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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정환선 칼럼] 봄 돌아오니 창덕궁 ‘매화’ 필동말동!화사한 봄이 돌아오면 궁궐에는...
  • 정환선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0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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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정환선 칼럼니스트=화사한 봄이 돌아오면 궁궐에는 겨우내 숨죽인 나무와 꽃들이 기지개를 펴기 시작한다. ‘매화(梅花)’는 ‘화괴’라고 불려지기도 하며 차가운 기운이 맴도는 초봄 변덕스런 날씨에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운다. 꽃말은 “고결한 마음”으로 이른 봄 매화가 필동말동하는 아름다운 꽃잔치에 설레이는 여심을 초대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매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시대로 보고 있다. 옛 선비들은 난초·국화·대나무와 더불어 ‘매화’를 사군자로 치면서 시·서·화 소재로 이용함에 주저하지 않았다.

#. ‘칠분서’,‘삼삼와’ 앞의 필동말동 홍매화 - 2018년 3월 촬영 -

매화나무는 매실 수확을 목적으로 하는 실매(實梅)와 꽃을 보기 위한 목적의 화매(花梅)가 있으며 매실나무 또는 매화나무라고 한다. 하얀 꽃이 피면 ‘백매’, 붉은 꽃이 피면 ‘홍매’라 한다. 꽃은 기본적인 ‘홑꽃’과 ‘겹꽃’ 종류가 있다. 잎이 5개보다 많은 것은 만첩흰매화, 만첩홍매화로 구분하기도 한다. 매실이 익을 무렵에는 여름철 장마 기간이어서 장마를 매우(梅雨) 또는 매림(梅霖)이라고 하였다. 궁궐에서는 임금님의 대변을 ‘매화’ 소변을 ‘매우’ 임금님의 이동식 변기를 ‘매화틀’이라고 하였다.

창덕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매화나무는 성정각 자시문 앞 “성정매”와 건너편 삼삼와 앞의 만첩홍매화, 경훈각 뒤편의 화계(花階,계단식 화단)와 낙선재 뒤편의 화계, 금천교 주위, 낙선재 앞마당에 무리 지어 자라는 매화나무가 있다.

#. 자시문 앞 화사한 ‘성정매’ -2018년 4월 초 길라잡이 성주경 촬영-

세자의 공간인 동궁 영역의 ‘성정각’ 담 밖 자시문(資始門) 앞에 있는 ‘성정매’는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쉬운 나무로 높이 4m 수령 400살 정도로 추정된다. 선조 임금 때 명나라가 조선에 보내 준 것이라고 전하여져 온다. 여러 겹의 홍매가 피는 아름다운 만첩홍매화는 세월의 무게를 못 견딘 원줄기는 고사하고 수세가 약해진 상태에서 뿌리 둥치에서 새로 돋아난 줄기와 가지들이 자라서 후계목임을 자처하고 있다. 이 꽃은 문효세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덕혜옹주의 일본으로 강제 유학 그리고 갑신정변이라는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았고 침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시문 맞은편의 칠분서와 삼삼와 앞에도 성정매의 내력을 꼭 닮은 만첩홍매화가 아름다운 꽃봉오리를 들어내어 매년 관람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있다.

#. 칠분서와 삼삼와 앞 만첩홍매화 -2018년 4월초 촬영-

낙선재 화계가 있는 ‘석복헌’ 뒤편 일각문 담에는 길상문으로 고운 모래와 석회를 물에 섞어 만든 석회 반죽을 벽에 바른 후 그린 ‘매화꽃’ 그림이 있다. 사시사철 피어 있는 매화를 볼 수 있지만 관심을 갖고 찾지 않으면 볼 수 없다. “모든 일이 뜻대로 잘 되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는 ‘길상문’ 매화 무늬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며 흰 매화는 눈썹이 희도록 장수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 석복헌 일각문의 매화나무 -2019년 3월 길라잡이 김태휘 촬영-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한쪽에는 일본이 가져갔던 어미나무의 가지를 잘라내 키운 후계목인 흰매화와 홍매화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임진왜란 때 ‘다테 마사무네’ 왜군장수는 창덕궁에 침입하여 다 자라면 ‘용’의 형태 모양의 선정전 ‘와룡매’ 네 그루를 뿌리째 뽑아 전리품으로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1988년 안 의사를 숭모하는 미야기현 소재 ‘다이린지(大林寺)’에서 개최된 안 의사 추도법회에 참석한 주지가 한일 친선의 상징으로 이 매를 한국에 보내고 싶은 뜻을 밝힌다. 1999년 3월 안중근 의사의 추도식에 맞춰 사죄의 뜻을 담아 보내어 주어서 400여 년 만에 우리나라로 돌아오게 된다. 정종실록에는 “일본이 사신을 보내 방물과 감자, 매화를 각각 한 분씩 바치다”라는 기록은 외교적인 친선관계 노력에도 사용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 시대 평양 기생 ‘매화’는 “매화 옛 등걸에”라는 시조에서 봄 돌아오면 속절없이 곁을 떠난, 빼앗겨버린 님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춘설’ 때문에 필동말동 하는 마음이 안타깝고 서럽기만 하다. ‘궁궐과 매화’를 사랑하는 의식 있는 사람들이 빼앗겨 버린 ‘와룡매’를 선정전 뜰 안으로 되돌려 놓자는 활동을 추진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자리 찾기가 중단되어 버려 매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제라도 선정전 ‘와룡매’가 궁궐 내 제 위치로 빨리 돌아오도록 힘을 합쳐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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