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모든 발달은 상호작용에서 먼저 나타나고 내면화되어 개인의 변화로 이어진다” - 비고츠키 

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지해수칼럼] 나란 존재가 이 세상에 있구나, 라는 걸 지각할 때부터 쭉 들어왔던 말이 있다. 
‘넌, 참 끼가 많구나.’
사진과 음악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컸으니, 두 분의 지인들이 모이면 매일이 ‘끼 잔치’였다. 그 분들로부터 이 말을 계속 듣고 커온 거다. 그래서 오히려 끼가 뭔지 몰랐고 ‘밥’처럼 당연한 거라 별로 안 궁금했었다. 그냥 나처럼 나대기 좋아하는 성격 같은 것이려니, 생각했다. 이를 테면 반장선거에 나가고 이런 거? 물론, 그건 끼가 아니었다. 
성인이 된 후, 아니 정확히 ‘여자’가 된 후에도 똑같은 얘기를 종종 듣게 되었다. 근데 이건 별로 좋은 뜻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연예인도 아닌데, 심지어 다 큰 여자가 끼가 많다는 걸 어느 남자가 ‘자기 여자’로 달갑게 생각하겠느냔 말이다. 그래서 궁금해 진 거다. 도대체 ‘끼’란 무엇일까. 아니, 내가 진짜 맘에 드는 사람한테 맘먹고 제대로 ‘끼 부리는’ 걸 보지도 못했으면서 왜 나한테 끼가 많다고 하는 거지? 그러던 중 친구와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길을 걷던 내 자신을 보며 문득, ‘끼’가 뭔지 알게 된 거다! 그건 바로 표정! 표정이 많은 거다. 

길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조금 오랫동안 보는 건 이상해서였다. 나 혼자 ‘표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혼자 튀었던 거다! 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주변 사람들을 보는 게 별로 재미가 없다. 스마트폰 때문만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다들 무표정이다. 뭐가 그리 무미건조한 지! 그렇게 얼굴 근육을 쓰지 않다가는 전부 굳어버릴 것만 같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된 건지도 모른다. 그 틈에서 나 혼자 표정이 계속 바뀐다. 친구에게 온 문자 메시지 때문에, 지금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노래가 누군가를 상기시켜서, 방금 지난 지하철역에서 있었던 추억 때문에! 한 시라도 내 감정과 얼굴의 표정은 쉬지를 않는 거다. 이게 왜 끼냐고? 이건 100% 끼가 맞다. 

표정이 거의 ‘희로애락’ 겨우 네 가지 뿐인 A와 표정이 상당히 다양한 B, 두 사람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준다고 치자.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화자는 거의 B만 보면서 이야기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A와 달리, B는 계속 표정이 바뀌며 화자를 더욱 열정적으로 만들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화자가 하고 있지만, 정작 더 재밌는 건 A,B가 아닌 화자 자신이다. B의 다양한 리액션이 화자를 신나게끔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말할 맛 나는군!’ 

결국 ‘자극에 의한 반응’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호 작용을 하며 살아간다. 서로에게 크고 작은 자극을 주고 또 반응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의 ‘남다른 반응’은 굉장히 색다른 재미다. 
‘내가 이렇게 하면 쟨 어떻게 나올까?’, ‘이번엔 요렇게 해볼까, 그럼 또 어떤 표정을 지으려나?’, ‘내가 이렇게 하면 좋아할까?’ 
자꾸만 궁금해진다. 호기심! 이것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굉장히 무서운 것이다. (심지어 호기심은 인류의 기원이 아닌가? 에덴동산의 선악과!) 호기심이 드는 대상은 자꾸만 보고 싶고, 건들고 싶기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다양한 표정, 다양한 반응, 즉, 끼다. 
뭔가 의도가 빤히 보이는 농염한 표정을 짓거나 교태가 섞인 말투를 쓰면 우린 보통 ‘끼 부린다’고 관용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진짜 끼를 부리는 건, 결국 표정(리액션)이 디테일하거나 남다르다는 거다. 

내가 아주 잠깐이라도 이성으로 느꼈던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끼가 많았던 것 같다. (끼를 잘 부린다는 게 아니라 많은 거다!) 그들에겐 내 예상을 빗나가는 대답과 표정들이 있었다. 내가 글을 쓰다 보니 더욱 그런 것에 민감한 걸 수도 있다. 특히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 날아오면 그 순간 확 매력을 느꼈었다. 그래서 자꾸만 더 대화하고 싶어졌던 걸지도. ‘이 사람 뇌 속엔 뭐가 들었지?’라는 호기심이 들면서… 뇌와 가장 가까운 그의 눈을, 자꾸만 바라보고 싶었던 거다…….   
얼굴에만 표정이 있는 게 아니다.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사람의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 저녁시간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어떤 이는 지친 일과를 끝내고 집에 들어가고 있구나, 또 어떤 이는 드디어 기다리던 퇴근 시간 되어 데이트를 하러 가는 구나, 보인다. 그 뒷모습에 담긴 표정들이 말해줘서, 보인다. 

