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하는 ‘진짜 사랑’, ‘참사랑’, ‘진정한 사랑’이란...

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지해수칼럼] 전 세계에서 한국 여자들이 제일 이쁘다고들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해외를 많이 다녀 본 남자들이 그렇게 말한다. 유튜브에 외국인 남성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영상들을 봐도 한국 여자들 미모에 긍정적이다. 맞다. 대부분 날씬하고 옷도 잘 입는다. 별로 못난 구석들이 없다. 요즘 한 두 군데 고친 건 성형 축에도 안 낀다. 평균 체중보다도 미달이면서 365일 다이어트를 한다. 유행의 물살은 더욱 빨라지고 거세졌다. 그렇기에 좀만 따라 사면 옷 잘 입는 건 일도 아니다. 강남 클럽만 가도 아이돌 뺨치는 아가씨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글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고대의 신들이라면 어땠을까? 아마 그들은 익숙한 ‘아테네’에서 곧바로 ‘테헤란로’로 그 무대를 옮겨와, 퇴근 시간 뺨치게 복잡한 사랑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들은 사랑의 열병에 그리 쉽게 걸리지 않는다. 원래 우리도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아니 경험이 늘어가며 깨닫게 되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우린 사랑에 빠지기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슬퍼하지 말라. 사랑에 빠지는 것은 사실 사랑이 아니므로. 

(<에로스와 프시케> / 프랑수아 제라르 작)

이렇게 말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정신과 박사이자 작가인 모건 스콧 팩이라는 사람이 말했다. 난 그의 책 <아직도 가야 할길>을 읽다가 이 내용을 접하고 엄청 당황했었다. ‘첫눈에 반했어요’라는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단 4초 만에 나의 정신을 사로잡았던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그럼 내가 여태까지 쏟은 건 무슨 열정이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사랑을 한 게 아니야? 그럼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시들은 무슨 감정이라 설명할 텐가!  
난 그의 논리가 궁금해서 더 차근히 책을 읽어보았다. 그는 더 자세히, 이렇게 설명했다. 사랑에 빠지는 감정 중에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도 있다고. 음, 그러면 좀 말이 된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특별히 성적인 것과 관련된 애욕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중략)
나는 사랑에 빠지는 것은 짝을 구하려는 성적 본능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중략)
어떤 경우에 (모든 경우는 아니고) 사랑에 빠지는 행동은 일종의 퇴행이다.

응? 맙소사. 이 아저씨 너무하신다. 퇴행이라니? 사랑에 빠지는 게 퇴행이라니?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는데! 심지어 본인이 이 책 앞부분에 인간이 고통을 이겨내는 데에 가장 필요한 의지가 사랑이라고 온화하게 말해놓고, 퇴행이라니. 난 또 궁금해 하며 차근히 책을 읽어보았다. 그의 논리는 설득당할 만한 것이었다. 내가 요약해 드리지. 
우리 인간은 태어나서 부모와 분리된 존재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서 고독감을 갖게 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지기 쉽다. 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상대와 하나 되고 싶어 하며, 고독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한다. 어릴 때처럼 자기 멋대로 생각하게 된다. 마치 내가 갓난아기시절 배고파서 울 때, 엄마도, 이 세상도 똑같이 나처럼 죽도록 배고플 거야! 라고 착각한 것처럼. 그걸 상대방에게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퇴행’이라고 표현한 거다. 전조작기의 상태. 
하지만 우린 곧 알게 된다. 너와 내 마음이 다름을. 그는 이걸 ‘찬물을 끼얹는다’라고 표현했는데, 정확한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시 성숙한 ‘나’로 돌아온다.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어쩌면 그 ‘결합’, 섹스가 끝난 후에. 음, 너무 서글픈가? 그런데 그는 우릴 이렇게 위로한다. 진짜 사랑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단, 상대방이 그럴만한 사람이라면!

