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남자와 여자, 싸움의 필살기가 다르다.

[공감신문 지해수칼럼] 어느 날 티비에서 20대 초중반 남자 친구들끼리 하는 대화하는 장면을 봤다. 그들은 각자 좋아하는 여성 스타일을 이야기했다. 한 친구가 ‘육덕 진’ 타입이 좋다면서 특정 여자 연예인을 이상형이라고 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친구가 손사래를 치며, 이해할 수 없다며 완전 싫다고 했다. 왜 싫냐, 고 묻자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싸우면 내가 질 것 같아.”

(킴 카다시안)

처음에는 하하 뭐야 엉뚱하네, 하고 넘겼었다. 근데 저 남자만 엉뚱한 게 아니었다!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에 다소 ‘육덕 진’ 느낌의 여자 연예인 사진이 뜨면, 로우킥으로 한 대 맞으면 바로 사망할 것 같다느니, 힘이 세서 다 이길 것 같다느니, 한 마디로 ‘저 여자랑 싸우면 난 지겠다’는 익숙한 내용의 댓글이 의외로 많은 게 아닌가! 넘쳐 오를듯한 가슴이나 옹골찬 허벅지 따위를 예찬하는 글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상당히 의외였다. 
그래서 궁금해진 거다, 남자들이 왜 저런 생각을 하는 지. 남자들의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여자가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왜 싸움의 대상이 되는지! 진짜 여자랑 치고 박고 싸울 것도 아니면서! 막상 ‘여자 때린 적 있어?’ 라고 물어보면, 정색하며 ‘여자는 안 때려’라고들 말하면서 말이다. 
만일 여자들에게 비슷한 맥락으로 물어본다고 치자. 육덕 진 여자에게 빼빼 마른 남자 어떠냐고. 만일 그녀의 타입이 아니라서 부정적인 대답이 나온다면 그 이유는 아마 이럴 것이다.
“같이 다니면 내 덩치가 더 커 보일 것 같아.”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 이 대답은 이해가 되고 남자들의 저 대답은 도통 이해가 안됐었다. 그러다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본질적으로 싸움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자니 그러하며, 남녀의 싸움의 기술이 각자 다르기 때문에 또 그러하다. 역시 세상 모든 것엔 다 이유가 있었어! 

우리는 왜 싸우는가. 그래, 우린 왜 싸우는 걸까? 싸우지 않으면 평화롭고 좋은데 말이야.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그냥 막 치고 박고 싸운다. 나를 증명하고 상황 파악을 하는 것이다. 본능적이다. 또 싸워서 이겨야만 뭐든 차지할 수 있던 유전자적 습성 때문이다. 안 싸우면 그런 거라도 봐야 직성이 풀리나보다. 그래서 스포츠 경기를 본다. 보기만 하나, 보상이 있어야 되니까 내기를 걸어 돈을 딴다. 여기에서의 싸움은 이기기 위하여, 또는 이기기 위해 강해지려는 훈련의 수단이다. 하지만 연인과의 싸움은 다르다. 

싸울 때 우리가 가지는 감정은 대부분 ‘분노’이다. 분노는 ‘희로애락’ 중 하나로 인간의 가장 흔한 감정 중 하나다. ‘화’가 나는 이유? 한마디로 너!, 아니 내 맘대로 안 되서, 아니 사실은 자기 자신을 보존하려는 감정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확신한다, 나는 이러하다, 라는 신념 따위를 보존하려다가 침범 당하면 거기에 보이는 반응이 분노다. 그러니 연인 사이에서 ‘분노’는 활화산처럼 폭발이 빈번할 수밖에. 친구, 직장 동료, 경비 아저씨, 상대 팀도 아니고 너니까! 넌 나고, 난 너라고 생각했는데, 너만은 내 마음을 알아줄 줄 알았는데, 네가 그걸 건드리니 말이다. 

