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에 한 명인...

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지해수칼럼]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에 한 명인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말을 했다. “은행가들이 모이면 예술을 논하고,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을 논한다.” 나는 어디선가 이 구절을 접하고 정말 기가 막힌다고 생각했다. 그 레젼더리한 명성에 비해 완전 옛날 사람은 아니지만, 그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이건 변하지 않는 것 같아서. 

나는 사진작가 아버지와 음악을 하시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내 어릴 적 환경을 어렴풋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수많은 가수 삼촌들의 앨범 자켓 사진을 작업하셨던 아버지. 외동딸이었던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작업 현장에 많이 따라다녔고, 자연스레 아버지 지인들과도 어울렸었다. 

어릴 적 아빠를 따라 연예인 축구단 경기에 놀러갔던 적이 있었다. (요즘 화자가 많이 된 특정 축구단은 아니다) 아마도 초등학교? 중학교 때 쯤이었나 보다. 당시 <출발 드림팀>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았다. 지금의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이하 아육대)>보다 범국민적인 인기였다. 나도 그 프로그램의 팬이었던지라 다양한 연예인 삼촌들이 축구하는 걸 본다니 무척 설렜던 것 같다. 그러나 신기했던 건 연예인 삼촌들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처음 보는 분들이 정말 많이 구경 오셨었다. 단순히 동네 주민 분들이 아니었다.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였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사람들은 힘 있는 사람들이야.’ 당시 그 분들은 정치인이나 잘나가는 사업가 정도로 보였다. 삼촌들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자기들끼리 하는 것과는 좀 달랐다. 아빠와 삼촌들은 유니폼, 그들은 양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들을 가리켜 ‘우리 형’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분명 갭이 있어보였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나는 뉴스를 보게 되고 아빠 지인들 사이에서 알만한 이름들을 꽤 접할 수 있었다. 사진작가나 감독, 배우나 가수의 이름이 아니었다. 알만한 기업과 정치인들의 이름이 오고갔다. 누가 누구를 만났다더라, 형 그 회장님 소개해줄게 형 한번 만나고 싶데 나중에 자리한 번 같이 하자, 이런 이야기들. 나는 그 삼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진밖에 모르는, 정치나 사업에는 관심도 전혀 없는 우리 아빠에게 도대체 왜 그 사람들을 만나보라는 거야?

그리고 성인이 된 후, 내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어디서 투자하는 게 있는데 너 대본 좀 써봐라, 어디서 뭘 하는 게 있대서 만나봤다, 공연을 투자한다더라, 뭘 만들 거라더라……. 작가가 된 후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왜 아빠와 아빠 지인들이 만나면 ‘사진’이야기만큼, ‘돈’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지를. 예술가들의 가슴 속 열망을 현실화 시켜줄 ‘주머니’가 어딨는 지 아는 게 얼마나 중요한 가를! 그러니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하나 틀린 게 없다는 거다! 은행가(자본가)들은 예술을 논하고, 예술가들은 ‘돈’을 논한다고. 아니 논할 수밖에 없다.

사실 우리 생활 곳곳에 예술이 녹아들어 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브랜드 카페의 이 머그잔 하나도 누군가의 작품일 것이다. 누군가의 디자인을 이 기업이 산 것이다. 이 카페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의자 역시 어느 가구 디자이너의 작품일 것이다. 이 카페 계산대 앞 모니터에 알만한 배우들이 나오는 드라마 장면이 계속 되풀이 된다. 이 기업이 저 드라마에 제작지원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저 드라마의 작가가 커피 마시는 장면을 대본에 쓰면, 배우들은 이 기업 로고가 박힌 잔에 커피를 마시며 대사를 나눈다. 어느 재능 많은 예술가는 특정 장학재단의 후원을 받기도 한다. 예술가들은 기업의 돈으로 자신이 갈고 닦아 놓은 보물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다. 물론 정말 대단한 예술가에게는 기업들이 돈을 가지고 앞 다투어 경쟁한다, 그의 끝내주는 콘텐츠에 자신의 기업이미지를 입히기 위하여. 나 역시도 어쨌든 이 글을 쓰면 신문사에서 일정한 고료를 받고, 신문사는 나의 고료를 지급하기 위하여 광고 자리를 어느 기업에게 팔 것이다. 

콘텐츠, 혹은 예술이란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정답이나 점수가 없다. 정말 모호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오래 기다리고, 누군가는 기회를 빨리 잡기도 한다. 오래 기다리는 누군가는 그래서 가끔씩 판단력이 흐려지기도 한다. 

얼마 전 음악을 20년 했던 지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야, 솔직히 차은택이 뭘 그렇게 잘못했냐.’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너는 아버지가 사진하면서 그런 걸 이해 못하냐.’며 말을 덧붙이셨다. ‘사람 잘 못 만난 게 잘못이지. 나는 큰 성공을 못 거뒀지만 이번 일을 보면서 그래도 꾸준히 이렇게 음악 할 수 있는 게 감사하다. 사람은 정말 사람을 잘 만나야 돼.’

나는 그의 말을 완전 부정할 수 없었다. 사실 다른 직종보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비교적 감성적이고 사람을 잘 믿긴 하는 것 같다. 심지어 한 분야에 ‘어느 정도 자리’까지 간 사람들 중에서도 이상한데서 의외로 꽤 순진한 구석을 보이기도 한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니까 저 사람이 나쁜 일을 할리 없고, 심지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하면 나도 동참하겠다.’라고 구워삶기가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다. 심지어 어떤 예술가들은 긍지에 불타서 정당한 페이도 받지 않고 이런 일에 발 벗고 나선다. 왜? 오랫동안 꺼내어 보이지 못했던 그들의 ‘빛나는 재능’을 현실화 시켜 줄 것이며, 뿐만 아니라 거기에 대단한 명분, 그리고 허황되지만 꽤나 구체적인 미래까지 제시되기 때문에! 돈과 명예가 따르는! 나이 예순이 넘은 우리 아빠 주변에도 저렇게 꾀는 사람이 몇 십년간 꾸준히 있어왔다. 

