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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세계 유명인 BEST 5그것이 알고 싶다

[공감신문]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던 탓일까. 미스터리하게 떠난 유명인들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며 우리 가슴속에 추억된다. 특히 짧은 생을 마감한 이들은 더욱 그러하다. 그들의 죽음 뒤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해 하던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오늘은 유명인들의 죽음에 대한 의혹과 진실을 담아 소개해본다.

아시아 액션의 신, 이소룡
공식 사인(死因) 약물과민반응 및 뇌부종

노란 타이즈와 쌍절곤이 떠오르는 아시아의 전설, 이소룡. ‘브루스 리’로도 불리는 그는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7주에 걸친 부검 결과 뇌부종으로 밝혀졌지만 명확한 원인 밝혀지지 않자 다양한 의문이 제기 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 3가지를 골라보았다.

1. 타살
그는 영화인이기 전에 절권도를 창시한 무술인이다. 그가 외국인들에게 중국무술을 가르치고 무술을 상업성 영화의 도구로 이용된다고 불만을 품은 중국 무술인들이 한방비약을 이용해 암살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타살의혹 중 가장 유력한 후보는 삼합회다. 당시 삼합회는 배우들을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배우들에게 돈을 요구하곤 했는데 이소룡은 이를 거부했다고. 그 덕에 삼합회가 많은 손해를 봐 눈엣가시인 그를 제거했다는 소문이 있다. 

2. 돌연사
뇌부종이라는 사인에 근거로 그의 죽음은 단순 돌연사라는 이야기도 있다. 무술시합과 촬영으로 받았던 상처들이 방치되어 뇌가 손상돼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 (그가 세상을 떠난 날, 그는 대만과 홍콩에서 활동했던 팅페이의 아파트 침대에서 발견됐다. 일각에선 복상사라는 설도 제기했다)

3. 집안의 저주
과거 이소룡의 할아버지는 풍수신동이 죽은 자리 옆에 묘를 썼는데, 풍수신동이 꿈에 나타나 이소룡 아버지(이해천)에게 “넌 64세에 죽고, 네 아들은 그 반밖에 못 살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근데 그는 정말 예언대로 64세에 죽게 되었다고. 이소룡은 그 저주가 두려워 무술을 연마했고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으며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꿈에 풍수신동이 나타나 “너는 32세에 죽을 것이고 너의 가문의 대는 끊길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이소룡의 유작, 영화 <사망유희>포스터

풍수신동의 저주대로 그의 나이는 자신의 아버지 나이의 절반이 되는 32세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의 아들인 브랜든 리는 영화 <크로우>라는 작품 촬영 중 총기오발사고도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나이는 16세였다고 한다. 이소룡은 죽음을 예감한 건지 죽기 전 묘지를 시에틀에 이미 마련해 놓았고, 죽기 4개월 전에는 100만 달러 상당의 생명보험에 가입해 놓았다. 이소룡의 유작이자 자신의 영화에 '사망유희'라는 불길한 제목을 지었던 점이 의혹을 뒷받침해준다.

미국 서부영화의 대표자, 존 웨인
공식 사인(死因) 대장암

50년대 서부영화로 미국을 주름잡았던 배우 존 웨인은 학술과 보고서를 통해 밝혀졌지만 미스터리들이 남아있다. 그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CIA가 공개한 비밀문서를 토대로 주장한다.

의문의 시작점은 1956년작 <정복자>에서 시작된다. 정복자는 징키스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1954년 MGM 영화사의 제안으로 존 웨인은 출연을 결정하게 된다. 영화의 배경답게 넓은 땅이 필요했는데, 미 국방부가 미국 유타주의 한 지역을 추천했다. 그곳은 냉전시대 핵실험이 진행됐고 세계 미스터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네바다 주와 가까웠다.  존 웨인은 방사능 지역인 것을 모른채 촬영했는데 연출진 및 단역들자까지 약 117명 모두 20년을 넘기지 못한 채 사망하게 된다.

연출진, 단역자들까지 죽음에 이르게 만든 영화 <정복자>포스터

존 웨인 역시 폐암에 걸려 한쪽 폐를 들어냈고 방사능 오염사실을 알면서도 실험을 위해 허가했던 정부 당국에 책임소재를 추궁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79년, 존 웨인은 미국 당국과 비밀협정을 맺게 되는데 그를 냉동 보관하여 미래에 치료약이 개발되면 다시 소생시켜 치료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서부영화계의 거장이었으나 특별한 장례절차 없이 지나간 점에서 의혹이 더욱 증폭되 워싱턴 DC에 소재한 국방성 지하벙커에 냉동 보관되어있다는 설이 나왔다.

러시아의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
공식 사인(死因) 뇌졸중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소련의 최초의 국가원수였던 레닌은 1922년 고혈압을 일으켜 점점 권력의 자리에서 밀려난다. 마지막 1년은 실어증까지 겹쳐 병상에 지내던 중 1924년 1월 21일 뇌졸중으로 사망한게 공식적인 기록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은데, 키워드는 ‘독살’이다.

