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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예술가들의 뮤즈가 된 불멸의 여인들

[공감신문] 예술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 ‘뮤즈’다. 그 영감의 원천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면 그야말로 ‘불멸의 여인’이 되어 예술 작품 속에 길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 예술가들의 뮤즈가 된 여인들로는 누가 있었을까.

대의를 위해 수치심을 이겨낸 <레이디 고디바>

번성한 마을인 코벤트리의 영주 레오프릭은 영주민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영주의 아내인 레이디 고디바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영주민들의 위해 남편에게 과중한 세금정책 개선을 요청했다. 하지만 야망이 가득했던 영주는 이런 그녀의 간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하지만 레이디 고디바의 끈질긴 요청으로 인해 레오프릭 영주는 그녀에게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고, 그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면 세금을 감면할 것을 약속한다. 그 조건은 영주민을 위한 그녀의 마음이 진심이라면 몸으로 직접 증명하라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레이디 고디바는 벌거벗은 몸으로 말을 타고 나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아야 했다.

이 조건을 받은 고디바 부인은 갈등에 빠진다. 이는 명예를 중시했던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정도의 수치스러운 일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영주민들을 위해 남편이 내민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이후 그녀는 영주와 약속한 날 긴 머리를 풀어서 그것을 옷 대신으로 삼고, 정말 알몸으로 말을 탄 채 도시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코벤트리 광장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창문을 닫고 커튼을 무겁게 내려 누구 하나 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이는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된 영주민들이 그녀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모두 집 안으로 들어가 창문을 굳게 닫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디바 부인은 명예를 지키면서도 영주가 내건 조건을 완수할 수 있었다.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조건을 실행한 고디바 부인의 용기에 남편인 레오프릭 영주 또한 깜짝 놀랐다. 결국 영주민들을 생각한 고디바 부인의 마음에 영주는 백기를 들고 세금을 낮춘다.

한편 양복재단사였던 톰은 아름다운 영주 부인의 나신이라는 유혹을 못 이기고 커튼을 슬쩍 들춰서 고디바 부인을 훔쳐봤다. 관음증 환자들을 일컫는 ‘피핑 톰(Peeping Tom: 엿보기를 좋아하는 사람, 관음증 환자)’의 어원이 바로 이 일화에서 파생된 셈이다.

벨기에에서 탄생한 프리미엄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도 레이디 고디바 일화에서 유래됐다.

아름다움이 죄가 된 여인 <프리네>

프리네는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아테네의 고급 창부였다. 비너스 여신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으로 당시 그리스에서 미의 여신처럼 숭배 받았다.

그녀를 원했던 수많은 남자 중 하나였던 에우티아스는 ‘내가 갖지 못한다면 아무에게도 주지 않겠다’라고 결심했다. 이에 에우티아스는 포세이돈 축제가 열리던 광장에서 프리네가 비너스를 표방하며 나체로 서 있는 모습을 신성모독으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당시 신성모독은 무조건 사형에 처하는 엄청난 죄목이었다. 그녀가 형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전무했다. 이에 그녀의 전 애인인 히페레이테스는 최후의 변호에서 바로 그녀의 아름다움에 대한 선처를 호소했다.

법정 심판관들도 얼토당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변호사 히페레이테스가 프리네의 옷을 벗겨 버렸다. 그리스의 옷은 하나의 천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힘주어 벗기면 단숨에 나체로 노출이 될 수밖에 없었다.

​법정에서 나체가 된 프리네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렸지만 그녀의 빛나는 나신은 감출 수가 없었다. 법정 심판관들도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결국 최종 판결은 그녀의 승리로 끝났다. ‘감히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몸, 절대적인 신이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육체를 가진 프리네를 인간이 판결할 순 없다’라는 것이다.

영웅 헤라클레스의 흑역사 <옴팔레>

헤라클레스는 엄청난 괴력을 자랑하는 자타공인 최고의 영웅이다. 그런 헤라클레스는 이피토스를 죽인 죄를 씻기 위해 리디아의 여왕 옴팔레에게 노예로 팔려갔다.

