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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조병수칼럼] 아이가 미국에서 유치원(Kindergarten)에 다닐 때였다. 아내가 아이의 등교준비를 하며 부엌에 있는데, 갑자기 집 밖에서 경광등이 번쩍거리는 것이 보이고 연이어 현관 벨이 울렸다.놀라서 문을 열어보니, 경찰관 3명이 허리춤의 권총 위에 손을 얹고 일촉즉발의 자세로 경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 뒤로는 여러 대의 경찰차와 구급차까지 포진해서 불빛을 번쩍이고 있으니, 기가 찰노릇이었다. 경찰관이 아내에게 "당신의 아이가 911에 신고를 했다. 무슨 일이냐? 아이는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위층에 있다."창문을 통해 바깥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겁에 질려있던 아이가 불려 내려오자, 경찰관은 즉각 아이의 윗도리를 벗겨보고 손발도 내밀게 해서 무슨 상처가 없는지부터 면밀히 살폈다. 아이 몸에 학대의 흔적이나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경찰이, 그제서야 경계를 늦추며 아이에게 물었다. "왜 911에 신고를 했느냐?" "어제 학교에서 배웠는데, 911에 신고하면 언제든지 도움을 준다고 하길래 한번 걸어보았다.""요즘 학교에서 911에 전화하는 법을 가르치는 시즌이라서 종종 이런 일이 있다. 이번에는 허위신고에 대한 벌금은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7-02-17 17:16

[공감신문 조병수칼럼] 1992년 봄, 뉴욕지역에 진출해있던 한국계은행들은 그전 해 연말에 발효된 미국의 외국은행 감독강화법(FBSEA)에대한 대비를 하느라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때였다. 그 동안 주(州)정부 은행국에서 담당하던 외국계은행검사도 연방준비은행 (FRB)과 합동으로 진행하는 등, 미국 국내은행수준의 감독을 받기 시작했다.그 때 뉴욕주 은행국과 FRB뉴욕의 합동검사가 나오면, 거의 한달 정도를 지점에 체류하면서 부문별로 검사를 진행하였다. 검사가 그렇게 장기간 진행되니까, 서로의 현안에 대한 의견교환도 할 겸해서 수고하는 검사원들에게 ‘한국의 음식’도 한번 대접하면 좋을 듯 했다.그래서 FRB측 검사수반에게 오찬초대의 뜻을 전했더니, 아주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이었다. “그냥 부담 없이 서로의견을 교환하는 기회를 갖자”고 재차 청했더니, “본부와 한번 상의를 해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그리고는 하루 뒤에 통보하기를, “자기들의 식대는 자기들이 계산하는 조건으로만 자리를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얘기하면 부담만 주는 것 같아서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말았다. 그들에게 그런 엄격한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전, 내부통제부문을 전담하는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7-02-14 13:44

[공감신문 조병수칼럼] 지난1월 중순에 속초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동해안으로 가는 길에는 그래도 쌓인 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러다가 내년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괜찮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그 후 눈 소식이 들리고 날씨가 추워지긴 했지만, 겨울이 점점 겨울다워지지 않고 있음을 걱정하는 것이 그저 ‘등 따뜻하고 배부른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위도(緯度)상으로 서울과 큰 차이 없는 뉴욕, 뉴저지 일원의 겨울철엔 정말 눈이 많이 내린다. “펑펑 쏟아진다”는 표현이 어울릴 때가 많다. “눈폭풍”이니, “공항마비”같은 이야기들도 흔히 듣게 된다. 그런 겨울철에는 근처 야산에서 먹이를 찾아 내려와 주택가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사슴들이 또 다른 자연의 정취를 선물해 주기도 한다. 어떨 때는 2월 중순까지도 폭설이 내리기도 하니까, 쏟아져 내리는 눈을 치우려면 몸살을 앓을 정도다. 자기집 앞 구역이나 인도에서 눈을 치우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으면 집주인이 책임을 져야 된다고 하고, 차고의 차도 빠져 나와야 하니 눈을 제때에 치우지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7-02-06 15:32

