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한 현실보다 멋진 거짓이 낫다 (영화 '리플리' 중에서)

[공감신문] 인스타그램만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 가계 부채가 1300조가 넘었다는 것도 딴 세상 얘기인 듯 하다. 아니면 다들 그 빚으로 저러고들 다니는 건가. 아니, 원래부터 있는 사람들은 계속 있었고 없는 사람들은 계속 없었다. 다만 티끌 모아 티끌이란 걸 알기 때문에 이전 세대들에 비하여 좀 더 맘 편히 소비할 뿐이다. 그런데 내가 놀라는 건 겨우 나 정도 따위가 아닌, 진짜 럭셔리의 극치를 달리는 이른바 ‘82피플’들의 삶이다.

사진출처=영화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그들의 SNS는 재밌어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최신 유행하는 명품 아이템들을 겨우 한두 번만 입는다. 물론 그 종류가 백화점을 털었다싶을 정도로 다양하다. 가방도 에르메스, 샤넬은 물론이요 요즘 다시 핫한 구찌를 라인별로 소장하고 있다. 당연히 그런 옷과 가방, 구두를 걸치고 아무거나 탈 리 없다. 최소 메르세데즈를 몰고 다닌다. 좋은 신발을 신으면 그 신발이 좋은 곳으로 안내해준 다는 말은 참 말이던가. 좋아 보이는데다 요즘 막 핫해진다고 소문난 곳에서 식사와 차를 즐긴다. 아, 심지어 연예인 뺨치게 예쁘거나 잘생겼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당연히 수상한 눈초리를 하며, ‘뭐하는 사람이지?’ 궁금해 하기 마련일 것이다. 근데 재밌는 건, 예전에 싸이월드 시절만 하더라도 이런 사람에게 직업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이젠 그런 댓글이 없다. 우린 그들이 뭐하는 사람인지 거의 대부분 알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그 유명한 82피플이시다.

내가 둔한 편이긴 한가보다, 아니 신경을 잘 안 쓰는 걸 수도 있다. 사실 사석에서 그런 여자 분들을 꽤 많이 본 것 같은데, 그저 내 주변 친구들처럼 원래 잘 사는 집 딸일 거라고만 생각했었다. 82피플은 ‘팔이’피플이라고 읽으며,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파티피플(party people)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즉, 뭘 파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그들을 비꼬는 말이다.
요즘은 어떠한 분야든 SNS를 통한 홍보가 불가피하다. 가장 손쉽고 파급력이 있지 않나. 당연히 젊은 층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82피플들의 주 무대도 여기다. 그들은 화려한 자신의 삶을 보여주며 팔로워들을 모객한다. 거기서 서서히 개인 블로그나 쇼핑몰 사이트로 유입시킨다.

