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의 꿈을 꾸는 것은, 그 사람과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기시미 이치로

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나도 모르겠다. 오늘 마닐라에 오자마자 병원에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병원이 있는 한국은 마닐라로부터 약 1600마일 떨어져 있어서, 새벽 1시 비행기를 탄다면 인천에 오전 중으로는 도착할 것이다. 그게 내가 탈 수 있는 제일 빠른 비행기였다. 그러면 나는 밤샘을 할 수 있을 테고 장남인 내가 한국에 도착한 오전부터 장례식을 치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같이 온 촬영 스텝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중략)
내가 보기엔 행렬이 좀 더 빨라진 것 같았다. 주위는 한결같이 햇볕이 넘쳐나서 눈부시게 빛나는 벌판뿐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 지경이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최근 들어 새로 깐 도로로 들어섰다. 아스팔트가 햇볕을 받아 갈라 터져 있었다. 우리의 발자국이 박히면서 아스팔트는 가죽처럼 뭉개져 번들거렸다.

눈치 채신 독자 여러분도 계시겠지만 이것은 알베르 까뮈의 소설 <이방인>을 인용하고 패러디한 문장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쓰인 내용들은 모두 소설이 아닌 사실이며, 우리 아빠의 시선으로 쓴 것이다.

며칠 전, 할머니가 죽었다. 나는 그 연락을 마닐라에 도착한 아빠로부터 들었다. 할머니의 사망 추정시간은 10시 반, 아빠는 오전 8시 비행기를 탔었다. 아빠는 그 뜨거운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내리듯 공항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빠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했던 하루 동안 나는 이방인처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 겪는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 너무도 일상적인 하루였기에 나는 할머니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할머니 손에 자란 나는 아직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나마 조금 믿게 된 건, 승화원에서 할머니의 유골을 본 이후부터였다. 이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날, 내가 썼던 시다.

<그러한, 여전한 날에> / 지해수

가자미가 철이라며/ 나, 살겠다고/

술병 든 여전한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 마트에 향한다/

아이고 근데 고등어가 실하다/

올리브유에 버터를 조금 섞어 굽는다//

처음 보는 고등어가 여전한 냄새를 풍기며 맛있게 익는다/

처음 보는 고등어가 근데 오랜만이라 맛이 좋구나/

너 죽어내는 나 살고자 하는 향기야 세상이 그런 거지//

큰 고등어를 먹자니 밥술이 모자르다/

한 그릇을 비우고 두 그릇을 먹자니 도저히 못 먹겠다/

배부름에 지쳐 낮잠에 빠진다/

아침에 필리핀에 간 아빠가 전화가 왔다/

어, / 소식 들었니 / 할머니가 돌아 가셨단다 오전에//

나의 여전한 오전에/

그녀는 여전한 거라곤 전혀 없는 곳에//

배부름에 지쳐 잠이 든 오후에/

그녀도 지쳐 잠이 든 오후였다//

이후에도 내가 느낀 수많은 감정들은 불과 며칠 사이에 엄청 수많은 시를 짓게 만들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꽤나 밝은 모습이었다. 부모님이 아닌 조모상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지인들이 조화를 보내주고 찾아와주었다. 장례식장엔 일본사람, 미국사람 국적도 다양하게 모여들었다. 그 때도 할머니의 죽음을 믿을 수 없던 나는 미친년처럼 밝게 웃으며,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었다. 여기에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 지 마구 털어놓고 싶은 생각일랑 없다. 단지 내가 가졌던 의문에 대해 쓰고 싶다.
난 할머니 손에 컸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나의 엄마와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효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죄책감에 시달려야 맞다, 아니 옳다. 계실 때 잘하지 못했음으로 내가 잘못한 일들만 떠오르고 할머니 꿈을 막 꾸어야 맞다, 아니 옳다. 하지만 웬일인지 할머니는 내 꿈이 나타나시질 않았다. 괘씸해서였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아빠가 이렇게 말했다. 며칠 전에 할머니가 내가 보고 싶다고 막 우셨다고. 할머니는 지금도 날 사랑하신다. 근데 왜 내 꿈에 나타나질 않는 거지? 왜 난 할머니 꿈을 꾸지 않는 걸까?

<나이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기시미 이치로 저)>란 책을 어쩌다 읽게 되었다. 장례식 이후 며칠 동안 잠이 들어있던 난 이 책에서 기억에 남는 문장을 발견했다.