[공감신문 조병수 칼럼] 피지(Fiji)행 야간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잠을 제대로 못 잤으니, 오후엔 일찌감치 숙소로 가서 쉬는 것이 좋을 듯했다. 난디공항에서 2~30분 거리의 소내살리 섬(Sonaisali Island)리조트전용선착장에서 나룻배규모의 모터보트로 옮겨 가는데, 저만치 야자수 늘어선 경치만해도 겨울 나라에서 온 여행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섬에 내려서자, 흩어지는 빗방울에 함초롬히 젖어드는 꽃잎들, 앞쪽으로 펼쳐지는 수영장과 연이은 바다, 그리고 해변따라 서있는 야자수가 어우러져 자연의 조화를 뽐낸다. 이런 아름다운 천지를 창조한 그 오묘함이 경이롭다. 종업원들은 만날 때마다 “불라!(Bula:hello, welcome정도의 인사말)”라고 인사말을 건네고, 걸어가다가 길옆의 하이비스커스 꽃 한 송이 따서 머리에 꽂으며 가는 모습들도 여유롭다.“열대성 저기압이 사이클론으로 발전하느냐 마느냐”는 일기예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빗줄기도 조금씩 굵어진다. 은은한 조명이 비치는 해변에서 피지맥주를 종류별로 한모금씩 맛보다보니, 모처럼만에 찾아오는 마음의 여유가 사르르 녹아들어간다. 한적하고, 덜 세련되고, 상대적으로 할 것들이 많지 않은 이 바닷가에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7-01-31 10:47

[공감신문 조병수 칼럼] 잔뜩 찌푸린 날씨에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난디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재래시장(Nadi Market)으로 향했다. 피지 제3의 도시이자, 과거에 사탕수수 소작농 및 소상인들이 살던 곳이라는 난디 시장부근은 자동차들로 제법 붐볐다. 왕복2차선도로에 늘어선 노후한 자동차들에서 나오는 시커먼 매연이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은, 그곳 공기가 워낙 맑은 때문이기도 하겠다. 창문이 없는 버스에 비 온다고 천막 같은 것을 내리고 가는 광경에, 여기가 열대지방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시장건물에는 길게 늘어선 테이블 위에 열대과일들을 올려두고 상인들이 앉아들 있는데, 야채나 과일들의 종류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조금은 싱겁게 느껴졌다. 오전 시간대라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열대지방의 특이한 것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던 탓이리라. 그 옆쪽의 다른 코너들이나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생략하고, 시장 앞쪽에 보이는 커리하우스(Curry House)로 갔다. 인터넷에서 “현지식 인도식당이자 해산물식당이라”고 본 기억이 있어서 생선요리와 연어샐러드들을 주문했는데, 열대지방이라서 그런지 요리에 긴장감(?)은 별로 없어 보였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날벌레들도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7-01-20 12:07

[조병수 프리랜서] 멜라네시아, 학창시절에나 들어 봤음직한 그 단어가 갑자기 내 눈앞에 던져졌다. 그리고 신혼여행지 같은 말들과 함께 귓전을 스쳐가던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Fiji)로의 여행이 느닷없이 현실로 다가왔다. 11월 말쯤, 둘째 딸이 “남태평양지역으로 출장을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대한항공 편으로 피지에 가서 갈아타고 간다”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솔깃해졌다. 피지가 정확히 어디 있는 곳인지도 몰라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뉴질랜드 북쪽에 있음도 알게 되었다 딸의 출장이 끝나는 때에 맞추어서, ‘한겨울에 여름나라로의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섬이라고 하니, 그저 한 5~6일 정도면 될 것 같았다. 소식을 들은 딸들은 "『트루만쇼( 1998)』라는 영화에서 주인공 트루먼 버뱅크 (짐 캐리 粉)가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떠나던, 그 남태평양 피지에 가볼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라 했다. 워낙 갑작스런 결정이라, 하던 일과 약속들을 대충 정리하고 보니 12월 중순의 출발 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준비라고는, 비행기편과 숙소, 렌트카 하나 예약해둔 것이 전부였다. 여행을 간다면서 ‘어떤 나라인지,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7-01-11 16:58

[조병수 프리랜서] 아내가 딸아이를 데리고 영국 뉴몰든 동네 근처에 있는 조그만 백화점에 가면 딸아이가 낯 설은 외국사람들을 보며 자꾸 울어대 길래, 한국에서 가져간 처네로 애를 등에 업고 나갔다가 우산을 잊어버리고 온 적이 있었다. 나중에 다시 그곳에 유모차를 끌고 갔을 때 계산대직원이 아내를 기억하고 우산을 돌려주었는데, "우산에 monkey(원숭이)라고 적힌 메모지가 붙어있더라"고 했다.한번은 연휴기간에 스코틀랜드를 갔다가, 끼니때가 지나도록 인적이나 마을이 안 보이는 길을 달리게 되었다. 때마침 캠핑장 표지가 있길래 들어가서, 관리실의 청년에게 "어린애 분유라도 먹일 수 있도록, 물이라도 끓일 수 있도록 잠깐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대뜸 "안 된다"고 했다. 재차 간청을 하자 그 청년이 안쪽에 있던 자기 어머니를 부르고, 그 여인은 나오자말자 다짜고짜 "당장 나가지 않으먼 경찰을 부르겠다"며 쌍심지를 돋우웠다.어린아이나, 같이 길을 나선 일행의 가족들을 생각해서 비용을 내더라도 잠깐 쉬면서 요기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내몰렸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장총을 들고 나와 쏘아대는 장면에서나 봄직한 험악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7-01-06 11:59

