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작은 사치'

[공감신문] 하나의 문화를 넘어 일상으로 자리 잡은 커피.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란 말이 과언이 아니다. 2015년 한국 커피소비량 통계결과 1인당 연간 약 341잔 마신다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렇듯 거의 매일마시는 커피, 우리는 언제부터 즐기기 시작했을까?

대한민국 역사 속 커피

사진출처=영화<가비>스틸컷

∎ 조선 왕족을 사로잡은 커피
한국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시기를 단언하긴 어렵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이 19세기 후반 임오군란 이후 1890년 사이다. 청나라를 통한 서양문물의 유입과 함께 미국, 영국 등 서양의 외교사절로 커피의 음다풍속(飮茶風俗)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서양 외교관들은 조선 왕실과 귀족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커피를 바쳤다. 왕족들과 대신들 커피의 향과 카페인에 매혹됐고, 곧 기호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당시 커피는 '가배다' 또는 '가비다'라 불렸다.

사진출처=영화 <가비>스틸컷

∎ 한국인 최초의 커피 애호가, 고종(高宗)
1895년 을미사변 당시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피신(아관파천)해 있던 중 커피를 처음 맛보게 된다. 고종에게 커피 맛을 선보인 사람은 러시아 초대 공사이자 사교계의 유명인사 손탁(孫澤)여사다.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후 러시아 공사관에 파천(播遷)해 있으면서 식사는 물론 모든 수발을 맡길 만큼 손탁을 마음에 들어 했고, 이후 고종은 덕수궁 건너편 정동 400여 평 대지에 2층 양옥집을 지어 손탁에게 선물했다.

고종의 후원으로 1897년부터 호텔로 운영된 손탁호텔은 외국인들의 인기 사교장으로 미국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앨리스 양, 러일전쟁 취재차 방한한 『허클베리 핀』의 작가 마크 트웨인, 훗날 영국 총리가 된 젊은 시절의 윈스턴 처칠이 손탁호텔에 머물기도 했다. 1층에는 일반실과 함께 레스토랑 겸 커피숍이 들어섰는데, 이곳이 바로 한국 최초의 커피숍이다.

고종은 궁중의 다례의식에까지 사용하도록 했을 만큼 커피를 좋아했다. 덕수궁(德壽宮)에 정관헌(靜觀軒)이라는, 사방이 트인 서양식 정자(亭子)를 짓고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국공사들과 연회를 갖기도 했다. 궁중 다방이었던 셈이다. 그러던 중 1896년에 일어난 김홍육의 독차사건(毒茶事件)'으로 고종을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도 발생했다고. 이와 관련된 영화로 2012년 개봉한 ‘가비’가 있다.

∎ 예술가들의 성지, 다방 (1920~1930년대)
1919년 이후 명동, 충무로, 종로 등지에도 커피점들이 등장했다. 다방 주인은 대개 일본인으로, 당시 커피값이 너무 비싸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고위 관료층이나 소위 신식 멋쟁이들만이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한국 최초의 오페라 가수 윤심덕은 종로 다방에서 커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한국인 최초 개업 다방은 1927년의 ‘카카듀’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감독 이경손이 종로의 관훈동에 오픈했다. 카카듀라는 이름은 문학가 김진섭이 지은 이름으로 당시 조선일보 기자 이선근의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다고. 이 다방이 오픈한 후 커피는 예술가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게 되었다. 이후 영화배우 복혜숙이 오픈한 ‘비너스’는 윤보선 전 대통령이 단골일 만큼 유명했으며, 1933년 문학작품 <날개>의 작가 이상 역시 대열에 합류하여 ‘제비다방’을 차렸다. 이상은 총 4번에 걸쳐 개업할 만큼 그의 다방 사랑은 유명했으나 이내 폐업하기 일쑤였다.

