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문화 해설을 위해 4계절 궁궐을 드나들다...

진선문 앞 노란 영춘화

[공감신문] 창덕궁의 문화 해설을 위해 4계절 궁궐을 드나들다 보면 각 계절마다 궁궐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느낀다. 개구리들이 깨어난다는 3월의 경칩이 지나면 겨우내 궁궐에서 숨죽이고 있던 꽃들이 가지 끝에 매달린 꽃망울을 터뜨리고자 서서히 기지개를 편다. 창덕궁 봄꽃들의 봄맞이 미소는 은근하면서도 화려한 미소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꽃들의 첫 미소는 ‘임금님께 나아가 바른말을 올린다’는 진선문 앞쪽 조그마한 꽃밭에 마치 개나리로 착각할 만큼 노랗게 다른 꽃들보다 제일 먼저 피어나 궁궐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꽃은 ‘영춘화’다. 영춘화는 ‘봄을 맞이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관상용 꽃으로 일본에서는 매화처럼 꽃이 빨리 핀다고 황매라고도 하며 서양에서는 겨울 ‘자스민’이라고 부른다.

왕의 사후 나라를 이끌어가는 후계자를 왕세자라고 한다. 왕세자 또는 왕세자가 거처하는 곳을 해가 떠오르는 왕궁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동궁, 동양철학 오행에서 춘(春)’은 동쪽에 해당되어 춘궁[春宮]이라고도 한다. 춘궁이 거주하는 전각으로는 성정각이 현존하고 있으며 지금은 사라진 정조 때의 중희당, 성종 때의 저승전 등이 있다. 성정각은 세자가 머무르면서 공부하는 곳으로 순조임금의 장남인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시 기거하면서 사용하던 곳이다. 편액 글씨는 정조 어필이며 비가 내려서 기쁘다는 ‘희우루’와 ‘봄을 맨 처음 알린다’는 뜻을 가진 ‘보춘정’ 두 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 것이 특이하다. 선원전 앞마당의 동쪽에서 양지당으로 통하는 문 이름도 봄을 알리는 문 보춘(報春)’문이다.

성정각의 보춘정과 희우루 편액, 양지당의 보춘문

매년 궁궐의 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웅성웅성 모여들어 렌즈에 고운자태를 담기에 여념이 없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꽃이 있다. 바로 성정각 자시문 밖의 ‘고결한 마음’을 의미하는 꽃 홍매화다. 선조임금 때 명나라가 보내 주었다는 높이 4m의 여러 겹의 홍매가 피는 만첩홍매화인 성정매는 세월의 무상함에 원줄기는 늙어 없어져 버렸고 지금은 손자의 손자뻘로 보이는 새로운 줄기와 가지가 자라고 있다.

자시문과 만첩홍매화

낙선재 뒤편 언덕의 만월문 안쪽과 연경당의 안채 뒤편에는 커다란 돌배나무가 있다. 말없이 백년 넘게 제자리를 지켜온 만월문의 나무는 둘레가 한 아름 반 정도의 키가 20미터를 훌쩍 넘고 봄이면 엷은 하얀 꽃으로 단아한 멋을 내면서 바람이 불면 꽃잎을 자연스레 떨어뜨리는 장관을 연출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미공개지역에 위치하여 꽃필 때 그 아름다움의 정취를 지금의 후원매표소 먼발치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봄꽃 향연의 백미를 바라보고 감상 해야만 한다. 

낙선재 뒤 만월문 앞 돌배나무

선조실록에는 함경도 관찰사 홍여순(洪汝諄)이 장계를 올렸는데 "부령부(富寧府)의 유생 강익창(姜益昌)의 집 앞에 있는 돌배나무 한 그루가 첫 봄에 가지마다 가득히 꽃이 피어 열매가 맺히더니 7월에 비바람이 번갈아가며 일자 그 열매와 잎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8월 10일부터 다시 꽃과 잎이 피어 봄처럼 만발 하였습니다“라는 기록이 보여 그 시절에도 기상이변 있었음을 기록으로 보여주고 있다.

좌: 승화루 옆 수양 벚꽃나무 3월 개화 모습, 우: 2016년 만개한 수양 벛 꽃

궁궐의 꽃들의 미소는 춘 3월부터 지속적으로 피고 지는 것이 특징으로 언제보아도 아름답고 하려하다. 소 주합루라고도 하는 승화루 옆의 수양버들 벛꽃은 겨우내 수양버드나무처럼 실가지를 땅 아래로 늘어뜨리면서 화사한 미소로 곱디고운 아가씨의 자태를 관람객들에게 선사한다. 봄 되어 만개하면 가지에 늘어진 꽃들의 미소가 마치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듯 장관을 이룬다. 단지 아쉬운 점은 앞쪽의 커다란 나무들로 인하여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 장관을 볼 수가 없다.

관람지 3월 생강나무

관람지의 생강나무는 봄을 제일 먼저 알리는 창덕궁의 화신이다. 매년 봄이 오면 나무는 노란 꽃들의 민낯을 들어내어 상춘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진 속 3월 초순의 생강나무는 미완의 꽃봉오리와 속살을 정자에게 어우름으로 내주고 있다. 특별히 이 나무 앞은 사계절 내내 포토 존으로 뒤 연못과 주위의 정자를 배경으로 촬영하면 참 아름다운 사진이 나온다.

후원 입구를 출발하여 해설 시작하기 직전 왼편에 가정당 입구 작은 문이 위치하고 있다. 미공개지역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어져 맑은 공기와 새소리가 청아한 곳으로 주위의 자연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한옥 앞마당은 통상 마사토를 깔아두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 앞마당에는 잔디가 잘 자라고 있으며 그 사이사이를 뚫고 “감사하는 마음”의 꽃말을 갖은 자주색 민들레가 이곳저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미소 짓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곱게 자라 예쁜 자태를 뽐내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귀화식물인 서양민들레가 많지만 두 겹의 꽃받침이 모두 곧게 서 있는 토종민들레가 여기서 자란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가정당마당 잔디와 잘 어울려 피어난 자주색민들레

성정각의 성정은 유교 경전 대학에서 학문을 대하는 정성과 올바른 마음가짐을 뜻하는 성의(誠意) 정심(正心)이라는 말에서 가져왔다. 작금의 어려운 우리나라에도 국민 모두가 ‘성이정심’으로 행복한 봄이 왔으면 좋겠다. 바야흐로 창덕궁 관람지 생강나무로부터 시작되는 화려한 미소를 머금은 꽃들의 향연이 펼치는 봄이 왔다. 4월의 궁궐 답사는 이야기로 듣는 해설보다는 직접 눈으로 즐기는 눈요기가 제격이다. 꽃나무 사이로 나뭇잎이 붙기 전 누군가와 함께 손잡고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소요할 수 있는 사람들과 궁궐로의 봄나들이를 적극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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