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으면 섹시해지는 건 단지 뇌뿐만이 아니다

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얼마 전부터 작은 소모임을 시작했다. 인문학 스터디 모임인데 평소에 읽기 불편한 책들을 읽고자 만든 모임이다. 술술 읽히고 흥미로운 책은 쉽게 손이 간다. 우리 모임은 주로 고전을 다룬다. 여기에 적극 동참

해 준 아는 오빠가 있다. 동네에 아지트처럼 쓸 수 있는 공간을 적극 활용하라며 지원해주신 거다.

어제 오빠랑 함께 운동을 하고 커피를 마시는데, 오빠가 고전을 찾아서 읽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말씀해주셨다. 당시 오빠가 대학교 때 교수님이 고전 읽기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대부분의 고전 서적들은 천재에 의하여 쓰인 경우가 많다. 그의 글을 따라 읽다보면 그 사람의 뇌 구조를 따라가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탁월한 그들의 뇌구조를 어느 순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사진출처=영화 <킬 유어 달링> 중에서

내 글을 꾸준히 본 분들은 약간 느끼실 수가 있다. 매주, 혹은 몇 주마다 내 글의 구조나 화법이 바뀐다는 것을! 고백하건대 나는 자주 보는 사람들이나 내가 ‘꽂혀있는’ 사람의 말투나 자주 쓰는 단어를 나도 모르게 따라 쓰게 된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보니 그걸 배우는 것이다. 특히나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그가 습관적으로 쓰는 단어를 따라 쓴다. 본능적으로 모방하는 것 같다. 그에게 소속감을 가지려 하는 것인지, 나도 모르게 나오는 존경의 표현인지 뭔지 잘은 모르겠다. 아무튼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뿐 만이 아니라, 글을 쓸 때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쓰게 된다.

하물며 글을 읽는 다는 건 어떠하겠는가. 아무리 친한 사이더라도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게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읽으면 최소 일주일에 몇 시간은 그 한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 듣는 게 된다. 그의 생각을 따라 읽는다.

단지 글 뿐 만이 아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클래식을 들으면 머리가 좋아진다, 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클래식 음악들은 진짜 천재들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를 놀라게 한다. 이미 4살 때 악기들을 섭렵하고 5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한 모차르트는 자신의 재능에 만족하지 않고 하루 평균 16시간이나 음악에 몰두했었다고 한다. 음악은 철저히 수학적일 때가 많다. 모차르트의 재능과 노력으로 빚어진 그 음악들이 얼마나 치밀하겠는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뇌에 어떠한 자극을 줄 것이다. 우리 뇌는 그것을 충분히 모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어떤 게 더 나다운 지, 좋을 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이를테면 지금 당신이 큰 병을 앓고 있지 않더라도 언제나 식습관에 대하여 고민이 많다. 사실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적당히 먹고, 많이 움직이고, 스트레스를 줄이고, 규칙적으로 살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TV에서 채식에 대해 떠들면 채식을 해보려하고, 고지방 저탄수화물에 대해 떠들면 갑자기 고기만 먹는다. 옷차림이나 메이크업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아 보일 수 있는데, 일단 따라 해본다. 사실 모든 삶이 모방이다.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 그러하다. 그건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와서 그런 것이다. 다른 동물들처럼, ‘난 낙타니까 사막에서 살아야지.’, ‘난 조개니까 뻘에 살아야지,’ 라는 게 없다. 우리 민족이 동물이었더라면 당시 ‘괴물’로 보였을 서양인들이 먹는 검은 물인 가비(커피의 조선말)를 따라 마실 리가 없었겠지!

하지만 쑥과 마늘을 먹어 인간이 되었다는 우리는 계속 다른 것, 혹시 더 나을 지도 모르는 것들을 추구해왔다. 송충이라고 해서 솔잎만 먹는 생물체가 아니라오! 그러니 계속 모방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그렇게 길들여져 왔다.

사실 이건 단지 ‘건강해 보이는’ 것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버로우즈는 <정키>, <퀴어> 등의 작품을 남겼다. 영화 <킬 유어 달링>을 보면 아시겠지만 그와 그의 친구들은 천재들이었다. 그의 작품 제목에서 이미 느끼시겠지만, <퀴어>는 동성애를 다룬 내용이고, <정키>는 약쟁이 얘기다. 실제로 그가 그렇게 살아왔더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건 그의 생각들만 닮는 게 아니다. 또 그와 같은 ‘시선’을 가진 다는 게 끝이 아니다. 그와 같이 사고(思考)하게 되는 것이다.

사진출처=영화 <킬 유어 달링>에서 윌리엄 버로우즈를 연기하고 있는 벤 포스터

내가 어떤 남자를 좋아하면 그의 말투를 따라한다고 고백했었다. 이건 좋아하는 어느 특정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사실 나는 정치색이 뚜렷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전부터 그녀가 명석해 보인다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었다. 그녀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하는 말과 행동, 눈빛을 보고 정말 한결같이, 명석하지 않구나, 느꼈었다.

