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찌푸린 날씨에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공감신문 조병수 칼럼] 잔뜩 찌푸린 날씨에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난디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재래시장(Nadi Market)으로 향했다. 피지 제3의 도시이자, 과거에 사탕수수 소작농 및 소상인들이 살던 곳이라는 난디 시장부근은 자동차들로 제법 붐볐다. 왕복2차선도로에 늘어선 노후한 자동차들에서 나오는 시커먼 매연이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은, 그곳 공기가 워낙 맑은 때문이기도 하겠다. 

창문이 없는 버스에 비 온다고 천막 같은 것을 내리고 가는 광경에, 여기가 열대지방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시장건물에는 길게 늘어선 테이블 위에 열대과일들을 올려두고 상인들이 앉아들 있는데, 야채나 과일들의 종류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조금은 싱겁게 느껴졌다. 오전 시간대라서 그렇기도 했겠지만, 열대지방의 특이한 것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가 컸었던 탓이리라. 

<Nadi Town Market>
<난디 버스터미널 부근>

그 옆쪽의 다른 코너들이나 주변을 둘러보는 것은 생략하고, 시장 앞쪽에 보이는 커리하우스(Curry House)로 갔다. 인터넷에서 “현지식 인도식당이자 해산물식당이라”고 본 기억이 있어서 생선요리와 연어샐러드들을 주문했는데, 열대지방이라서 그런지 요리에 긴장감(?)은 별로 없어 보였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날벌레들도 물고 그리 깔끔하진 않았지만, 현지식당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음에 의미를 두고 싶다. 

<Nadi Market부근 Curry House 실내>
<Nadi Town Market부근 도로>

그럭저럭 요기를 하고 나서, 체류기간 동안 먹을 물을 사러 제트포인트(Jetpoint) 쇼핑센터의 슈퍼에 들렀다. 영화관도 보이는 상가건물에 내걸린 여러 나라의 국기들 속에 태극기와 태극마크가 그려진 가라오케 광고판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karaoke의 o자 안에 그려진 태극마크'가 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주 피지한국대사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피지전체 한국교민이 약 1천명이고, 한국인 방문자는 4~5천명 정도 된다고 한다. 1995.9월 대한항공직항노선 개설 이후에는 년간 1만5천명 정도로 치솟은 적이 있으나, 근년에 이르러서는 그 1/3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와있다. 

난디 공항 남쪽으로 퀸즈 로드 길가에 세워져 있던 “난디한인교회”의 한글간판이나, 인터컨티넨탈 리조트 해변에 영어, 일어, 한국어로 같이 쓰여져 있던 “해변사용안내(경고)” 표지판 같은 것들을 볼 때, 세계곳곳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짐작하게 해준다.   

“물이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는 피지 워터(Fiji Water)를 넉넉히 싣고는, 난디 북쪽으로 약 24km떨어진 곳에 있는 부다 포인트(Vuda Point)로 향했다. 피지사람들의 멜라네시안 선조들이 카누를 타고 첫 발을 디뎠다고 구전(口傳)되는 부다 포인트는, 난디와 라우토카 사이에 원주민들이 처음 정착했다는 비세이세이 빌리지(the village of Viseisei)와 부다 마리나 요트 항구, 리조트들을 포함한다고 한다. 

길안내 지도를 따라 찾아가보니, 입구에 “First Landing EST 1500 BC”라고 씌어있는 리조트가 나왔다. 그곳 종업원에게 “사람들이 처음 상륙한 장소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직접 바닷가로 나가서 “저 앞 해안으로 상륙해서 비세이세이 마을 쪽으로 갔다”고 가리켜 주었다. 3,500년전이라는 연대 추정은, 피지에 있는 도기(陶器) 유적지를 검사한 결과를 가지고 그렇게 추정하는 모양이다. 

'태평양 원주민의 조상은 약 4만년 전부터 남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유래한 몽골계 인종으로 말레이 반도를 거쳐 동쪽 태평양으로 전진하였다'(『피지(2014)』)고 한다. 그러니, 그 태평양 원주민들 중 일부가 약 3,500년 전(서기 전 1,500년) 피지에 상륙해서 살았고, 서기 1643년에 네델란드인 아벨 타스만에 의해 그 섬의 존재가 발견되어 유럽에 알려지고, 캡틴 쿡(Captain Cook)으로 유명한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1774년에 상륙하며 영국령으로 되어져 나갔다는 흐름으로 이해되어진다.

그리고 피지 (Fiji)라는 나라이름은, 태평양을 탐험하던 쿡 선장이 타히티, 통가 등을 방문한 후 피지 라우 제도(Lau Group)의 바토아 섬에 상륙했을 때, 통가 사람들이 이 섬을 “비티(Viti)로 부르는 것을 피지(Fiji)로 알아들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부다 포인트로 가는 길가에 여기저기 무성한 사탕수수밭들이 보였다. 19세기말 영국의 식민정부는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할 인도인 계약노동자들을 많이 유입시켰다고 하니, 인도계(系) 피지인들이 전체인구의 37.5퍼센트에 달한다는 얘기들과 퍼즐이 맞추어진다.

<3,500년 전 인류가 처음 피지에 상륙한 해안- First Landing Beachfront,>

그 퍼스트랜딩 리조트 앞 바다 쪽으로 목제다리로 연결된 조그만 섬이 있고, 열 그루가 넘는 야자수들이 파란 잔디와 바다를 배경으로 서있다. 섬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의 그 아담한 공간은 ‘사람의 발 모양’으로, 큼직한 돌들로 발가락 윤곽까지 만들어져 있다. 리조트 웹사이트에는 “왼발 섬(Left Foot Island)”라고 그려져 있고, 인터넷 지도로 그 지역을 검색해 보아도 발 모양으로 나와있다. 

그 곳에서 “결혼식 같은 이벤트를 한다”고 하니, 그렇듯 고즈넉하고도 로맨틱한 풍광 속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잊지 못할 순간들이 될 것 같다.  

<Vuda Point의 First Landing Beachfront, Left Foot Island>
<출처:First Landing Beach Resort and Villas 팜플렛 사진>

찌푸린 구름 사이로 잠깐씩 파란 하늘과 햇빛이 비치는 날씨였지만, 3,500년전 인류가 피지의 비티 레부 섬에 첫발을 디딘 자리에 서있다는 느낌과, 변덕을 부리는 날씨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남태평양 바다, 그리고 야자수와 하이비스커스(Hibiscus)의 빨간색 꽃까지 어우러져 환상적인 정취를 만들어주었다. 피지의 나라꽃인 하이비스커스가 무궁화과(科)라는 것을 알고 나니까 피지라는 나라가 좀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길지 않은 체류기간 중 두 번이나 퍼스트랜딩 해안의 풍광을 보러 가면서, 피지에 사람들이 처음 정착했다는 비세이세이 마을을 지나쳤지만, 사전준비부족으로 그 마을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모든 일이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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