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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쓸쓸함은 인간이 갖는 고통 중 최고의 아픔일 것이라 생각한다.몸이 아프다는 것은 아픔을 알 수 있는 표면적 고통이기에 스스로 병원 찾아 해결하고 약을 먹고 고통을 줄인다. 하지만 인간이 갖는 외로움과 고독, 쓸쓸함에는 약이 없다. 병원도 없고 병명도 없다. 이것이 말하는 고통이란 늘 갖춰진 틀에서 갖는 고통보다 훨씬 큰 아픔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문학 역시 고통의 문학이 존재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인문학이 바로 그 고통의 문학이 아닐까? 주어진 답도 없이 무턱대고 읽고 생각하고 혼자 고민해야 하는 쓸쓸한 문학.어떠한 해답도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각자의 답인양 인문학은 개인적 답을 내놓는다. 그것도 확실하지 않은 모호성을 가지고...통찰의 영역이라 했던가? 인문학은 절대적으로 통찰 되지 않으면 절대적 답을 말할 수 없는 학문이다.인문학의 통찰력이 무엇인가... 늘 고민하던 고민에 또 다른 고민을 던져본다.인문학이 무엇일까? 이는 인간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문으로 가장 기초적인 바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철학, 언어, 문학 등 인문학의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3-23 12:53

[공감신문] 교육에 관한 정책이 이처럼 많이도 바뀐 나라가 있을까?정권이 바뀌면 제일 먼저 바뀌는 것이 교육제도이고 그 제도에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는 것은 학생들이다.대한민국 교육의 폐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제도적 문제점이 가져오는 국가적 제앙은 날로 심하게 변해가고 있다.대학의 구조조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조정에 따라 ‘인문학’의 홀대가 깊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학의 인문학 홀대에 맞서 각종 인문학 토크와 인문학 강의가 등장하는 현상도 기이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햐야 할까?대학의 기업화는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온 현상이다. 대학이 시장 논리에 따라 인문학에 소홀하는 실정에서 대학은 모든 지표를 ‘취업률’에 맞추고 그 취업률을 위해 대학의 모든 과정이 바뀌고 있다. 인문학은 소위 배고픈 직업을 만드는 학문으로 치부한다. 이러한 인문학이 시장 논리 시스템에 맞춰 움직이고 있는 현상도 발생한다. 시장 논리에 따라 인문학을 주제로 한 콘텐츠들의 수요는 계속해서 초과 되고 있고 그 수요는 쏟아져 나오는 홍수와 같이 시장으로 방출 되고 있다.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시장으로 나오는 인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3-20 15:20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문학과 정치를 논하려고 하면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일 것 같다.하지만 문학의 정의에서 정치가 읽혀지고 정치의 이데올로기에서 문학이 보이는 이유는 어떤 이유에서 일까?문학은 정치적 상황을 비판하고 풍자하고 이야기하는 존재이지만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될 수 있는 문제점을 다분히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그 두 장르가 공존한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고로 양날의 검을 가지고 문학이 사회를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하든지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문학에는 정치적으로 가공할만한 힘이 있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우리는 소설 ‘도가니’의 열풍을 보았다. 필자 역시 그 도가니를 읽으며 울기도 하고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혼자서 술을 마신적이 있다. 도가니 소설이 정치적, 사회적 사건으로 공론화 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문학의 힘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문학이 정치적 색깔을 가지고 있어도 된다는 것인데 과연 문학이 이러한 색채를 띠고 있어도 되는가 마는가 하는 소모적 논쟁의 여지 또한 내포하고 있다.이러한 예를 보더라도 문학이 가지는 사회적 파급력은 실로 어마어마 하다. 모 매체에서 문화계 인물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사회적 파급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3-14 09:56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난 123년전 갑오년. 동학농민전쟁이 청나라와 일본 전쟁 즉 청일전쟁이 일어난 후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은 망국에 이르게 된다. 말 그대로 통한의 역사를 갖게 된다.1974년 박정희 유신정권은 긴급조치를 발동해 이미 반사상태의 민주주의를 더욱 후퇴하게 만드는 결정타를 때렸다. 1974년 1월 8일 발령된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개정하자는데 반하는 모든 국민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재판에 회부시켜 가뒀다.