‘죽은 사람의 꿈을 꾸는 것은, 그 사람과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걸까. 그래서 할머니 꿈을 꾸지 않는 걸까. 난 할머니랑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사실 할머니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특별히 지병이 있으셨던 것은 아니지만 올해 나이가 아흔 한 살이셨다. 깔끔한데다 멋쟁이였던 우리 할머니는 약 2년 전부터 염색을 하지 않으셨다. 나에게 이것은 꽤나 큰 충격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흰머리의 할머니가 충격적인 게 아니라, 할머니가 그런 의지를 더 이상 가지지 않는 것이 충격이었다. 그래서 어렴풋이 ‘언젠가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를 조금씩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이때부터 명절, 설날, 혹은 이유 없이 할머니를 뵈러 가더라도 늘 ‘마지막일수도 있겠구나’라는 듯 할머니를 대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마지막’처럼 할머니를 대하더라도 내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보고 싶다던 말이 무색하게 할머니와 잘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그녀의 목소리를 잔소리처럼 들었으며, 할머니가 여기 저기 쑤시고 아프다고 하면 보는둥마는둥 했다. 그렇게 20년 넘게 살아왔는데 쉽사리 변할 리가 만무했다. 습관이란 정말 무서운 거다. 효도도 습관이고 관계도 다 습관이다. 내가 할머니께 용돈을 조금 더 드리게 된 것 말고는 변한 게 정말 없었다. 어차피 이건 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소득이 더 늘어서 그런 거였다. 원래도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우리의 만남은 언제나 소중하고도 진부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랑했다.

흠, 어쩌면 내가 그냥 ‘마지막’, ‘죽음’ 이 자체를 부정하고 싶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 이성과 감정이 혼돈 속에서 싸우고 있었기에 눈과 손을 어찌할 바를 모르던 거다. 그래서 떠난 걸까, 할머니는. ‘사랑하니까 떠나는 거야.’라는 말처럼. 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니까.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려고 할까? 할머니가 아프다는 곳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 할머니가 싫어하던 사람들 욕을 실컷해주는 것, 할머니가 좋아하던 정치인의 이름을 나의 생각과 관계없이 칭송하는 것, 손녀딸 잘나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 할머니를 씻겨드리는 것,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응? 생각보다 꽤 많잖아? 아니 그저 그리워하던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겐 엄청난 선물이었을 것이다. 매일 울며 그리워하던 손녀딸의 얼굴을. 당신의 마지막 열정과 사랑으로 키운 나를.

고모는 울면서 자꾸 ‘엄마 미안해’라고 말했다. 계실 때 잘할 걸 그랬다며 후회했다. 내가 보기에 아빠와 고모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아빠는 할머니를 끝까지 모셨다. 아빠 친구 분들도 다 아빠 같은 효자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끝’을 알면서도 이만큼 밖에 사랑하지 못했기에, 계실 때 잘할 걸 이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겠다. 그걸 스스로 알기 때문에 할머니 꿈을 꾸지 못하는 것 같다. 나중에 저 세상에서 할머니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때 할머니와 하고 싶은 일들이 다시 생길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할머니를 추모하는 시를 쓰고(이 행위는 사실 온전히 나의 자기 위로이다), 나보다 훨씬 상실감이 클 아빠를 위로하는 일이다.

멀쩡한 듯 한 내가 멀쩡한지 모르겠다. <이방인>의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처럼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가도 어느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그녀 생각에 빠진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이런 상실의 감정을 겪어보셨을 테니 나의 감정을 이해하실 것이다.
단지 하나, 내가 다짐한 것은 아빠를 사랑하는 일을 더욱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는 거다. 이건 아빠와의 시간이 앞으로 겨우 ‘몇 십 년’이라는 유한성 때문이 아니다. 아빠가 요 며칠 사이 보여준 모습들이 아빠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다. 아빠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더 많이 느끼게 되었다. 힘든 일을 함께 겪으며 우리가 더욱 단단해진 것도 맞다. 아빠와 하고 싶은 일들이 머릿속에 마구마구 떠오른다. 원래도 우리 부녀는 자주 술자리를 가지고 통화하는 사이다. 나는 친구들과 술 마시는 것보다 아빠와 노는 게 솔직히 더 재밌다. 친구랑 아빠랑 같이 놀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유쾌하고 행복하다. 지금도 아빠가 너무 보고 싶다. 아빠를 보고 있으면 느낄 수 있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내가 그의 하나뿐인 작품이므로 더욱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느끼게 된다.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당신이 옳았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지 못했을 것 같다. 그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전쟁을 겪고, 비참한 가난 속에서 산 세대다. 자신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뼈 빠지게 일을 해서 대한민국을 탄탄하게 한 세대이면서도, 그게 다 ‘박정희’덕 인줄 아는 바보세대다.
그저께도 새벽에 술에 취해 할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쓰면 뭐하나, 우리 할머니는 언문도 모르는 까막눈인걸. 그런 할머니가 언제 ‘당신이 옳았습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어봤을까. 일평생 무시나 당하거나 빼앗기고 사셨겠지. 인생을 구십 넘게 살고도 자식들에게 잔소리나 듣고 있었는데. 내가 아픈 건데도 자식들이 아는 체를 하니 말이다.
솔직히 아직도, 할머니를 정말 사랑하지만, 냉정하게 할머니의 말씀 중 대단히 막, 무릎을 탁 칠만 하게 옳았다는 게 뭐가 있었던 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난 감기 안 걸려, 라고 자꾸 말하면 감기에 걸린다……. 이런 거 빼곤. 하지만 알게 될 것이다. 나중에 내가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가 최후의 순간에 다다라 모든 감정을 한꺼번에 껴안 듯 나 역시도 그 순간에 우리 ‘섭섭이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폭발할지도 모르겠다.