사실 이전에도 이런 루트가 없던 것은 아니다. 몇 년 전 케이블 채널에 꽤 많은 일반인들이 대거 등장하던 시절이 있었다. 소개팅 포맷이나 자신의 독특한 점을 어필하는 프로그램들이었는데, 어느 순간 이게 변질되어 사업하는 일반인들의 홍보 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청자들은 뭔가 ‘조작’같은 느낌이 들면 ‘100% 쇼핑몰이네’, ‘홍보네’ 라며 눈치를 챘다. 그들은 거기서 아주 호화로운 자신들의 삶을 과시했다. 연예인을 준비하거나, 쇼핑몰을 하던 내 지인들도 거기 여럿 나왔었는데 그들 역시 억대 연봉자, 혹은 엄청난 금수저로 소개됐었다. 심각하게 부풀려진 연봉 때문에 아마 세무조사를 피하기 어려웠다는 후문도 종종 들려온다. 나중엔 방송에서 스물다섯에 연봉 10억이라는 게 놀랍지도 않게 되더라. 아, 물론 출연자들 중 실제로 그렇게 버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더라.
슬림한 월급봉투와는 반비례로 쌓여가는 나잇살과 스트레스뿐인 일반인들에게, 이들은 신선한 자극과 더불어 어쩐지 이질감이 들게 했을 것이다. 그 뿐인가. 평범한 사람들로 하여금 허탈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자기가 돈 벌어 자기가 쓴다는데’도 그들을 욕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욕을 하는가? 그렇게 살 수 있는 데 안사는 게 아니라, 그렇게 살아보고도 싶은데 못사니까 그러는 거다. 또 열심히 살아온 내 시간들은 뭐였는지 허망해지는 것이다. 그런 자괴감이 들면서도 부럽고 궁금해서 그들의 일상이 자꾸자꾸 보게 된다. 저런 여자(남자)들은 어디 가서 밥 먹고, 어떤 친구들을 사귀고, 어떤 이성을 만나는 지, 끝없이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나와 비교하며. 82피플들이 연예인이 아니기에 가능한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일반인’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영역에 있는 듯 보여진다. 진짜 ‘넘사벽’이면 부러워할 수도 없게 된다. 82피플들은 이렇듯 SNS로 자신들을 보여주며 부럽게 만들다가 나중엔 자신들을 동경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이른바 ‘시녀’라 불리는 자기 팬들에게 이런 판타지(?)를 심어주지.
‘이 옷을 입으면 나처럼 될 수 있어!’
그래서 ‘언니 바지 정보(브랜드나 판매처) 좀 주세요’라는 시녀들의 댓글들을 받다가 못이기는 척, 인친(인스타 친구)님들과 함께 입고 싶어서 블로그에서 공동구매로 판다고 하는 거다. 그게 자주 통하면 나중엔 아예 82피플의 면모를 대놓고 드러낸다. 잦은 동남아 해외여행? 옷 중에 비키니만큼 ‘많이 남는’ 것도 드물다고 한다. 그냥 출장이다, 출장!

사람들이 ‘82피플’을 비꼬는 데에는 큰 이유가 있다. 사실 연예인이 이미지 관리하는 거랑 똑같은데 왜 이렇게 까지 욕을 하느냐. 그들이 ‘있어보여야 하는’ 건 알겠다만 뭐 이렇게까지 해서 허세를 부리나 하는 행동들 때문이다. 그들이 걸치는 명품은 본인 소장이 아니라 렌탈샵에서 대여한 아이템은 경우가 상당하다. 그 뿐인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서 착용 후 제 것인냥 사진을 찍고는 다시 환불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남의 차를 빌려 타고 마치 자신의 세컨드 카인 듯 사진을 찍는다. 물론 SNS에 올리기 위해서다. 이러니 비판받을 만 하다고들 하는 거다. 하지만 이젠 많은 인스타그래머들 대부분 이런 걸 하도 많이 봐서 웬만해선 구분할 줄 안다.
누구랑 간지 모르겠는 해외여행 사진도 마찬 가지다. 그렇게 티가 날 걸 왜 그리 자랑하는 걸까. 이건 좀 안타깝긴 하다. 하긴 빈 깡통이 요란하다는 옛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테지.

하지만 난 82피플을 비꼬는 사람들 역시 살짝은 비꼬고 싶은 심정이다. 난 82피플의 그러한 열정을 정말 높이 산다! 생각해봤는데, 나보고 저렇게 살라고 하면 피곤해서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저 스스로 얼마나 못났으면 저렇게 척을 하겠어?’라며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단점이 있다고 한들 안으로 움츠러들거나 세상 탓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저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세계적인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하여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나태해진 청년들이 얼마나 많은가!? 82피플들의 삶에 대한 열정은 굉장히 본받을 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꿈꾸는 것이다, A NEW LIFE! 그렇다. 그렇게 보여지면, 들키기 전엔 잠시라도 그런 친구들을 곁에 둘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영화 <리플리>에서 리플리(맷 데이먼 분)가 정체를 들키고 이렇게 말하지 않나.
‘초라한 현실보다 멋진 거짓이 낫다.’

