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긴 예술을 하려면 시스템을 파악해야한다

[공감신문]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오스카 와일드는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을 논하고, 은행가(자본가)들이 모이면 예술을 논한다.’

나는 이전에도 이 말을 인용한 적이 있었다. 살면서 이 같은 통찰력이 강한 문장을 몇 만나지 못했다.

예술가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창조적 욕구를 마음껏 풀고 사는 사람들이다. 일을 하면서 자기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소화시키며 스트레스도 푼다. 행운아들이다. 물론 어떤 창작물을 내놓기 위하여, 아니 더 정확히 만족스러운 ‘somgthing!’을 내놓기 위해서는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귀신을 감내해야만 한다. 나도, 너도, 우리 모두 만족스러운 것! 예술에는 답이 없다.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자기가 선택한 일이다.

‘예술은 억압받는 자의 편이다. 예술적 자유에 대한 이단적 정의를 담은 이 단순한 격언에 전율하기 전 생각해 보라. 예술이 영혼의 자유를 위한 것이라면, 어떻게 압제자 안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 이디스 워튼

(영화 <블랙스완> 중에서)

그런데 이것을 감당해내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니 자꾸 이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예술을 하게 해주는 ‘자본’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를테면 영화 한 편을 만든다고 치자. 어릴 때부터 친구들보다 영화랑 노는 걸 더 재밌어하던 감독, 끼를 해소 하고 싶은 에너제릭한 배우는 물론이요, 음악감독, 미술감독, 조명감독, 의상감독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라는 판 안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런 꿈같은 꿈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느냐고? 투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기업의 투자.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성격이다. 

그럼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윤을 벌게 그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난 글을 쓸 때도 남의 돈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어떠한 책임감을 늘 가지고 있으며, 감사하게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 살고 있으면 그런 마인드를 항상 마음속에 지녀야 한다. 누군가는 왜 그리 속물적인 생각을 하느냐고 욕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예술계의 시장 구조 파악, 뭐 이런 걸 떠나서 더 기본적인 현대사회의 인지상정인 것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오히려 예술 활동의 재료였던 재주를 못 가지느니만 못하다. 이용당하기 딱 쉽다. 그 재주는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을 파먹을 수 있다. 꿈이랑 똑같은 거다. 예전에 sbs <힐링캠프>에서 강신주 철학자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꿈이 없어요.’라는 아주 반도의 흔한 고민에 대하여, 꼭 꿈이 있을 필요가 없다고 쿨 하게 말했었다. 

왜냐하면 꿈을 가지는 순간, 우린 그것을 이룰 때까지 귀신에게 시달리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일과 현실의 안정적인 삶, 그 두 가지 사이에서 흔히들 갈등을 한다. 그래서 한 가지를 집중해서 하지 못하고 늘 갈팡질팡 그렇게 하다가, 결국은 현실을 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사실 그리 갈팡질팡하지 말고 딱 2년은 정말 꿈만 파겠다, 라고 했었으면 그 사람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 아무튼 현실을 택했으면 집중해서 성실하게 살던가, 그것도 아니고 또 딴 데로 눈을 돌린다. 미련이 남아서 그런 거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

나는 애초에 현실(안정적인 삶)은 배제해두고 두 가지 꿈 중에 헤매었었다. 배우가 될 것인가, 작가가 될 것인가. 난 지금 연기에 대한 미련이 하나도 없다. ‘하얗게 불태웠어!’라는 말이 딱 일 정도로, 정말 그 때만큼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었다. 

누가 보면 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했구나’, 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나 스스로는 떳떳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연기를 열심히 해보니 평생 내가 하고 싶은 길과 멀더라, 그래서 내가 깨끗이 포기한 거다. 어차피 둘 다 미래가 불확실한 일이었지만 어쨌든 지금의 선택에 굉장히 만족하며, 귀신은 날 따라다니지 않는다.