‘불효자는 웁니다’
라고 했는데 효자도 울더라. 계실 때 못했던 게 생각나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의 죽음이 눈 앞 임을 알면서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선택들로 그녀를 실망시켰을 것만 같다. 그녀의 죽음이 눈앞임을 알면서도 ‘최상의 것’을 못해드렸을 것 같아서 오히려 두렵다. 이게 오늘 글의 결론이다.
그러나 몹시 사랑한다. 할머니는 이런 나의 감정을 이해해주실까. 할머니는 아마 나의 모든 걸 이해해주실거다. 그녀의 아가페적인 사랑은 늘 그랬었다. 그러니 이런 오만 방자한 생각도 하며 마구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랑을 가지고 사랑할 것이다. 후회를 후회하지 않는 이런 비참한 순간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매일을 열심히 가꾸어나가야지.

이 시를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 故장서섭, 그녀에게 바칩니다.

<평생의 짝사랑> / 지해수

1927년 음력 10월 13일/

경상도에서/ 아이고, /또, / 계집아이로구나/

네번째도 사내가 아니라 굉장히 섭섭하구나 /

얘 이름은 섭섭이로 하자 /

내 아랫 계집동생도 민자인데 왜 나만 섭섭이야 /

섭섭해 미치겠네 / 섭섭해 죽겠네 //

섭섭이는 섭섭하게 살다가 이팔청춘에 /

이북에서 내려온, /

살면서 본 조선땅 제일 잘생기고 다정스런 이랑 혼례를 치뤘네 /

근데 그 남자 섭섭이보다 일평생 술을 더 사랑하네 /

섭섭해 미치겠네 / 섭섭해 죽겠네 //

그 남자 제 손으로 밥벌줄을 몰라/

까놓은 자식 셋 열심히 키웠어 이제 덕좀 볼라니까/

그 남자 술따라 저 세상으로 또 유유히 취하듯 빨리도 흘러갔어/

섭섭해 미치겠네 / 섭섭해 죽겠네 //

또 시작이야 짝사랑이 /

평생 자식을 짝사랑했어 /

섭섭해 미치겠네 / 섭섭해 죽겠네 //

자식 놈 데려온 며늘애기 이름이 박정희야 /

이게 다 누구 덕에 먹는 거여 새마을운동 박정희 덕이지 /

이리 잘 살게 된게 다 박정희 덕이지 /

근데 싫다고 또 이 집을 떠난다네 /

섭섭해 미치겠네 / 섭섭해 죽겠네 //

자식 셋 키웠는데 손녀딸 하나 못 키울까 /

평생의 짝사랑 남은 짝사랑을 /

아기새같은 너에게 준다 /

섭섭해 미치겠네 / 섭섭해 죽겠네 /

그래도 괜찮네 원래 다 그런 거였다 //

할머니 나 이제 다 컸어 정말이야 /

튼튼해졌고 당당해졌어 /

내가 알아 평생의 짝사랑 /

이제 당신도 사랑받을 차례야 //

아흔 넘은 노인이 / 백 살을 못 기다려 /

그 남자따라 저 세상으로 처언처언히 종종 걸음으로 느리게 걸어갔네 /

오롯이 남은 난 /

섭섭해 미치겠네 / 섭섭해 죽겠네 //

일평생이 짝사랑이야 섭섭이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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