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피습사건이 서울의 한복판에서 발생했다. 전세계가 큰 충격을 받은 가운데 당사자인 미국정부와 미국국민들의 충격은 훨씬 크게 느껴진다. 수시로 발생하는 중동지역에서의 반미 테러, 2001년 본토에서의 9·11 테러에 이어 이번엔 동맹국 수도에서 마저 테러를 당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테러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차제에 한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한미동맹의 발전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 온 리퍼트 대사의 빠른 쾌유와 그 가족들이 다시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사건 당일 가해자는 피습현장에서 ‘전쟁 반대’ ‘전쟁연습 반대’를 연신 외쳐댔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연합훈련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한미연합훈련에 대한 가해자 자신의 소신에 따른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무고한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 생명을 위협하는 행동은 전쟁을 반대하는 행동과 양립할 수 없다. 왜냐 하면 모든 반전운동과 평화운동은 생명존중의 정신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가해자는 전쟁반대와 생명존중 사이에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다. 이러한 자기모순은 극단적 행동주의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평화를 가장한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번 테러사건과 관련한 북한의 입장과 태도를 보면 가해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의 공식매체들은 이번 테러사건을 ‘미국에 대한 남한 민심의 징벌’로 규정하면서 테러행위를 정의로운 행동으로 왜곡하고 있다. 참으로 실망스러울 뿐만 아니라 자기모순에 빠진 북한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2008년 6월 북한 외무성은 “(정부의 위임에 따라) 온갖 테러와 그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반대하며, 반테러 투쟁에서 유엔 성원국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천명한다”는 내용의 반테러 선언을 발표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북한이 보편적 반테러관에 동의를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테러와 관련한 북한의 논평을 보면 보편적 반테러관에 대한 정면도전이며, 모든 테러 반대 및 유엔 성원국의 책임과 의무 이행 약속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이로써 북한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지정목록에서 탈피하기 위해 당시 반테러 선언을 자처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게 됏다. 아울러 북한의 반테러 선언이 상황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예외적 반테러관이었음을 자인하는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북한은 지난날의 반테러 선언이 진정성의 발로였다면 이제라도 예외적 반테러관을 과감하게 버리는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번 북한의 자기 모순적 태도로 인해 남북관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책은 여론을 먹고 사는 데 북한의 비이성적 태도는 우리 사회에 부정적 대북 여론을 확산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북한은 원래 그랬어’ ‘이런 북한과 대화는 무슨 대화’라는 식의 체념과 좌절감이 확산되면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동력이 약화될 것이 뻔하다. 더욱이 가해자의 반미친북적 성향과 북한의 비이성적 태도가 결합돼 우리 사회가 남남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진보단체들 역시 테러 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일부 단체들은 벌써부터 이번 사건을 한미연합훈련 저지 기회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예외적 반테러관에 기초한 자기 모순적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들이 희망하는 남북관계 개선의 길은 험난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북한이 져야 할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더 늦기 전에 북한은 예외적 반테러관을 버리고 국제사회의 보편적 인식에 동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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