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대통령 탄핵사태로 유권자들에게 행운인지 불운인지를 알 수 없는, 조기대선을 맞아 준비부족과 부실을 노정하고 있는 급조된 대통령 선거캠프들이 아연 네거티브 캠페인(negative campaign)에 집중하고 있는 양상이다. 

산적한 안보, 외교, 민생 등 국정과제와 정책, 이슈 등을 선점해야 할 대선캠프가 ‘짐승, 양아치, 조폭 ,얼치기, 양념, 독약, 마 고마해, 그 사람 왜 그런대유’ 등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선거판에 어울리지 않는 막말과 언어남용이 정도를 넘은 실정이다. 향리의 소인배들도 하기 힘든 악언과 인신공격을 남발하는 각박한 정치판이 아닐 수 없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엘리트들이 결국 담당하게 되는 것이 그래도 정치라고 믿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고 보이나, 오고가는 말들을 살펴보면 동네의 삼류 건달이나 값싼 술집의 접대부 수준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오는 말이 고아야 가는 말이 곱다.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 대통령 후보 캠프의 용의주도한 수사학(rhetoric)과 대오각성이 매우 아쉬운 상황이다. 이런 개탄스러운 현실은 역설적으로, 숙녀와 신사가 부족한 우리 정치판의 천박한 지적· 정치적 ·인간적 수준을 여실히 드러내는 촌철살인, 정문일침의 표현인지도 알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악청사

정치권에서는 ‘선거를 한 번 하고 나면 자식 3대가 원수를 진다’고 한다. 네거티브 공격의 대상에는 후보뿐만이 아니라 아내, 아들, 딸, 장인, 처남 등이 포함된다. 수년~수십 년이 지난 일들도 들추어낸다. 난타전이라는 선거판에서 이렇게 심하게 싸우다보면 결국 상대 후보에 대해 악몽과 같은 기억만이 차고 넘치는 법이다. 

네거티브 캠페인의 상처와 후유증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내가 하면 검증이고 네가 하면 마타도어(중상모략의 흑색선전)가 된다. 이중기준(double standard)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치열해진 대통령 선거전을 치르고 있는 후보들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어떤 광역시의 시장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판 등에서 요즘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공무원으로서 수십 년을 한솥밥을 먹으며 선배, 후배 하며 과장· 국장 자리를 서로 돌아가며 맡으며 지내다 소속 정당을 달리해 시장 출마를 하게 된 경우다.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서로 공격하고 흠집을 내다보니 TV 토론이 끝난 후에는 상대 후보와 캠프에 인간적으로 감정이 상해 악수는커녕 눈길도 교환하지 않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약점을 들추어내 심한 말들을 하고 나면 두 번 다시 보고 싶지도 않다는 악감정이 쌓여 백안시(白眼視)하게 된다. 

선거 때문에 30~40년의 우정이 참으로 가소롭게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광역시나 지방 시·군의 경우 난감한 사정은 더욱 심하다. 해당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출마하는 인물들은 초·중·고나 대학의 선후배 사이였거나 이런 저런 인연이 보통 깊은 것이 아니었다. 동문회나 같은 동네의 모임 등에서 평소 형님,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으나 공천 경쟁을 하거나 출마를 하게 되면 하루아침에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싸운다. 

과거 어떤 지역의 경우 선거구 8곳에서 출마한 여야 국회의원 후보 대부분이 해당 지역의 명문고 동창생들이었다. 이에 따라 동문들은 후보자의 친구로서, 선배로서, 또 후배로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할지 입장이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어서 고육지책으로 선거 때마다 중립을 선언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선거 앞에서는 친구도, 동창도, 형님도, 동생도 없다. 권력은 핏줄도 가리지 않아 부모· 자식· 형제간에도 나누지 못한다고 한다.

미국의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 한나 아렌트(Arendt, 1906~1975)

악의 평범성, 전체주의 등에 주목한 미국의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 한나 아렌트(Arendt, 1906~1975)는 “정치는 말과 설득을 통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정치의 요체는 결국 의사소통이고 언어가 중심이 되는 커뮤니케이션임을 강조한다.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지지, 정치적 능력의 기반은 결국 정치인이 전달하는 핵심적인 언어에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대통령 후보들의 말을 통해 그들을 판단하고 평가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마련이다. 정치는 말을 통해 이루어지는 분쟁의 조정이자 사회적 가치의 정의로운 배분이다. 