런던외곽 남서쪽에 있는 뉴몰든(New Malden)역에서 하이스트리트를 따라서 분수대(The Fountain)로타리 쪽으로 가다가 보면 세이프웨이라는 슈퍼마켓이 있었다. 큰 식료품 판매장에 1980년대 당시의 한국에서는 쉽게 보기 힘들었던 노란 바나나가 큼지막하게 누워있고, 통으로만 사먹던 수박이 몇 등분으로 나뉘어서 포장되어 있는 것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요즈음 분들은 그런 것을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당시 국내에서 바나나 송이를 구경하는 것은 상류층에서나 가능할 정도였다. 서울 시내에서도 그런 수입 또는 고급과일만 전문으로 취급하며 판매하는 가게가 따로 있었으니까···.그러니 슈퍼의 손수레(cart)위에 큰 바나나 송이가 놓여있으면 그것은 한국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재원 가족들이 식료품쇼핑을 가면 제일 먼저 바나나송이를 집어 드는 풍조가 있었다. 그 노란 바나나 한 손 실어 놓고는, ‘아 내가 이런 과일도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곳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으니까, 흐뭇하고 넉넉해지곤 했다.런던 도착 후 며칠 되지 않을 때 였다. 돌짜리 아이에게 필요한 분유와 영양식, 그리고 기저귀 등 필요한 물품을 사야 할 일이 있어서 집에서 한 1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7-01-03 14:19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언론인 박권상 씨가 1980년대 초에 쓴 『영국을 생각 한다』라는 책의 제목이 참 인상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었다. 갓 서른을 넘긴 새내기 젊은 부부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나가서 살게 되었던 1980년대 중반의 그 영국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금방 가슴에서 원색의 초록물감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만 같다. 젊은 시절에 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나가는 다른 세상에서 때로는 남모르는 아픔도 있었지만, 그렇게 부딪히며 보고 배운 그 새로운 세계와 그 배경으로 등장하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너무나 가슴 저리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영국을 방문한 어느 분이 ‘영국에서는 흙이 안 보인다’라고 하던 말처럼, 아름다운 색조의 하늘과 양떼, 솜털 같은 구름과 돌담길, 목가적인 시골풍경과 동화 같은 고성(古城)들, 유서 깊은 도시와 왕궁, 기마병과 마차, 마룻바닥 소리가 울리는 아기자기한 선술집 퍼브(Pub)의 모습들과 라거맥주(lager beer)의 고소한 맛, 좁다란 수로를 거슬러 가는 배들과 수채화폭 같은 바닷가 언덕들…. 그리고 자동차 경음기(警音器) 소리란 들어볼 수 없이 여유롭게 기다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2-27 18:57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미라보 다리아래 센 강은 흐르고 그리고 우리들 사랑도 흐른다”라고 시작되던 ‘기욤 아폴리네르’의 시를 흥얼거리고, 『파리는 안개에 젖어』라는 영화를 보면서 눈으론 울면서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머금던 ‘페이 더너웨이’의 표정연기에 빠져들던 젊은이가, 프랑스 파리에 처음으로 발을 디뎠을 때는 그저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었다.‘저기에 진짜 나폴레옹이 누워있나?', '모나리자의 미소라는데 난 별로야', '센 강을 보니 한강은 정말 큰강이구나'같은 생각을 해가면서 유모차를 끌고 부지런히 돌아다녔었다. 지금은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잊었지만, 해산물이 즐비하게 진열된 조그만 식당들이 늘어선 좁은 골목 안에서 무언가를 맛있게 먹어보기도 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와서 갓 지은 밥에다 통조림깻잎 하나 올려서 입안에 넣을 때 하루의 피로를 일시에 날려주던 그 맛까지, 파리는 그렇게 여러 가지 아련한 추억들을 남겨준 곳이었다.그 도시를,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서야 다시 가보게 되었으니 여러모로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었다. 도버해협을 건너서 칼레에서 파리의 개선문까지 약 300km를 단숨에 달렸다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2-02 12:40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1인천 송도 신도시에서 서울 강남지역을 오가는 광역버스가 있다. 