글을 쓰면서도 이 상황을 상상해보면 아찔한 상황들이 펼쳐지는 듯 하다. 암울했던 유신-긴급조치 시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사의 뒷안길로 접어 들고 다시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독재 치하의 연속을 알렸다. 비로소 87년 6월 항쟁으로 마침내 작지만 민주주의라는 말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라는 틀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제도와 법규들이 갖춰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우리는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로 평가 받았다. 이쯤에서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에 살고 있는가를 다시금 짚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헌법과 법률로 정한 자격에 맞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거에 투표를 할 수 있게 하는 ‘보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3-13 09:57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10대에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모 군의 소식이 한 때 화제가 되었던 때가 있었다.그의 나이는 20대 천재 공학도라는 별칭을 받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 시켰던 그는 한국의 영재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90년대 공학도를 다룬 TV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되었을 때 부모들은 자식들을 카이스트에 보내는게 소원이었다. 그 드라마에서도 천재적인 소질을 가진 공학도를 묘사했고 말 그대로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천재를 바라보게 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한 말이 생각이 난다. “한 명의 천재가 수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됐다” 이 말은 실제 수많은 천재들은 국가 산업의 축을 담당하고 기업의 모든 성폐를 좌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말에 필자도 상당 부분 공감한다.미국 NBA 전설 마이클 조던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천재 였다. 그의 농구는 미국을 발전 시켰고 전 세계의 농구를 발전시킨 역할을 해냈다.대한민국은 어떠한가? 90년대 음악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가수가 바로 서태지다. 그는 어떠했나? 천재라는 칭호를 받으며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션이 아닌가.그렇다면 천재들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3-09 16:04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최초 인류는 자연의 지배하에서 구성 되어온 자연의 구성원 이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인류는 자연으로부터 해방되는 독립을 외쳤다. 이른바 ‘기술의 19세기’를 말하는 것이다. 19세기 들어 인간의 삶이 안위와 과학의 발전, 병리, 위생 등 지금은 자연스럽게 보고 듣고 대하는 것이만 그때만해도 신세계를 보는 듯 했을 것이다.기술의 19세기를 넘어 20세기의 도래는 문화의 20세기를 이끌어 왔다. 이른바 문화의 중흥기를 바로 20세기라 말한다. 의식주와 기술은 물론이고 이어 인간이 문화의 향유를 즐기기 시작했다. 미디어의 발전이 바로 그 시대의 문화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20세기의 문화는 기존 전통 시대의 문화를 대중화하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전통의 형식과 내용은 각기 넘지 못한 넘사벽이었다. 이미 우리는 계급 사회를 경험한지라 동양과 서양, 백인과 흑인, 상하층의 계급 문화를 넘지 못하고 기성의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문화의 움틔우기이제는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다. 어렵기만 했던 문화의 경계선이 자연스럽게 허물어지고 이른바 융합과 크로스오버(cross-over)가 보편적인 현상이 된 요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3-08 10:37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어느 해외 매체를 접하다 한 여인의 기사를 접했다. 중년의 여인은 사업에 실패한 아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떼어내서라도 아들이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미 실패라는 쓴 경험을 하고 잃을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삼십대 중반의 아들이 다시 웃을 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성애는 아들을 위해 스스로를 버린는 헌신의 마음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성애는 다 같은 모양이다.2월 한 졸업식에 참석했다 보기 드문 광경을 경험했다. 