우리는 상대방을 사랑하므로 그 혹은 그녀에게 나의 생각을 설득시키려고 든다, 언성을 높이면서. 물론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 조금 양보할 생각도 있긴 하지만 분노의 감정에 휩싸였을 때는 쉽지 않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화가 풀린 후 이야기 하는 것도 방법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이 만일 회피라는 습관성을 가지게 된다면 문제가 된다. 싸움은 누구에게나 스트레스다. 가끔 보면, 같은 여자지만 참 피곤한 ‘쌈닭’같은 여자애들이 있다. 내가 남자라도 저런 여자는 못 사귈 것 같은. 근데 그게 아니고서야, 서로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진 후에도 이야기를 하길 회피한다는 것은 ‘싸울 생각이 없다’가 아니라, ‘더 이상 관계에  진정성이 없다’가 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남녀 간의 싸움은 처음에 살펴본 남성적 본능 특유의 싸움과는 목적이 다르다. 이건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닌, 서로를 알기 위한 싸움이다. 서로 공생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기에 꼭 필요한 것이며, 여기서 승패는 큰 의미가 없다. 
진정성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사실 남녀 사이에 싸울 일이 별로 없다. 아직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연인과 싸울 필요가 있는가? 심각한 고가의 물건을 줬다 뺏고 이런 게 아니라면 별로 싸울 일이 없을 것이다. 더 이상 그(그녀)와 시간을 공유할 맘이 없기 때문에 나를 설득시킬 필요도 없으며, 제발 이런 행동만은 피해달라고 절충할 필요도 없다. 그냥 ‘니 알아서 해’라고 내버려두면 된다. 싸울 열정은 관계가 어느 정도 뜨끈뜨끈해야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남녀 관계, 더 나아가 마음이 있는 관계(가족, 친한 친구, 형제 등)에서의 싸움의 감정은 처음에는 분노였다가 대부분은 ‘속상하다’로 끝난다. 상대방을 아끼기에 내 분노를 보여준 게 근본적으로 마음이 아픈 거다. 이런 ‘마음이 있는 관계’라면 아마 크게는 아니더라도 종종 조금씩 드문드문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계속 변하므로, 공생을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또 알려야 하니까.

자, 싸움의 이유를 알았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매력적인 여자를 보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까지 생각하니까 ‘저 여자랑 싸우면(저 여자 때문에 화가 나면)’까지 가정한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흔한 특기인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기’다. 굳이 확대 해석하자면, 마치 ‘골반이 큰 여자’=‘나중에 아이를 낳기 유리한 여자’라고 유전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그럼 다음으로. ‘질 것 같아’를 살펴보자. 질 것 같아, 의 이유는 몸집이 커서였다. 여기서 이제 남녀 간의 싸움의 기술차이를 보겠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남자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표출하는 방식 자체가 좀 육체적이고 폭력적이다. 어쩔 수 없다.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의학 논문들까지 뒤져보았는데 아주 간단하고 쉽게 그 내용을 말하자면, 일반 남성들은 강한 분노의 표현이 폭력이며, 비교적 완화된 형태가 음주, 약물 복용, 과식이라는 거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만 보아도, 혈기 왕성한 남고 아이들이 이소룡 등을 따라하며 논다. 극중 현수(권상우 분)는 달리기와 농구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우식(이정진 분)의 눈에 띈다. 현수가 거기에서 상대방들을 이겼기 때문이다! 경쟁해서, 싸워서, 이긴 거다! 이게 남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이래야 분위기 파악이 되고 자기 위치가 어디쯤인지 알아야 서로 편해진다. 공생을 위해 인류가 택해 온 방법이다. 그러니 여자를 볼 때도, ‘저 여자랑 싸우면 질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들은 그렇게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를 파악하고, 친구를 사겨왔으니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중에서)