그 버스가 서는 정류장마다 보도 경계석에 버스번호가 표시되어 있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순서대로 줄을 서서 기다리니 마음이 편하다.그런데 송도지구를 벗어나는 마지막 버스정류장에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지 않는다. 그 곳의 승객은 대부분 그 광역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아무리 먼저 와서 서있어도 버스만 나타나면 순서가 없다. 남녀노소도 개의치 않는다.그러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는 보도 경계석에 버스번호 표식이 없다. 아마도 최근에 몇 천 세대의 아파트단지들이 그 앞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이용하는 승객이 거의 없어서였을 것이다.그래도 그렇지, 강남 도심지에서까지 표지판 따라 보기 좋게 줄을 서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표지 하나 없다고 이렇듯 흐트러지는 그 심리가 참으로 희한하다. 행여 몇 자리 비어있을 좌석에 앉으려는 욕심이 앞선 탓이긴 하겠지만, 그냥 줄을 서거나, 최소한 자기보다 먼저 와있는 사람들 뒤에 탈 정도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는데···.리차드 칼슨 박사가 쓴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1-17 13:12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한밤중에 불현듯 잠이 깨더니 아무리해도 다시 잠을 이룰수 없다. 갈수록 정신이 맑아진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일어나서 TV를 켜보았다. 이리저리 채널들을 돌리다 보니, CNN에서 프랑스 칼레(Calais)에 있는 난민촌(Calais ‘Jungle’ migrant camp)를 철거한다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근자에 자주 그 지역 이름과 함께 수많은 난민들이 영국으로 건너가려고 필사의 노력들을 경주하는 장면들이 보도되는 것을 보던 터였다. 그 난민촌이 ‘정글’이라고 불린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된다.수단, 시리아, 쿠르드족 이락, 아프가니스탄 같은 아프리카 북동부와 중동지역에서 몰려든 7천명이 넘는 난민들이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떠나려고 몰려들었다는 그 항구도시 칼레는, 수십 년 전 꿈과 낭만에 대한 기대로 들뜬 동양의 한 젊은이가 미지의 유럽대륙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피안 (彼岸)의 도시였다.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 도버해협을 반대방향으로 건너려고 수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기차나 화물차에 숨어들고 있다는 현실이 '삶이란 참으로 미묘한 것’이라는 느낌을 안겨준다. 야심한 가을밤에 잠은 잊어버리고, 생각은 기억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1-09 17:14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한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2005)』이란 영화를 보면서, 그 배경으로 나오는 아름다운 산하와 집들이 어디에 있는 것인지 궁금했었다. 그런데다가 영국여행을 계획할 즈음에 우연찮게 그 원작소설과, 저자인 제인 오스틴(Jane Austin: 1775~1817)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궁금증과 흥미가 더해졌다.그래서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인 엘리자베스 베넷(키이라 나이틀리粉)이 다아시의 저택인 펨벌리(Pemberley)로 찾아가는 장면들을 촬영했다는 채스워스 하우스(Chatsworth House)를 둘러보기로 정했다. 그곳은 영국 중부지방 더본셔 공작인 캐번디시 가문(Carvendish family)의 저택으로, 여러 차례 “영국에서 특별히 사랑 받는 저택”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는 곳이다.그리고 그 저택이 있는 피크 디스트릭트 국립공원(Peak District National Park)에는 영국 내에서 경치 좋은 길로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캣 앤드 피들 루트(Cat and Fiddle route)도 있었다. 중·북부지방의 야생화로 뒤덮인 황야지대(moors)와 구릉지 사이를 휘감아 도는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1-02 16:01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몇 년 전 어느 봄날 오후에 분당 미금역 쪽으로 가야 할 일이 있었다. 봄 햇살을 맞으며 탄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노라니, 전날 저녁에 잠시 내린 봄비 덕분인지 나뭇잎들이 몰라보게 녹색빛을 띠었다.그렇게 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끽하며 걸어가는데, 저만치 자전거도로 옆 풀밭에 웬 사람이 길게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다가가 보니, 멀쩡한 차림의 웬 남자가 신발 한 짝은 벗어 제친 채 누워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술에 취해 드러누워 있는 것 같았다.