온 가족이 모여 졸업을 축하던 예전의 졸업식과는 분위기가 너무 다른 모습을 보며 힘 없는 웃음을 지었다. 정작 졸업식의 주인공이 되어야할 곳에 주인공은 없었고 휑한 추위만 멤돌고 있는 그 졸업식장. 형식만 있고 의미가 없는 졸업식. 그냥 통과의례의 형식적 모습에 정작 졸업식에 졸업은 없었다. 대학 졸업은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을 하고 사회를 경험하는 떨리고 설레이는 첫 걸음이 되어야 한다. 대학에서 배운 상아탑의 학문과 지성과 소양을 마음껏 스스로의 꿈을 위해 펼치기 위한 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늘진 졸업생의 모습에 가족들 역시 착잡한 심경을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3-06 10:15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아침을 무엇으로 시작할 것인가?잠에서 깨어 처음으로 접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유익한 것인 무엇일까?출근하기 바쁘고 학교 가기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고 유익함 보다 하루를 시작함에 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이다.신문이 주는 하루의 유익함. 이 말에 대체적으로 공감할 것이라 본다. 중고학교 시절에는 아침에 신문을 보는 건 대체적으로 대학을 준비하는 일련의 생활로 봤을 것이다. 논술 준비를 위함이고 다양한 상식을 가지기 위해 그렇게 신문을 접했을 것이다.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신문 펼치면 막막함이 먼저 올 것이다. 정치로 시작해 또 정치를 보고 알지도 못하는 경제 전문 용어를 봐야하고 시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저 덮고 싶은 마음이 앞설 것이다. 친박이 어떻고 친문이 어떻고 법원이 어떻고 탄핵이 어떻고 이런 진부한 이야기들의 연속성을 우린 스스로 가지길 싫어한다. 아니 안들 뭐하겠냐 라는 식이다.그러나 그래도 읽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신문의 속성과 신문의 유익성을 알지 못해서 아니 펼치면서 나는 잉크 냄새가 싫어서 신문을 좌시할 수 있다.그래도 신문을 포기해서는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3-03 10:13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만남이라는 존재와 더불어 공존하는 이별이라는 존재. 영원한 것이 없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하염 없이 지켜보는 것은 하늘 뿐이다. 하루를 살았음에 오늘의 것이 내일의 낡은 것이 되어가고 사라져가고 잊혀가는 것이 되는 것이다.우리는 살면서 날마다 살았던 하루를 잊어가고 지워가고 또 기억하지 않고 살아간다.어릴적 꿈 꾸었던 꿈도 청춘에 가졌던 열정마저도 살아가면서 이별해가는 것 들이다.수많은 경험 중 이별이라는 경험은 늘 눈물과 후회 그리고 미련을 주고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그 중 가장 큰 이별의 아픔이다. ‘안녕’이라는 두글자에 이별하고 왠지 모를 쓸쓸한 마음을 가지고 무거운 짐을 진 듯 철퍼덕 주저 않고 만다.특히 이별은 사랑했기에 가져야 하는 스스로의 몫이다. 하지만 이별이 가지는 진실과 거짓에 또 다른 사랑을 찾곤 한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이쯤에서 헤어져요”라는 말.이런 이별은 반은 진실이고 반은 거짓이다.어느날 다가온 남녀의 이별은 그동안의 시간과 추억, 그들의 행동과 맹세가 아직도 기억속에 선명한데 그 모든 것이 허상의 순간이 되고 거짓의 모습으로 변해버리고, 모든게 받아들이기 힘든 당황스러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3-02 10:40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문학의 깊이와 무게는...’이라는 의문은 아직도 나에게 해결되지 않은 끊임없는 고민을 주고 있다. 뜬금없는 소리인가 라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글을 쓰고 읽고 입장에서 보면 깊이와 무게감이 글의 정도를 좌우할 듯 하다. 학창 시절 많이도 읽었던 무협지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유행하던 민주주의 이야기 등 다양한 글들이 있지만 그 어떤글이 무게감 있게 그 깊이를 주느냐에 대해 과연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있을까.문학을 보며 우리는 흔히 ‘ 문학성이 뛰어나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곤 한다. 하지만 정작 문학적으로 뛰어난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은 문학의 성격과 글들의 특징을 하나 하나 열거하고 짜여진 틀에 맞춰 그것이 주는 문학적 이해도가 얼마나 큰지를 볼 수 는 있겠지만 정작 그 것이 문학의 깊이와 무게를 말해 주는가. 그래서 문학의 깊이야 말로 문학성을 측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잣대라는 것을 알게 된다.어떠한 문학을 읽고 접할 때 우리는 ‘깊이가 있는 것이야’라는 표현을 한다. 이 때 우리가 말하는 깊이야 말로 문학의 잣대이자 측정할 수 있는 단위가 아닐까 싶다.독자들이 접하는 문학에서 독자들은 한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28 10:56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시간이란? 균질한 것이다. 가끔 시간을 구간별로 구획하여 하루 24번의 선을 긋고 일년 365번의 선을 긋는다. 