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44건)

[공감신문] 독자 여러분께 한가지 제안을 해보고 싶다. 2018년을 맞이한 지 3개월이 지나는 동안, 가장 큰 헤프닝이 무엇이었는 지 한번 떠올려보자는 것이다. 중요한 건 ‘헤프닝’이다. 영어로 ‘왓 헤픈?’이라고 하면 도대체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묻는 거다. 그럴 만한 사건들을 떠올려보자는 것이다.분명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런 헤프닝이 한 두개 쯤은 있으실 거라 생각된다. 그런데 그 헤프닝이 그다지 괴짜스럽지 않고 몹시 지루한 성질이라면, 아마도 조금 무료한 삶을 보내고 계신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하나 꼽아서 ‘성질’만 이야기해보자면 굉장히 찌질했다고 고백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루한 것보단 백배 낫다. 적어도 난 그 헤프닝이 벌어질 때 ‘찌질함’을 느낄 만큼, 떨어질 자존심이 평소엔 장착되어 있었다는 얘기니까. 찬란함과 기대, 그 후에 극심한 배신감과 허무함이 있었고 결론적으로 내가 찌질했더라.대부분 이러한 헤프닝들은 ‘인간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연애’가 가장 우위를 차지한다. 연애를 하면 이른바 ‘썰’이 많이 생긴다. 썸 단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썸이 썰을 유발한다. 우리는 항상 ‘썰’이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4-05 10:08

[공감신문] 내가 ‘작가’라고 했을 때, ‘그러면 책 많이 읽으세요?’라는 질문은 사실 처음부터 좀 별로였던 것 같다. 그건 내가 직업인으로서 성실한가-와 같은 소양을 묻는 게 아니라, 그저 ‘넌 책 읽는 부류의 사람이니?’라며 ‘나의 성질’을 묻는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단 난 정말 조금의 책 밖에 읽지 못했으며, 주로 새로운 책보단 다시 읽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책 중에서도 특히, 자기계발서는 거의 보지 않는다. 봐야할 이유가 없다. 내가 자기 계발을 꾀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자기계발서엔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없다. 아니, 질문 자체가 다르다.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오히려 옛날 사람들이 더 많이 해준다. 철학자들은 서로를 비판하는 가운데- 투쟁적이고 신비로운 말장난을, 오늘 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들은 인간, 세상, 삶, 사랑, 신, 자유와 같은 것에 대해 질문해왔다. 자유의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도대체 그게 어떻게 기인하는 것인지 말이다. 오늘날 인간들은 자본 앞에 자발적인 복종을 한다. 우린 자유롭지 못한 인간이다. 자기계발이라 하셨는가? 누군가는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정말로 시간을 쪼개어 쓰고, 거기서 알려준 황금 레시피 같은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3-30 10:19

‘허위를 알아차린 존재는 수치와 구토를 느끼고 무력해진다. 자기 완결성, 곧 허위로부터의 탈출이 감행된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너를 만난다.’ (레비나스 ‘탈출에 관하여’ 중에서) [공감신문] 사랑을 등한시하는, 혹은 사랑하길 말리는 건조한 사회에서도 꿋꿋하게 사랑을 시도하는 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꿋꿋이 제 갈 길을 나아간다. 자신이 가져왔던 형체 없는 어떠한 희망을 타인에게 걸어본다. 그리고 누구나 몇 번이고 그러하였듯이, 실망한다. 왜 세상 사람들은 진지하게 사랑하지 않느냐 묻는다. 왜 사람 마음으로 장난을 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렇게 두 가지 얼굴을 철저하게 가질 수 있느냐고 하소연도 한다. 아니, 두 가지 얼굴만 있으면 다행이게. 여기에 어떤 누군가는 책임감 없어 보이는 두루뭉술한 대답을 던진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자신부터 좋은 사람이 되면 되세요. 아니- 제 고민을 이해하신 맞나요? 전 좋은 사람인데- 그들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니까요. 그럼 저 이상한 대답을 바꿔 말해보자.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자신부터 ‘좋은 사람’이 되라 했으니… ‘나쁜 사람’을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3-28 10:06

