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의식이 곧 질서…지킬 수 있는 법규 만들어야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1

인천 송도 신도시에서 서울 강남지역을 오가는 광역버스가 있다. 그 버스가 서는 정류장마다 보도 경계석에 버스번호가 표시되어 있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순서대로 줄을 서서 기다리니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송도지구를 벗어나는 마지막 버스정류장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는다. 그 곳의 승객은 대부분 그 광역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아무리 먼저 와서 서있어도 버스만 나타나면 순서가 없다. 남녀노소도 개의치 않는다.

그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는 보도 경계석에 버스번호 표식이 없다. 아마도 최근에 몇 천 세대의 아파트단지들이 그 앞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용하는 승객이 거의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강남 도심지에서까지 표지판 따라 보기 좋게 줄을 서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표지 하나 없다고 이렇듯 흐트러지는 그 심리가 참으로 희한하다. 행여 몇 자리 비어있을 좌석에 앉으려는 욕심이 앞선 탓이긴 하겠지만, 그냥 줄을 서거나, 최소한 자기보다 먼저 와있는 사람들 뒤에 탈 정도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는데···.

리차드 칼슨 박사가 쓴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는 책에 나오는 100가지 규칙 중 두 번째가 “불완전함과 친숙해지세요”이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런 사소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는 내 모습이 우습긴 하지만, 번번이 그런 무질서를 보게 되는 것이 마땅치 않아서 버스회사에다 전화를 걸었다.

“그곳에 대형 아파트단지도 입주하고 승객도 늘었으니, 다른 정류장처럼 바닥에 번호표지하나 써 붙이고 기사들에게도 이야기 해달라.” 그런데도 깜깜 무소식이다.

<인천 송도 국제대로, 캠퍼스타운역 부근의 버스정류장>

그렇게 해서 버스에 오르면, 또한번 당황스런 순간이 기다린다. 한가한 시간대에 빈자리가 여럿 눈에 보여도 쉽사리 앉을 곳을 찾지 못한다. 서로 내 옆에는 앉지 말라는 듯이 옆자리에다 가방을 올려 놓거나, 아예 통로 쪽에 앉아서 원천적으로 진입을 봉쇄한다. 이러니 옆자리에 같이 좀 앉자고 양해를 구하는 것조차 구차스러워질 정도다.

오늘도 저만치서 뛰어오던 아주머니가 기다리던 사람들을 제치고 제일먼저 버스로 달려간다. 뒤따라 버스에 올랐더니, 빈자리가 있는 쪽은 어김없이 옆자리에 가방들을 내려놓고 앉아있다.

어쩔 수 없이 가까이 앉아 있는 남자승객의 배낭을 치우게하고 자리에 앉으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전부다 자기들 옆에는 앉지 말라는 듯이 가방을 놓고 있으니, 제일 착해 보이는 분에게 부탁할 수 밖에 없었어요. 미안해요." 서로 멋 적은 웃음을 나누었다.

그러면서도 ‘빈자리 찾아 앉는데 내가 왜 미안해져야 하는지’, 은근히 속이 상한다. 그냥 일어서서 이렇게 외치고 싶어진다.

'여러분, 같은 요금을 내고 탄 승객이 빈자리를 찾아 앉을 권리를 왜 당신들이 마음대로 결정하고 제한하는 겁니까? 빈자리에 소지품을 내려놓는 것은 더 이상 다른 승객이 없을 때나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2

며칠 전 배달된 우편물에서 '주·정차위반 과태료 고지서'가 들어 있었다. 우편물을 받아 들고 기분이 묘해지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과태료 고지서'일 것이다. 차를 끌고 다니다 보면 쉽게 저지르는 법규위반 사실들이 사진자료와 함께 제시될 때면, 무언가 속이 스멀거린다. 비록 나랏일에 쓰인다고는 하지만, 몇 만원 그냥 나가게 생겼으니 속이 좋을 리 없다.

늘 많은 차들이 줄지어 서있던 이면도로였다. 언제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었던지, 선명하게 찍힌 사진이 복사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송도 신도시에 주·정차위반 감시카메라가 도처에 새로 들어서고, '시험가동 중'이란 전광판 안내가 돌아가고 있다. 애꿎은 구청 교통관리과로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지만, 우리나라 거의 모든 도로에 노란색 실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건물마다 차를 세울 주차시설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복잡하지 않은 시간대나, 이면도로 같은 곳에는 시간제 주차허용이나 주차 미터기를 설치하고, 주차빌딩 같은 공용주차장을 증설해서, 비용을 내고라도 합법적으로 주차할 수 있는 시설의 확충에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 소관이 아니라서..."

뻔한 결말을 짐작하면서도 ‘뭐 하러 전화를 했나’ 싶다. 수년 전 분당의 상가건물 옆에서 잠깐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다가 큰길에 있던 카메라에 찍혔을 때도 똑 같은 상항이었다. 분당구청 홈페이지에다 '주·정차 가능구역 확대와 주차미터기 제도' 같은 방법을 제시했지만, 괜한 시간만 허비했었다.