재주도 꿈처럼, 가진 것에 책임지지 않으면 귀신에게 시달리기 딱 좋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당신의 재주를 이 세상 밖에 내보내 주겠다고 꼬일 것이다. 태초의 뱀처럼 말이다. 하지만 뱀으로 인하여 벌어진 아담과 하와 인생의 2막이 어떠했나. 첫째로 풍족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두 번째로 잉태, 즉 ‘섹스’를 얻는다. 섹스의 즐거움을 알았겠지. 역시 뱀은 섹시하다. 인생은 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제로섬 게임이라는 거다.

당신의 재주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얻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해야하는 것이 돈을 받는 예술가의 의무이다. 이것을 제대로 해내지 않으면 당신은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예술가’가 아닌, ‘나쁜 사람’이다.

당신은 재주를 세상 밖에 내 놓을 생각에만 빠져 지내서 저렇게 큰 딜(에덴동산-섹스)을 하는, 지구 최초의 뱀, 뱀들의 단군할아버지 급도 아닌 지렁이만도 못한 뱀들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거다. 나 역시도 그랬었고, 주변에 연기, 미술, 음악, 요리, 기획 등 모든 재주 있는 친구들이 줄곧 잘 하는 말이 있었지, “사기꾼 천지에, 다들 이용하려고만 한다”고. 우린 그 지렁이 같은 뱀들을 씹어대며 소주를 벌컥 벌컥 들이켰었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세상 탓을 하며. 세상은 옛날부터 차가웠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그런 얘기를 하면, 난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 진실은 없다. 돈은 어차피 돌고 도는 것이다. 나 역시도 헛소리를 쓰며 독자님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지 모른다고. 나도 사기꾼인데 누구에게 사기꾼이라 욕할 것인가.

어쨌든 그 뱀이 어떤 뱀이든, 재주 가진 당신을 현혹하기 위하여 꺼내놓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나의 재주가 얼마짜리 가치인지, 판단은 사실 당신 혼자 하는 게 아니다. 그건 틀릴 확률이 크다. 단지, 그 재주를 내가 ‘저것’과 바꿀지 말지 결정은 당신이 하는 것이다. 그게 겨우 강남의 지하 술집 고급 소파에서 얻어 마시는 술 한 잔이라 할지라도.

사실 자꾸 이용을 당하다보면 당신은 열심히 한데 비해 돈도 벌지 못하고, 주변에서 친구들이 실패한 예술가라고 조롱하는 소리까지 들어야 할 텐데 그것을 어찌 감당할 것이란 말인가. 친구들이 사주는 위로주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주눅 들고 화난 당신을 배려하지 않고 경칩엔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났으며, 오늘은 춘분이요, 곧 벚꽃이 핀다.

재주 – 돈 – 꿈, 이것이 재주 – 돈 – 미련이 되면 안 된다. 꿈이 미련으로 변질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위와 같은 악순환이 되는 게 ‘가위바위보’처럼 보인다. 이 세 가지가 서로 누군가에게는 이기고 누군가에겐 지고, 관계가 아주 웃긴다.

재주나 꿈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려면 이들의 관계가 서로 비겨야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위에서 손가락 아프게 반복하고 있다. 무대를 깔아주는 뱀이 뭘 원하는 지 파악하고 그것을 항상 가슴 속 깊이 지니고 있어야 한다. 즉 이것을 어떻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느냐, 시스템(system)을 파악해내야 한다!

그 분야의 산업구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당신이 뮤지션이라 예를 들어보자.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익히듯 그 구조를 파악하는 것도 기본이다. 이전의 예술가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현대 사회는 무지막지하게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의 입장이 대립하는 상황이 아주 다양하게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각 전문 분야마다 변호사들도 있지 않나. 이혼 전문, 부동산 전문, 연예계 전문, 인권 전문, 의학 전문, 국가 관련 등.