봄날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대책 없이 풀밭에 얼굴을 대고 누워있어서는 안될 것 같아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여보세요’라고 불러보았으나 미동도 않았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빛에 약간 마르고 희끗희끗한 머리털을 가진 초로(初老)의 멀쩡한 남자인데, 술 냄새 같은 것도 전혀 나지 않았다. 숨이나 쉬고 있는지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어깨 쪽을 약간 흔들어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덜컥 겁이 났지만,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순간적으로 얼굴이 미세하게나마 움직이는 것 같았다.다시 한번 더 크게 ‘이거 보세요’라고 부르니, 그제서야 약간 얼굴을 돌리면서 마치 장난처럼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0-23 15:51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영국여행을 준비한다고 이런저런 자료들을 뒤적이다가 보니, 정말 몇 년을 그 나라에서 살았어도 제대로 몰랐던 것이 너무나 많고, 또 가까운 곳에 있는 것도 미쳐 살펴보지 못한 곳들이 너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AA(The Automobile Association: 회원제 자동차여행안내·고장수리보험회사)’에서 나온 지도와 숙소안내책자와 동료들의 경험담들에 의존해서 이리저리 다닌 처지라,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와 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요즘에야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보험회사별로 긴급견인이니 고장수리지원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삼십 년 전 영국에서 경험한 회원제 자동차여행안내 및 고장수리지원 전문회사의 존재자체가 나에게는 충격이었다.투숙할 방하나 구하려고 해도 그 회사의 숙소소개 책자에 나온 위치정보만 보고 전화로 예약하거나 아니면 길가다가 ‘공실 있음(vacancy)’이라는 팻말을 보고 찾아 들던 시절이었다. 주변 관심지역에 관한 자료도 그 책자에 수록된 장소나 동료들의 경험담이 전부였다. 물론 제대로 챙기는 노력이 부족했고 과문(寡聞)한 탓도 있었겠지만, 그저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0-14 11:21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몇 달 전 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여정을 잡아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이런 원칙을 세웠다. 영국을 처음 방문하거나 거의 기억이 없다는 딸들을 위해서 대부분 가본 곳들이지만 다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내가 미처 가보지 못한 곳 중에서 꼭 가보고 싶은 곳도 몇 군데 끼워 넣기로 했다. 그러면서, ‘요즈음 입장료도 비싼데, 런던주변의 관광명소는 여러 차례 가보았으니 너희들만 들어가는 걸로 하자’고 했더니, 돌아오는 딸들의 대답이 걸작이었다.“그럴 것 같으면 저희들끼리 갔다 오지, 뭐 하러 가족이 같이 여행을 갑니까? 우리가족의 가치(family value), 한 사람은 모두를 위하고 모두는 한 사람을 위한다.(One for all, all for one)!”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 페르의 소설 『삼총사』에 나온다는 구호까지 들먹이는 그런 고마운 마음들 덕분에 런던 땅을 다시 밟게 되었으니, 그 옛날 해외근무를 처음 시작하면서 밤낮없이 헤매던 그 런던지점 자리를 찾아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지점이 이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당시에는 시티에 있는 영국중앙은행(Bank of Engla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0-11 12:26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1990년대 초, 미국에서 근무한지 몇 개월 만에 처음 맞는 핼러윈데이(Halloween Day) 때였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10월 하순이면 호텔이나 백화점들이 핼러윈 복장이나 장식들을 많이 해두고, 여러 곳에서의 행사나 파티소식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 그런 분위기를 처음 보는 이방인의 눈에는 ‘참 희한한 풍습’으로 비쳐졌다.맨해턴 섬 서쪽 허드슨 강 건너에 있는 뉴저지 주 크레스킬(Cresskill)이라는 곳에 살고 있을 때인데, 낙엽이 쌓여가는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주택가 집집마다 창문이나 집 앞에 괴상하게 생긴 것들을 걸어놓고 있었다. 