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축구, 야구, 농구 등을 비롯한 스포츠 팬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더비(Derby) 혹은 더비 경기(Derby Match)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당초 더비·더비 경기는 축구에서 주로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의 라이벌 경기를 뜻하는 용어였다. 최근에는 축구 이외의 종목에서도 더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치열한 라이벌전'을 뜻하는 용어로 의미가 확장됐다. 야구처럼 시리즈(Series)라는 용어 더비를 표현하기도 한다.

더비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에 존재하며 종목도 다양하다. 더비 중에서도 특히 치열한 라이벌전들이 존재한다. 이번 편은 그 치열한 라이벌전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 대한민국 대표 더비, 슈퍼매치(Super Match)

슈퍼매치는 K리그 클래식의 FC 서울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간 더비다. 슈퍼매치라는 더비 명칭 탄생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홍보팀 직원이 2008년 홈경기를 앞두고 보도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수원·서울 대결 앞에 붙일 수식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든 단어로 알려졌다.

수원 삼성 홈 구장

슈퍼매치라는 단어가 배포된 후 언론과 축구팬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부르기 시작했다. 또 한국프로축구연맹 주도하에 서울과 수원의 더비를 슈퍼매치라는 이름으로 리브랜딩 하면서 완전히 고착화됐다.

슈퍼매치는 FC 서울 전신인 안양 LG 치타스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라이벌 매치에서 시작 됐다. 1996년 창단 첫 해 K리그 준우승을 이끈 당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김호 감독과 조광래 코치는 극심한 불화를 겪은 뒤 1997년 결별했다.

1999년 조광래 감독이 안양 LG 치타스의 감독을 맡으며 김호 감독과 불편한 관계가 형성됐다. 이후 감독 간 신경전으로 인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안양 LG 치타스 간 라이벌 관계가 시작됐다.

FC 서울 홈 구장

아울러 1997년까지 안양 LG의 선수였던 서정원의 이적도 원인으로 꼽힌다. 서정원은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 1의 RC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1999년 K리그로 복귀하면서 당초 복귀를 약속했던 자신의 친정팀인 안양 LG가 아닌 돌연 수원 삼성으로 이적했다.

이에 격분한 안양 LG팬들은 1999년 3월 20일 열린 슈퍼컵에서서정원의 '유니폼 화형식' 퍼포먼스를 전개한다. 그러나 서정원은 이날 경기에서 친정팀인 안양 LG의 수비 진영을 휘저었다. 경기결과는 수원 삼성의 5-1 대승이었다.

이후 안양 LG는 선수들에게 특별수당까지 지급하며 승리를 다짐한다. 조광래 감독은 수원 삼성에서 만들었던 훈련 프로그램을 똑같이 안양 LG에 적용시키면서 열세에 있던 상대전적을 우세로 전환시킨다. 결국 안양 LG는 2000년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양 팀 서포터즈 또한 서로 상대방을 '치토스'(안양 LG의 구단명인 치타스를 비하하는 용어)와 '닭날개'(수원 삼성의 구단명인 블루윙즈를 비하하는 용어)로 비하하며 치열한 라이벌임을 증명했다.

수원 삼성에서 활약했던 서정원 / 사진출처=블루윙즈

수원 삼성 서포터가 경기장 내 플래카드에 불을 지른 방화 사건과 수원 삼성에서 뛰던 안정환이 관중석으로 뛰어올라 FC서울 팬과 충돌한 사건의 발생은 서포터들도 수퍼매치를 크게 의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슈머매치는 현재 K리그 더비를 넘어 대한민국, 아시아의 대표적인 축구더비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9년에는 FIFA(국제축구연맹)이로 홈페이지를 통해 세계 다양한 더비 중 슈퍼매치를 7번째로 소개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더비가 된 만큼 앞으로 과격한 행동을 삼가해야 하는게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 레즈더비? 노스웨스트 더비!

노스웨스트 더비는 축구 종주국이자 축구를 매우 사랑하는 국가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 리버풀 FC의 더비를 뜻한다.

노스웨스트는 잉글랜드 북서부 지방 행정구역을 뜻하며, 멘체스터와 리버풀을 포함한 볼튼, 리즈, 세필드, 블랙풀, 블랙번 등의 도시가 있다.

리버풀 스티븐 제라드와 맨유 폴 스콜스

맨유와 리버풀의 홈 유니폼 색깔이 붉은색인 이유로 국내에서는 ‘레즈 더비’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인 것으로 확인됐다.

과거 리버풀은 농업과 운하를 통한 운수업 호황으로 노스웨스트를 대표하는 도시였다. 멘체스터도 리버풀을 통해 다양한 품목을 수출하고 수입했다. 그러나 멘체스터에도 운하가 만들어지면서 두 도시의 입지가 달라진다.