끼 많은 사람들은, 그러니까 표정이 다양한 사람들은 예술 활동도 더 잘할 수 있다. 왜 고전이 아직까지 살아 남아있는가? 태초부터 오늘날까지 인류가 느껴온 첫사랑에 대한 열병은 어느 정도 비슷해왔을 거다. 그 와중에, <첫사랑>이라는 명작을 쓴 이반 투르게네프 같은 작가는, 그 소재에 대한 자기 마음의 표정을 아주 세밀하고 섬세하고 아름답게 은유하며 써내려 간 거다. 유디트, 비너스, 예수 등 저명한 ‘소재’를 가지고도 예술가들은 저마다 다양한 표정을 지어왔다. 

<클림트와 아르테미시아 두 화가가 그린 유디트, 굉장히 상반된 분위기다.>

아까 위에서 ‘자극에 의한 반응’이란 말을 썼는데, 사실 이건 배우들이 하는 연기의 사전적 정의이기도 하다. 연예인들은 우리가 아는 최고로 끼 많은 사람들이다. 연기력-끼, 혹은 가창력-끼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끼를 활용하는 이와 그렇지 못한 이의 차이가 이러할 순 있다. 
어떤 배우들은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우울하고, 지쳤을 때의 표정이 다 똑같다. 다른 작품에 들어가서 캐릭터가 변해도 똑같다. 심지어 목소리 톤, 눈빛, 뒷모습의 표정도 큰 차이가 없다. 끼가 없거나, 혹은 아직 낯설어서 끼를 잘 활용하지 못한 것이다.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많은 아이돌 가수들이 데뷔 전에 무대나 뮤직비디오에서 활용할 표정들을 연습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게 대중들의 눈엔 보인다. 저 사람이 진짜 ‘리얼’ 치명적인 사람인지, 치명적인 ‘척’ 하는 건지. 저게 연습한 섹시함인지, 그냥 순간적으로 나오는 색(色)기인 지 말이다.  
끼가 있는 연예인들은 비슷한 춤 동작, 캐릭터 연기 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더라도 디테일이 남다르다. 우리를 항상 놀래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끼쟁이들은 처음엔 우리의 정신을 번쩍번쩍 들게 하다가, 점점 궁금하게 만들고는, ‘오, 너랑 나랑은 다른 세계 사람이야’라면서 소외시킨다. 그래서 대중들은 그를 욕을 하기도 한다(무슨 정신인지 모르겠다며). 그 다음엔? 그 끼쟁이에게 빠져서 허우적대는 거다! 이만큼 재미있는 인사(人士)가 또 없더라는 말이다. 이젠 그 끼쟁이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이 다 궁금해지는 거다. 똑같은 지구별 아래, 지금 이 순간, 넌 어떤 생각을 하는 지..... 어서 네 자유로운 SNS에 퐁당퐁당 돌을 던져주란 말이다. 파장은 네 예상대로 퍼져나갈 터이니, 아니 그래 줄 테니까, 조종당해 줄 테니까! 

그럴 수밖에. 우리는 매순간 ‘당신’이 궁금한 생물체들이 아닌가. 남자 여자 모두, 서로를 만족시키는 것을 욕망하는 존재들이다. 서로의 반응을 통해, 어느 카테고리에 한 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능력을 확인하는 받는 것이다. 
당신 머릿속에 ‘나랑 정말 침대에서 잘 맞았어’라고 생각했던 상대 한명을 떠올려보라. 분명 그 사람은 당신의 움직임에 남다른 반응, 또는 그러한 표정들을 보였을 것이다. 거기서 당신은 스스로에게 더욱 만족감을 느낀 것일 지도. 

이런 다양한 표정은 인류가 발전하는 데에 있어 굉장한 영향을 끼쳤다. 아니, 이 표정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지구별 가장 상위 포식자로 군림할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아기의 섬세한 변화를 눈치 채고 감탄해 주는 것, 바로 이것이 인간과 다른 포유류를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인간만의 상호작용이다. 인간의 어머니는 끊임없이 아기의 변화에 감탄하며 그 사소한 변화를 반복하게 만든다. (중략)
한마디로 아기는 ‘엄마의 감탄’을 먹고 자란다. (중략)
엄마는 자신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아기의 변화를 수없이 감탄하며, 이를 확 끌어올려 아기의 발달을 가능케 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김정운 저)> 중에서)

