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ㆍ경제학 박사

  얼마 전 읽은 ‘퇴직 공무원이 나라 망친다’는 모 일간지 사설이 기억 속에 맴돈다. 포화의 잿더미 속에서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선진국 문턱까지 이르게 한 주역 중의 하나가 공직자의 노고였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필자도 전액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준정부기관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공무원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적지 않게 봐왔다. 박봉에도 긍지를 갖고 열심히 일하다 퇴직한 나의 형과 친척 아저씨도, 그리고 현직에 있는 큰 조카도 그들 중 한사람이다. 그런데 어떻게 퇴직 공무원 문제가 메이저 신문의 사설 제목에 오르내리는 지경이 됐을까?
  특정 부처 퇴직 관료들의 비리뿐 아니다. 불과 1년 전의 일인데도 잊히고 있는 ‘원전 마피아’에서부터 정부부처 출신 인사들을 지칭하는 ‘정피아’에 관한 부정적 기사들이 여전히 넘쳐난다. 기사에 따르면 산하기관과 단체, 심지어 민간업체까지 정부부처의 퇴직관료들이 자신들만의 천국을 이뤄왔다고 한다. 원전비리에서 드러났듯이 공무원 조직의 끈끈한 인맥으로 연결돼 제 식구 챙기기를 넘어서 수많은 비리에 연루됐던 사실이 밝혀졌다. 자신들은 호위 호식하지만 여러 사건사고들에서 보듯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퇴직일로부터 3년간 직무관련 영리법인에 취업하지 못하게 돼 있는 개정 공직자윤리법도 ‘적법’한 출신세탁을 하는 이들의 고차원의 전략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인사들이 안전한 유관기관으로 우선 자리를 옮긴 뒤 원했던 단체로 메뚜기 뛰듯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국민들은 ‘문제시’ 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당연시’ 한다. 이러한 공무원과 조직의 행태를 지극히 정상적 관행으로 치부하는 한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핵심이 빠졌다. 우리나라 100만 공무원이 모두 다 그런가? 그래서 도매금으로 비난받아야 하나? 단언컨대 결코 아니다. 공무원의 본분을 망각하고 공익과 사익을 분별치 못하는 극히 일부의 선민(選民)병 환자들과 그들에 의해 주도돼온 공무원 조직의 일부 비정상적 관행에 한정되는 말이다.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국민의 공복으로 일하다 은퇴 후에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퇴직공무원이 지극히 일반적인 공무원상임을 오해해선 안 된다.
  대부분의 봉급생활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하지 않고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며, 사회봉사나 자신과 가족을 위한 인생2막을 설계하게 된다. 60세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대부분의 공무원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아집으로 가득 찬 일부의 퇴직공무원은 그렇지 않다. 온갖 연줄과 조직을 통해 정피아의 일원으로 남으려 한다. 그들에게 국민은 받들어야 할 주인은커녕 개인적 영달을 위한 한낱 도구로 보일 뿐이다.
  이런 공직자들이 끼치는 해악은 정치권의 경우보다 덜하지 않다. 많은 경우가 전문성과 소양이 부족한 이른바 ‘보은인사’이기 때문에 내려 받는 조직을 헤칠 뿐 아니라 적재적소에 필요한 유수한 인재들이 활용되지 못하는 사회적비용이 적지 않다. 현 정부에서도 공공기관 개혁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공명정대한 인사가 선결되지 않으면 개혁 노력이 허사가 됨을 적잖이 봐왔다.
  최근에는 정피아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정권이나 정계를 의미하는 ‘정치’와 ‘마피아’의 합성어 곧 정치마피아를 의미하는 정피아가 관피아 떠난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내용이 주류이다. “전문성 떨어지는 ‘정피아’가 ‘관피아’보다 더 문제”라는 일간지 기사들에서 읽을 수 있듯이 정치권 낙하산의 폐해가 우려할 수준이라는 것이다. 300개의 공공기관을 조사해 보니 지난 1년간 기관장과 감사직에 관피아는 161명에서 118명으로 43명 줄어든 반면 정피아는 48명에서 53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숫자보다도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들이 속속 입성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해당 조직에도 해가 되지만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운영법 개정 등 여러 방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행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제도의 운영을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공모직’과 ‘추천직’을 명확히 구분해서 공모직은 말 그대로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거쳐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공개 영입토록 하고, 추천직은 현실을 감안해 이른바 정치·관료 낙하산 인사를 허용하되 전문성을 필수로 하는 객관적 추천기준에 따르면 된다. 추천직의 경우 피추천인의 역량이나 행태에 관해서는 추천자도 일정부분 책임지는 시스템이 마련되면 좋을 것이다.
  이번에 고위 공직자 선발에 ‘국민추천제’를 시행하기로 한 것은 말 그대로 인사혁신처의 혁신적인 방안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라도 장차관을 비롯해 정무직과 개방직 공무원, 공공기관장에 적임인 사람을 추천할 수 있고, 정부에서는 이러한 국민의 인재추천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제도이다. 이 제도가 잘 정착되기만 하면 그동안 논란이 된 공직인사문제도 다소간 해소될 것이다. 이러한 개혁들을 통해 이제 우리나라도 좀 더 성숙한 인재영입 체계가 정착되어 유능한 공직자들이 적재적소에서 국민의 공복(公僕)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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