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말을 걸다 - 데이비드 리틀필드 / 사스키아 루이스

(사진출처 : 인터파크 도서)
[공감신문 정세음칼럼]
 
“건물이 말을 한다는 것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우스운 일은 아니라는 
알랭 드 보통의 생각은 분명 옳은 것이다. 그 건물을 지우는 것이 
그곳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지우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희망이나 
부적절한 복수의 감정 때문에 그 집을 파괴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고등학생 때 동네 중국집에서 사장과 다투던 종업원이 중화용 식도로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있었다. 불과 몇 달 전에 짜장면을 먹으러 갔던 곳이었다.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삐까번쩍한 건물이 들어섰지만, 그당시 건물은 어딘가 음침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늘 꺼려지던 곳이었는데 막상 갔을 때 사장님 인상이 좋으셔서 ‘생각보다 괜찮은데?’라며 맛있게 먹고 온 기억이 있다. 텔레비전에서 익숙한 건물이 나오고 자막에 토막살인이 떴을 때 나의 충격이란. 현장 검증이 끝나고 종업원도 붙잡혀 뉴스도 잠잠해진 때, 호기심에 건물 3층에 있는 문제의 중국집 문앞까지 갔었다. 기분 탓인지 한없이 싸늘하고 무거운 기운 때문에 (어차피 문이 열리지도 않았겠지만) 버티지 못하고 한달음에 계단을 뛰어 내려왔던 기억이 난다. 문앞에서 누군가 “너가 올 곳이 아니야. 얼른 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얼마후 그 공간엔 교회가 생겼고 몇년 뒤엔 아예 고층 빌딩이 지어졌다. 암울한 기억을 가진 건물을 밀어버리고 세련되고 밝은 건물을 세운 것이다. 문득 그때의 건물을 떠올리곤 한다. 그 건물을 지웠다한들 과거의 흔적까지도 모두 없었던 것처럼 지울 수 있을까.
 
“흔히 황량하고 거친 풍경 속에 고립된 오브제들, 이것들은 폐허다. 
폐허는 로맨틱한 정신 속에 있는 매혹적인 유적과 같다.”
 
어릴적부터 오래된 건물을 좋아했다. 낡고 벗겨지고 떨어지고 세련되지 못한 건물이 왜 좋을까? 개인적인 기억 때문도 있지만 나는 오래된 건물이 어떤 힘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책에서 말하는 건물의 '목소리'가 내가 느끼는 ‘힘'인 듯하다. 알랭 드 보통은 건물이 말을 한다는 것은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우스운 일은 아니라고 했다. 맞다. 우스운 일이 아니다. 건물은 확실히 자신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 그 기운, 그 목소리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과거의 나는 건물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건물은 건물일 뿐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건물이 폐허가 되고 나서야 알아차리곤 했다. 내가 하루를 살아가면서 자고 일하고 먹고 쉬는 공간의 대부분이 모두 건물 안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나는 건물의 말을 무시해 왔던 것일 수도 있다. 
 
“머레이는, 한 공간의 목소리는 방문자들이 그 부지에 대한 인간적인 역사를 
상상해 낼 때 증폭된다고 강조한다.”
 
(사진출처 : 작가가 찍은 떼오띠우아깐)
멕시코에서 떼오띠우아깐을 방문 했을 때, 따가운 태양과 숨이 막히는 더위에 맥을 못 추고 있었다. 유적지의 크기는 너무나 방대했고 태양을 피할 곳도 없었다. 축 늘어진채 힘겹게 걷고 있던 나에게 친구 뻴리뻬가 한마디 했다. “넌 지금 고대인들이 걷던 땅위를 걷고 있는 거라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맞잖아? 고대인들이 걷던 땅 위에 내가 있는 거잖아? 뻴리뻬의 한마디는 더위를 물리쳐주진 못했어도 내가 이 공간의 목소리를 듣게끔 도와주었다. 
 
마추픽추에서는 더 강력한 경험을 했다. 당시 힘들었던 나의 마음을 누구도 위로해주지 못했는데 이번엔 사람이 아닌 마추픽추가 한마디 했다. “괜찮아. 지금 너가 하고 있는 고민 잠시 내려놔도 좋아.” 그 말을 들으니 놀랍게도 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사람들에게 마추픽추가 나한테 말을 했어!라고 말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마추픽추가 입이 어디있다고 말을 해? 힘들다더니 환청 들린 거 아니야? 정신차려!
 
물론 마추픽추에게 입이 달려서 위로의 말을 음성으로 전달한건 아니다. 내가 느꼈을 뿐. 사람들이 믿지 않아도 좋다. 언젠가 경험하고나면 알게 될테니까.
 
“분명히, 건축물의 목소리나 생명이 건축물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것은 순수하게 건축적인 공간 자체에서가 아니라 표지, 습기, 냄새, 한 공간의 잡동사니 안에 존재한다. 육체적인 성질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면 목소리는 꼭 원자 두께만 할 것이며, 대충 청소를 해도 지워질 수 있다.”
 
인간은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건물의 품안에서 땀, 냄새, 분비물, 숨을 배출하며 뚫고, 메꾸고, 칠하면서 또다른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공간 안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온기를 뿜어내기도 하고, 연인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며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초감각적 기운(흔적)을 계속해서 남긴다.
 
건물은 사람을 먹고 산다. 사람의 흔적들이 모여 시간의 응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목소리가 생긴다. 건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결국 사람의 흔적을 읽어내는 것과 같다. 
 
“만약에 사람에 의해 일상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 주변의 건물과 관련된 모든 일은 묵음으로 일관될 것이다.”
 
책은 폐허가 된 건물을 재건축 하여 새로운 건물로 탄생한 사례들을 한데 모았다. 이때 건축가들은 어떤 자세로 임해야하는가? 건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냥 레고 놀이 하듯 단순히 건물을 부수고 짓는 일은 굉장히 폭력적이다. 콘크리트 덩어리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하나의 생명으로 대해야 한다. 재차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이상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우스운 일은 아니다. 건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비단 건축가에게만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또한 건물의 목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사진출처 : www.doop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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