나누고 또 나눠 그 안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의미 추구로 존재하는 까닭이다.가끔 새해가 되면 새 다이어리를 사고 새로운 낙서장을 꾸미고 새로운 펜까지 구매하여 새롭게 채울 것들에 대한 환희를 느끼곤 한다. 가끔 있는 모임에 가면 한동안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보고 안부를 묻고 그 안부 때문에 울다가 웃다가 한다. 이 또한 시간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이다. 시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새로운 시간이 주는 엑스터시에 웃고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성의 눈물을 흘리곤 한다. 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시간이기에 이질적으로 섞이는 시간 그 시간이 가고 있다. 얼마 전 한가롭게 달리던 차 안 라디오에서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뭐냐는 앙케이트가 있었다. 그 중 단연 1위는 현금, 2위는 상품권이었다. 더불어 가장 받기 싫은 선물이 뭐냐는 질문에 1위가 책이었다. 순간 “그래? 책을 가장 받기 싫은 건가”라는 혼자말을 했다.갑자기 스스로에게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는 잠시 생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27 10:02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삶이란 고난과 역경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들이다. 이러한 청춘들의 사명은 기성세대가 갖는 사명보다 훨씬 크고, 넓고, 복잡하다. 지금의 청춘들은 세계적 글로벌 혁명을 맞이하는 첫세대라 불려지고 있다. 이 말은 세계적 정세의 중심에 태어났다는 말이다. ■ 청춘이 갖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기성 세대들이야 기존의 살아왔던 윗 세대들의 삶을 열심히 따라가는 것이었지만 청춘들은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야만 하는 책임감을 가지고 이땅에 태어났다. 기성세대들은 조금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면 그 댓가로 어느정도 안정이라는 보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춘들은 어떠한가. 삶의 탈출구를 찾고 싶어도 그 탈출구 마저 소위 금수저가 가로막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댓가를 열정 페이라는 것에 가로막히고 만다. 이들은 더 없는 상상력과 창의력, 통합능력 등 너무도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 바로 지금이다.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적어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회적 지위를 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춘들은 직접적인 경쟁을 하지 않는 이상 늘 패배자의 입장에서 서글플 수 밖에 없다.기성세대가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24 11:48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위기의 한국이라고 불리는 요즘 국가적 작금의 사태를 우리는 현실에서 보고 있다. 그래서 올해를 대한민국의 새로운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 만큼 큰 변화의 물결이 소용돌이 치고 있으며 그 소용돌이 속에 우리는 혼란한 시국을 말하고 있다.무엇보다 대한민국의 향후를 결정할 큼직한 정치 일정이 잡혀 있고 한반도를 바라보는 주변국들과의 외교 문제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어 현 시국은 대한민국 전화점의 중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러한 국내외 정치 변동을 감상하는 요소들이 많지만 페이스북, 카카오톡, 트위터 등 다양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정치의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소셜 미디어를 둘러싸고 기존의 통념을 과감하게 깨버리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아마도 소셜 미디어가 가져오는 국가적 파괴력을 짐작하게 만드는 일들이다. SNS는 말 그대로 온라인상에서 다수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주는 기계적 인간 관계망이다. 기존 PC기반의 인터넷 서비스가 모바일 스마트 폰 기기 확산으로 SNS 사용자는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SNS를 서비스의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23 10:14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사회라는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 해결을 위해 노동이라는 것을 도구로 삶을 영위해 왔다.최초에는 어떠한 직업을 갖느냐의 문제보다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하느냐의 문제가 컸을 것이다. 