또한 82피플들의 취향 역시 얼마나 발 빠르고 고급지신지! 하긴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신데 아무거나 먹고 아무데서 잘 순 없잖아? 그들의 SNS를 보자면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낫다. 사실 연예인들은 생각보다 많이 돌아다니질 못해서 어디가 요즘 뜨고, 맛있고, 이런 걸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이 가는 곳만 간다. 그러나 82피플들은 다르다. 단골집을 떠나서 요즘 핫하다고 하면 무조건 가서 시그니쳐 메뉴부터 맛본다. 여행지 역시 마찬가지다. 뜨는 풀빌라를 알고 싶으면 무조건 82피플의 인스타그램으로 가라.

그들이 찾아가는 지역 역시 방대하다. 개척정신이 투철하다. 그것도 사실 다 자기가 좋아야할 수 있는 일이다. 이들은 즐기면서 일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 누가 이들을 말리겠는가? 자꾸 나 같은 게으름뱅이 작가랑 그들을 비교하는 게 너무 극과 극일 수 있는데, 매일같이 그렇게 차려입고 핫한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는 일이란 생각 만해도 피곤한 일이다. 게다가 난 새로운 곳이 싫은 걸…….

사진출처=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중에서

나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관심종자 중에 한명이라 그런지 이들을 십분 이해할 수는 있다. 다만 나는 ‘나’라는 사람이 튀기 보다는 내가 ‘쓰는 것’들이 튀어 오르길 바란다는 게 차이가 있다. 그들은 옷을 팔고 나는 글을 판다. 나도 팔이다, 글 팔이. 그런 나는 좋은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럴 이유가 별로 없고 관심도 없다. 그렇기에 옷에 돈을 잘 쓰지 않는다. 내가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도 5만 원짜리다. 거의 매일 흰 티에 레깅스, 그리고 반스 스니커즈 차림인데 친구들은 나보고 이렇게 입는 게 제일 낫다고 한다. 82피플이나 82피플을 추종하는 시녀들이 어디선가 밖에서 날 보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그 사람이 얼마짜리를 입었는지 관심이 없기에 나도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아, 하지만 옷을 아주 못 입는 건 정말 싫다! 난 옷 가격에만 관심이 없는 거다.) 난 비싼 옷을 입은 남자도 좋지만, 말이 잘 통하는 남자가 더 섹시하게 느껴지니까. 그리고 처음부터 잘나 보이는 사람도 좋지만 알면 알수록 잘난 사람이 더 멋지다.

결국 82피플들을 만들고 부추기는 건 우리들이 아닐는지 싶다. 그들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웬만한 연예인들 이상인데, 그게 다 우리의 허영심이 만들어놓은 어마어마한 덩어리가 아니고 뭐겠는가. 결국 그들을 쫓는 우리들 역시 82피플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과연 첫인상에 사람을 이토록 기대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일일까? 난 오히려 진짜 반대로 사람들이 나한테 기대를 좀 덜 했으면 한다. 나란 사람이 지금 거품이 너무 낀 느낌이라서. 내가 얼마나 돈도 없고, 멍청하고, 맹하고, 게으른 지 마구마구 말해주고 싶다! 나한테 기대하지 마요! 난 당신을 실망시키고 말 거야. 대신 조금씩 놀라게 해줄게! 아, 하지만 나라는 ‘여자’한테는 기대해도 되는데.

젊을 때 한번쯤은 82피플처럼 호화로운 것들을 누려보고, 돈을 계획 없이 써보는 시간도 인생에 있어서 꽤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사랑도 잃어봐야 사랑과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듯 말이다. 원래 인생은 가장 쓸데없는 것들을 할 때 사치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예술 같이 먹고사는데 아무지장 없는 거랄까. 82피플처럼 딱 한번이라도 미친 척 호화롭게 살아볼 돈이 없다고? 괜찮다, 당신에겐 시간이 있다. 시간을 들여서 예뻐지고 잘생겨져라. 그리고 아는 것이 많은 똑똑한 사람이 되는 거다. 당신 주변에 당신과 친구가 되려는 친구들이 잔뜩 몰려들 것이다. 그 때 즐기는 거다, 개츠비같이 화려한 82를. 인생엔 늘 다양한 방법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그 때는 다함께 소리 질러, PARTY PEOPLE!

사진출처=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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