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서울역 고가를 사람이 다니는 보행로로 재생하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

서울 도심의 새 걷기길이란 문화와 관광으로 자리매김

 

최근 수명이 다한 서울역 고가를 서울역광장, 북부역세권 등과 17개 보행로로 연결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이하 서울고가길)'가 주목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체도로의 건설 등을 먼저 요구하는 반대의견도 있는데,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서울고가길이 우선돼야 한다. 왜냐하면 물리적인 시설물의 구축은 단순히 예산편성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인데 반해 '도보관광'을 '문화'로 정착시키려면 더욱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조차 서울 도심에서는 걷기란 도보관광보다는 단순히 목적지와 목적지를 이동한다는 의미가 더욱 크다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걷기’는 관광상품의 구성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예를 들어 유럽의 역사 깊은 도시들의 구시가지에서 관광객들은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블록포장된 도로들을 따라 걷게 되며, 이는 규모있는 사적이나 유적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유럽여행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가라는 조언도 결국 걷는데 필요한 체력을 의미할 정도이다. 한편 일반인들은 ‘문화’라는 단어를 들으면 곧바로 ‘예술’이라는 단어를, 그리곤 다시 ‘공연’이란 단어를 연관짓는 경향이 있는데 실상 문화란 그렇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단순해보이는 ‘걷는다는행위’도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한 지역의 문화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관광 상품도 될 수 있다.
  이런 ‘걷기’와 관련한 국내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는 순례자의 길(스페인 산티아고)을 벤치마킹한 제주 올레길을 들 수 있다. 올레길의 성공 이후 전국에 수많은 걷기길이 만들어졌으며 이는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도심에서 인지도가 높거나 활성화된 ‘걷기길’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 그 이유는 걷기가 문화나 관광 상품이 되려면 단순히 걷는다는 행위를 넘어선 지역색이나 상징이 깃들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제주라는 섬의 이미지, 국토대장정이라는 청춘의 이미지같은 것들이 걷기라는 행위에 의미를 부연한다.
  서울에도 이런 상징적인 지역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꼬불꼬불한길을 따라 골동품상가와 화랑이 가득했던 1990년대의 인사동은 외국인에게는 이국적인 지역으로, 내국인들에게는 주말나들이로 걷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도로가 정비된 현재의 인사동에서는 그런 과거의 특색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인사동말고 다른곳을 추천해달라는 외국인들의 흔한 사연에는 우리도 웃을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연희동, 서촌과 북촌 등이 걸을만한 지역으로 꼽히지만 이곳은 한국적인 동네골목과 시장풍경이 주류이며 접근성도 차이가 있다. 어떤 지자체의 걷기길은 도심과 떨어져있고 굳이 시간을 들여 걸어볼만한 지역이 아닌 경우도 있다. 그리고 서울도심의 이름있는 곳들이라도 이를 하나로 묶어서 걷기란 그리 쉽지 않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기존의 서울역 고가를 사람이 다니는 보행로로 재생하는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서울도심의 새 걷기길이란 문화와 관광 상품으로 보더라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지금의 서울역 부근은 관광과 휴식을 위해 머무르거나 걷는 곳이 아닌 교통수단을 이용해 그저 통과하는 지역에 불과하다.
  하지만 도심의 차량통행과 횡단보도등에 구애되지 않는 서울고가길의 17개 보행길이 대부분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들(서울연구원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명동, 동대문시장, 고궁, 남대문시장, 남산·N서울타워등이 상위로 꼽힌다)로 연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곳을 기점으로 서울의 주요도심을 연결하는 이용이 편한 걷기길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기에 지역색과 상징이 성공적으로 입혀진다면 어쩌면 과거의 인사동 골목처럼 서울안의 명소로 안착할 수도 있고 그렇게 성공을 거둔 걷기길은 장소와 장소를 연결하는 도보관광상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서울고가길은 그러한 시도로서 가장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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