[공감신문] 신인-혹은 신입의 넘치는 패기와 아이디어는, 누군가를 꽤 불편하게 만드나보다. 이런 생생한 기운에 대하여 무언가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듯한 표정. 제가 무얼 잘못했나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하겠지, 나도 네 나이 때는 다 그랬어. 근데 이건 비단 나이 얘기가 아니다. 인생 중반부에도 새로운 직업이나 환경으로 가게 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어린 아이나 노인이나 미지의 환경을 접하게 되었을 때의 불안함과 기대감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의지할 부모가 있거나, 인생은 알다 가도 모를 일이라는 대단히 명료한 진리를 아직 겪어보지 않은 아이 쪽의 두근거림이 더 작을 지도. 그렇다면 신입의 생생함에 알러지가 나는 누군가는- 그 상대가 ‘어른’이라면 그저 말만 안할 뿐이다. 속으론 더욱 혀를 끌끌 차고 있을지도 모르지. 사실 이런 사람들이 꽤 많으며, 대부분 그 직업 분야에서 오래 종사했을 확률이 크다. 우린 어린 시절부터 ‘베테랑’(veteran)이 되라고 배웠다. 지금도 그렇게 교육 받는 진 모르겠다. 하지만 직업에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건 불변하다. 그런 의미라면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가 더 들어맞는 느낌이다.베테랑은 기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3-23 14:32

[공감신문]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스페인어의 주어 형태는 좀 독특하다. 첫 수업 때 ‘나는’(I)을 ‘Soy’(쏘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나는 -를 좋아한다’고 할 때, ‘나는’은, Me(메)로 쓴다고 했다. 어느 노래 가사에 ‘메 구스따 뚜(Me gusta Tu)- 뚭뚜룹 좋아해요-‘가 생각나서 쉽게 외웠다.난 해수, 난 한국인, 난 널 좋아해- ‘쏘이 해수, 쏘이 꼬레아나. 메 구스따 뚜’. 어느 날 선생님이 안부를 묻길래, 그날 몸이 좀 아파서 ‘쏘이(나는) 엔페르마(아프다)’라고 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아닐 걸?’하며, ‘에스또이(나는) 엔페르마’라고 하랬다. 응? 그 ‘나는’은 또 뭔데! 쏘이 엔페르마(soy enferma)는 ‘난 미친 사람이야’고, 에스또이 엔페르마(estoy enferma)는 ‘난 아파’라는 뜻이랬다. 쏘이는 내게서 변치 않는 것을, 에스또이는 변할 수 있는 걸 말할 때 쓴다. 예쁘다는 뜻의 ‘guapa’ 앞에 어떤 ‘너는’이 붙느냐 에 따라, ‘넌 원래 참 예쁘다’가 될 수도 있고 ‘너 오늘 따라 예쁘다’가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날은 아팠고 지금은 또 멀쩡하다. 선생님이 안부를 물었을 때, ‘난 원래 아픈 애야.(미친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3-22 10:18

자발적 창조야말로 무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있는 이유다.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자발적 창조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우주의 운행을 시작하기 위해 신에게 호소할 필요가 없다. - 스티븐 호킹[공감신문] 그러니까 그게 벌써 4주나 되었다. 약 한달 전 ‘운동화 끈을 묶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최근 느꼈던 비참했던 순간을 고백했었다. 그 때엔 정말 그게 가장 손에 넣기 쉽고 빠른 해결책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 글에 대한 감상평 메일이 꽤 왔었다는 것! ‘그 글을 읽고 호기심에 들어봤는데 간밤에 너무 잘 잔 거 있죠…’맙소사, 우주를 떠도는 외로운 스푸트니크 호들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저 글을 안 읽어 보셨던 분들을 위해 짧게 이야기하자면, 귀로 먹는 아주 인공적인 수면제-를 복용했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도가 더욱 심해지는 게 아닌가? 3월 초, 나는 무지 신경질적으로 변해 있었다.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들도 꼬아 듣기 일쑤였고, 부정적 감정을 이입시킬 무언가를 귀신같이 찾아내었다. 기다렸다는 듯 쏟아내는 나의 부정적 감정들…. 한껏 분노하거나 짜증을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3-16 15:10

‘난 지옥이 장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지옥을 장소라 여기는 이유는 단테를 읽었기 때문인데, 난 지옥이 상태라는 것을 안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공감신문] 사실 그는 당시 처형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와 같이 유명했던 이들은 뇌물을 써서 그런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었으니까. 처형을 선고한 이들도 그가 노련하게 빠져나갈거라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에게 적당히 좀 하라는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였을지도. 하지만 그는 철학적 순교(?)를 맞이하는 최초의 인물이 되어버렸다. 소크라테스는 손에 쥐어 진 운명 같은 독배를 마다하지 않았다, 마치 후대 어느 유명 희곡에 나오는 줄리엣처럼, 기꺼이. 유언 역시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줄리엣 같은 정서가 가득했다. 잠깐 눈을 붙이고 눈을 떴을 때, 지금보다 고통스럽지 않기를.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은 이러했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으니 갚아주게.’어디에서 줄리엣을 찾을 수 있냐고? 그의 삶 자체가 몬테규 가에 시집갈 수 없던 줄리엣의 이름 같은 것이었으며, 아스클레피오스는 줄리엣의 독배와 같은- 로미오에게로 향하는 구원의 양파 한 뿌리였을지도. 소크라테스는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3-14 11:04