시니컬하기로 유명했던 오스카 와일드가, ‘예술가들이 모이면 돈을 논하고, 은행가(자본가)들이 모이면 예술을 논한다.’고 말했던 것은 사실 예술가들을 비꼬려고 했던 말이었을 것이다. 재주 때문에 오히려 고통 받는 시스템에 무지(無知)한 예술가들 말이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예술가들 역시 돈을 논해야 한다. 단, 뜬 구름 잡는 헛소리가 아닌 그 시스템 안에서 합당한 내용들로 말이다. 그래야 예술가들의 말도 안 되는 자위를 멈출 수 있는 것이다. 생산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오직 배설뿐인, 자위행위.

작가는 퇴직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고들 한다. 글은 쓸 수 있을 때까지 쓰면 된다. 작가는 자기가 자기 스스로를 고용한다. 다만, 그것을 누가 돈을 주고 사서 읽을지 말지는 본인의 판단 영역이 아니다. 미술과 음악 등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곡을 만드는 것을 언제까지 할지는 자신의 자유이다. 그것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고 ‘난 돈이 필요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면 이런 시스템을 익힐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자아실현, 혹은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계속 변화하는 시스템을 익히는 데 소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술가들 특유의 곤조를 내려놓고 말이다.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성공했던 예술가 앤디워홀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예술가는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것들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원래 인간들은 쓸데없는 것에 돈을 아주 안 쓰거나 말도 안 되게 쓴다. 그렇지 않나. 당신은 반드시 필요한 파운데이션인 속옷에 큰돈을 쓰지는 않지만, 1년에 몇 번 입을까 말까한 모피코트에 몇 천 만원을 쓸지도 모른다. 예술은 그런 모피코트 같은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그런 것에 한도 끝도 없는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허세를 부리게 해주는 사람이다. 그건 예술을 즐기는 소비자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한 예술가가 만든 것이 모피코트라 불리 울 지, 모직코트가 불리 울 지 결정하는 데에 시스템 역시 크게 한 몫 하는 것이다.

(영화 <팩토리 걸>)

시스템이 만들어준 스타들도 분명 존재한다. 사람들이 ‘그 사람은 거품이 심해’라고 말하는 사람 중에 오래가는 사람이 있다면, 단언컨대 그는 그만큼 보이지 않는 노력들을 해서 이미 그 위치에 있을 만해 진 것이다.

십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가 아이돌 가수를 보는 시선들이 그러했었다. ‘쟤는 비주얼 담당이겠지 뭐.’라며 미모만 ‘열일’하는 연예인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유튜브에 그 사람의 요즘 영상을 찾아보라. 그/그녀의 춤, 노래 실력은 생각보다 상당한 수준일 것이다. 원래 저렇지 않았는데, 싶을 거다. 그들은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하게 되니 무서워진 것이다. 까딱하다가는 모든 걸 잃을 수 있겠구나, 또 한편으로는 자신을 만들어준 이 시스템이 얼마나 희귀한 행운인지 알겠으며 이것을 나만 잘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겠구나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 돈, 재능, 꿈! 모든 걸 비기게 만든 것이다.

희귀한 삶일 것이다. 그것을 유지하는 것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사실 이 모두를 비기게 하는 삶이 추천할 만한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나 역시 돈, 재능, 꿈 사이를 가위바위보 하는 사람이지, 비기게 하는 사람이 아직 되지 못했다. 내 주변에 ‘비기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그럴 가치가 충분한 반면, 힘이 꽤 들어보인 다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고단한 일이다. 여유롭고 느긋한 삶을 택한다면 가위바위보를 반복하는 것이 더 낫다. 인생은 제로섬 게임, 항상 대가가 필요하니 말이다.

재주와 꿈을 예술에 국한된 글을 썼는데 사실 이건 모든 현대의 산업 분야에 다 적용이 되는 얘기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가끔은 어른 말도 따를 필요가 없다. 그건 아주 구(舊)시스템을 이해하고 하는 말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시스템에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날 환영해주는 곳은 어디인가, 나는 그 시스템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가, 자꾸 밖으로 나가서, 내 꿈과 재주를 시스템에 어떻게 엮을지 고민, 또 고민해야 한다. 언젠가는 나도 엄청난 것을 들고 올 대단한 뱀 한 마리를 만날 수 있겠지.

(gucci, 2016 s/s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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