근거·사유 안내 없이 문자메시지(SMS)로 (계약 해지를)통보했다"며 "해지 통보를 받고 처음에는 무기력해졌다. 나는 싸우고 있지만 그냥 포기하는 소비자들도 다수일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금감원은 자율조정 기간에 '민원 해결을 위해 민원인과 접촉하라'고 권고하고 있는데, MG손해보험은 아직도 자율조정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면서 "겉으로는 윤리경영, 소비자보호를 외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꼬집었다.

 
A씨와 같은 사례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보험금 고지의무와 관련한 민원·분쟁조정신청 건수는 총 1646건으로 집계됐다. 5년 전인 2016년 대비 약 23% 증가한 수준이다. 

 

◇ 고지의무 문항 꼼꼼히 확인해야… '개인신용정보법' 위반 우려도

전문가들은 보험 계약 시 '계약 전 알릴의무사항' 문항에 대해 꼼꼼하게 확인하고 답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C사 관계자는 "보험 가입자에게 암이 생기면 보험사 입장에서는 손해다. 그러면 당연히 가입자가 잘못한 사항들을 찾게 된다. 가장 많은 게 고지의무 위반"이라고 귀띔한 뒤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E사 관계자 역시 "언더라이팅(보험 인수심사)은 보험사의 권한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이나 법적 분쟁으로 가더라도 소비자가 이길 확률은 비교적 적다"면서 "계약 체결 과정에서 고지의무 문항에는 꼼꼼하게 확인한 후 답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금융당국이 '계약 전 알릴의무사항'에 대한 녹취를 피보험자에게 직접 진행하게끔 가이드라인을 줘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현재는 계약자가 수익자일 경우, 계약자에게만 녹취를 해도 된다.

 

A씨는 "개인신용정보법이나 상식상 의료기록은 부부간이라도 각각 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건강검진 여부에 대한 녹취를 피보험자가 아닌 계약자에게만 확인하는 것은 문제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고지의무 위반'을 유도하는 일종의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MG손해보험 관계자는 "언더라이팅은 보험사의 권한인데, 고지의무 위반으로 이 권한이 침해됐다. 보험사에게는 큰 이슈"라며 "금감원에 민원이 접수된 사안인 만큼 결과에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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