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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별 속에 살고 있어요. 익숙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도 헤어지죠. 익숙한 습관처럼 아침과 낮, 밤과 만나고 이별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하루는 만남과 이별로 시작되고 끝나죠. 일상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는 이별이지만, 이별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고, 이별 앞에서는 두렵고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죠. “이 사람과 헤어지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두면 더 괜찮은 회사에 갈 수 있을까.” “지금의 힘든 상황과 이별하고 싶은데…….” 이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방금 마주친 눈부신 햇살을 포함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이별이고 익숙하게 길들여져 왔던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이별이에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도, 타인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해방되는 것도 이별이에요. 그러니 이별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 안에 있어요. 그러나 어떤 것과 이별하든 이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두려움, 불안, 위축, 외로움을 부르죠. 좋지 않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2-15 10:12

"꽃 같은 그대,나무 같은 나를 믿고 길을 나서자.그대는 꽃이라 10년이면 10번 변하겠지만나는 나무 같아서 그 10년, 내 속에 둥근 나이테로만남기고 말겠다.타는 가슴이야 내가 알아서 할 테니길 가는 동안 내가 지치지 않게그대의 꽃 향기 잃지 않으면 고맙겠다."- 이수동, 동행[공감신문] 행복한 결혼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글이 이수동 화가가 쓴 동행인데요. 분명, 삶에 있어 최고의 선택은 사랑이고 결혼이에요. 그러나 결혼도 예의를 지킬 때 행복을 안겨주죠. 보통 20대에는 사랑만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며 동화 속의 주인공을 로망의 대상으로 생각하죠. 서른이 훌쩍 넘어간 경우라면 현실적인 것들에 민감해져 의지하면서 쉬고 싶은 '안식처' 개념으로 생각하게 되죠. 나와 잘 맞으면서도 가족과도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게 되죠. 어쨌든 결혼은 혼자 가는 삶을 내려놓고 동반자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여는 약속이죠. 천국과 지옥을 함께 가겠다는 영혼의 서약이죠. 서로에게 보호자가 되겠다는 서약이죠. 그 모든 서약에 사인함과 동시에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죠. 결혼과 동시에 배우자를 나만큼 아끼고 존중해야 해요. 그렇질 못하니까 서로에 대한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2-12 09:58

[공감신문]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전에 보면 어른은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명시되어 있어요. 누구나 스무 살이 되면 성인임을 증명 받는 신분증을 갖게 되죠. 어른을 증명하는 신분증. 19금의 정보를 보거나, 원하는 대로 술과 담배를 즐기고, 부모의 동의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죠. 그러나 그것들은 껍데기뿐인 어른이에요. 진정한 어른은 나이가 많은 것을 말하지 않아요. 생물학적, 사회학적으로 대접받는 '어른다운' 어른을 말하는 거죠. 일반적으로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면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죠. 그것만으로도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고 할 수 없어요.그렇다면 진정한 어른은 무엇을 말할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해요. 다시 말해 진실과 거짓, 내 것과 남의 것, 선과 악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려면 깊은 사유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해야죠. 탁월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이 바로 반듯한 지혜를 안겨주니까요.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이 지혜로운 이유는 그만큼 지식과 경험이 많기 때문이에요.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예외도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2-08 10:01

[공감신문] 남들이 출근하는 아침 7시에 나는 작업할 준비를 하면서 동네 빵집에서 사 온 식빵을 치즈를 끼워 넣어 토스트를 만들어 먹죠. 물론 커피와 함께 먹지만. 아침 식사 시간이 10분도 채 안되지만 나에게는 행복 한 줌을 만나는 시간이에요. 작업하기 전에 오롯이 나를 위한 식사죠. 소박하지만 먹고 싶은 것을 내 맘대로 선택해서 먹을 수가 있다는 것이 나를 위한 선물이니까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먹는 것이 즐거워야 작업하는 원고도 잘 풀리거든요. 어쨌든 이달에 들어온 인세와 원고료로 밀린 고지서를 정리하고 나니까 날아갈 듯 기분이 좋네요.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구름으로 가득 고요. 이보다 편안할 수는 없는 오늘이에요. 오늘은 작업이 수월할 것 같아요. 나는 비가 내리는 날이나 흐린 날에 작업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밥 먹고 자는 시간외에는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눈이 건강하지 않아서요. 특히 날씨가 많이 건조하면 하루에 수십 번씩 인공눈물을 넣어가며 글을 쓰죠. 비 오는 날에는 눈이 건조하지 않아 인공눈물을 넣지 않아도 되고 내가 싫어하는 자외선도 없어서 좋아요. 비 오는 날에는 오랫동안 작업을 하게 되죠. 아침을 간단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2-05 10:00

