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카르페 디엠(Carpe diem)...

[공감신문 김정한 에세이] 얼마 전에 장사익 콘서트에 갔다 온 적이 있다. 가까운 객석에서 앉아 노래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 신선했다. 비가 왔지만 애절한 발라드풍의 노래보다 차라리 청양고추처럼 맵고 칼칼한 그의 노래가 귀에 감겼다. 그가 부른 "봄날이 간다"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단맛, 쓴맛을 다 맛본 예순다섯의 가객(歌客)이 부르는 노래에는 모두의 인생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코끝이 찡했다. 누구나 거쳐가야 할 삶의 전부가 물결에 출렁이듯 넘실거린다. 그의 노래는 생에 최고의 순간을 되새김질할 때에는 환하게, 굴곡진 마디를 넘어갈 때에는 눈가에 눈물이 고일만큼 촉촉해졌다. 

시인은 한 편의 시에 인생을 담아내지만 마찬가지로 가수는 3분 동안 한걸음 두 걸음 걷고 숨차게 달리다가 쓰러지던 순간들을 노래에 담는다. 그러니까 시인은 시가 인생이고 가수는 노래가 인생이 되는 거다. 듣고 있는 동안에 전율이 느껴질 만큼 깊은 울림이 주변을 꽉 채운다. 들으면서도 완전히 몰입이 되고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도 한다. 영혼을 모두 모아 노래를 부른다고 해야 할까. 

예술도 진정성과 자존감이 중요하다. 그리고 하나는 연륜이다. 한국문학의 거장 박완서 작가도 마흔에 소설 나목으로 데뷔를 했지만 장사익 역시 마흔다섯에 첫 발을 내디딘 소리꾼이다. 지금은 유명한 가객(歌客)이지만 장사익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무역회사, 보험회사, 제지회사, 가구회사, 카센터…. 30년 사회생활 동안 열대여섯 곳을 떠돌았다. 

그래서일까? 그의 노래에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묻어 난다. 노래를 듣노라면 별을 본 듯 반짝이는 울림이 있다. 그 간절하고 절박한 울림은 듣는 나에게도 투영이 된다.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글을 쓰게 만든다. 

내가 비운의 화가 고흐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도 작가의 생애가 불우함에도 그림 속에는 살아 숨 쉬는 듯한 맑은 영혼이 그림 속에 담겨 있어서다. 시인 보들레르는 "한 알의 밀알 꽃이 교회당을 향기로 가득 차게 했다"라고 표현했다. 감동을 주는 소리꾼은 호기심을 가득한 눈빛으로 순간을 탐닉했기에 기적 같은 오늘을 살고 있다. 그 어떤 삶이든 과정이 향기로 가득하며 끝도 좋을 향기를 머금은 결실을 안게 된다. 

물론 실수와 실패도 꿈을 이루는 과정이 된다. 결국 어떤 일을 해서 살아가든 쇼윈도적인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고 살아야 대단한 위치에 있지 않더라도 이름 세 글자 선명히 남길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나이 마흔여섯에 홍대 앞 소극장에서 노래를 해야 했던 늦둥이 소리꾼 가객(歌客), 재즈와도 아카펠라와도 너무 잘 어울리는 가슴으로 노래하는 가객(歌客), 어떤 노래를 부르던 긴 호흡으로 기름 짜듯 통곡의 목소리가 절절하다. 노래를 듣노라면 힘들었던 내 삶의 한 고비가 스쳐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찰랑이는 햇살처럼 기적은 늘 곁에 있지만, 항상 날개를 달아주지 않았다. 쳐다보면 숨이 막히는 어쩌지 못하는 순간처럼, 절박한 마음을 담아 간절한 행동을 보일 때 내 손을 잡아 주었다. 그 많은 눈부신 기회를 다 그렇게 보내버리고 후회를 한다. 늘 깨달음은 한 박자 늦게 찾아왔으니까. 

살면서 어려운 일을 만나면 눈앞에 캄캄해지기도 하지만 이렇게 뒤집어 생각하는 역발상의 지혜를 발휘하면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갈 용기를 얻게 된다. 바다 작용에 의한 변화를 겪고도 그 변화에 정복당하지 않고 존재하는 진주처럼 삶의 거친 파고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살아남는, 그 사람이 완성에 가까운 삶을 산 것이다.   

이탈리아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카르페 디엠(Carpe diem)/ 죽음을 기억하라, 이 순간을 즐겨라"

무엇을 하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여기, 이 순간(now and here)을 사랑하면 된다.
스스로를 감동시킬 만큼 최선을 다해본 사람은 안다. 행복이 무엇인지. 행복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안다. 정말로 최선을 다 했는지. 결과가 무엇이든 최선을 다했노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난다. 그리고 마음속에서는 만족 그리고 감동의 물결이 출렁인다. 

무엇을 하든 목적어는 행복이다. 행복의 기초가 되는 것은 자존(自尊)이다. 자존(自尊)을 영어로 표현한다면 "Self-respect" 스스로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존경한다는 의미가 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 

그러니, 꿈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자존감을 키워라. 그러고 나서 내가 무엇을 위하여 살고, 무엇을 위하여 죽어야 행복한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숱한 파고를 넘나들다 마흔다섯에 노래를 시작한 기적의 주인공, 무대에서 웃고 우는 멋진 가객(歌客) 장사익이 되고 싶다면 운명(destiny) 같은 꿈을 찾아 용기 있게 도전하라. 꿈을 향하여 푸른 날개 짓을 하라. 

꿈의 주인공은 먼저 도전하는 자의 몫이다. 넓은 창공을 향하여 힘차게 날아올라라.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멋지게 비상하라. 보이지 않는가. 저 너머에 운명(destiny) 같은 꿈의 손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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