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지해수 칼럼니스트=TED에 올라오는 강연들, 해외 유명 아티스트나 셀럽들 혹은 인스타그램에 이른바 ‘동기 부여 연설가’라는 카테고리를 쓰는 이들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더라. 와, 저 이가 성공을 하기까지 저런 과정이 있었구나,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가만 듣고 보니, 그들은 말을 진-짜 말한다. 많이 해봐서 그런 걸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 속엔 리듬이 있었고, 페이소스 가득한 유머들이 톡톡 씹혀 아삭거리는 느낌이었다.

IRINALAND OVER THE BALKANS by hundert wasser

이런 것들을 요즘 가장 쉽고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건 래퍼들이 내뱉는 가사들이고, 또 그들의 방송이나 SNS를 보면 얼마나 재미있는 사람인지 대략 가늠해볼 수 있다. 해외 아티스트들의 경우는 우리가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엄청난 비극을 경험한 사람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살면서 좋아했던 남자 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고생을 해본 사람들이었다. 살면서 누구나 고생을 하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누구나 ‘와, 정말 고생했다’고 느낄만한 종류의 차원이나 장르가 다른 고생들. 그것들이 나에게 ‘남자다움’으로 느껴졌던 걸까?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편하고 유복하며 화목한 환경, 좋은 유대관계 등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남자보다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생존력과 순발력을 가진 사람을 더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거다. 지금 생각하니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그런 상황이 웬만해선 오지 않길 바라니까, 그러기 위해 나도 노력할 테니까.

내가 알아낸 답은, 그들이 재미있어서였다! 나는 재미없는 사람을 견딜 수 없다. 그럴 바엔 혼자서 명상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것이 내 에너지를 유지하는 데에 훨씬 이롭다. 재미있어야 일단, 함께이고 싶어진다. 가만 생각해보니, 진짜 고통을 아는 사람만이 진짜로 웃을 수 있고, 진짜 웃음을 줄 수 있더라는 거다. 페이소스! 고생 좀 해본 그 남자들의 입가엔 뭐로든 계속 닦아주고 싶은 페이소스가 묻어 있었더라는 것(...)

WE LIVE IN PARADISE by hundert wasser

원래 인생은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다. 날 때부터 ‘고’의 시작이다. 진짜 ‘코미디’(희극)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비극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비극이 있으니 희극도 존재한다. 그래서 나는 희극적 모습이 있는 비극을 겪어낸 사람이 좋나보다. 그래서 희극적인 모습 뒤에 숨겨진 비극적 과거를 마구 쓰담쓰담해주고 싶은 생각도 있다. 너무 칭찬한다구!

이렇게 생각하는 나 역시, 고생 좀 해본 사람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고생을 안 해본 사람이 어딨겠냐만 뭐 내 장르 쪽에선 빠질 정돈 아니지. 내 주변에서 나 정도는 ‘평타’수준이지만!

그들은 왜, 재밌을까? 왜 수많은 메타포를 쓸까? 어린 시절 생각해보면, 나는 그 시간들을 견디기 위하여 어떤 식으로든 비유적으로 생각하려 했던 것 같다. 이를 테면 난 잠시 사막에서 길을 잃었을 뿐이야-라는 어린 왕자 같은 비유... 또는 신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계속 던졌다. (그것은 직관력을 키워주는 너무나 놀라운 행동이었다.)

END OF THE WATERS by hundert wasser

우리는 너무 빨리 답을 얻을 수 있는 피상적인 세상에 살기 때문에 직관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에 자꾸, ‘왜?’라고 물어야한다. 처음 보는 무언가-보다 지속되고 당연한 듯한 행동에 ‘왜?’라고 물어야한다.

왜 나는 밤마다 야식이 땡기는가? 왜 나는 헤어진 전 여자 친구의 SNS를 자꾸만 훔쳐보는가? 왜 나는 노력하지 않는가?

왜 자꾸 미세먼지가 반복되는가, 왜 자꾸 누군가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가, 왜 사람들은 하나같이 날 두려워하나, 왜 나는 이렇게 걷나....

고생을 했던 누군가는 하루하루 투쟁 같은 삶을 견디며 그런 고민들을 던졌을지 모른다. 같은 상황이더라도 그저 세상 탓을 하는 데에만 그친다면 재미는커녕 인간적인 모습 또한 느껴지지 않는 그저 피하고 싶은 루저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왜?’라고 세상에게 질문하며 그것을 견뎌내려는 마음이 있다면 재미는 물론, 친해지고 싶은 큰 마음과 미소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진짜로 고통을 아는 이들은 그러했다. 왕자였던 싯다르타는 신분을 버렸다. 불교 경전이나 성경 등엔 정말 감탄할만한 표현들이 매우 많이 나온다. 중생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비유를 사용한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유명한 말도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에서 나온 것이다.

연애에 관한 비유도 있다.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의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얻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가는 왕이라니. 이런 멋진 비유를 쓰다니! 감히 추측컨대 부처님은 항상 말에 향기가 있으셨을 뿐만 아니라 진짜 재미있으신 분이 아니셨을까? (법륜스님 즉문즉설만 봐도 그렇게 재밌던데 난...)

HATS THAT WEAR YOU by hundert wasser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재미있을 필요는 없다. 다만 고통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며, 그것을 통해 얻는 것이 분명히 있더라는 걸... 아니, 내가 재미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글이었다고 가볍게 말해보련다!

재미가 없다면 진중함을 무기로 살아가면 되지 뭐. 이렇게 짧은 인생에서 가지지 못한 무기를 탐하느라 시간 낭비 말자구요 다들. 있는 무기가지고 오늘도 직관적으로 열심히 삽시다!

(PS. 어제 직관적으로 느낀 감정을 그저 말하자면, 갑자기 지구가 너무너무 아파하고 있더라는 겁니다. 우리 모두 쓰레기를 줄이는데 노력합시다. 저도 그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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