오래 만난 사이인데도 서로 가슴이 두근거릴 수 있을까? 슬프지만 그랬던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서 모르겠다. 음, 이랬던 적은 있던 것 같다. 갑자기 나와 함께할 미래가 뜬구름 잡는 식이라도 언급될 때! 그때 갑자기 설렜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 생물학적으로 오래되면 설레는 순간이 많을 수가 없다. 서로 무던히 노력해야 한다. 

나는 평생 사랑하고 싶다. ‘퇴행’과 다시 ‘나 다워짐’의 반복을 되풀이하느니,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 열길 물 속 같은 마음을 가진 인간 따위가 무슨 사랑을 알겠냐만은, 이 책을 쓴 아저씨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진짜 사랑’, ‘참사랑’, ‘진정한 사랑’ 같은 것을 이야기할 때 보편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있더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그 사람의 성숙을 도와주는 것까지 포함한다.’ / 모건 스콧 펫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증거는 함께 있을 때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 것’ / 곽정은

결국 상대방을 통하여 내가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라는 것! 이렇게 되면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1년 8개월밖에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하더라도,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원을 평생 가꿀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하니까!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심지어 현대 사회는 스스로 그런 욕심을 내기도 전에 강요한다. 인간은 외로움을 싫어하는 동물들인데, 현대사회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가 몹시 쉽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방법이나 의욕이 모든 이에게 똑같지도 않을뿐더러, 때론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 또 그런 노력들은 분명 힘이 많이 들고, 지쳐버리게 만든다. 노력하면 할수록 상처받기 쉽다. 실제로 우울증에 잘 걸리는 사람 중에 일상을 착실하게 산 사람들이 더 많다는 심리학적 통계도 있다. 
그래서 사랑이 필요한 거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한다. 왜? 사랑의 가장 큰 힘이 무엇인가, 바로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우리가 이겨낼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위대하다. 인간은 그러한 고통을 견디며 조금 더 성숙해지고, 때론 성장한다. 그렇게 진정한 사랑을 이루어가는 것, 이라고 누군가들은 말하더라. 그렇게 믿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서 ‘서로를 알아간다’라는 말을 종종 쓴다. 이 말의 뜻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여기에서 ‘서로’는 ‘내가 상대방을 알아간다’가 아니라, ‘나와 상대방 둘 다 알아간다’는 뜻인 것 같다! 나도 몰랐던 나를 상대방을 통해 배우는 것이다. 

‘진짜 사랑’은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는 자극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해볼 만할 지도. 매일 서로가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신비로운 날들이 있지 않을까. 꽃 같은 서로에게 해와 비, 좋은 양분을 주돼, 스스로 서는 힘을 갖도록 돕는 거다. 훗날 나이가 든 후, 잘 늙은 상대방을 보았을 때 서로 뿌듯하겠지. 희끗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할 지도. 
“당신 아주 잘 컸어!”

‘사랑에 빠지는 것’을 너무 디스한 느낌인데, 사랑에 빠져야 사랑을 할 수 있는 거다! 어쨌든 남녀 간의 사랑에는 당연히 에로스가 존재해야지. 에로스까지 있어야 ‘진짜 사랑’이지, 암! 그게 시작인거다! 심지어 남녀가 섹스할 때 분비되는 옥시토신은 강력한 유대감 호르몬이라니, 단단한 한 팀이 되는 거다! 어쩌면 하나님이 ‘진짜 사랑’을 유지하라고 주신 선물일지도. 

‘진짜 사랑’에 대한 나의 짧은 탐구(?)를 마치려다 보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에 대하여 또 다른 감상을 갖게 된다. 이 시를 좋아한지 거의 십년이 되어 가는데, 가만 보니 이 짧은 시에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진짜 사랑’ 둘 다 있었어! 끝으로 여러분도 이 두 가지의 사랑 모두를, 감상해보시길. 

그이가 말했다. / 생각해보니, 내가 당신을 /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대답했다. / 집어쳐요, 그딴 말 / 생각하지 않고 사랑할 순 없어요?
 
그러자 그는 심각해졌다. / 방금 그 말, 생각해볼 문제야.

<내 애인 데카르트 / 장정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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