∎ 다방의 전성시대 (1950~1960년대)
우리나라에도 인스턴트 커피가 처음 등장했다. 1950년대 초 6·25전쟁 당시, 미군부대의 PX에는 미국의 각 커피회사에서 시험용으로 인스턴트커피를 제공했다. 그러던 중 미군부대 밖으로 커피가 흘러나와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한국의 대중적인 커피시대가 열린다. 전쟁이 휴전되고 폐허가 된 명동엔 다방들이 다시 오픈하게 되면서 명동은 다시 활기를 되찾는다.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 다방은 점점 마담 스카우트 경쟁과 함께 주인이 마담과 레지, 주방장을 경영하는 체제로 바뀌게 된다. 또 다른 변화로 점차 손님들의 연령층이 구별되는 다방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때 ‘모닝커피’라는 독특한 커피가 탄생한다. 모닝커피는 커피에 날계란 노른자를 풀어 그 위에 참기름 한두 방울 떨어뜨려 저어마시는 커피로 오늘날의 커피와는 사뭇 다르다. 당시 모닝커피의 인기가 좋아 24시간 모닝커피를 서비스하는 다방까지 있었다고.

∎ 대중음료의 시작, 믹스커피 탄생 (1970~1980년대)
당시 커피는 수입 제한 품목이었다. 미제커피가 최고로 치던 시절, 고급커피를 제공하는 다방에는 가짜 커피가 만연했다. 일명 ‘꽁초커피’가 사회적으로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커피의 수입자율화의 촉진제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서식품이 1970년 첫 생산한 인스턴트커피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1974년 커피크림인 ‘프리마’를 개발한 동서식품은 이후 커피와 크림, 설탕을 다방 커피 맛으로 배합해 한국형 커피믹스를 생산해내며 커피 대중화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리고 1978년. 커피자판기가 출현하며 한국 커피역사에 한 획을 긋기 시작한다.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커피자판기로 다방은 곧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된다. 값싼 커피 자판기가 직장인, 대학생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1일 평균 15만 컵의 커피를 쏟아냈다.

∎ 커피 전문점의 등장 (1980~1990년대)

1980년대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88올림픽을 개최로 국내엔 세계화 바람이 불게 된다. 1987년 한국의 커피 수입 자율화로 원두커피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백화점에는 수입원두커피가 진열되고 원두커피 전문점도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1988년 말 압구정에 ‘자뎅’의 오픈을 시작으로 ‘난다랑’, ‘도토루’등이 이어 등장했고, 1999년 7월 에스프레소를 필두로 스타벅스 커피 전문점이 이화여대 부근에 오픈하게 된다. 100석 규모의 1호점으로 국내에 들어온 첫 외국 커피전문점으로 기록되었다.

∎ 테이크아웃 커피,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잡다 (2000년대 초·중반)
에스프레소 커피의 인기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테이크아웃 문화의 인기도 꽃을 피웠다. 한 손에 뚜껑달린 종이 커피컵을 들고 다니는게 패션 코드로 인식되며 다방은 점차 사라지고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이 늘어났다. 미국적인 취향은 스타벅스, 편안한 분위기를 강조한 미국 커피 전문점인 커피빈, 이탈리아 취향을 강조한 파스쿠찌가 이에 해당한다. 국내의 커피 생산 업체도 발맞춰 차별화 전략을 펼쳤다. 남양유업은 컵 형태의 용기를 사용했으며, 롯데칠성은 기존의 캔 용기를 스펙트럼형태의 8각형 팩 포장으로 출시하며 경쟁력을 키웠다.

∎ 커피의 대중화, 다양해진 커피 취향 (2006년 이후)
2007년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선풍적인 인기로 원두, 로스팅, 신선한 커피 등으로 생소했던 커피 개념의 경계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흥행에 힘입어 ‘바리스타’가 인기직종으로 떠올랐으며, 커피 디저트 역시 다양해졌다. 커피의 맛과 향에 민감한 이들은 로스터리 카페를 방문하고, 캡슐커피의 등장으로 ‘홈 카페’라는 새로운 커피문화가 형성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커피 전문가들이 즐겨 마시던 핸드 드립, 숙성시켜 마시는 더치커피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오늘날의 커피는 단순 식품을 넘어 개인의 개성과 취향을 반영하며 문화적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