[공감신문] 옆집에 막 삼십대로 접어든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집안을 들락거리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들의 이사 풍경을 지켜보았다. 일부러 지켜보았다기보다 웃음이 가득한 둘의 모습이 내 마음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젊은 부부가 어쩌면 웃는 모습이 순수하던지 첫인상 첫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얼굴에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아주고 있다. 그것을 보는 나는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을 보면 서로에 대한 예의도 충분히 정중했다.서로를 배려하며 챙겨준다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에다가 신뢰가 쌓이지 않으면 그런 행동이 나오기가 어렵다. '너도 힘들지만 나도 힘들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면 아무리 젊은 부부라도 서로에 대한 애틋함은 크지 않다. 사랑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기 때문이다. 연애는 일방통행이어도 일정기간 사랑이 가능하지만 결혼이 일방통행이라면 끝만 남았다. 심지어 '너는 너고 나는 나'라는 이기심이 가득한 관계라면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조금의 양보나 희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20년, 30년의 결혼생활을 한 사이라면 좋은 일, 궂은일을 다 겪었기에 함께 견뎌가며 쌓은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2-01 09:55

[공감신문] 첫눈이 내렸다. 나는 보지 못했는데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느닷없이 찾아온 겨울 손님, 첫눈은 그렇게 겨울을 물어다 놓고 사라졌다. 발갛게 물든 붉은 단풍이 떨어지기 전에 가을이 떠날 준비도 하기 전에 예고 없이 날라든 낯선 고지서처럼 겨울은 또 이렇게 배달되었고, 이별을 미루던 가을은 야금야금 서슬 퍼런 발걸음으로 점령하는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화려했던 만추, 11월도 이렇게 떠나간다. 흔들리는 동공에 잡힌 세상은 온통 무채색의 옷으로 갈아입는다. 화려하고 탱글탱글 열매로 가득한 수채화의 세상이 묵직한 한편의 수묵화의 세계로 들어간다. 꺼지기 전의 마지막 불꽃처럼 화려하게 불타오르다가 형형색색의 사연들을 다 토해내지 못한 채 막 이별을 고하는 가을은 헛헛함으로 가득하다. 가지에 채 떨어지지 못한 붉은 잎이 무엇이 아쉬운지 애잔하게 붙어 있다. 이렇게 또 한 번의 겨울이 찾아왔다. 세상은 동토의 빙하 같은 색을 머금은 채 푸른 안개로 뒤덮일 것이다. 겨울이 깊숙이 파고들어 존재감을 드러내며 세상을 뒤흔들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결실로, 누군가는 상실로 각자의 기억 속에 머물 것이다. 머지않아 가슴을 후려치는 삭풍과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1-28 10:48

[공감신문] 시간 앞에 말없이 무릎을 꿇는 11월, 달 밝은 가을밤 창가에 서면 근원을 모르는 그리움이 목까지 차오른다. 사방에서 영혼이 앓는 소리가 들린다. 길가에서 연약한 몸으로 가녀린 손짓을 하는 코스모스 행렬, 무리 지어 처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들국화의 애잔한 미소, 붉게 물든 빨간 단풍잎, 북풍에 황금빛을 더해 가는 노란 은행잎, 청명한 하늘에 낮게 날다가 꽃잎에 살포시 내려앉아 휴식을 취하는 빨간 고추잠자리, 풀벌레들의 합창들이 이제 막 떠났다. 가을이 없었다면 인간에게 철학이 없었을 것이라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깊어가는 밤에 봄, 여름 그리고 가을, 치열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나의 정원에서 딴 사과를 보며 회상에 잠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가을이 오면 저절로 보이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어딜 가나 수북수북 붉은 단풍의 양탄자가 된 푹신한 단풍을 밟으며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란 글을 생각하기도 하고. 가을인 듯, 겨울인 듯 분간이 안 가는 만추의 길을 거닐면서 첫사랑에 애타는 소년, 소녀이 되기도 한다. 대학 다닐 때 나는 부전공으로 불문학을 공부했다. 불어를 잘 해서가 아니라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불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1-22 09:57

