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창덕궁은 약 270여 년간 조선왕실의 사랑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받아 온 궁궐이다. 그것은 자연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전각 정원은 주변의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여 설계 건축하였고 아름다운 후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원은 약 9만여 평으로 300년이 넘는 고목 70여종을 포함하여 160여종의 수목들이 들어차 있어 숲이 잘 보존 되어 있으며 식생이 살아 있다. 서울에는 5궁(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경운궁) 1묘(종묘)가 있다. 그중 창덕궁에만 궁궐의 터줏대감 노릇하는 천연기념물 나무 4점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천연기념물은 “국가나 지방공공단체가 법률에 따라 지정하여 보존·관리하는 학술상 가치가 높거나 희귀하고 독특하여 법률로 지정 보호하고 관리하는 동식물과 그 서식지, 지질, 광물 등의 천연물”을 말한다. 2016년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지정 현황을 보면 456건으로 천연기념물 제1호는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이다. 창덕궁은 4점의 천연기념물이 있으며 적어도 350년 이상을 한곳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궁궐의 부침의 역사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1828년경 효명세자 시절에 그려진 동궐도에 지금의 천연 기념물 나무들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궁궐의 정문 돈화문을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이 좌우의 회화나무 군이다.

#. 좌 : 동궐도 회화나무 중앙 : 현재의 회화나무 세 그루 우 : 강풍으로 쓰러져 치료중인 회화나무

2006년에 제472호로 지정된 천연기념물 회화나무군 8그루는 동궐도에도 그려져 있다. 회화나무는 콩과 나무로 나뭇잎이 아까시나무와 비슷하여 느티나무와는 잘 구별된다. ‘여자나이와 나무나이는 묻지 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금천 옆의 5그루는 400년, 행랑 앞 3그루는 3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별명은 학자나무(scholar tree)라고 하며 잡귀가 붙지 않는 나무라고 한다. 

회화나무 3그루를 집안에 심어두면 복이 찾아온다고 하여 문묘라든지 서원, 양반집 등에 고루 심었다. 돈화문 앞 회화나무는 주나라 조정의 외조에 3그루를 심고 그 아래서 3정승이 마주앉아 정사를 논하여 태평한 나라를 만든다는 의미로 심었다. 며칠 전 모 공영방송국에서 회화나무 속에서 살아가는 솔부엉이 가족을 화면에 실어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선사한 적이 있다. 

그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둥지가 위 사진 중앙에 위치한 창덕궁 돈화문 회화나무다. 오른 쪽의 철제 받침대를 괴고 옆으로 누운 금호문 앞의 회화나무는 2014년 7월 폭우와 강풍으로 쓰러졌지만 “지정된 천연기념물은 원칙적으로는 현상 변경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법규에 따라 치료 보호를 받고 있다.

#. 후원 천연기념물 뽕나무-문화재청사진-, #. 2016년 겨울 다래나무 자태(왼쪽부터)

후원의 애련지에서 관람지로 가는 도중에 관심을 갖거나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천연기념물 제471호인 뽕나무는 수령이 350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조선은 농상(農桑)을 장려하였다. 농업은 조선경제의 근간이며 뽕나무를 길러 비단을 짜는 일 역시 국가 경제에 매우 중요하여 요즈음으로 말하면 반도체 산업에 버금갈 정도이다. 

태조 임금은 “농업과 양잠은 의식(衣食)의 근원이고 백성의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니, 첫 봄에는 뽕나무를 심고, 5월 달에는 뽕나무의 열매를 심도록” 하였다. 1409년에 태종은 궁원(宮園)에 뽕나무를 심도록 명하기도 하였다. 금천교 지나 선원전 정숙문 앞의 뽕나무와 후원 나무는 6월이면 흑자색의 오디를 관람객들이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길바닥에 쏟아놓아 장관을 이뤄 궁궐관람의 묘미를 더하여 준다.  

미공개 구역인 신선원전 가까운 곳에 1975년 제251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덩굴나무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수컷다래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창덕궁이 세워진 1405년 이전에 이곳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수령이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며 우리나라의 다래나무 중 가장 크고 오래된 나무다. 봄이 지나면 가지가지마다 잎을 피우며 볼만한 자태를 뽐낸다. 

높이 19m, 가슴높이의 둘레가 1.04㎝로 굵은 줄기가 이리저리 엉키면서 나무 모양이 용처럼 사방으로 길게 뻗어나 자라고 있어 마치 궁궐 임금님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처럼 보이고 매우 특이하다. 언젠가는 열매를 맺는 암컷 다래나무를 주위에 심어 주고 다시금 관람객들에게 공개되어 사랑 받는 나무가 되었으면 한다.

창덕궁 첫 천연기념물은 1968년에 지정된 제194호인 향나무로 궁궐의 터줏대감중의 터줏대감이다. 향나무는 조선의 선비들이 제사를 지낼 때 혼을 부르기 위해 사르는 향의 재료가 되는 나무다. 동궐도상의 향나무는 주위가 담장으로 둘러있고 잎이 많고 가지가 매우 견실하여 매우 보기가 좋다. 이 나무는 수령이 약 700년 정도로 창덕궁이 들어서기 훨씬 이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2010년 태풍 곤파스로 인하여 상단부의 가지가 부러져 고사위기에 처하였지만 잘 관리되어 푸르른 잎들이 나뭇가지에 많이 달려 있다. 순이 나지 않은 부분에 정교하게 원숭이 모양을 조각하여 놓은 것도 어린 학생들에게는 색다른 볼거리이다.

#. 좌 : 동궐도 향나무 우 : 현재의 향나무

화창한 봄날에는 여의도 벚꽃놀이나 산에 올라 진달래나 철쭉 등을 감상하면서 꽃과 나무를 즐기는 것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계절에 따라 독특한 맛과 멋이 있는 창덕궁의 화려한 꽃과 나무 즐기기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눈이 시원한 전각 입구 솟을대문이나 만월문을 낙양삼아 전각과 화계를 올려다보거나 감상한다면 색다른 멋을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낙선재의 장락문을 낙양삼아 전각 뒤편 상량정을 올려다보거나 사진을 촬영하면 꽃과 잘 어울리는 무릉도원의 세계를 감상 할 수 있다. 궁궐에서는 나무와 꽃, 짐승, 새 등등을 전문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조선 초기에 상림원을, 그 후에는 장원서라는 관청을 설치 운영하였다’고 한다. 4월 중순에는 조선시대 궁궐의 화계를 잘 관리하였던 동산바치의 솜씨와 궁궐의 터줏대감 천연기념물을 찾아 감상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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