운하가 건설되면서 맨체스터는 자체적으로 대양과 직접 연결이 가능해졌고, 리버풀의 운하를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때문에 리버풀에는 많은 실업자가 발생한다.

또 20세기 전후로 영국의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석탄 산지였던 맨체스터는 세계적인 상업·금융 도시로 탈바꿈한다. 이후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분에서 리버풀을 압도하게 된다.

맨체스터의 대표적인 클럽 맨유와 맨체스터 시티 엠블럼에 배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운하가 건설이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켰는지 짐작할 수 있다.

노스웨스트 더비

맨체스터의 성장에 리버풀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이런 감정은 축구장으로 이어졌고, 노스웨스트 더비가 형성된다. 이런 역사 외에도 맨유와 리버풀이 노스웨스트 지역 강팀이라는 점도 더비 형성에 큰 몫을 차지했다.

노스웨스트 더비는 치열한 신경전과 몸싸움으로 유명하다. 사소한 시비는 기본이고, 경고나 퇴장이 일반 경기보다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명한 사건으로 ‘에브라·수아레스’ 사건이 존재한다. 맨유 선수였던 패트릭 에브라는 경기중 리버풀 선수였던 루이스 수아레스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들었다고 FA에 제소한다. FA 확인 결과 사실로 에브라의 주장은 사실로 판명됐고, 수아레스는 벌금과 함께 출장정지를 받는다.

루이스 수아레스

출장정지가 풀린 후 수아레스는 맨유와 노스웨스트 더비 경기 전 에브라의 악수를 거부한다. 이에 에브라는 해당 경기에서 승리한 후 수아레스 앞에서 승리 세레머니를 하기도 했다.

노스웨스트 더비로 인해 부상당한 선수도 있다. 리버풀 선수였던 제이미 캐러거는 노스웨스트 더비 중 루이스 나니에게 과격한 태클을 가하고 나니는 정강이 부상을 당한다.

이후 캐러거의 동료인 디르크 카윗과 스티븐 제라드가 나니에게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라는 듯한 행동을 취했고, 이를 본 나니의 동료 폴 스콜스가 격분하면서 양팀 간 몸싸움이 발생한다.

심판과 양 팀 스텝들의 중재로 경기가 다시 안정을 맞는 듯 했지만 맨유 선수가 리버풀 선수에 보복성 태클을 가하며 경기가 다시 소란스러워지기도 했다.

웨인 루니

맨유 대표 선수 중 한명인 웨인 루니는 리버풀 출신이다. 지역 라이벌 팀에서 활약하는 것도 리버풀 팬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 있는데, 루니는 인터뷰 때 마다 ‘어릴 때부터 리버풀을 싫어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말한다.

맨유와 리버풀은 현재도 경기에서 엄청난 신경전을 벌인다. 노스웨스트 더비는 세계 축구 더비 중 가장 치열한 더비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 밤비노의 저주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

보스턴 레드삭스와 뉴욕 양키스, 두 팀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 함께 속해 있다. 이들은 MLB 대표 라이벌 중 하나지만, 한 때는 이들을 라이벌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아메리칸리그가 창단된 1882년부터 약 레드삭스는 5회의 우승을 달성했지만, 양키스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20년 레드삭스와 양키스가 라이벌 팀으로 불리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레드삭스 최고 선수이자 메이저리그 레전드로 남아있는 베이브 루스가 양키스로 이적한 것이다.

베이브 루스

루스의 합류로 양키스는 연일 승전보를 알렸고, 1923년 첫 월드시리즈 우승을 시작으로 루스가 은퇴한 1935년까지 총 4회 우승을 기록했다. 루스 역시 통산 714개의 홈런을 날렸다.

반면 레드삭스는 루스 이적 이후 하락세를 보인다. 1918년 우승 이후 2000년대 까지 보스턴은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밤비노(베이브 루스의 애칭)의 저주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4년 보스턴에 밤비노의 저주를 풀 기회가 온다. 당시 보스턴 팬들은 베이브 루스가 연못에 빠트린 피아노를 다시 연주한다면 저주가 풀릴 것이라는 미신을 믿고, 연못에서 피아노를 건져 내기도 한다.

2004년 우승한 보스턴 레드삭스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에서 만난 양키스와 보스턴은 초반 3경기를 양키스가 승리한다. 밤비노의 저주가 풀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보스턴이 극적으로 남은 경기에서 연승을 거두며 양키스를 꺾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한다. 마침내 저주가 풀린 것이다.