[공감신문] 빨간 불(red light)이라고 하면 뭐가 떠오를까? 빨간 신호등? 경고등? 그렇다. 무언의 경고다. 말 그대로 빨간 불이다. 멈추라는 신호다. 잘 살려고 다들 정신이 없다. 그러나 가끔 의욕이 없고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어지는 심드렁한 상태가 찾아온다면. 기쁜 일이 생겨도 감동받지도 않고 감수성이 실종된 상태가 찾아온다면. 허무감에 빠진다."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한테 정말 소중한 건 무얼까?"이런 상태가 바로 생의 빨간불이 반짝거리는 시기다.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어지는 때. 그럴 때에는 무조건 잠시 쉬어야 한다. 계속하면 모든 것이 뒤엉켜버려 수습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연거푸 빨간 신호등이 깜박거리며 경고한다. 빨간 신호등을 만나게 되면 '사는 게 재미없어. 지겨워 죽겠어'라는 말을 수시로 내뱉는다. 그대로 두면 깊은 수렁, 권태기에 빠진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는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가야 한다. 다 내려놓고 쉬어야 한다.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물론 빨간불이 켜졌을 때에는 멈추어 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나아갈 길을 제대로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래야 푸른 신호등을 빨리 만날 수가 있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1-17 09:55

[공감신문] 내가 아는 지인 중에 '카르페 디엠' 즉, '이 순간을 즐기자'는 말을 생의 지표로 삼고 있는 이가 있다.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환한 미소를 머금고 몰입하며 반찬을 만든다. 마흔 중반인 그녀는 살면서 우유배달부터, 마트 계산원, 학습지 교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작은 체구의 그녀에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엄마니까요" 그녀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니까요"로 대답한다. 그렇다. 여자는 나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말도 있듯이. 엄마의 힘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게 살지는 않겠지만. 그녀에게도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다. 너무나 궁핍해서 지독하게 쓸쓸하고 외로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 한복판의 전통시장에서 직원 3명을 두고 반듯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행복하다는 그녀. 그녀의 반찬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맛깔스러운 우엉 무침이다. 먹을 때마다 느끼지만 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은 듯 뒷맛이 개운하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찾는데 한결같이 친절하고 상냥하다. 이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1-14 09:57

[공감신문] 울긋불긋 모두에게 아름다움을 안겨주었던 단풍도 나뭇가지에서 거침없이 추락하여 어느덧 앙상해졌어요. 몇 개 남지 않은 붉은 잎들도 떠나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애타게 흔들리네요. 이 가을의 끝자락, 누구는 떠나가는 가을이 아쉬워 길 위에서 아픈 방랑을 할 것이고, 누구는 부산하게 새로운 손님, 겨울 마중을 준비하겠죠. 오늘따라 그리스 시인 소포 클래스가 남겼던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는 말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네요. 누군가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던, 하루만,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네요. 이 순간을 가볍게 살고 있지는 않는지를 차분히 돌아보게 하네요. 하루가 쌓여 1년이 되고, 그 1년이 쌓여 10년이 되고 그렇게 모든 나날이 쌓여 70년, 80년, 한평생이 되지만. 스스로에게 '잘 살아왔다'란 말을 남길 만큼 1초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애쓰죠. 그러나 생의 곳곳에는 넘어야 할 높은 벽이 너무나 많잖아요. 수시로 돌부리에 넘어지고, 몸을 다치고, 입원하고, 다시 회복해서 일상에 돌아오지만 두려움은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거 같아요. 특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1-10 13:37

[공감신문] 행복하려면 모두들 내려놓으라 합니다. 특히 생의 끝자락이 보일수록 내려놓으려고 애를 씁니다. 내려놓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제껏 가꾸어온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것일까요? 법정 스님이 말씀한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것만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들은 가지지 않는 것이 걱정도 덜게 된다는 거죠. 소유하는 것에 대해 겸손할수록 생은 단순해져 여러 가지로 엮이지 않습니다. 많은 것들을 가질수록 가진 만큼 걱정의 무게는 늘어나니까요. 감당할 만큼만 소유하면 걱정이 많지 않죠. 가진 것이 많지 않으면서도 보면 볼수록 참 느낌이 좋아 곁에 두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느낌이 좋다'는 말은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인데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을 갖는 것이 때로는 박사학위 여러 개를 받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죠. 어디를 가나, 어느 집단이든 그런 사람이 있어요. 나누어 주고 양보하고 배려하면서도 환하게 웃는 사람이 있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 중에서도 겸손한 마음으로 '내려놓음'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보게 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멀리서도 빛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1-06 10:16