 

아무래도 문제해결보다는 손쉬운 단속이 먼저인가보다. 예능프로에 나오고 난 뒤 제법 알려진 센트럴파크 (이 명칭도 굳이 영어로 붙일 필요는 없었겠지만) 주변이나, 시가지 곳곳의 상가 주변은 평일은 물론 주말에는 겹 주차까지 할 정도로 서있는 차들이 많다. ‘저렇게 세워두어도 차량소통에 문제가 없다면 시간제로 주차를 허용하는 방법을 찾아주면 좋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최근 들어 그곳에도 감시카메라가 들어섰다. 결국 또 하나의 풍선효과(balloon effect) 현상만 만들어질 것 같다.

<인천 송도 국제대로, 캠퍼스타운역 부근의 버스정류장>
<송도 센트럴파크 남단, 컨벤시아대로에 신설된 주·정차 감시카메라>

 

그 통지서를 받은 날 오후에, 운전면허증 재발급 일을 보러 인천면허시험장을 찾았다. 남동공단인근의 간선도로에 연결된 정문 앞 도로부터 안쪽 주차장에 겹겹이 주차된 차들로 여기저기서 어렵사리 차를 빼고 넣느라고 쿵쾅거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들어가려니 슬며시 부아가 치민다.

'교통법규 시험을 보고 운전면허를 관리하는 곳 앞의 도로조차 주·정차금지관련 법규가 지켜지지 않으면서···. 이것도 복불복(福不福)? 그냥 걸리면 재수없는 거네. 노란색 실선들이 그어진 곳에 주·정차가 안 된다면, 그 원칙은 어디에서나 똑같이 적용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홀에서 순서를 기다리다가 '안내역'을 감당하고 있던 분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가 운전면허시험을 보는 곳인데, 주차질서가 이래서야 누가 제대로 법규를 지켜야 된다는 의식을 가지겠습니까? 이 근방에 신도시들이 들어서면서 많은 인구가 새로 유입되고 내방객이 많아졌으면, 주차시설을 추가 확보하든지, 대중교통수단으로 접근 가능하도록 조치를 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예산을 가져올 수가 없습니다. 인천에 면허시험장이 이곳 하나뿐인데···."

인구가 3백만명이 넘고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도시에서 면허시험장이 이곳 하나 뿐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그 '무력감'에 무어라 보탤 말이 없어서 그냥 돌아섰다. 앞선 대기번호 100여개, 일 이분이면 될 절차를 위한 2시간 넘는 기다림, 하루의 오후가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가 버렸다.

<인구 3백만의 인천에 유일한 면허시험장 앞 >

 

#3

언젠가 핸드폰을 통해 “요금소(톨 게이트) 속도위반을 엄중히 적용하고 범칙금도 올린다”는 소식들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요금소 부근 하이패스 차선에서 속도를 낮추면, 뒤에서 차를 바짝 붙이면서 채근을 한다.

새로 개통된 강남순환고속도로에는 속도제한이 시속 70Km로 되어 있다. 통행량이 많은 외곽순환도로를 피해서 비싼 통행료 내며 시원스레 뚫린 도로를 달리느라 그런지, 그 제한속도를 지키며 가는 차는 찾아볼 수 없다. 마음에 걸려서 조금만 속도를 낮추어도, 좌우로 추월하며 휑하니 달려나간다.

최근 들어 그 중간지점에 이동식 카메라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비게이션 같은 경보장치가 있는 차들은 그곳에서만 주춤거리다가 여전히 쌩쌩 달린다.

<강남순환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도리분기점에서 인천대교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이르는 길목에 있는 제3경인고속도로도 마찬가지다. 쭉 뻗은 그 도로의 속도상한은 시속 90km이다. 두 군데 무인카메라 있는 곳을 빼고는 그 제한속도를 제대로 지키는 차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속도 하한선으로 오해할 정도이다.

언젠가 “내비게이션의 무인카메라 설치지역이 알려지고 그곳에서라도 속도를 낮추면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하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법이나 규칙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를 키우게 되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지 모르겠다.

큰 돈 들여서 잘 뚫어 놓은 도로를 비싼 통행세 내고 다니는 고속도로에서, 평소에 지켜지지도 않는 법규를 가지고 단속이나 하는 것보다는, 안전한 범위 내에서 지킬 수 있는 법규로 현실화하는 방법은 어떨까 싶다.

 

이런저런 '불완전함'들에 대한 생각이 굴러가다보니 문득 이무석의 《30년만의 휴식》이라는 책에서 본 "미국 정신과의 스트레스 센터에서 회원들에게 가르치는 기도문" 생각이 난다.

“주여, 제가 ‘바꿀 수 있는 일’은 바꿀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그러나 제가 ‘바꿀 수 없는 일’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내심을 주옵소서. 그리고 제게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느님이 보우하는 우리나라"에서 '비정상의 일상화'라고 할 정도로 많은 얘기들이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차제에 나 스스로의 일상에서는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될 일’을 제대로 구분하면서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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