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위 65주년, 사파이어 주빌리


[공감신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을 포함한 16개국(영국 연방 왕국)과 기타 국외 영토와 보호령의 왕이다.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Elizabeth Alexandra Mary)로 호칭은 ‘영국 연방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 (Her Majesty Queen Elizabeth II of the United Kingdom)’이다.

그녀는 1952년 2월 6일에 서거한 부왕 조지 6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2017년 2월 6일 재위 65주년을 맞게 됐다.

사파이어 주빌리란 영국 왕실 즉위 65주년 기념식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2015년 9월 고조모인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기간인 63년 7개월 2일을 넘어서면서 '영국 최장수 군주' 기록을 세웠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24년 4월 21일 런던 메이페어의 브루턴 거리 17번지에서 요크 공 앨버트(훗날의 조지 6세)와 요크 공작부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맏이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적 “릴리벳(Lilibet)”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현 국왕의 차남이었다. 그의 백부 에드워드(훗날의 에드워드 8세)가 웨일스 공이 되어 장차 왕위를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그녀가 왕이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1936년 에드워드 8세가 자식을 남기지 못한 채 하야하고 그의 아버지 조지 6세가 왕위에 올랐다. 조지 6세에게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차기 왕위 계승자가 되어 본격적인 제왕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숨 쉴 틈 없이 짜인 교육 일정에서 그의 유일한 취미는 시골길을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었다. 이 때문인지 그녀는 “내가 왕이 되지 않았더라면 시골에서 말과 개들을 많이 키우면서 지냈을 것이다.”라고 측근들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1945년, 스무 살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전쟁에 직접 참가해 조국에 봉사하고 싶다며 아버지 조지 6세를 설득해 끝내 허락을 받았다. 3월 4일 그는 또래 여자들이 봉사하는 영국 여자 국방군에 입대하여 구호품 전달 서비스 부서(WATS; Women's Auxiliary Territorial Service)에 배치됐다.

여자들로 구성된 WATS는 1938년 창설 당시에는 주 업무가 취사, 사환 업무, 부대 내 매점 관리 등의 비(非) 전투업무였으나, 전쟁이 커지자 운전, 탄약 관리 등의 전투업무로 확대됐다. 그곳에서 엘리자베스는 군번은 230873이었으며, 엘리자베스 윈저 소위로 불리며 군용 트럭을 모는 운전사로 복무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했다.

엘리자베스는 그리스의 필리포스와 결혼했다. 필립은 그리스에서의 왕위에 관한 권리를 포기하고, 결혼에 앞서 에든버러 공의 작위를 받기 전에 간결하게 필립 마운트배튼 중위로 불렸다.

필립은 그리스 왕족으로 덴마크 왕실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사운덴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의 일원이자 올덴부르크 왕가의 계통이었다.

둘의 결혼은 논쟁의 대상이 됐다. 필립이 영국의 국교회인 영국 성공회의 신자가 아닌, 정교회 신자인 데다가 뒤를 받쳐줄 후원 세력도 없었다. 또 필립의 누나는 영국의 적성국가였던 나치 독일지지자와 결혼했다.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도 강력히 반대했다. 심지어 필립을 “훈족”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진작에 알았던 조지 6세는 엘리자베스가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기 전에 두 사람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1947년 7월 두 사람의 약혼이 선포되고 11월 20일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후 두 사람은 1949년 7월 4일까지 윈들즈햄 무어에 살았으며, 나중에 대저택인 런던의 클래런스 하우스로 이사했다. 슬하에 총 3남 1녀를 두었다.

웨일스 공 찰스 왕태자 (1948년 11월 14일 출생)

프린세스 로열 앤 (1950년 8월 15일 출생)

요크 공작 앤드루 (1960년 2월 19일 출생)

웨식스 백작 에드워드 (1964년 3월 10일 출생)

1951년에 들어서 그녀의 아버지 조지 6세 건강이 나빠지면서 엘리자베스는 왕실 행사를 대행하게 됐다. 특히 건강이 중요한 외국 순방은 엘리자베스의 몫이었다. 그녀가 케냐에 도착했을 때 1952년 2월 6일 조지 6세가 폐암으로 서거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조지 6세의 서거는 자동으로 그의 맏딸이자 1순위 왕위계승권자인 엘리자베스에게 왕위가 돌아감을 의미했다.

엘리자베스는 1952년 2월 6일 캐나다 추밀원에 의해 캐나다 왕으로 선포됐다. 그녀의 영국 왕으로서 선포는 다음 날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이뤄졌다.

엘리자베스 2세가 보유한 재산은 3억 2000만 파운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군주 가운데 12위를 차지한다. 재산 대부분은 부동산과 미술품, 보석이다. 하지만, 왕의 개인 재산 가운데 공개되지 않은 것이 많아 정확한 액수는 왕도 모를 것이란 관측도 있다. 게다가 왕실 이름의 재산과 수입도 상당수 왕이 처분권을 가진 것을 고려할 때 여왕의 재산과 수입은 그 몇 배에 이를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절대 왕권을 휘두르는 중동 등의 왕실과 달리 재산을 함부로 처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1992년 11월 20일, 윈저 성의 대형화재에 따른 천문학적 보수비를 정부에서 지급하는 문제와 관련해 영국 사회에서 논란이 일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결국 국민의 압력에 굴복해 1993년 왕실의 면세 특권을 포기했다.

2008년 4월 시점에 엘리자베스 2세는 개인 자산의 3분의 1인 1억 파운드 정도를 투자에 활용해왔다. 대부분은 런던 증시에 상장된 우량기업 주식에 투자했으나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전 세계 증시를 강타한 주가 폭락 사태로 주가가 급락해 불과 수일 만에 자산가치가 37%나 격감해 3천700만 파운드의 막대한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런던 증시의 주가지수는 4월 이후 3분의 1이나 떨어졌다. 엘리자베스 2세는 세계 최고의 투자 전문가들과 계약을 맺고 자산을 관리해 왔다. 금융 혼란으로 손해가 막심해지자 격노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부동산도 많이 가진 영국 왕실은 금융위기에 더해 주택시장이 침체하면서 주식과 부동산 양쪽 모두에서 엄청난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국 최장 재위 군주다. 5년 후에는 재위 70주년을 맞는다. 재위 70주년은 플래티넘 주빌리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건강을 잘 관리해 플래티넘 주빌리를 맞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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