[공감신문] 오늘, 두장의 영화티켓을 선물 받았어요. 그리움에게 전화를 걸다가 마지막 버튼을 누르지 못했어요. 혼자가 편할 것 같아 영화관에 갔죠. 빈자리에는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리운 영혼을 불러 앉혔죠. 함께 있으면서도 함께하지 않은 것 같은 존재가 아닌, 당장 함께 하지 않아도 함께하는 그런 존재를 불러 함께 영화를 보았죠. 혼자이지만 둘인 거 같기도 하고 암튼 편안했어요.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 오프닝 장면이든, 앤딩 장면이든, 아니면 배경음악에 대한 절대적인 희망이 있기에 영화를 애정 하는 거 같아요. 오늘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가슴에 무언가를 새기네요. 아마도 현재의 내 심경과 일치했기 때문이겠지만. 사랑한다는 것도 일종의 그리움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인지도 모르지만. 아니, 산다는 것 자체가 그리움이 아닐까 해요.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도 내일의 그리움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해요. 내일, 모레, 그다음 날에는 어제 열심히 모아놓은 그리움을 그리워하며 살겠죠.그렇다면 그리움은 무엇일까요. 그리움은 손이 닿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 그러나 그리움도 때로는 존재와 존재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0-31 09:52

너를 보내고 나니 눈물 난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이 올 것만 같다 만나야 할 때에 서로 헤어지고 사랑해야 할 때에 서로 죽여버린 너를 보내고 나니 꽃이 진다 사는 날까지 살아보겠다고 돌아갈 수 없는 저녁 강가에 서서 너를 보내고 나니 해가 진다 두 번 다시 만날 날이 없을 것 같은 강 건너 붉은 새가 말없이 사라진다 - 정호승, 북한강에서 [공감신문]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내 그리운 님을 찾아 떠난다. 일 년에 단 한번 마주하는 님,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다. 아름다운 북한강을 시작으로 내 마음의 그리운 섬과 같은 곳은 강원도. 특히, 정동진, 평창, 봉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풍경 한 컷,첫 번째로 봉평은 메밀꽃으로 유명하다. 9, 10월의 풍경은 수줍은 듯 다소곳하고 단아하다.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이 마을을 환하게 밝힌다. 메밀꽃이 새 하얗게 절정의 잔해를 뿌리고 지나간 자리에는 다시 붉은 단풍으로 절정을 이룬다. 작가 이효석(1907~42)이 쓴 소설 속에도 나와 있듯이.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렇다. 보이는 전부가 눈부시도록 하얗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0-27 12:09

[공감신문] 뉴에이지 음악을 듣다가 길가에 핀 해바라기가 눈에 들어온다. 해바라기는 해만 바라본다. 낮이든 밤이든 해만 바라본다. 비가 오던 눈이 오던 해만 사랑한다. 오로지 해만 바라보며 살아간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숭배, 의지 기다림이다. 해바라기를 생각하다가 오래전에 본 영화, 해바라기를 다시 돌려 보았다. 이럴까, 저럴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준다. 심장을 찌르던 대사가 방안에 떠돈다. "사랑이 별건가, 행복했던 시간 짧은 기억하나면 충분한 거지. 기억하고 있다면 사랑은 변하지 않아." 이 대사를 내 식으로 다시 풀어보면 이렇게 된다. "인생이 별건가, 살다 보면 별일이 생기는 거지. 행복했던 시간, 짧은 기억하나면 충분한 거지. 기억하고 있다면 나름대로 멋진 인생을 산 거지." 어쨌든 열심히 살지 않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비겁한 변명 따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 '넌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살아온 생이 싸늘하지 않고, 생이 따뜻하다고 울컥하도록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잘 계획해서 잘 살 수 있도록 나를 채찍하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0-17 15:21

