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건)

[공감신문] 파스퇴르하면 파스퇴르 우유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한다. 파스퇴리제이션(pasteurization)은 저온살균법이나 저온멸균을 의미하며 동사로는 파스퇴라이즈(pasteurize)를 쓰는데 이는 파스퇴르의 이름을 붙여 그의 공헌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저온살균법이란 58˚C로 1~2시간 가열하고 이것을 반복함으로써 무균상태에 가깝게 하는 살균법이다. 이 살균법은 우유와 같이 고온에서 변화 또는 파괴되는 비타민 당류 단백질 등을 포함하는 제품의 살균에 널리 쓰이고 있는데 당시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은 와인의 보존 방식을 획기적으로 변혁시켜 프랑스 와인산업도 크게 일으켰다. 파스퇴르는 이 저온 살균 특허(US patent No. 135,245, 1873년)로 큰 부자가 될f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위대한 발견을 사회에 기꺼이 돌렸다. 파스퇴르는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다. 파스퇴르는 하나님과 영원에 대한 절대 신앙을 갖고 있었다고 그의 전기를 쓴 그의 사위가 기록했다. “내가 자연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나는 더욱 더 깜짝 놀랄 창조자의 손길 앞에 서게 된다”는 그의

여인갑의 영세불망 이야기 | 여인갑 칼럼 | 2018-09-03 18:41

[공감신문] 20세기 세계적 위대한 미술가로 피카소와 샤갈을 꼽는다. 샤갈은 러시아 지배하에 있었던 백러시아(현재는 벨라루스라 부른다)의 유대인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곳 유대인들의 삶은 참으로 불행했기 때문에 샤갈도 음울한 환경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다.그렇기 때문에 유대인 회당은 유일하게 빛을 발하는 장소였으며, 경건한 신앙심만이 샤갈에게 위로가 되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항상 안식일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나누며 랍비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하던 기억이 남아있었다.유대인들은 인간이 미술로 종교에 대적한다는 두려움에 가득차있었기에 샤갈은 고향을 떠나 상트페테르부르크 예술학교에 들어갔다. 학교를 중간에 그만 두고 그는 예술가로서의 발전을 위해 파리로 가서 파리와 사랑에 빠진다. 파리에서 제2의 탄생이 이루어진것이다.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샤갈은 러시아로 돌아가서 고향 베텝스크 예술학교 교장직을 맡지만 아름다운 이 시기도 얼마 가지 못하고 샤갈은 다시 러시아를 떠나 파리로 간다. 그 후 샤갈은 베르린, 파리, 스페인 미국에서 생활하지만 다시 파리에 정착 후 1950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이후로도 샤갈은 이태리, 그리스, 이스라엘

여인갑의 영세불망 이야기 | 여인갑 칼럼 | 2018-08-20 12:23

영세불망 이야기-헨델의 메시아를 들을 때마다 잊지 말아야할 위대한 이야기 [공감신문]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시즌 음악회에서 빠지지 않는 연주 곡이 있다. 헨델의 대표적인 교회 음악인 “메시아(Messiah)”는 당시 영어 번역 성경인 킹 제임스 성경(KJV 1611년)의 성경말씀에 곡을 붙인 오라토리오(성악의 일종으로 줄거리가 있는 곡의 모임이지만 배우의 연기는 없고 종교적인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이다.56세때에 착수한 성악곡 메시아는 1741년 8월 22일부터 불과 24일인 9월 14일에 완성되었는데, 곡이 완성되었을 때 헨델은 식사를 가져온 하인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나는 내 앞에 펼쳐지는 천국과 거기 계신 위대하신 하나님 그분을 뵈옵는 것 같았어”작곡을 할 때의 경험을 헨델은 성경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 있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인용하였다. ”나는 그 곡을 작곡할 때 내가 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재정적으로 파산 지경까지 간 헨델은 1742년 더블린에서의 메시아 곡 초연으로 생애 가장 큰 성공을 거둔다. 그는 이날의 수익금으로 142명의 채무자를 감옥에서 풀어주었다.헨델의 메시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과 성육신

여인갑의 영세불망 이야기 | 여인갑 칼럼니스트 | 2018-08-01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