[공감신문] 1월 중순 즈음이었나 보다.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한 사진전을 만났었다. 홍익대학교에서 주최한 전시인데, 도시 군상들을 예술품으로 해석한 발터 벤야민을 연상케 했었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품이 많았었는데 그중 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제목은 . 돼지 껍데기 위에 인화되어 있었으며, 피사체였을 ‘Product’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이창민’, 작품의 작가 본인이었으리라. 여기에 내가 말을 보태지 않더라도 어떠한 감상을 느꼈을 지 아마 다들 아실 거라 생각된다. 나는 청년이며, 내 주변의 대부분도 청년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모두 아픈 건 아니다. 개인이 처한 어떠한 상황들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청년인 것도 아니다. 살면서 누구나- 또 언제나 고통 받을 수 있다. 다만 지금의 청년들이 이전 세대들보다 심리적으로 가혹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기에, 몇 년 전부터 따스한 온도로 말하는 것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위로는 번져 나갔다. 청년을 위로하는 것이 번져 나갔다, 유행이 되었다.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어느 베스트셀러의 책 제목과 같은 분위기가 매체들을 지배하기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3-09 09:58

[공감신문] 그는 누군가가 대변해줄 만한 매력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건 그와 긴밀한 몇몇만이 알 수 있는 매력이었다. 나도 긴밀한 사람 중 하나였으며 거기에 걸맞는 형용사와 비유도 알고 있었으나, 할 수 없었다. 그에 대한 누군가의 오해도 해명할 수 없었다. 넌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을 게 뻔하니까. 단순히 ‘친하다’는 말로는 표현하기엔 넘쳤다. 여자친구냐고? 아니었다. 사람들은 왜 ‘내가’ 아는지 더욱 궁금해 했다. 그러게, 우리의 관계는 무엇이었을까. 난 그 대답을 회피하기 위해 그의 매력을 대변할 수 없었다. 지금도 그 대답은 모르겠지만 다른 답을 하나 얻게 되었다. 관계를 정의하려는 순간, 오히려 더 모르는 것이 되거나 심지어 왜곡된다는 것을. 매력과 약점, 치부, 과거, 주특기… 그를 알아가는 과정은 즐거웠다. 아니, 발견해 나가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시간을 함께 했었는데, 그 와중에 서로를 조금씩 알아갔었다. 그 시간들은 따뜻했고 때론 생경했으며, 유익했다. 하지만 누군가 ‘그래서 너희는 무슨 사이야?’라고 물을 때에, 왜 난 슬퍼졌는가. 모락모락한 기운으로 점철돼 있던 아름다운 시간들을 망쳐버리는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3-07 10:16

피상적인 지식은 혀에만 달콤할 뿐 영양가가 없다. 오래 먹으면 먹을수록 뇌와 뼈의 칼슘이 빠져나가 점점 더 허약해지기만 할 것이다.[공감신문] 한 인터넷 신문에서 화제였던 어느 초등학생의 시를 본적이 있다. 강약의 기질 없이 간판 글씨처럼 강하게만 꾸욱꾸욱 열심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툰 글씨를 보아하니 저학년인 것 같았다. 그 시는 슬펐다. 가난과 그리움의 감정이 점철된- 지난날 소소한 행복들을 왜 당연한줄 알았던가 후회하는 화자는 정말, 초등학생이랬다. 사람들은 ‘잘 썼다’고 했지만, 한편으로 난 너무도 어른스러운 이 아이가 슬펐다.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이 창문으로 나간다고? 아이야, 너의 천진난만함은 어느 문으로 빠져나간 거니? 아이들이 쓸 수 있는 시어는 매우 한정적이다. 은유하고 싶은 대상은 주로 좋아하거나 마음이 쓰이는 것들인데, 가족이나 강아지, 먹을 것, 혹은 방귀나 똥 같은 것들이다. 물론 그것들을 무엇에 비유할지 역시 한정적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는 굉장하다. 마치 식재료가 빈약한 어느 연예인 냉장고에서 15분 만에 뚝딱-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한 끼를 차려내는 방송 프로그램 쉐프들 같다. 그래서 어느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3-05 09:51