가을입니다이 가을에는 당신을 찾아 잠시 머물다 오겠습니다 내일모레 그리고 그 언제인가는당신에게 가는 길을 열겠노라 말하면서도당신 허락 없이 닫고 또 닫았던나를 용서해주시지요늘, 당신에게로 가는 삶은 퇴행성 병처럼뒷걸음 쳐지기만 했습니다이 가을에는마음 편히 당신 그늘 아래서누웠다가 기대었다가 그렇게 하겠습니다리허설 없는 삶처럼 당신과의 사랑도여전히 리허설 없는 생방송입니다내 인생의 삶이 관객이 필요치 않듯이당신과의 사랑도 관객이 필요치 않겠지요안에서 밖으로 또 그 안에서 밖으로 그림자도 스며들지 못하게 꼭 잠근 채당신 곁에서 편히 그리고 오래오래 쉬다가 오겠습니다 내 그리운 당신께 곧 가겠습니다 - 김정한, 가을에 띄우는 편지 [공감신문] 참 지루한 여름이 끝나고 다시 10월입니다. 나를 좀 더 선명하게 보기 위해 길 위에 섰습니다. 미시령, 진부령, 한계령을 넘어가며 느릿느릿 움직이다 보니 해 질 녘에 경포대에 도착했습니다. 10월이면 늘 찾아오는 마음의 병 때문에 치유 여행을 서둘렀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흔들리는 내 마음을 포근하게 껴안아 주었습니다. 언제나 바다는 내 마음의 고향입니다.이 가을, 동해 바다를 찾으니까 가을을 노래한 시가 떠오릅니다. (주여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0-13 14:00

나에게 간절하도록.꼭 그런 날이 오도록 약속한다.충실하게 노력하며 기다린다.한결같이.나에게 가득가득 좋은 일이 있기를. 봄날의 쏟아지는 아침 햇살처럼.까만 가을 하늘의 총총한 별처럼, 한여름날의 시원한 폭포수처럼,나를 향해 풍요롭게 쏟아지기를,나에게 절박하도록.꼭 그런 날이 오도록 다짐한다.충실하게 노력하며 기다린다.한결같이.- 김정한, 한결같이 [공감신문] 나이가 들수록 몸이 늙어가듯 생각도 느리게 움직이고 늙어간다는 것을 느낀다. 마흔 전까지만 해도 몸도 마음도 손발이 척척 맞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고 실수도 많지 않았다. 반평생 넘게 살고 보니 습관처럼 매일 하던 일도 더디게 진행된다.또 생각과 행동이 어긋날 때가 많아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에는 평소에 실수를 하지 않던 것도 헝클어질 때가 있다. 커피 잔을 쏟기도 하고 작은 턱에도 부딪치거나 넘어진다. 마음은 바빠 몸을 빨리 움직이지만 예전처럼 속도가 붙지 않는다.글 쓰는 것도 집안일하는 것도. 마음은 이십 대를 갈망하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특히 생의 목적어를 향해 누군가를 만나기로 약속한 날에는 특히 그렇다. 집안 정리를 말끔하게 하고 나와야 느긋하게 사람을 만나고 또 세상을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10-10 15:58

[공감신문] 추석절이 가까워서인지 가을 햇살이 따사롭다. 어린 시절의 추석은 요즘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았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있어 행복했다. 풍성함이 가득한 황금 들녘,선홍색으로 짙게 물들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가지를 축 늘어뜨린 채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홍시,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던 추억의 코스모스길이 생각난다.지금도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릴 때면 미소가 번지고 참 따뜻해진다. 마치 가을 풍경 속의 주인공이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때 기억으로는 추석 연휴가 기다려졌다. 셀렘으로 가득해 까만 밤을 지새울 정도로.어른이 되고, 받기보다는 주는 입장의 나이가 도고 보니 추석은 고민 그 자체이다. 여러 곳의 인사치레부터. 가족 간의 소통, 모두가 어렵다. 고민이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니 끊임없이 막히는 차들. 앞차의 브레이크 소리까지 불편하다. 언제부턴가 추석을 떠올리면 용돈부터 음삭만드는 일, 가족 간의 소통 문제까지 한꺼번에 밀려들어 고민스럽다. 추석을 생각하면 벌서부터 온몸에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듯하다. 명절증후군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식구들, 친척들, 얼굴 한번 보고 조상들에게 문안 인사드리며 함께 밥 한

김정한 에세이 | 김정한 시인 | 2017-09-29 1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