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詩한 麗水의 詩 이야기...

[공감신문 우동식칼럼] 詩詩한 麗水

엄정숙 시인

갈매기 학습법

엄정숙시인 

갈매기의 이름을 바닷가에 쓴다
호명하는 대로 일어서면
바다를 지키는 솟대 같다
종일 바다를 필사하고
발목이 닳도록 시를 쓴다
오늘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먹지도 않고 스텝을 밟는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줄 아는 것은
손자의 병서를 먼저 읽어서다
꾸륵꾸륵 사람 꾸짖는 소리를 내는 것도
하루아침에 닦은 도가 아니다
캄캄하게 저물 일만 남은 나는
갈매기 앉은 자리에 앉아
미역귀보다 질긴 적막이나 던져준다
지뢰를 밟은 듯 갈매기 몇 마리가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멀리 보는 법을 익히는 갈매기를
나는 오래전에 어디서 읽은 적이 있다

 

<詩詩한 麗水 詩 이야기>

엄정숙시인은 작년 12월 4일 문학의 전당 시인선 240번째 시집으로 <갈매기 학습법>이라는 시집을 출간했고 이 시는 그 작품집에 실려 있다.

이 시를 읽으면서 필자는 시인의 눈이 집요하고 정밀함을 느낀다.
이 한 편의 시를 통하여 시인의 시 창작원리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송나라 시인이며 문장가인 구양수는 글을 잘 쓰려면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하는데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갈매기를 통하여 세상 사물을 호명(呼名)한다. 호명이란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시인은 작명가이다. 세상의 모든 사물과 생물과 사람에게 적절한 의미와 이름을  부여하는 존재이다. 바다를 지키는 솟대 같이 서서 시대의 사명을 하나씩 호명하여 내는 것이다.  

갈매기는 종일, 바다를 필사하고 발목이 닳도록 시를 쓴다. 다작(多作)이다. 

내려앉았다 날았다, 고개를 수그렸다 들었다, 천천히 그리고 빨리, 모래 위 갯벌 바다 위를 수 없이 부리로 잉크를 찍어대며 두발로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면서 필사 하고 시를 쓴다.

조르바를 읽었기에 시의 스텝을 알고 행간의 리듬을 안다. 손자의 병서를 읽었기에 다가 설 줄도 물러 날 줄도 안다. 꾸륵꾸륵 소리를 내며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시적 내용도 하루아침에 닦은 도(道)가 아니다. 다독(多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갈매기가 때로는 정적으로 때로는 동적으로 분주한 것은 세상을 읽기 위함이다. 눈으로 발로 가슴으로 양 날개로 세상을 읽는다. 시인의 온 몸은 이쯤 되면 안테나이다. 온몸의 돌기는 촉수이다. 시의 주파수를 맞추는 레이다 이다.

적막으로 앉아 있던 갈매기가 창공으로 날아오른다. 생각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인식이 확장 된 것이다. 더 멀리 보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상량(多商量)이다.
갈매기의 학습법은 곧 시인의 학습법이다.

우동식 시인

이 시는 여수 국동어항단지에서 착상을 얻었다. 지금은 다목적 어항단지이지만 수협 어판장에는 매일 새벽이면  고기를 실은 배들이 들어오고 경매가 이루어진다. 그때마다 
숱한 갈매기 무리들이 노니는 것을 유심하게 체험하고 관찰해서 발견한 기록인 것이다.
시는 체험이요 발견이며 적용인 것이다. 

갈매기가 먹이를 잽싸게 낚아 채 듯 매서운 눈으로 갈매기를 살피며 갈매기야 말로 자유롭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인임을 말한다. 갈매기를 통하여 시 창작 학습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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