-아리따운 마하야, 네 팽팽한 젖가슴과 네 탄탄한 허벅지는 오로지 너를 위해 너만을 위해 신비로 포장한 관능 속에 그대로 남겨두어라 (김상미 시 ‘병 속에 든 편지’ 중에서)[공감신문] 만일 누가 나에게 당장 한쪽 가슴을 도려내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첫째로 무서울 것이다. 살덩이를 마치 사과 한입처럼 가볍게 베어낸다고 상상하면- 어느 부위라도 그러한 기분이겠지. 그런데 심지어 그 부위가, 가슴이라니. ‘양쪽 말고 한쪽만-’이라 한다면 그것이 과연 안도할 일인가. 어디가 아파서가 아니라 그냥 편의에 의해서다. 나에게서 여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삭제시키는 거 같은 기분이겠지. 홀로 남은 한쪽 가슴은, 가끔 내가 옆으로 누울 때마다 슬며시 기댈 수 있는 어깨가 없어져 허탈함을 느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아마존 여전사로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헤라클래스 신화에 나오는 아마존의 여전사들은 한쪽 유방이 없었다.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에 따라 아이를 안아 젖먹이는 방향이 달라지는 데, 거기에 편안한 쪽의 유방만 남겨두고 한쪽을 제거하거나 애초부터 묶어서 자라지 못하게 했다. 불로 지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녀들이 굳이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3-02 09:53

-적막의 두께로 낡은 하루가 완성되었다. 가끔 손을 넣어 가라앉은 나를 휘저어본다. (윤명선 시, 중에서) [공감신문] 사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머뭇거렸다. 어떤 현상에 대하여, ‘내 생각에 그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거기에 떳떳한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태연하게, 어차피 이 글을 읽으시는 어느 독자 분의 눈을 맞추고 이야기할 것도 아니기에 거짓으로 막 지어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익숙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에 일단 난 조금 피곤하니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나 TV를 보다 잠드는 것에 익숙했었는데 어느 순간 그 조차 거슬려서 잠들 수가 없게 되었다. 작은 불빛도 거슬릴 때엔 안대를 하고 잠자리에 든다. 휴대폰 메시지 알림의 진동도 꺼놓는다. 그러다가 최근 빠진 건 ASMR이다. 취향과 기분에 맞는 백색소음을 설정해서 틀어놓고 잔다. 나는 따뜻한 장작불에 공허한 밤을 휘젓는 약간의 바람 소리를 섞어서 즐겨찾기에 추가해 두었었다. 아마도 차가운 계절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사람의 목소리가 그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2-23 09:59

[공감신문] 저녁에 어느 영화 시사회에 가려고 버스를 탔었다. 내가 타기 전부터 이미 가득 찼던 버스는, 겨우 한 두정거장을 지나자 공간의 낭비 없이 메워졌다. 그러고 보니 퇴근 시간대였다. 버스 안에서의 시간은 지루하고 느리게 흘렀다. 덕분에 오늘 쓸 글의 재료들을 버스에서 몽땅 마련해 버렸다. 겨우 20분 동안. 그건 내가 탔던 버스의 질량 때문이었다. 1인당 대략 57kg의 질량을 가진 이들이 약 스무 명. 게다가 이들은 평소보다 무거웠는데, 그건 연휴 이후 체중이 불어난 피로 곰들이 한 마리씩- 그들 어깨에 무임승차해서였다. 달리다- 멈추다- 지속적으로 운동하는 버스에서의 시간은 분명, 서울 어느 곳에서의 시간보다 느렸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이 휘어져있고, 개인마다 주어진 시간이 다 똑같지 않다고 했었다. 사실 이 얘긴 몹시 충격적이다. 다른 건 몰라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그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운동하면, 질량이 더 커진다고 했다. 그리고 질량이 클수록,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고 했다. 한마디로 날씬한 사람보다 뚱뚱한 사람의 시간이 느리게 가고, 뚱뚱한 사람이 달린다면 그 시간은 더욱 느리게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2-21 11:05