그렇다. 이 책에서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갓 태어난 포유류 중, 인간만이 유일하게 엄마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 다들 어미젖 정도는 찾는데 인간만이 겨우 그것도 못한다! 그래서 엄마들의 감탄이 시작된 거다. 이 아무것도 못하는 핏덩이가 쌔근쌔근 잘 자거나, 트림을 잘 하거나, 웃거나, 잼잼을 잘 하거나, 도리도리를 잘 하거나, 똥을 잘 싸거나..... 그냥 전부 감탄한다. 아기에게 엄마는 세계의 전부다. 엄마가 웃으면 세상전체가 웃는다. 엄마는 당연히 아기가 더 잘 할수록 더 많이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기는 더욱 발전을 거듭한다. 김정운 박사는 감탄은 ‘인간만의 욕구’라고 말했다. 우리와 지능이 엇비슷한 원숭이 과들도 새끼일 때부터 지 몸을 가눌 수 있었기에, 어미가 그리 감탄할 필요가 없었다. 그게 우리 인간과 갭이 벌어지게 된 이유라는 거다. 
우리는 이처럼 서로에게 반응하며 행복을 느끼는 본능에 의해, 눈부신 문명의 발전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니 사실 끼 많은 배우자를 맞으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왜? 아마도 그 상대방은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의 아이에게도 남다른 표정과 감탄을 보여줄 것이기에. 평범한 아이들 틈에서 혼자서 질 좋고 영양이 듬뿍 담긴 이유식을 먹고 크는 거랑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 뿐인가. 원래 사랑은 받는 것보다 해주는 것이 더 큰 기쁨! 당신은 매번 ‘주는’ 기쁨을 남다르게 느낄 것이다. 받는 이의 표정이 무척 다양할 테니까. 

끼 많은 사람을 연인으로 좋아할 때, 그가 다른 이들의 호기심까지도 불러일으키는 건 좀 거슬릴 순 있다. 그들은 자신의 다양한 표정(얼굴/목소리/호흡/뒷모습 등 모든 것의 표정)을 타인들이 궁금해 한다는 것을 알기에 재밌어하는 거다. 그래서 ‘얘한테도 먹히나?’ 이걸 확인받고 싶어서 자꾸 다양한 이들에게 자기 끼를 보여주고 다닐 순 있다. 
하지만 ‘허튼 짓’을 하는 건 끼랑은 정말 별개의 문제다. 부자면 돈이 많아서, 말을 잘하면 입이 살아서, 잘생기면 얼굴값 하느라, 못생기면 꼴값하느라…….  바람피우는 이유는 다 가지각색이다. 

어쩌면 사실 굉장히 조각같이 타고난 미남 미녀들은 오히려 끼가 없을 수도 있다. 그들은 다양한 표정을 짓지 않아도 사람들이 쳐다보며 감탄했을 테니까…….  그리고 성격이 소심한 나 같은 사람이 끼쟁이가 될 확률이 높다. 말 그대로 소심한 탓에 잘 놀라고, 화나고, 삐치고, 풀어지고, 슬퍼하고, 감동 받고 멘탈이 쿠크다스 같아서 표정이 변할 만한 일들이 상당했더라는 거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자꾸 궁금해 했으면 좋겠다. 그래, 관심종자일수도 있다. 근데 그 관심은 정확히 나보다는 내 글이었으면 한다! ……니콜라이 고골이 그랬다지, 작가에 대한 비평은 그 책이 아닌 작가 자신에게 오는 거라고. 에라이. 
나는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드는 것에 아주 조금은 성공해서 ‘네가 무슨 작가냐?’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그걸 십분 활용하여 7년 동안이나 글을 쓸 수 있었다! (우와, 성공한 관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끼가 많은 거 인정! 독자 여러분을 궁금하게 만들려고 칼럼 제목을 ‘난 왜 귀여울까’ 이런 식으로 지으며 ‘끼 부린’ 것도 완전 인정……. 

‘끼’란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결국 ‘끼 많은 사람’을 옹호하는 글이 되었다. 맞다. 처음부터 그러려고 쓴 글이다. 왜냐하면 난 다들 끼가 좀 많아졌으면 싶어서. 이 삭막한 도시의 풍경이 좀 다채로워졌으면 해서다. 끼가 많아진다면, 우린 서로에게 더 관심이 많아지지 않을까. 

“이제 진짜예요, 진짜, 봄이 왔어요!”
이 흔하디흔한 소식을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가늠할 수 없는 끼 많은 너에게, 얼른 달려가 말해주고 싶은 거다. 
끼가 영어로 달란트(talent)라지, 그래 정확한 표현이네, 이건 신의 선물인거다. 당신은 정말,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군요! 어쩐지 너무나 사랑스럽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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