언어와 인간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일방적인 말(word)은 때로 사람을 지배하는 칼(sword)이 되기도 하지만, 민주적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양보, 인정, 통합, 경청, 공감, 합의 등이라고 관련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런 열린 소통을 통해 포지티브(positive) 선거 캠페인은 다양한 가치와 전통의 통합, 힘의 공정한 분배, 나아갈 사회에 대한 관심과 방향 제시, 차이의 극복과 격차 해소를 위한 정책과 비전 등을 강조한다.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들은 네거티브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당당한 포지티브 캠페인을 통해 유권자에게 자신의 긍정적인 언어와 리더십, 품격 있는 인간성을 팔아야 한다. 정치도 이제 높은 인품을 팔아야 할 시기가 되었다. 인품은 언어에서 시작된다. 대통령의 언어는 부정적이지 않아야 한다. 논란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옳은 것만 말해야 한다. 그것이 또 장기적으로 유리하다. 

대통령 후보, 또는 대통령이 스스로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은 대부분 불리했거나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정치에서는 하이 리스크(high risk)가 하이 리턴(high return)을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기회주의적 변명이 필요하거나 모험주의적인 논란을 야기하는 문제는 참모나 악역(惡役) 담당에게 과감히 맡겨야 한다. 《사기》 <육가열전>의 말처럼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얻을 수 있으나 다스릴 수는 없다’는 것은 진리다. 고난의 창업(創業)은 사활을 걸고 싸워서 우선 이겨야 가능하나, 정치의 안정과 수성(守成)은 주는 것이 오히려 얻는 것임을 아는데서 더욱 편하게 이루어진다. 

대통령 후보, 또는 대통령의 말은 우선 긍정적이고 보다 세련되고 절제되고, 선의와 신뢰, 나아가 인류 보편의 이상과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갈등과 대립, 분열과 증오를 증폭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의존해서는 집권 후의 미래도 더욱 어려워진다. 주관적 ·사적 이익을 객관적· 공적 이익으로 전환하는 탁월한 능력, 굳은 믿음, 깊은 친근감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것이 국민의 지지와 협력이 절실한 대통령 후보, 또는 대통령에게 합당한 정치적 수사학이라고 보인다.

청와대 전경 / 사진출처=청와대 홈페이지

임기 내내 노골적인 막말 행진으로 부정적 평가를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나, 정치적으로 중요한 논쟁에 직접적으로 뛰어들거나 부적절한 어휘 구사 등으로 대통령 또는 대통령직의 권위와 품격을 훼손하고 약화시킨 반면교사의 대표적인 사례로 최근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행한 사태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거론할 수 있다. 

반면에 아주 긍정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로는 두 번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경우다. 스스로 작성한 명문(名文)의 연설문을 자주 선보이는 오바마는 2004년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 지원 유세에서 “진보적인 미국도 없으며 보수적인 미국도 없습니다.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애국자도 있고 이라크 전쟁을 지원하는 애국자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라는 등의 지성적이고 매우 인상적인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으로 무명의 정치인에서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아 2007년 이후 2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승리했다. 

2011년 4월 페이스북 본사에서 창업자 저커버그 CEO 등과 가진 타운 홀 미팅을 비롯, 오바마가 보인 적극적인 의사소통 기술과 SNS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리더십은 대통령과 유권자의 책임감과 민주주의를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거티브를 꼭 해야 한다면, 아래의 조언은 하나의 팁(tip)이 될 수도 있다. 합당한 검증이던, 부정적인 낙인효과나 흠집을 내려는 시도이던, 네거티브 캠페인이 제대로 효과를 얻으려면 상대방에게 반격할 기회나 타이밍을 주지 않아야 하고, 방어할 추호의 여유나 틈이 없을 만큼 결정적이고 압도적이어야 한다. 어설픈 공격은 상대진영에 면역성을 키우고 해명할 수 있는 근거를 찾게 하고 오히려 역공을 당한다. 네거티브 캠페인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이 상식이다.

* 위 칼럼은 본지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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