남자들 방식이 너무 무식해 보인다고? 글쎄, 여자들 방식도 그리 세련된 것만은 아니다. 남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자, 싫어하는 것, 어쩔 줄 몰라 하는 그것! 바로 여자의 ‘눈물’이다. 
이 글을 읽는 남성 독자들의 일부는 생각만 해도 짜증이 날 것이다. 그렇다, 눈물을 무기로 삼는 여자들이 있다. 여자들에게 이것이 무기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남자들이 치고 박고 싸울 때, 여자들은 어떠했나? 좋아하는 아이돌 오빠 영상을 보며 함께 소리를 꺅꺅 질러댔고, 그가 아프면 함께 눈물을 흘렸으며, 옆 반 여자애가 맘에 안 들면 같이 씹으며 미워해주었다. 우린 그렇게 자기소개를 하고, 서로를 파악하고, 친구를 사겨왔다. 이게 여자의 방식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은주가 현수에게 먼저 호감을 보인 것은 그가 달리기를 달해서가 아니다. 엘튼 존을 아는 그 와는, ‘감정의 전이’가 될 것 같아서다. 그 전이의 과정 중 단연코 눈에 띄는 것은 ‘눈물’임을 여자들은 안다. 
어릴 때도 놀다 싸워서 누구 하나가 먼저 울면, 걔가 착한 애다. 울면 장땡, 을 남자들은 잊었을지 몰라도 여자들은 아니다. 여자들은 일평생 울어도 된다, 고 배웠기 때문에. 
남자들이 왜 우는 여자에게 약한가? 왜 어쩔 줄 몰라 하는가? 그건 그 공격에 방어하는 기술을 익히지 못해서 그런 거다. 여자들은 이 말을 잘 봐야 한다. 우는 여자에게 약한 거지, 우는 여자에게 마음이 약해지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거다. 남자들끼리 싸울 때는 이딴 새끼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들 세계에서 그건 기권한다는 건데, 여자들의 눈물은 기권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는 거다. 그래, 그때까진 이게 여자들의 필살기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남자가 어느 순간 눈물에 대한 방어술을 익힌다면? 혹은 그 방어술을 익힌 남자를 만난다면? 그건 절대로 그녀의 필살기가 될 수 없을 거다. 
위에서 말했듯이, (마음이 있는) 남녀 간의 싸움은 승패를 위한 것이 아니므로 굳이 서로에게 필살기를 쓸 필요가 없다! 그러니 남자는 여자를 이기려 힘을 가해서는 안 되고, 여자는 남자를 이기려 일부러 눈물을 흘려선 안 된다. 그게 공평한 거고 정직한 거다! 

아이러니한 것은 남녀가 서로 다른 필살기에 대하여, 어우 별로야, 라고 하면서도 막상 필살기가 비슷한 상대방을 보면 완전 질색한다는 거다. 만일 ‘육덕 진’게 아니라 헤비급, 험상궂은 분위기에 나보다 싸움을 엄청 잘하게 생긴 여자라면? ‘꽃미남’이 아니라 나보다 더 소녀감성으로 펑펑 잘 울게 생긴 남자라면? 대부분의 남녀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을 지도. 우린 서로 다른 기술력(?)에 끌리는 거다. 

그렇다면 이 불가피한 싸움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기술을 쓴단 말이지? 
우리는 상대방이 어떻게 하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줄지 파악해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다. 또 상대방이 무슨

지해수 칼럼니스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지 잘 듣는 것도 핵심이다. 싸움은 길어지면 좋지 않다. 서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파악하는 것이 싸움을 잘 하는 방법이자, 의미 있는 싸움으로 가는 길일 것이다. 그 에너지가 과연 아깝지 않도록. 
싸움을 제대로 마친 뒤에는 수고한 서로를 쓰다듬어 주거나 맛있는 걸 먹어야 된다!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맙고 수고했다고. 1 더하기 1은 어차피 1, 결국 어차피 우리는 한 팀이니까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초등학교 때 날 좋아했던 애들은 일부러 날 열 받게 했던 것 같다. 막 괴롭히구! 백이면 백, 다 반응해주는 내가 재밌었던 건가. 아니면 자기를 그렇게 알리고 싶었나. 사람들이란, 정말 다들 너무 귀여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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