- ‘파리에서 난 글을 거꾸로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내 생각을 알지 못하도록.’ - (영화중에서)[공감신문] 얼마 전 본 영화가 충격적이었던 건 등장인물들의 비주류적 성향도, 발가락 주름까지 선명히 드러나는 성애 장면 묘사도, 그보다 충동적인 핏빛 살인도 아니었다. 이 모든 걸 아주 선명히 각인시켜버리는, 아주 단순한 흑백 사진 한 장. 이러한 비극을 살다간, 실존 인물인 베이클랜드家 사람들의 사진이었다. 영화 는 그들의 잔혹한 운명을 그려냈다. 사실 살인사건은 아는 사이에서 더 많이 벌어지며, ‘근친상간’은 다른 영화들을 통해서도 많이 봐왔었다. 매우 자극적인 묘사가 아닐 지라도(오히려 그랬다면 상당히 많은 관객들이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그들 관계 사실 자체가 이미 충격적이다. 프랑스 영화는 이런 관계에 대해 특히 많이 다룬다. 영화 에서는 이사벨와 테오 남매, 매튜 세 사람이 관계를 맺고, 에서는 중년 여성인 릴과 로즈가 서로의 아들과 관계한다. 커피는 아메리칸식, 음식은 아시안식, 영화는 일본식이 아니면 대부분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프랑스 영화를 곧잘 받아들이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프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2-14 17:03

‘살인적으로 미소 짓는 가화들 / 심장과 성기와 항문을 발랑 / 얼굴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 - 최승자 시, 중에서[공감신문] 꼭꼭 걸어 잠가두었던 문이 열린 건 십 수 년만의 일이었다. 거기에 갇혔던 아이는 조금씩 문 밖을 살피기 시작했다. 마치 현관 밖 비둘기 한 마리가 두려워 스스로를 가둔 파트리크 쥐스킨트 소설 속 주인공 같았었다. 서울 어느 광장에서 흔히 보이는- 사람들의 토사물 속 어마어마한 나트륨으로 뚱뚱해진 비둘기가 있을 줄 알았다. 그의 질병적인 날갯짓은 여느 대학 호수들처럼 에이즈 빼고 다 유발시킬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내 문밖의 비둘기는 그렇지 않았다. 고로 평화의 상징이라던 본질적 비둘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릴 적 포켓몬스터 만화에서 보던 오색 빛에 총명스러운 피죤이, 그리고 사랑이! 나는 드디어 천천히, 바깥 공기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활을 그리며 공기를 제압하는 비둘기의 날갯짓에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한 가지 미소로는 불충분했다. 이렇게나 멋진- 게다가 오랜 시간 기다려준 비둘기에게는 더 다양한 찬사가 필요했다. 그래야 그를 잡아둘 수 있으므로, 아니 그래야 그의 날갯짓에 이는 훈풍을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2-09 10:27

“교육은 일종의 계속되는 대화이고, 그 대화는 보통 그렇듯 여러 가지 관점이 있음을 인정한다.”-로버트 허친스[공감신문] 예전에 한 친구가 해준 얘기가 생각난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한국과 미국의 교육을 어느 정도 비교 가능한 사람이란 얘기다. 물론 그의 이야기는 그가 다니던 학교만의 경우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친구는 대학에서 미국 관련된 수업을 신청해서 들었다고 했다. 그 수업을 신청한 학생 대부분은 유학생이었으며, 전반적인 내용은 미국이 얼마나 ‘나쁜’ 나라인지에 대해서였다고. 그래서 그는 미국이 무서운 나라라고 했다. 미국에 F1비자(유학비자)로 가면, 법적으로 아르바이트가 금지된다. 즉, 자기네 나라에 공부하러 왔으면 돈만 쓰고 가라는 얘기다. 근데 그러한 유학생들에게 이 나라의 치부를 훤히 드러내는 셈이다. 마치 어떤 인기 많은 남자가, ‘나 원래 쓰레기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데도 미국은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얼마 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미국이 아닌 독일에게. 동네 산책을 할 때마다, 남산 소월길 한 복판에 자리한 ‘Goeth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2-07 10:07

[공감신문] 선생님들은 말씀하셨다. ‘문제 속에 답이 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 눈엔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나는 문제를 읽어도 답을 볼 줄 몰랐다. 어떤 문제지는 한국말인데 뭔 말인지 이해도 되지 않아 하얀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구나 했었다. 어른이 되고나니 그래도 저건 쉬웠구나 싶다. 이젠 문제를 이해하더라도 답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다행이다. 개인과 사회, 국가의 문제에 대하여 고민하는 정치인들도 그런 것 같아서다. 자신의 문제, 자신을 둘러싼 친인척들의 문제와 굴레, 그리고 그들이 정말 고민해야할 국민들에게 닥친 문제가 그들은 무엇인지 이해한다. 오늘 오전에 있었던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연설만 들어봐도 그러하다. 남 탓하는 여야, 무늬뿐인 취약계층의 노동 시간 규제와 평등권,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한숨, 이게 나라냐 하는 문제들. ...어머, 정말 알고 계시네? 그래서 묻고 싶다.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 나왔던 유행어를 인용해보겠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참 쉽다, 싶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첫 번째 태도는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2-02 10:05