그 음악을 한다던 지인은, 차은택의 입장도 그렇지 않았겠냐는 거다. 물론 차은택은 당시에도 잘 나가는 감독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 간 한 분야에 몸담았던 그가, 최순실이 그리는 원대한 기획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를 했겠냐는 거다. ‘이 바닥에서는 원래 다들 그렇게 해요.’라면 순진하게 넘어갔을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추측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권력을 가진 여자가 그렇게 이야기하니 말이다! 그래서 정말 국민들 모두 생전 처음 보는 일들을 지켜보아야 했지만. 

폴리테이너(정치인Politician+엔터테이너Entertainer)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냐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이런 선택의 입장에 놓여봤던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끼리 조심스럽게 하는 이야기다. 

나 역시도 어쨌든 글을 쓰는, 그러니까 콘텐츠를 파는 입장으로서 이번 사태를 보며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히만은 어떤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중략)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중략)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하지 않은,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아이히만, 그가 도대체 누구냐고? 본인의 발전적인 일을 도모하기 위하여 그가 한 일이 무엇이냐고? 그는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 나치의 장교로, 무려 600만 명의 유대인을 집단 수용소로 보내 학살로 내몬 인물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그가 대단한 ‘악마’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는 생각보다 평범한 성격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는 그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을 뿐. 그는 나름대로 톱니바퀴처럼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렇지 않나. 600만 명의 유대인을 수용소에 보내는 게 보통일이었겠는가? 하지만 그가 한 일은 너무도 참혹하며, 인간이 한 짓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게 다 ‘순전한 무사유’ 때문이다. 

(예루살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

사유 思惟, 생각 사 생각 유.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 무無 사유, 생각이 없다는 것. 완전 생각이 없는 상태, 순전한 무사유. 우리가 식물이라면 생각이 없어도 된다. 아니 단순하고 힘없는 동물일지라도 생각이 없어도 된다. 하지만 여러 가지 ‘도구’를 쓸 수 있는 인간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은 범죄다. 이 도구에는 재능, 능력, 미모, 인기, 돈 모든 것이 포함된다. 특히나 ‘그에겐 무언가가 있어.’라는 말을 듣는 인간일수록 더욱 그러해야한다. 연예인들이 일제 전범기가 프린트 된 옷을 입고 나왔을 때 욕을 먹는 것도 같은 이유다. 연예인들은 파급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차은택은 이미 자기 분야에서 명성과 실력을 가진 자였다. 그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면 최순실 같은 비선실세와 친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걸 ‘악’한 곳에 쓴 거다. 그에게는 많은 죄가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큰 것? 그건 바로 ‘무사유’라는 거다.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에서)

 

(유대인 수용소, 포로들의 신발들)

생각 좀 하고 살아, 라고들 종종 얘기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픈 일들 투성이라 게임 속으로 숨고 싶고, SNS속으로 숨고 싶고, 가상세계로 가고 싶고, 알코올 속으로 빠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하루에도 여러 번 느낀다. 현실은 너무 가혹하고 아프기만 하다. 폭풍이 오면 닻이라도 어찌해보고 하겠는데, 해무(海霧)처럼 방향이 보이질 않고 무겁고 차가운 공기가 짓눌러댄다. ‘나 하나만 생각하기도 벅찬 데 나한테 ‘일’을 주겠다는 저 사람이 무슨 뜻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야 될까.‘ 톱니바퀴처럼 어쩌면 ’그‘의 일들을 성실히 하는 게 어쩌면 심적으로 편할 수도 있다. 심리적으로 일이 잘못 되었을 때 그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리면 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하지만 그는 어디 가고 없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정말 내 콘텐츠가 소중하다면 아무데나 주고 싶지 않아서라도 그런 걸 차근차근 생각하며 살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에라이, 먹고 살기 정말 힘들구만!

물론 차은택이 정말 ‘무사유’로 인하여 저기에 동참했는지, 아니면 대단한 돈 욕심이랄까 뭐 다른 생각이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추측할 뿐. 중요한 건 그가 했던 일들이 분명 ‘악’이라는 것이고, 그 피해가 온 국민에게 끼쳤다는 사실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 글이 차은택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로 비춰지지 않길 정말 간절히 바란다.)

올 겨울 유난히도 추웠던 것은 다만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 주말 폭설에도 뜻이 같은 국민들은 여느 때처럼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이제 어디서는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지겹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걱정한다. ‘이게 과연 마지막일까?’ 단언컨대 아닐 것이다. 역사는 늘 되풀이되니까. 마치 잠이 들 것 같은 누군가에게, 정신 차리고 각성하라며 진하고 쓰디쓴 커피 한잔을 건넨 것일 뿐. 또 배부른 누군가가 잠이 들라치면 우리는 각성하듯 커피 한잔을 손에 들고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건 누군가에게 벌을 주듯 건네는 쓰디 쓴 커피가 아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주는 티타임이다. 여유로운 듯 진득하고 깊게, 그러나 냉철하나 뜨거운 마음으로 생각, 또 생각하라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역시 또 하나의 악(惡)이 되지 않기 위하여, 무사유의 새끼가 되지 않기 위하여 오늘도 쓰디쓴 커피를 마셔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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