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의 자서전 - 앤 카슨

빨강의 자서전

자기가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어린 소녀들이 많을까? 

하지만 내 경우엔 맞아 게리온이 개에게 말했네 

그들은 절벽 위에 앉아 있었네 개가 그를 기쁘게  바라 보았네”

[공감신문] 평범한 인간은 각각 두개의 팔다리를 가졌고, 큼직한 날개는 천사들의 유물로 여기며, 빨강색 피부를 가지지 않았다. 만약 주변에 날개를 가진 아이가 태어났다면 병원에 보내져 날개 제거 수술을 받거나, 여섯개의 팔다리를 가졌다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사회에서 날개달린 천사는 성스러운 존재이지만 날개달린 인간은 괴물이 된다.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자고 하면서 다른 것을 고치고 배제 하는 실수를 범할 때가 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는 항상 다수와 소수의 문제로 나뉜다. 나는 두개의 팔과 두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으며 날개가 없으니 괴물이 아닌걸까?

게리온의 형이 미국 달러 지폐를 주워서 게리온에게 주었다. 낡은 전투 헬멧 조각을 주워서 감췄다. 

그날은 그가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게리온은 이 작품에 내적인 모든 것들을 

특히 자신의 영웅적 자질과 공동체에 큰 절망을 안겨줄 이른 죽음에 대해 썼다. 

외적인 것들은 멋지게 생략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꽤 자주 내가 괴물같다고 느낀다. 물론 외형으로는 더할나위 없이 ‘정상’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날개를 가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괴물이라고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남들과 다르게 어딘가 이상한 것 같다고. 그건 날개의 유무와는 별개이다. 괴물이라는 단어가 조금 거북하다면 말을 바꿔보자.

“너 진짜 특이하다.” “참 별종이야.” “또라이같아.”

나에겐 정상인 것들이 타인에겐 특이한 것이 될 때가 한번쯤은 있을 테다. 나의 경우, 대학교에 들어가고나서 옷속으로 날개를 숨기는 게리온처럼 날개를 내 안에 숨겼었다. 십대 때의 당당함은 이십대가 되고나서 한순간에 사라져버렸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살 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에 좋아하는 척을 하고, 싫어하는 것에는 싫어하는 척을 하면서. 다수와 다른 것은 특이하고 이상한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에 굴복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 하피 / 출처=네이버 블로그

다른 인간과 대립함으로써 자신의 행위들이 명확해진다.”

게리온의 관계는 너무나 제한적이다. 아버지의 자리는 희미하고, 형은 게리온을 멍청이라고 부르며, 어머니만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게리온을 대한다. 헤라클라스도 게리온이 헤라클라스를 사랑하는 만큼은 아니어도 게리온을 좋아한다. 괴물이든 말든 그게 어때서 라는 식이다. 우리는 타인과 만나면서 나 자신을 규정해 나간다. 내가 어떤 성향을 가졌고 어떤 것을 좋아하며 싫어하는지, 타인을 마주하고나서야 명확해진다.

중학생 때 내가 잘 그리던 그림이 있었다. 귀여운(!) 괴물. 나는 예쁜 그림을 그리는데 소질이 없었고 일단 재미가 없었다. 그런데 내 그림을 보던 친구들은 “징그럽다”며 한소리 하곤 했다. 게다가 사춘기 시절 친구들은 꽃보다 남자를 볼 때 나는 이토 준지 만화책을 봤었는데 그게 또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왜, 이토 준지가 어때서! 대다수의 친구들은 순정을 주제로 수다를 떨었지만 나에겐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었다. 친구들과 마주하니 점점 더 내가 명확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내가 이상한걸까? 한동안 예쁜 그림을 그리는척 했지만,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예쁜 그림’은 완성되지 않았다.

게리온은 괴물이긴 해도 사람들 앞에서 매력적일 수 있었다.”

어느날 놀랍게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나타났다. “너 원래 징그러운 애야.” 언뜻 기분 나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좋았다. 게리온이 앙카시에게 날개를 들킨 것처럼, 아니 발견된 것처럼. 그 사람이 나의 날개를 발견했고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 “그게 너의 매력이야.”

맞아, 나는 원래 징그럽잖아! 이렇게 인정 하고나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없이 낮았던 자존감이 상승하고, 사람들이 나의 날개를 ‘개성’으로 봐주었다. 여태까지 ‘날개’를 숨겨온 내 자신이 무색할 만큼, 날개는 더이상 구시대의 유물이 아닌 나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함이 되었다. 특이와 특별의 어감은 미묘하게 다르지만 알고보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이상한게 아니다, 우린 특별한 존재이다.

천사 / 출처=바둑월드

우린 경이로운 존재야, 게리온은 생각한다. 우린 불의 이웃이야. 서로 팔을 맞대고, 

얼굴엔 불멸을 담고, 밤을 등지고 나란히 서 있는 그들을 향해 시간이 돌진하고 있다.”

우아라스 북쪽 산지에 있는 주쿠 마을 주민들은 화산을 신으로 숭배 했고 사람들을 그 안에 던지기도 했다. 하나의 시험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화산 내부에서 온 사람을 찾고 있었고, 돌아온 자들을 현자와 성자로 여겼다. 친구 앙카시는 돌아온 자들은 날개 달린 빨간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고 말한다.

날개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앙카시의 말에 게리온은 결심한다. ‘이건 앙카시를 위한 거야.’ 그는 아래로 멀어져가는 땅에 대고 외친다. ‘이건 우리의 아름다움의 기억이다.’ 그는 태고의 눈에서 모든 광자들을 쏟아내는 이칸티카스의 흙으로 된 심장을 내려다보며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다. 사진 제목은 ‘사람들이 간직하는 유일한 비밀.’ 여태껏 숨겨온 날개를 이용해 날아오르는 게리온. 날개 달린 빨간 사람은 이곳에선 성자가 된다.

누군가에겐 헤라클레스가 게리온을 죽인 영웅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소 떼를 빼앗기 위해 게리온을 죽인 살인마라고 생각 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옳은 수식어인가. 서문에 ‘어느 날 영웅 헤라클라스가 바다를 건너와서 소떼를 차지하기 위해 그를 죽인다.’는 문장은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젠장 누가 영웅이고 괴물인 건데! 그걸 누가 규정할 수 있느냔 말이다. 어떤 존재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는건 절대적일 수 없다. 늘 상대적이다. 그러니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너무 괘념치 말것을 당부하고 싶다. 괴물도 얼마든지 매력적일 수 있으니.

여자는 잠시 게리온을 살펴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 하지만 그때 난쟁이가 피아노를 벽으로 미는 

바람에 게리온은 그녀의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 - 괴물이 빨강인걸 누가 탓할 수 있겠어요?”

당신이 날개를 가지고 있다면, 날개를 부러뜨릴 것인가 하늘로 날아오를 것인가. 우리는 모두 괴물이며 영웅이다. 자신에게 어떤 가치를 부여할 것인지는 오로지 본인에게 달렸다. 우리 모두 우리들의 날개를 부러뜨리지 않고 하늘로 비상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

출처=clipartfest.com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