차츰 사회가 진화하고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어떤 직업 갖느냐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정형화되고 효율을 중시하는 시대에 대량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의 산업 편재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그 시스템에 맞춰 인간이 직업을 갖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고용주가 생기고 그 고용주가 고용하는 피고용인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대량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기 시작하면서 교육이라는 체계가 전문 인력 양성이라는 말로 근대 교육을 잠식 하기 시작했다.이러한 근대교육의 체계는 필요한 것을 충족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발전 되면서 소위 지금의 취업 대란이라는 말을 낳았는지도 모른다.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소비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custormer insight다. 이러한 부분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이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22 11:34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누군가의 마음을 읽고 누군가의 행동을 본다는 것.살아가면서 느끼는 것들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린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한 자그마한 부담을 갖고 있다.태어나면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 얼굴. 부모님. 그때부터 우린 사람을 만나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가고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만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그 사람들로 인해 우린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사회안에서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요즘 우리에겐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아나로그가 아닌 딱딱한 디지털화 되기 시작했다.인스타그램. 카카오톡, 페이스 북 심지어 서로간의 대화를 차단하는 문자 메시지.편해서 좋다. 그러나 마음이 없다. 누군가의 목소리로 안부를 물어본지가 언제 인지, 얼굴을 보며 각자의 삶을 얘기 해본지가 언제인지 이쯤해서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사람이 갖는 커뮤니케이션 이라는 소통의 미명아래 얼마나 그 기초적인 인간의 만남을 유지하며 살아왔는가.언제부터 사람들이 기계가 주는 편리함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이야기 하며 살아 왔는가사람들은 누구나 표현이 서툴다.그 서툰 표현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21 10:01

[공감신문 신도연칼럼]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이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사람 누가 뭐래도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누구나 한번쯤 흥얼거려 봤을 노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중 일부분이다.페도라를 쓰고 살짝 미소를 띄우며 통기타의 튕기며 앙칼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모습을 보며 목청이 터져라 대중이 따라 부르는 노래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이쯤에서 통념적 상식을 넘어 다시 한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가를 상기하고 싶어진다.정말 그럴까?나 역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기를 바라는 사람이고 꽃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생물은 사람뿐이다.아는데 다 알고 있는데 때론 사람이 저 황량한 들판의 흔한 꽃보다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너무 많다는 사실.그래서 꽃이 아름답다는 것을 우리는 인지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하고 산다.꽃에는 향기가 있다. 코 끝에 대고 향기를 맡으며 하는 말 “음~~~좋다”라는 말.그런데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다는 사실이다.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여자들의 살랑거리는 머리에서는 풋풋한 살냄새와 함께 향기로운 머리 냄새도 난다.멀끔하게 차려 입은 남자들에게서도 그들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20 10:25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춥지만 바람의 내음이 다르다. 웅크린 겨울속에 때이른 봄 바람 내음이다.며친전 출근길에 어디선가 풍겨오는 이른 봄의 향취가 어제와 다르게 심상치 않음을 인지했다.회사 앞 작은 언덕에 올랐다. 산책길에 삼삼오오 어르신들의 발길이 봄을 향해 가는 듯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다. 개나리는 군데 군데 몽우리를 품고 있는 것도 보이고 이곳에서는 무수한 꽃봉우리가 땅을 향해 떨어지는 봄이 오겠구나 싶다.내가 무거운 머리를 싸메고 좋은 글을 쓰고 싶어 애썼던 그 시간들이 전부인줄 알았는데 “신은 인간에게 참 좋은 것을 보여 주시는 구나. 위대함의 극치를 보는구나” 싶어 절로 고개가 떨구어 진다.그런데 여전히 허전함은 가시지 않는다. 순간 커피를 탐욕하고 싶어진다. 이럴때 쓰다쓴 커피를 탐욕하며 마신다는 것이 순간의 제격을 찾을 수 있겠구나 싶어 옆에 보이는 자동판매기에 눈을 돌렸다. 고마웠다. 바로 내 옆에 있어줘서. 언제나 사사로운 내 곁을 지켜주는 한잔의 커피가 비싼 아메리카노가 아닌 뜨뜨미지근하면서 달짝지근한 커피가 옆에 있어 주다니. 이내 한잔을 들이키는 순간 커피는 온몸으로 퍼져 나의 몸에 엑스터시를 제공해 준다.학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17 10:35

