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욱 전 통일연구원장
▲ 최진욱 전 통일연구원장

 


최진욱 (1959년)

 

- 신시내티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

- 제14대 통일연구원 원장

- 기획재정부 재정정책자문회의 민간위원

- 리츠메이칸대학교 석좌


 

1. 미중 네트워크 패권경쟁

 

미중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중국이 개방을 시작하던 1978년 당시 중국사람들은 대부분 끼니를 걱정하였다. 당시로 가서 보면 오늘날 중국의 발전상을 예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냉전이 종식되었을 때만 해도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으며 설령 그런 상황이 온다 해도 먼 미래의 일로 간주되었다. 더욱이 천안문사태이후 중국은 내부문제로 인해 외부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냉전 종식이후 미국이 누려온 유일초강대국의 지위는 예상보다 빠른 중국의 부상으로 위협받게 되었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미국의 지도력이 타격을 받고 미중 전략경쟁은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실이 되었다.  

 

2012년 캘리포니아 서니랜드에서 열린 미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태평양은 미중이 나누어 사용하기에 충분히 넓으니 중국의 부상이 미국의 패권에 반드시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며 미중 양국이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신형대국관계’를 설파했다. 이는 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제 태평양은 앵글로색슨의 호수며 그 서쪽 방어선은 필리핀, 오키나와 일본, 알류샨으로 이어지는 선”이라는 맥아더 사령관의 발언이후 미국의 태평양 패권에 대한 가장 노골적인 도전이었다. 

 

2009년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 1기는 부시행정부의 과도한 해외안보공약을 줄이고 제도를 통한 미국 리더쉽을 위해 노력했으나 오바마 2기에서는 중국의 부상에 맞서 동맹 강화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2011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재균형’을 선포하고 한미동맹과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자 했다.

 

중국의 신형대국관계가 미국에 의해 퇴짜를 맞고 미국의 월등히 우월한 해군력에 밀려 태평양 진출이 좌절되자 중국은 2013년 ‘일대일로’를 선포하고 태평양의 반대방향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2016년 미국의 갑작스러운 쿠바와의 수교는 당시 중국이 북경-하바나 직항노선 계획을 발표하는 등 미국의 앞마당까지 활동영역을 넓히겠다는 의도에 대한 예방조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통상적인 개혁과는 다른 의미로 봐야 할 것이다. 이제 미중관계는 신냉전(Cool War)이라 불리우는 일대일로와 인도태평양 전략간의 네트워크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2. 국제질서의 변화와 북한의 전략적 가치

 

미국의 유일초강대국 체제가 미중 경쟁관계로 전환되면서 북한문제의 양상도 변화하였다.

 

∎미국 유일초강대국 시기 뷱한에 무관심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은 미국과의 양자대화를 통해 생존을 도모하고자 하였으나, 미국은 북한의 ‘연착륙’과 한반도의 현상유지라는 정책기조하에 북핵을 제외하고 북한과의 대화나 관계개선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미국이 직접 북한과 대화하기 보다는 한국의 남북대화 노력이 한반도 정세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하에 적극 지지했다. 노태우 대통령의 핵부재 선언,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남북한 기본합의서 등 한국이 북한의 비핵화와 안정을 유지해주기를 희망했다.

 

미국의 북한 무시에 대한 대응으로 북한은 NPT와 IAEA 탈퇴 등을 통해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며 마침내 북미 제네바합의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남북대화를 통한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안정 기조가 흐트러지고 소위 철저한 ‘통미봉남’으로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의 양자대화가 이루어졌다. 

 

제네바합의로 북한은  미국의 원조를 가장 많이 받는 국가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양에 미국 연락사무소 개설을 고심 끝에 하지 않기로했다. 김일성 사망이후의 북한은 체제안정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고 경화부족상태에서 홍수로 인해 최악의 식량난으로 수십만명이 아사하는 대재앙을 겪었다. 제네바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였으며 미국에게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남아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제네바합의를 완전 실패로 규정한 공화당의 집권으로 북미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였다. 더욱이 핵무기를 동반한 9.11테러의 악몽 같은 시나리오는 미국 정책결정자들을 긴장시켰다.