인간의 해골이나 뼈 모형, 드라큘라, 귀신복장 인형, 호박의 속을 파서 도깨비 얼굴을 새기고 양초를 넣어서 만든 호박등(Jack-o’Lantern) 같은 것들이 걸려있는 집들을 보면서, ‘괜히 음산하게, 왜들 이러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핼러윈데이의 기원이 1세기 중반까지 영국과 아일랜드지방을 지배했던 캘트족(the Celts)의 시대로 거슬러 간다고 하는데, 내가 런던에서 살던 1980년대 중반 때는 그다지 보거나 느낄 수 없었던 풍습과 전경이었다. 그날이 마침 토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0-08 15:27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영국에 도착한 다음날 오후에, 30여년 전에 살던 뉴몰든(New Malden)과 서비튼(Surbiton)지역의 집 주변을 살펴보러 갔다. 인터넷이 발달해서 가끔씩 지도검색에 나오는 인공위성 사진으로 주변을 살펴보곤 했지만, 가족들의 대화에 가끔씩 나오는 추억 속의 집들과 주변 환경을 그 당시에는 태어나지 않았던 둘째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었다.런던 남서부에 있는 뉴몰든 쪽으로 가는 길에, 리치몬드 파크(Richmond Park)와 그 공원 안에 있는 이사벨라 식물원(Isabella Plantation)도 둘러보았다. 런던 왕실공원 중 최대규모로서 과거 왕실 사냥터로 썼다는 명성답게 2,360에이커에 달한다는 광활한 초원에 사슴 떼가 노닐고 온통 무성한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려있던 그 공원은, 30여년 전에 그곳을 들른 이방인에게는 너무나 인상적이었고 큰 충격이었다.당시 살던 집과 가까워서 틈날 때마다 그 시원한 초원 길을 드라이브 삼아 드나들었고, 런던을 찾은 친구들이나 직원들을 안내하면 다들 경탄하던 공원이기도 했다.영국을 떠난 후에도 가끔씩 사진앨범에서, 나들이하며 사슴들 가까이서 찍은 모습들과 이사벨라 가든으로 불리던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0-04 16:23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지난해 5월 하순, 온 가족이 함께 영국항공(BA)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향했다. 여행을 떠날 때면 늘 기대에 부풀어 들뜨게 되지만, 이번에는 다른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젊은 시절에 살던 영국 땅을 다시 보러 가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내도 감회가 남다른 것 같았다.32년 전, 갓 돌이 지난 젖먹이 아이를 안고 앵커리지, 파리를 거쳐서 돌아가야만 하던 그 길을, 이제는 그 아이의 동생까지 함께, 그 절반의 시간에 런던으로 직행하는 비행기에 앉아 있으려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음을 절감하게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10년이 세 번이나 바뀌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눈앞에 다가오는 영국의 그 강산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유아기를 그곳에서 보낸 큰딸은 “아주 어릴 적 일이라 사진을 봐도 실감이 나지 않고, 그저 한두 장면만 기억될 뿐”이라고 하던 곳이다. 둘째도 엄마 아빠 이야기 중에 흔히 나오는 영국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언젠가 같이 한번 가보자”고 했는데, 이런저런 사유로 차일피일 미루어지기만 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는 딸들이 “더 늦기 전에 가족여행을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10-02 15:22

[공감신문=조병수 프리랜서] 몇 해 전 가을, 어느 금요일 저녁, 모두들 외출하고 없는 모처럼 한가한 시간에 티브이 채널을 이리저리 만지다가 우연히 케이블에서 『애수(Waterloo Bridge)』라는 영화 제목을 발견했다. 그전에도 그 영화를 보긴 했으나 몇 장면을 빼고는 그 내용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근 30년 전에 런던에서 워털루 다리를 지나다니면서 그 영화를 떠올렸던 감정들을 되새겨 보고픈 마음에, 1940년에 흑백으로 만들어진 그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비비안 리(Vivien Leigh)와 로버트 테일러(Robert Taylor)가 주연으로 펼치는 애절하면서도 기품 있는 연기가 안개 낀 워털루 다리와 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매일같이 워털루 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퇴근 하던 시절의 회상과 함께 오랜만에 혼자서 감격의 추억여행을 만끽하였다. 실제로 워털루 다리에 가보았을 때는 생각보다 평범한 다리였다. 『애수』라는 영화를 보면서 상상하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워털루 역만큼은 3년을 매일 같이 기차와 지하철(tube)을 갈아타며 통근하던 곳이라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특히 한 시간에 2~3편 있는 기차를 기다리

조병수 에세이 | 조병수 칼럼 | 2016-09-26 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