[공감신문] 사실 중학생 시절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 지나고 보니 추억이네, 싶은 일들도 별로 없어서 마음과의 합의하에 대부분 지워진 것 같다. 하지만 1학년이었던 2002년은 기억에 남는다. 혁명적이었던 여름과 가을, 인상적이었던 사건들로 점철되었던 순간들. 가을에 있던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당시 여름날의 분위기만 이야기하고자한다. 아시다시피 그 해엔 월드컵이 있었고 우리 대표팀은 역사적인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창 연예인을 좋아할 나이의 우리들은 대표팀 선수들 이름을 책상에 새겼다. 단축 수업을 하는 경기 날엔 의정부 공설운동장에 모여 한뜻으로 응원했다. 기말고사 준비고 나발이고, 뜻도 모르는 ‘Be the reds’ 티를 구해 입었다. 그즈음, 옆동네 양주시에서 한 학년 언니 둘이 미군 부대 장갑차에 깔려죽었더랬다. 우리 가족이 의정부에 살았던 건, 아빠가 한 때 주한 미8군의 기자이셨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우리 집은 부대에서 멀지 않았었고, 그 곳은 나에게 어릴 적 수영장이자 축제의 장소이기도 했다. 중학교 때 내 단짝 친구 혜인이는 양주시에 살았으며 그녀 아버지 역시 미군부대에 근무하고 계셨었다. 빨갛게 물든 시청광장의 단결력은 외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2-01 10:09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 가리’ (유재하곡, 중에서) [공감신문] 한국인들은 화병이 많다. 감추는 것이 덕망 있는 거라고 배워왔다.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심지어 기쁜 일에도 줄곧 그런 모습을 보였다. 몹시 슬퍼하지도 몹시 기뻐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감정을 숨기면 무뎌지는 줄로 알지만, 그 고요함은 어디선가 꼭 사고를 치기 마련이다. 지혜가 있던 우리의 선조들에겐 나름대로 감정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었다. 난을 치거나 시를 쓰고, 또 그림을 그렸더랬다.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과거 서양의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대에 자기 의견이 묵살 당할 때에, 그녀들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왼쪽의 그림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클림트의 (1901)이다. 유디트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인데, 우리로 치자면 ‘논개’다. 아름다운 과부였던 그녀는 자기 족속을 구하기 위해 적장을 유혹했고, 그날 밤 침실에서 그의 머리를 참수했다. 아름답고 관능적인 그녀가 들고 있는 순진무구했을 저 이의 머리를 보라. 수많은 화가들은 유디트를 그렸다. 아름다움과 용기, 결단력, 드라마틱한 상황-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1-26 15:42

[공감신문] 시(詩)는 나에게 큰 기쁨 중 하나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아침엔, 도서관에 가서 기분에 맞는 시집을 골라 읽는다. 시로, 해장을 마무리한다. 전날 밤 술잔에도 기분이 있듯, 해장에도 그러한 정서가 있다. 인생이 뭐-같을 때는 찰스 부코스키나 박노해를, 도시풍경에 동정심이 들땐 위대한 보들레르를, 위로가 필요할 땐 천양희나 나태주를 고른다. 시가 있는 서가는 나에게 김밥천국 메뉴판이다.찐하게 마셨던 작년의 마지막 날- 하지만 1월 1일엔 도서관도 휴일이었을 테지. 해장이 필요했던 난, 전에 빌려두고 읽지 않던 시집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올해 읽은 첫 책의 제목은…. 난 시쓰기도 좋아한다. 혼술할 때에 특히 많이 쓰는데, 다음날 읽기에도 불편하지 않은 시들이 꽤 모였기에 몇 편 더 쓰이면 출간할 것이다. 시 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연산군과 피카소, 존 레논도 시 쓰기를 즐겼다. (음, 개인적으로 존 레논의 시는 별로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역시 희곡작가이자- 시인으로도 유명하다! 진짜 잘하는 극단이 아닌 이상, 국내에서 공연되는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작품들은 좀 어색하다. 말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1-24 1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