 

부시행정부 출범 이후 제네바합의가 파탄나고 6자회담이 개최되었다. 6자회담은 북핵문제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국들 모두의 문제이며 특히 중국이 자신의 영향력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해야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었다. 다자틀 속에서도 북한의 미북 양자대화 요구는 계속되었다. 

 

∎미중 경쟁체제와 북한의 전략적 가치

 

 중국이 부상하고 미중경쟁구도가 형성되면서 북한문제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 분명한 변화가 나타났다. 중국은 자신의 안보에 중요한 완충지역으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북한의 붕괴방지와 안정을 한반도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생각했다.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 반대하나 북한에 대한 압박이 북한의 안정을 해치거나 북한을 자극하여 무력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2008년 한국에서 이명박정부가 출범하고 대북지원이 중단되자 중국은 한국을 대신하여 북중교역이 급상습하여 북한 전체교역량의 90퍼센트를 넘어섰다. 한편, 북한을 두둔하는 중국에 대해 미국은 미일동맹과 한미동맹, 그리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미국은 동맹의 강화가 오히려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고 중국에는 부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미국의 오판이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중국의 미온적 태도를 틈타 북한은 핵무기의 고도화를 이루고 나아가 2017년 10월 핵무력의 완성을 선포하였으며, 이후에도 핵탄두의 수를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 조만간 북한의 핵탄두 수가 100개를 넘어 인도, 파키스탄의 핵탄두 보유수에 육박하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북핵위기의 새로운 국면이 될 것이다.

 

∎북한의 핵무력 완성

 

2017년 전쟁 일보 직전 까지 갔던 한반도 정세가 극적인 반전을 이루고 이후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도한 대전략의 변화 차원으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세계질서와 규범에 대한 위반, 불공정 교역으로 인한 미국경제 손실, 북핵에 대한 미온적 태도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홍콩 사태 등을 거치면서 중국의 민주화에 대한 회의감도 커졌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결국 미국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중국과의 협력을 지속하는 것이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도움이 되지 않고 미국의 패권에 위협이 될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중국의 부상을 지연시키는 방법중 하나가 북한과 관계개선을 통해 북중관계를 디커플링하고, 동맹을 강화시킬 필요없이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개최(2018년 6월 12일)의 전격합의는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에 엄청난 충격이었고 중국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진핑은 북미정상회담을 전후하여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6월 12일 북미정상회담 당일에는 중국이 가장 치욕적 패전으로 기억하는 청일전쟁을 잊지 말자며 웨이하이 우궁도에 갑오전쟁 박물관을 방문하는 등 미국의 대북관계 개선 시도를 중국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보여주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탑다운’ 방식에 반대하며 북핵 문제를 후 순위 배치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제재압박 유지와 대화협상 탐색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3. 현단계에서 북한이 ‘내디딜 수 있는 최대의 보폭’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이후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심야에 외신 인터뷰를 자청하여 “북한에 대한 ‘민생용, 민수용 경제제재 해제’에 대한 댓가로 북한이 영변 핵단지의 모든 플루토늄 시설과 우라늄 시설 전체를 통체로 영구적 폐기,”(강선의 우라늄 농축시설 등 여타시설은 제외)하는 것이 북한이 내디딜 수 있는 최대의 보폭이다“고 강조했다. 