보스턴은 월드시리즈에서도 세인트루이스를 4전 전승으로 물리치며 86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다. 이들의 영화 같은 얘기 때문인지 일부 야구팬들은 양키스와 레드삭스를 MLB 최고의 라이벌이라 말하기도 한다.

◈ 접전의 접전을 거듭하다. ‘LA 레이커스, 보스턴 셀틱스’

LA 레이커스와 보스턴 셀틱스는 NBA 대표 명문구단이자 라이벌들이다. LA와 보스턴의 지역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지만 NBA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친 팀들로 유명하다.

두 팀의 경쟁이 가장 치했던 시기는 1980년대다. 당시 레이커스는 매직 존슨, 셀틱스는 래리 버드라는 당대 최고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두 팀의 대결은 자연스럽게 라이벌전으로 발전하게 된다. 1979년부터 1989년 까지 NBA 파이널 기록에는 늘 레이커스와 셀틱스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셀틱스와 레이커스

79~80시즌 신인이었던 매직존슨은 레이커스를 NBA 우승으로 이끌고 자신은 파이널 MVP에 오른다. 다음 시즌은 래리버드가 이끄는 셀틱스가 우승을 차지한다.

또 그 다음 시즌엔 매직존슨의 레이커스가 우승을 차지했고, 래리버드의 셀틱스는 83~84시즌 정규리그와 파이널 MVP를 모두 석권하며 레이커스에 승리한다. 이후에도 래리버드·셀틱스와 존슨·레이커스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우승과 MVP를 차지한다.

1990년대에는 마이클조던을 앞세운 시카고 불스의 독재시기 찾아오면서 이들의 라이벌 구도도 한 풀 꺾인다. 2000년대 초반에는 레이커스가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를 중심으로 NBA를 지배했다. 이때 셀틱스는 이렇다 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라이벌 관계가 더욱 약해지는 듯 했다.

하지만 2007년 셀틱스가 거액을 들여 케빈 가넷, 레이 앨런 등을 영입했고 폴 피어스와 더불어 BIG3이라 불리며 우승후보로 거듭난다. 셀틱스는 BIG3이라 불리는 강력한 멤버로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 승리를 거둔다.

이후 두 팀은 2009~2010 시즌 파이널에서 또 맞붙었고,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레이커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현재는 선수도 많이 바뀌고 라이벌이라 부르기 다소 애매해 졌지만 이들이 NBA 전성기를 이끈 라이벌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 밀란 더비라 불리는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Derby della Madonnina)’

데르비 델라 만노니나는 이탈리아 세리에 A 소속 롬바르디아 주 밀라노 시를 연고지에 두고 있는 두 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와 AC 밀란과의 경기를 뜻한다.

영어로 밀란 더비(Derby of Milan)라고도 한다. 이들의 경기는 세계 축구 3대 더비라고 불렸을 정도로 경기가 치열하고 거칠기로 유명했다. 

인테르 밀란 호나우두를 수비하는 AC 밀란 말디니

데르비 델라 만노니나라는 이름의 유래는 두 팀의 연고지인 밀라노에 위치한 대성당(두오모)에 있는 석상의 이름 마돈니나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연고지를 둔 클럽 간의 더비이기도 하지만 인테르 밀란이 AC 밀란에서 갈라져 나온 클럽이다 보니 인테르 밀란 창단 때부터 라이벌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AC 밀란은 영국인들이 주도해 창설한 클럽이다. 이 때문에 초기에 영국인과 이탈리아인만 선수로 받아들인다는 방침이 만들어졌다.

AC 밀란의 이 같은 방침에 반대하는 세력이 모이기 시작했고, 결국 AC 밀란을 탈퇴해 모든 국가의 모든 선수들을 받아들인다는 인테르 밀란이 창단됐다.

이런 역사를 가진 두 팀이 같은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다 보니 홈·원정 구분이 없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이들이 활약했던 세리에 A가 큰 인기를 끌고 높게 평가됐던 8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는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더비인 엘 클라시코를 상회하는 파급력을 보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면서 양팀의 전력이 함께 낮아지면서 실력 외적인 면에서 라이벌 관계가 더욱 강화됐다는 평가다. 양팀은 현재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거금을 쏟아부으며 노력하고 있지만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스포츠 더비 편이었다. 오늘 소개한 팀들 외에도 각 지역에서 특별한 사연으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팀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들은 평소 원수처럼 서로를 비방하고 유혈사태가 발생시키기도 하지만 서로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이기도 한다. 더비를 형성하는 대부분의 팀이 죽일 것처럼 싸우면서도 서로를 의식하고 존중할 때는 하는 걸 보면, 라이벌의 숨은 의미가 ‘오래된 친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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