우리가 흔히 하는 운동들과 달리 크게 제약과 비용을 들이 않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요즘 세상에 그다지 많지가 않다.그 중 독서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취미 중 하나이다.어느 정도 나이가 든 독자들이라면 이력서를 쓰든 입사원서를 쓰든 학교생활기록부를 작성하던 취미란에 독서라고 한번쯤 쉽게 써봤을 것이다.필자 역시 독서라는 아주 흔한 취미를 아무 생각 없이 취미란에 기입하곤 했다. 그만큼 독서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하지만 누구나 독서를 꾸준히 오랫동안 하는 사람은 드물다. 독서에도 근육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만큼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독서 근육이라는 것을 사용해야하고 그만큼 독서를 위한 준비 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운동에도 초급, 중급, 고급이 있듯이 독서에도 수준이 있다. 그 수준을 모르고 책을 접하다가는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새해가 되면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휘트니스센터에 등록을 한다. 다할 수 있을 것 같고 쉽게 들 수 있을 것 같은 무게임에도 막상 내가 들려면 들리지 않고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하기가 어렵다. 독서도 휘트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16 10:40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필자도 한 때 취준생이라는 이름으로 허름하고 누추한 그리고 배고픈 생활을 했을때가 있었다.삼삼오오 모인 청년 백수의 우리에겐 하루가 멀다하고 논쟁과 언쟁이 있었고 그건 고스란히 지금을 살아가는 지식의 베이스가 되곤 한다.어느 모 신문사 면접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는 면접 예상 문제를 발췌해 서로 나누고 했다.“최근에 읽은 책이 뭐야?”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차에 친구가 그 질문에 이렇게 다른 질문을 던진다. “책? 그거 꼭 읽어야 해?” 검색하면 되는거 아닌가?오래된 일인지라 기억이 확실하게 나지는 않지만 그 일로 우리는 옥신각신 자신의 입장 정리를 하곤 했다.그렇게 시간은 흘러 각자의 위치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위와 같은 질문을 다시금 던졌고 그에 해당하는 답들은 그때와는 다른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책에 대한 이야기... 사실 국문학을 전공한 필자에게 책이란 전공이라 읽어야만 하는 필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너무 허무맹랑하게 받아들여졌고 자기개발서는 말도 안되는 것으로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으로 인식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필자가 읽은 책들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고서와 철학 그리고 쉬운 책 하나 만화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15 14:34

[공감신문 신도연칼럼] 마샬 맥루한은 텔레비전과 컴퓨터 등 전자 정보매체가 종교, 예술, 과학 등의 영역에서 인간의 생각과 사상을 형성하는데 잠재적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그는 “매체가 메시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맥루한의 이 같은 말은 변화될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담고 있다는 말로 해석이 된다.말 그대로 풀이하자면 뜻은 형식이 내용을 담아내는 정도로 생각할 수 없고 형식 자체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문화라는 형식에 담겨 있는 수많은 내용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맥루한의 메시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새로운 주목거리는 던져주는 핵심적인 말이기도 하다.시대적 흐름에 문화도 산업으로 부각되면서 메시지보다는 형식이 더 각광을 받는 사회적 풍토에 우리는 부정적 시각에서 문화의 이면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매체가 메시지다”라는 말은 여전히 주목해 보아야 할 문구다. 문화산업이 부각되면 문화가 상품이 되어버린 요즘 상품의 내용이 상품의 겉포장에 숨어버려 내용 보다는 형식이 사람의 이목을 끌고 있다.소로킨은 이러한 시대를 ‘감각 문화의 단계’라 표현했다.요즘 사람들은 감각에 호소하고 자신에

신도연 칼럼 | 신도연 대표 | 2017-02-14 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