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보행로는 누가 치우나...

[공감신문 조병수칼럼] 지난1월 중순에 속초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동해안으로 가는 길에는 그래도 쌓인 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러다가 내년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괜찮을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일행들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후 눈 소식이 들리고 날씨가 추워지긴 했지만, 겨울이 점점 겨울다워지지 않고 있음을 걱정하는 것이 그저 ‘등 따뜻하고 배부른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위도(緯度)상으로 서울과 큰 차이 없는 뉴욕, 뉴저지 일원의 겨울철엔 정말 눈이 많이 내린다. “펑펑 쏟아진다”는 표현이 어울릴 때가 많다. “눈폭풍”이니, “공항마비”같은 이야기들도 흔히 듣게 된다. 그런 겨울철에는 근처 야산에서 먹이를 찾아 내려와 주택가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사슴들이 또 다른 자연의 정취를 선물해 주기도 한다.

<뉴저지 주택가로 내려온 사슴들>

어떨 때는 2월 중순까지도 폭설이 내리기도 하니까, 쏟아져 내리는 눈을 치우려면 몸살을 앓을 정도다. 자기집 앞 구역이나 인도에서 눈을 치우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으면 집주인이 책임을 져야 된다고 하고, 차고의 차도 빠져 나와야 하니 눈을 제때에 치우지 않을 수 없다. 

차가 다니는 도로는 관공서에서 나온 제설트럭이 수시로, 밤을 지새며 눈을 밀어내고 염화칼슘을 뿌리니까, 큰 불편 없이 다닐 만 하다. 하지만 그럴 때 길가로 밀어 낸 눈들이 집의 진출로 앞에 쌓이거나 그대로 얼어버리면 그것을 치우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거리가 된다. 

물론 집 앞의 눈 치우는 일을 용역계약을 맺어서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그 비용이 상당해서 웬만해서는 엄두를 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영락없이 스스로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쏟아지는 눈을 치우며 사람이 다닐 길을 내다보면, 밀쳐낸 눈이 허리춤까지 쌓일 때도 있다. 그때는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리는 눈이 쌓이지 않도록 커다란 삽을 몇 번 움직이고 나면, 며칠 동안 허리통증을 감당해야 한다.

<뉴저지주 주택가 겨울풍경>

그렇게 많은 눈이 내려도, 주요 간선도로나 고속도로에서는 웬만하면 차들이 다닐 수 있게 눈이 치워진다. 눈발이 흩날릴 때면 불도저의 배토판(排土板)같은 것을 앞에다 매단 제설차량이 수시로 눈을 도로 옆으로 밀어내고 다닌다. 특히 여러 개 차선의 고속도로에서 휘날리는 눈발을 뚫고 달리며 쌓이는 눈을 치우는 제설차량들의 모습은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밤에 뉴왁공항앞 고속도로를 달릴 때다. 환하게 불을 밝힌 여러 대의 대형 덤프트럭들이 마치 기러기 떼 날아가는 모습으로 줄지어 달리면서 눈을 밀어내고 뒤로는 염화칼슘을 토해내는 광경은 한편의 그림이었다. 

편도 4~7차선 정도의 고속도로 저편에서 1차선의 차량이 배토판을 비스듬히 하고 달리면서 눈을 밀어내면, 조금씩 뒤로 빗겨 달리는 2, 3, 4차선의 차량이 같은 각도의 배토판으로 그 눈을 받아서 도로 가장자리로 몰아내는 환상적인 협동작업을 사진으로라도 남기지 못해 아쉽다.

상대적으로 강설량이 많지 않겠지만,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는 그런 입체적인 제설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다. 조금만 눈이 내려도 길이 막히고 차를 버리고 가는 일이 자주 뉴스에 오르내린다. 그리고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간밤에 깨끗이’ 제설된 도로를 보지 못했다. 

몇 년 전까지 내가 살던 분당에서는, 몇 차선의 넓은 길을 제설차량 한대가 오가면서 밀어낸 눈이 다른 차선에 그대로 쌓여가는 모습들을 늘 보아왔다. 주택가도 조금만 눈이 오면 미끄러질 각오를 하고 다녀야 했고, 이면도로 같은 길은 아예 눈이 알아서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형편이었다. 

설 연휴가 끝난 다음날, 분당 쪽으로 갈 일이 있어서, ‘이제는 좀 나아졌나’하고 살펴보았다. 눈이 내린지 이틀이 지났건만, 곳곳의 인도에는 치우지 않은 눈들이 얼어붙어서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 수내역 부근, 아파트단지와 상가들이 모여 있어 통행량이 많은 곳, 꽁꽁 얼어붙은 인도(人道)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허우적거리는데, “청년배당, 무상교복, 산후조리, 3대 무상복지 나머지 절반 다 드리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저런 것까지도 하는 시(市)에서 시민들을 이런 얼음길 위에?'라는 생각이 들며 쓴 웃음이 피어올랐다. 

<분당 수내역 인근아파트단지 옆 인도>

인터넷으로 서울의 평균강설량을 검색하다보니, “얼음 위에서 태어나지 않거나,얼음 위를 걷거나 달리는데 익숙하지 않다면,한국의 겨울철 보도(sidewalks)는 걷기에 극히 위험(quite perilous)하다”는 한 외국인의 설명이 올라와 있었다. 명색이 세계10위의 경제대국에다가 동계올림픽을 개최한다는 나라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런 정도는 그냥 흘려 보내도 될 사소한 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도 “내 집 앞 눈치우기”가 의무화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던,사람들이 다니는 길에 눈(雪)이 쌓여서 얼어붙기 전에, 치우거나 아니면 치우게라도 해야할 것 아닌가 싶다.

<허드슨 강변, 제설된 산책로>
<분당 정자동 신기사거리, 얼어붙은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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