그녀는 다른 정치인들보다 훨씬 골수팬이 많은 사람이다. 출신 성분부터 남다르지 않나! 그녀가 누구였을지라도 이미 그녀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무리들은 그녀의 저서, 그녀의 말, 그녀의 행동을 보고 그녀의 뇌 구조를 따라갔을 확률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고백하건대 내가 밖에서 만난 그녀 팬들에 대해서도 명석한 사람이구나, 라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지가 않다. 사실은 그녀가 명석한 사람이고, 내가 오히려 되게 멍청한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철저히 내 뇌구조의 판단이다. 그녀와 비슷한 맥락의 뇌구조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나에게 그러해 보인 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내가 천재였으면 좋겠다. 내 글을 읽는 독자님들에게 감사해서다. 내 칼럼을 일주일에 두 개씩 꼬박꼬박 읽으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그 분들의 머리가 점점 좋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독자님들 중에 물론 천재들도 계시겠지만!) 절대 내가 천재이고 싶어서가 아니다……음……독자님들을 위해서, 독자님들의 더 나은 두뇌 발전을 위하여 내가 천재였으면 하는 거다. 그건 당신들의 삶을 섹시하게 만들어 줄 테니……. 그 이유는 잠시 후, 알려드리겠다.

중학교 때 전국 규모 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았었지만 그래도 난 천재가 아닐 확률이 더 높다. 그보다 더 확실한 건 난 굉장히 ‘쿨한’ 사람이라는 거다. 나는 내가 봐도 정말 자유롭게 산다. 눈치 볼 사람도 없다. 사랑을 좋아한다. 순진하진 않지만 순수하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우선 난 꼰대가 아니다. 보이는 걸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 솔직하다. 한마디로 난 ‘쿨’하다. 여러분이 내 글을 읽으면 머리가 좋아지지는 않을지언정, 쿨해지지 않을까? 이 꽉 막힌 세상 속에서 말이다.

앞으로도 꽤 멋진 사람들의 것들을 향유할 것이다. 시니컬한 오스카 와일드의 문체를 사랑한다. 그의 글을 탐독하고, 쇼팽과 지드래곤, 그리고 빈지노의 음악을 들을 것이다. 형이상학적인 피카소와 서정적이고 야한 우키요에를 함께 즐길 것이다. 심심할 때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를 앞으로도 1000번은 더 볼 수 있다. 기운이 빠질 때엔 역시 니체의 말들로 나를 가득 채웠다가 그와 함께 동시에 전부 비워낼 것이다. 내 속에 수많은 천재들의 영혼이 숨을 쉬게 만들 것이다. 그 산소만으로도 지친 나의 뇌는 활력을 되찾게 되겠지!

그러하다. 자유롭게 사는 나 역시도 시멘트를 부은 듯 뇌가 굳어가는 느낌을 종종 받는데, 하물며 조직생활을 하는 분들은 어떠하시겠냐는 거다. 그러니 다양한 천재들의 고전을 읽자. 이왕 약쟁이 이야기를 읽을 거면 천재 약쟁이 얘기를 읽는 거다. 위에서 말한 <정키>라던지, 토머스 드 퀸시의 <어느 영국 아편 중독자의 고백>이라던 지. 변태 쪽에서 천재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정독하는 것이다.

사실 천재의 것들을 읽으면 단지 뇌뿐만 아니라 침대에서도 섹시해질 수가 있다. 뇌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움직이기 위해서다! 움직이기 않는 생물체는 스스로 뇌를 몸에서 퇴화시키거나 없애버린다. 코알라나 멍게가 그러하다. (<뇌의 연인, 너의 이름은>칼럼 참조하시길.) 그러니 뇌가 섹시해지면 더 잘 움직이는 섹시한 인간이 되기 쉽다는 거다! 역시 똑똑한 생물체인 인간들이 그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고전들을 보존하고 향유해온 이유가 있었구나.

천재는 아닐 지라도 가끔 세상을 거꾸로 보고 싶거나 탈피하고 싶을 때, 또는 ‘나만 루저인가’ 불안할 땐, 완전 쿨한 지해수의 글도 읽어주시길 바란다.

아니 사실은 나 같은 작가가 오늘날 얼마나 필요한 지 당신들은 아직 모를 거다! 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다. 현대인들은 사랑에 각박한 편이다, 그럴 여유가 없다. 사랑이 넘치는 내 글을 읽을 때면, 마음속에 사랑이 마구마구 피어나는 걸 느끼지 못했어? <사랑이라는 이름의 정원 가꾸기> 같은 나의 이전 칼럼을 읽어보시라. 당신의 뇌 주름들이 서로 사랑해서 저들끼리 더욱 쫄깃쫄깃해지는 느낌들을 분명 받으실 텐데…….

사실 사랑이야말로 천재가 되는 가장 중요한 묘약일지 모른다. 버거울 정도의 사랑을 받아야, 혹은 그것을 상실해야 우리는 비로소 무언가 ‘진짜’를 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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