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 아리랑

▲ 이한성 국회의원

  광해군 5년(1613년) 새재 고갯길에서 경상도 동래에 사는 은(銀)장수가 도적떼들에게 살해당하고 은 수백 냥을 강탈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도적떼들은 놀랍게도 명문가의 서자들 7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박순(朴淳)의 서자 박응서도 들어 있었다.
  비겁한 박응서는 먼저 붙잡혀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죄상을 먼저 자백하면 가볍게 처벌받을 것을 기대하고 영창대군을 몰아내려는 당시의 세력가 이이첨의 사주를 받아 “영창대군을 임금으로 세우기 위한 자금마련을 위해 이러한 짓을 했다”고 허위자백을 하였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영창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결국 살해 되었으며 그 밖에 많은 사람들이 박응서의 거짓고변으로 투옥됐다. 이 사건이 바로 이이첨이 일으킨 계축옥사(癸丑獄事)이다.
  박응서 등 서자들은 서자출신인 광해군이 임금에 오르는 것을 보고 서얼차별을 철폐해 달라고 청원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자 스스로 ‘무륜당(無倫黨)’이라 칭하고 새재로 와서 고개를 넘나드는 장사꾼들을 상대로 강도짓을 했던 것이다.
  새재는 이렇게 생계가 막막해 도적으로 전락한 자들뿐만 아니라 먹고 살기에는 걱정이 없음에도 나라의 제도에 불만을 품은 나머지 도적질로 한을 풀어보려는 ‘아마추어’ 도적들에게도 무대가 됐다.
  인구가 적고 개발도 되지 않았던 옛날에는 우거진 수풀이 결코 ‘호젓한 휴식처’가 될 수 없었으며 맹수와 도적떼들이 우글거리는 공포의 대상이요 생활에 불편을 주는 ‘공해(nuisance)’였다. 건국 초기 내륙으로 개척해 들어가던 시절의 미국인들에게도 우거진 수풀은 무섭고도 불편한 존재로서 미국인들은 북미대륙의 원시림을 ‘공해’로 느꼈었다.
  ‘문경새재 아리랑’ 가사를 보면 옛날의 우리 조상들도 가슴가득 두려움을 안고 문경새재를 넘어 다녔음을 알 수 있다. 새재 말고도 남쪽에는 관갑천(토끼비리) 험로가 도사리고 있고 북쪽에는 소조령이 버티고 있었지만 오르막길 사십리와 내리막길 사십리의 기나긴 새재를 넘으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하루해를 보냈다고 했다.
  ‘문경새재 아리랑’ 가사에는 새재를 넘어가고는 소식이 없는 낭군을 기다리는 애타는 여인의 마음이 절절이 표현돼 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새재를 넘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숲길에서 겪으면서 생겨난 갖가지 사연들은 전설로도 많이 남아 그 옛날 새재를 넘어 다니던 애환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우거진 수풀은 더이상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파괴능력을 가진 사람이 이제 수풀에게 공포를 주게 된 세상이 됐고 실제로 숲이 파괴되면서 그 면적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울창해서 무서웠던 새재의 숲이 지금은 바로 울창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호젓한 휴식처’가 되기에 이르렀다. 잘 보존된 울창한 숲과 맑은 공기는 사람들의 눈을 시원하게 하고 마음까지도 시원하게 씻어주기 때문이다.
  고단했던 삶의 모습이 표현된 ‘문경새재 아리랑’ 가사는 오늘날 문경새재의 상황과는 판연히 다른 것이니 보존해 둘만한 옛날의 문화일 뿐이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건강과 즐거움을 주는 문경새재의 새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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