옴팔레는 노예가 된 헤라클레스를 굉장히 특이하게 부렸다. 옴팔레는 헤라클레스가 항상 두르고 다니던 사자 가죽과 또 다른 상징인 올리브나무로 만든 몽둥이를 빼앗아서 들고 다녔다. 대신 헤라클레스에게는 여자 옷을 입히고, 발밑에서 뜨개질을 하거나 동물처럼 네 발로 기어 다니며 등에 태우고 다니도록 했다.

 헤라클레스는 옴팔레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묵묵히 따랐다. 그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향연에서 옴팔레를 수행하며 그녀에게 황금우산을 받쳐주는 역할도 했다. 옴팔레는 여러모로 헤라클레스가 치욕스러울만한 일을 골라서 시켰다. 헤라클레스는 노예로 봉사하는 기간이 지나서야 자신의 우스꽝스런 행동을 깨닫고 옴팔레의 궁을 떠나 그리스로 돌아갔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신화는 그리스 고전시대부터 이미 아내에게 쥐어 사는 못난 남자들에 대한 조롱으로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가 됐다. 음악 작품으로는 카미유 생상스의 교향시 『옴팔레의 물레』와 앙드레 데투슈의 오페라 『옴팔레』 등이 유명하다.

프랑스를 지켜낸 오를레앙의 성녀 <잔다르크>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졌던 백년 전쟁의 마지막 시기에 등장한 것이 프랑스의 구국 소녀 잔 다르크이다. 당시 프랑스의 기사군은 영국 농민으로 구성된 활부대에게 계속 밀려서 마지막 요새인 오를레앙의 함락은 시간문제인 상황이었다.

목자의 딸인 잔 다르크는 열세 살이 된 어느 여름의 일요일, 교회의 종소리가 그칠 무렵 천사의 아름다운 합창 소리를 듣고 천사장 미카엘의 모습을 봤다. 미카엘은 소녀를 향해 "어서 가서 프랑스 왕을 구하라. 오를레앙의 포위망을 풀도록 하라"고 명했다.

천사의 분부를 굳게 믿고 일어난 잔다르크는 흰 갑옷에 망토를 걸친 모습으로 백마를 타고, 손에는 흰 바탕에 백합을 수놓은 깃발을 들고 오를레앙으로 향했다. 이후 프랑스군의 선두에 서서 거침없이 돌진하는 잔 다르크를 영국군은 막을 수 없었다.

사명을 완수한 잔 다르크는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복귀를 허락받지 못해 다시 전선에서 싸우게 됐다. 영국군을 상대로 하는 전투가 아니라 같은 프랑스인인 부르고뉴파와 싸우는 일에서 잔 다르크는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잔 다르크는 부르고뉴파에 의해 포로가 됐고. 그들은 영국군이 제공한 1만 리브르의 돈을 받고 영국에게 잔다르크를 넘겼다.

종교 재판에 회부된 잔 다르크는 신을 배반한 여자라는 죄목으로 루앙 광장에서 화형에 처해졌다. 잔 다르크는 불길이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서도 자신이 행한 일은 신의 고지에 의한 것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천사들의 이름을 부른 뒤 마지막에 "예수님"이라는 말을 남기고 열아홉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모성애의 상징 <마리아>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카톨릭에서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또는 ‘성모 마리아’라고도 부른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요셉과 약혼한 뒤 수태고지를 받아서 예수를 처녀인 상태로 잉태했다. 출산이 임박했으나 숙소를 잡을 수 없어 교외의 동굴 안에 있는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았다.

예수의 어머니는 수많은 그림과 조각의 주제가 됐다. 미술에서는 흔히 마돈나(Madonna, 'my lady'라는 뜻)라고 부르며, 아기 예수를 안은 모습으로 자주 표현한다. 마리아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수태고지를 하는 장면을 담은 작품들도 많다.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로부터 9주일 뒤, 즉 3월 25일을 수태고지의 날로 정하고 있다.

그밖에 가나에서의 기적, 십자가 처형을 그린 작품에도 마리아가 등장한다. 죽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에도 마리아가 있다. 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은 피에타(Pieta)라고 부르는데, 가장 유명한 피에타는 바티칸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이다. 이 사건들은 모두 성서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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