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각각 다가오는 대통령 탄핵에 대한...

[공감신문 김창호칼럼] 시시각각 다가오는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기각 또는 인용 결정을 앞두고 태극기와 촛불로 갈린 민심은 폭풍 전야, 일촉즉발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촛불민심의 원천과 성격, 진정한 동력이나 촛불 주도세력의 정체를 의심케 하는 주장도 대거 등장해 헌재 앞에서 서로 대립하는 양극단의 민심은 이미 정치권을 대리한 권력투쟁이나, 하나의 정변政變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모두가 대국적인 견지에서 전화위복이 될 것을 바라지만, 일각에선 설상가상이 될 것이라는 비관에도 빠지기도 한다. 컵에 담긴 물을 보고, 반이나 남았다고 생각하거나, 반밖에 없다고 말하거나, 둘 다 틀린 것은 아니다.  

촛불민심을 제논에 물 대기 식으로 아전인수하거나, 거두절미, 견강부회해 야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확대해석하고 집단시위를 또다시 선동하는 것이 여소야대 국회의 실상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헌재의 탄핵 인용을 위해 다시 시위에 집중하자는 등의 야4당이 보이는 선동과 압박은 헌법이 보장한 사법권 독립과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헌재를 정치의 시녀화侍女化 또는 무력화하려는 무모한 시도로 매우 우려되는 사태의 진전이다. 

우선 헌재 판단에 대한 승복을 명쾌하게 선언한 후, 어떤 의미에서든, 국민들의 난감해질 심정을 위로하고 치유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국론분열을 조장하면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불타는 증오를 더욱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국회의 이런 독선을 탄핵할 수 없는 힘없는 처지가 참담해 국민들은 차라리 절망하고 좌절한다.   

<촛불집회 / 사진출처 : 연합뉴스>

이런 새로운 국면의 전개와 진행에 따라 태극기민심과 촛불시위의 힘겨루기, 치킨게임이 더욱 가열될 것인가에 관심이 크게 쏠린다. 어느 한 쪽이 양보하지 않고 갈 데까지 가서 양쪽이 모두 파국을 맞는 것이 치킨게임이다. 누가 먼저 치킨(겁쟁이)이 되느냐, 누가 이기고 지느냐의 진검승부는 어느 한쪽이 포기하거나 죽어야 끝을 볼 수가 있다. 마주 달리는 열차가 서로 멈추지 않고 부딪히는 극단적인 상황이 예상된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탄핵정국에서 보인 대립과 기氣싸움 등은 일종의 예고편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약 10여 년에 이르는 문화혁명은 극심한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중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다. 농정 실패, 대기근에 따른 식량 부족과 홍위병들의 폭력 사태 등으로 결국 3,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1966년 5월 공산당 총서기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으로부터 시작된 문혁에서 마오는 수정주의의 방지 및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으나, 결국 권력투쟁의 성격과 양상이었다. 문혁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천하대란天下大亂, 국가적 재난이었다는 평가다. 중국 공산당은 문혁을 마오쩌둥의 과오라고 1981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문혁 과정에서 홍위병들에 의해 주자파走資派로 몰린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은 공개적인 자아비판과 사상개조 교육에 이어 유배와 연금, 트랙터 공장노동자 하방까지 당했고 그의 큰아들은 홍위병들의 고문을 피해 달아나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하반신 불수가 되었다. 153cm의 작은 키, 평범한 인민복을 즐겨 입는 ‘작은 거인’은 넘어져도 마치 오뚝이처럼 다시 우뚝 일어섰다. 도광양회 대국굴기의 정치역정을 보인 그는 별명 부도옹不倒翁처럼 정치적 박해와 좌절을 극복하는 강인한 저력底力을 보였다. 

1973년부터 부수상, 정치국원 등으로 복귀, 1975년 당 부주석에 올랐다가 강청 등 4인방에 의해 또다시 실각한다. 그러나 1977년 다시 당정의 요직을 거쳐1983년 국가군사위원회 주석에 오르면서, 오늘날의 G2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대대적인 국가 개혁과 중국경제의 개방을 강력하게 추진해 성공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등의 《등소평 문선》은 5천만 명 이상의 중국공산당 당원들의 바이블이었다. 등鄧은 <중국의 붉은 별> 모택동에 대해 후일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는 평가를 주도하고 중국인민의 대승적인 차원의 단합을 호소했다. 1989년에는 톈안먼天安門 광장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해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촛불과 태극기가 범람하는 찬반민심과 대선의 표심이 함께 요동치는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모두가 정치인은 아니지만, 모든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 인간임을 어떤 의미에서든 실감하고 있다. 만약 특검이나 헌재가 “우리는 정치적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그것은 이미 정치적 주장이 된다. 이처럼 어떤 누구도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불신을 받고, 신뢰를 잃은 우리 정치권은 국민을 힐링(healing)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킬링(killing)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거세게 받고 있다. 드디어 정치인들이 졸속으로 만든 정치특검이 끝나고, 헌재의 결정이 내려져도 우리 정치의 이 같은 현실은 거의 변하지 않을 것이다.  

탄핵의 기각 또는 인용이 헌재에서 결정되는 그 날 이후. 벌어지는 사태의 그 모든 피해와 어부지리는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두의 심기일전, 자중자애가 필요한 시기이자 대목이다.  

루스벨트(1882~1945) 미국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을 향해 “이들이 공직 생활과 공무를 바라보는 시각은 독수리가 죽은 양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개탄한 바 있다. 양은 도살되어도 양의 등 위에 사는 벼룩은 죽지 않을 것이다. 벼룩은 또 다른 양의 등으로 옮겨 올라타 새로운 피를 계속 빤다. 양처럼 순한 백성들은 죽어도, 민심을 앞세운 정치인은 여전히 부귀영화 속에 호의호식하며 살아나갈 것이다. 탐욕스럽고 무책임한 정치인들과 어리석은 백성의 관계는 벼룩과 양의 관계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익(李瀷) : 1681(숙종 7)∼1763(영조 39). 조선 후기의 실학자 / 사진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성호 이익(1681~1763) 선생은 《성호사설》 <독사료성패讀史料成敗>에서 “천하의 일은 대개 열에 아홉은 요행이다. 역사책에 나오는 고금의 성공이나 실패, 날카로움이나 둔함은 그때의 우연에 따른 것이 워낙 많다. 선과 악, 어짐과 어리석음의 구별이 반드시 그 실지를 얻은 것도 아니다...당시에 훌륭한 꾀가 이루어진 것도 있겠고, 졸렬한 계책이 어쩌다 맞아 떨어진 것도 있을 것이다...천하의 일은 놓여 진 형세가 가장 중요하고, 운의 좋고 나쁨이 그다음이며, 옳고 그름은 가장 아래가 된다..”고 인생과 세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일들이, 옳고 그름을 재는 저울에 의해서가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인 행운과 우연 등에 따라 운명이 엇갈리는 것이 아닌지를 깊이 회의懷疑했다. 정의의 여신이나 행운의 여신은 앞을 보는 눈을 가리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살았던 어떤 분의 신랄한 시조 한 편을 번안해 감상한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한들 스님마다 성불成佛하고/공자왈 맹자왈 한들 썩은 속유俗儒 득도하랴/입만 열면 국민 찾고 좋은 세상 만든다는 정치인에 누가 속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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