2012년 신경학자 해리 빈터스는 "레닌은 누군가에게 독살됐다"며 그가 가리킨 인물은 바로 ‘스탈린’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레닌의 시신 부검 결과와 병원 기록을 검토한 빈터스는 독살 여부를 밝혀주는 테스트가 당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레닌은 죽기 전까지 움직이고 얘기를 나눴다며 뇌졸중 환자에게 매우 이례적인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고 덧붙였다.

레닌(왼쪽)과 스탈린(오른쪽)

앞서 스탈린은 1903년 볼셰비키 당에 입당했으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 후 스탈린은 레닌의 오른팔이자 정치적 동지로 지냈다. 레닌은 집권 4년째 요양 중이었고, 항상 2인자였던 스탈린은 야욕을 키우며 공산당에 자신의 사람들로 채우기 시작했다. 이에 레닌은 분노하고 스탈린과 레닌 사이의 감정은 극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스탈린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레닌을 제거하고자 레닌의 주치의를 이용해 독약이 든 물을 먹게 했다.

소련의 유명한 지식인인 지노비에프는 레닌이 죽었을 당시 얼굴은 창백했고 머리는 뒤로 젖혀져 있었으며 손을 허공에 뻗으면서 죽었다고 한다. 그가 도착하기 전 스탈린과 스탈린의 부하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레닌의 죽음을 두고 수많은 의문이 제기됐지만, 러시아 당국은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고 그의 죽음에 대한 논란은 현재도 계속 되고 있다.

별을 노래한 시인·독립운동가 윤동주
공식 사인(死因) 뇌졸중

1945년 2월 16일 오전 3시 36분, 청년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살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1943년 7월, 윤동주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귀향길에 오르려다 일경에 기소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었다. 일제는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전했지만 건장했던 윤동주가 수감 된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한 건 아이러니하다. 그러던 중 그의 아우 윤일주와 후배 정병욱의 증언으로 윤동주가 생체실험에 희생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혹이 제기 되었고, 이를 SBS 다큐멘터리 <윤동주, 그 죽음의 미스터리>를 통해 조명되었다.

일본 유학 첫해인 1942년 여름방학에 귀향한 윤동주(뒷줄 오른쪽)와 송몽규(앞줄 가운데)

윤동주는 복역 당시 일제로부터 의문의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았다. 이는 당시 규슈제국대학의 ‘혈장 대용 생리식염수’로 추정된다. 전쟁을 치루며 혈액의 대체재를 찾으면서 바닷물을 실험하고 있던 것이다. 그 주사로 윤동주는 사망에 이르렀고 3주 후에는 함께 복역했던 그의 고종사촌 송몽규 마저 세상을 떠나게 됐다.

약리학자들은 인체에 바닷물을 주입 할 경우 바닷물에 포함된 동물성 플랑크톤 등에 의한 세균감염이 발생할 수 있으며 혈액이 뇌로 전달되어 빠져나오게 되는데 이때 증상이 뇌출혈과 같다고 말했다. 당시 후쿠오카 감옥에서 주사를 맞은 1800여 명은 사망하게 되었다.

만우절이면 떠오르는 그 이름, 장국영
공식 사인(死因) 투신 자살

2003년 4월 1일,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홍콩배우 장국영은 홍콩의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투신자살했다. 아시아의 별이었던 그의 사망소식에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고 6명의 팬들이 투신해 5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였지만 죽음은 의혹 투성이였다.

1. 전화
장국영과 차를 마시기로 약속되어있던 장국영의 매니저 진숙분. 장국영에게 약속을 앞두고 호텔 앞에서 볼 것을 전화 걸었다. 10분 후, 그는 객실에서 뛰어 내리게 되는데, 당시 장국영은 주차장에 있다고 매니저에게 전했다.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그는 차를 주차하고 24층으로 올라가 바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실제 장국영과 비슷한 체구의 사람이 실험한 결과, 차를 주차한 후 호텔 입구까지 오는 데에 9분이 걸렸다고 한다.

장국영의 유작 ,영화 <이도공간>

2. 시신상태
당시 장국영이 묵었던 만다린 호텔은 25층짜리 건물이었으며 그는 24층 객실에서 몸을 던졌다. 만다린 호텔의 구조 상 중간 부분이 튀어나와있는데 부딪힌 흔적 없이 그의 시신엔 그의 시신엔 별다른 외상이 없었다. 게다가 호텔 현관 거리가 있는 아스팔트 위에서 발견되었고 핏자국도 적었다. 더 이상한 점은 당시 호텔 도어맨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장국영은 투신 후 30분이 지나서야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3. 비밀유서
당시 장국영의 사망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그의 유서가 발견되었다고 밝혔으나 현재까지도 유서의 전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유서에 따라 장국영의 동성 연인이었던 당학덕은 유산 460억 원을 상속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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