 

즉 비핵화 과정에서 본질은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현단계의 북미간 신뢰수준에서 안전보장 는 조치는 미국이 군사적 조치를 부담스러워해서 다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말한 대로 북한과 미국간 신뢰가 부족해서 당장 북한 비핵화와 안전보장의 주고받기가 불가능하다 신뢰형성이 언제, 어떻게 되고 비핵화는 언제 가능하다는 것이며, 미북간 그 정도의 신뢰가 있다면 굳이 안전보장이 필요한 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폐쇄정책과 외부 안테나 작동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대외전략의 효율성 여부와 무관하게 북한은 국제정세 변화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대남정책과 대외정책을 수립하여 왔다. 북한의 위기탈출 생존법은 대외적으로 문을 걸어잠그고 강력한 내부 통제장치를 작동시키는 한편 외부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분석하여 위협요인에 철저히 대응하는 것이다. 여기에 핵무기는 안전보장의 최후의 수단이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었을 때, 김일성 사망후, 그리고 김정일 사망후, 생존을 위한 북한의 유사한 행태는 반복되었다. 

 

냉전 종식이후 미국 유일초강대국 시기에는 미국의 북한과의 대화 기피에 맞서 통미봉남을 밀어부쳤고,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면서 틈새를 이용하여 핵개발을 가속화했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마치 굶주리고 상처난 야생동물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이 북한방송에 맹수들의 싸움 같다.  ”제 아무리 센 범이라 해도 급소를 공격댱하면 어쩔수 없는 것입니다.“

 

∎ 핵 보유국 정당화

 

2021년 1월 당대회에서 북한은 핵보유가 미국의 적대시 정책때문이라며 다시한번 정당화했다.: “이 행성에 우리나라처럼 항시적인 전쟁위협을 받는 나라는 없으며 그만큼 평화에 대한 우리 인민의 갈망은 강렬하다. 앞으로도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임을 엄숙히 천명한다. 또한 우리는 책임적인 핵보유국으로서 침략적인 적대세력이 우리를 겨냥하여 핵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 한 핵무기를 람용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금 확언한다.”

 

-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요구보다는 핵무기 보유 합리화에 무게

-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미국의 대북대시 정책 과장장

 

∎북핵 장기전 준비하며 정면 돌파:, 중국 밀착

북한은‘혹독한 물자/재원 부족’ 등 북한경제의 어려움 속 미․중 갈등 국면을 이용하여, 대중 의존도 제고로 생존 공간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중국 등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관계 가일층 확대 발전”선언. 특히 김정은은 과거 대외사업 평가에서 “중국과의 친선관계를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켰다면서 “하나의 운명으로 결합된 조중관계”를 강조 

  * 북중관계 관련 김정은 “한집안 식구, 한 참모부”라고, 시진핑 “운명공동체, 순치관계”로 표현(2018.5 정상회담).  

 

4. 한국의 대응방향

 

∎모든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정부 출범시 대북정책 지지율은 다소 차이가 있으나 임기 마지막 해에는 압박이고 포용이고 예외없이 30%를 넘기지 못하였다. 이 수치는 정부의 지지율과 매우 유사하다. 포용과 압박의 차이점은 포용정책이 하락 폭이 크고 충격도 크다.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용과 압박 어느 쪽이 더 우월한 정책인가하는 것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주관적인 정치의 문제이며 개인적 신념의 문제라고 할 수 밖에 없다.

 

∎ 미중간 중립은 나쁜 선택이다

통일이나 대북정책에 유리한 환경이란 중국이나 미국중 어느편을 선택하는가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미중간 중립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한미관계를 강화하면서도 한국외교의 자율성을 높이고 네트워크를 확대 강화하는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장기전을 대비한 전략이 필요하다.

 국민들은 북한을 압박하는 것보다는 남북대화와 평화공존을 지지한다. 그러나 평화공존에 국민들의 지지를 오해해서는 안된다. 국민들이 평화공존을 지지하는 것은 북한을 신뢰하거나 좋아해서는 아니다. 안보불감증은 더욱 아니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긴장을 완화시키는 노력을 해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북포용과 평화전략은 안보에 대한 위협을 최소화하면서 추진되어야 하며 일방적이거나 무조건적이어서는 안된다.

 

유엔제재를 남북관계의 ‘장애’로 인식해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수 없다. 단기간내 비핵화 해법이 없다면 장기적 전략을 수립하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제재를 협상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 역시 북핵의 조기 해결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에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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