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도는 48개국 중 47위라고 한다

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얼마 전 인터넷 뉴스 메인 페이지에서 어느 기사를 보았다.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또래에 무시당하기 싫어서 ‘게임 과외’까지 받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다. 10대 청소년들이 친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하여 적게는 5천원부터 많게는 20만원까지 자기 용돈으로 과외비를 내며 게임을 배운다는 것. 댓글에는, ‘완전 특이 케이스를 가지고 마치 다 저런다는 냥 썼다’와 ‘이젠 별의 별거까지 다 과외한다’라는 반응들이 두드러졌다.
그래, 이건 정말 특이 케이스일 수도 있다. 몇몇 학생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근데 난 이 기사를 접하며, ‘그래서 뭐?’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 과외는 받으면 안 되는 거야? 도대체 이게 뭐가 잘못된 건지 난 모르겠다.

내가 초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스타크래프트, 바람의 나라, 리니지 같은 게임들을 많이 했었다. 중학교 땐 크레이지 아케이드, 포트리스, 고등학교 같은 반 친구들은 (하면 안 되는 연령이었지만) 서든어택을 많이 했었다. 왜 우리가 게임을 하게 되었는가? 우선 학교 앞에 PC방이 많았으며, 짧은 시간동안 하고 놀 게 그것밖엔 없었다. 취미 생활이라고 뭘 배우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차라리 그 시간에 영어 학원을 하나 더 다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게임 말고 무슨 취미가 있었겠나! 아마 요즘 10대 청소년들은 더 하면 더할 거라고 생각된다. 심지어 요즘 부모님들은 거의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갖고 놀게 하던 걸? 그러면서 게임을 하지 말라니.

(추억의 게임, <크레이지 아케이드>)

내가 초등학교 5,6학년 때 오락실을 많이 갔던 기억이 있다. 원래 오락이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펌프’가 유행하면서부터 한창 다녔던 것 같다. 난 다리가 짧아서인지, 순발력이 없어서인지 펌프를 더럽게 못하는 편이었다. 나랑 같이 다니던 친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닌 두 명이서 하는 2인용 펌프를 여유롭게 해냈다. 펌프 기계 위에 동전을 올려놓고 대기를 하는 아이들이 그 애를 동경하듯 바라보았다. 나도 그렇게 잘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그 친구와 함께 다니며 떡볶이도 사주고 펌프를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열심히 해도 안되는 게 있구나. 난 지금도 펌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좀, 부럽다.

고등학교 때는 ‘미니홈피’ 열풍이었다. 지금의 SNS같은 역할을 했었는데, 보다 더 ‘자기’스럽게 꾸밀 수 있었다. 자신의 캐릭터 같은 미니미나 미니룸 같은 것도 자기 스타일로 꾸미고, 무엇보다 bgm으로 자신의 취향이나 감정을 드러냈었다. bgm은 한곡에 500원 꼴이었는데, 100곡 이상 음악을 보유하면 메인화면에 ‘뱃지’를 걸 수도 있었다. 그 뿐인가. 남다른 개성을 자랑하고 싶은 친구들은 홈피 메인화면을 자기가 디자인하는 ‘편집 스킨’으로 썼다. 그런 거에 재주가 없으면 그런 걸 잘하는 친구에게 사이버 머니였던 ‘도토리’를 선물하며 대신 좀 만들어 달라하기도 했다. 인기가 많거나 잘 꾸며진 미니홈피엔 당연히 방문자 수가 남다를 수밖에. 이게 부러운 애들은 ‘방문자 수 올리기’같은 프로그램을 유료로 다운받아 쓰기도 했지. 그게 우리들의 사회 안에선 대단한 것이었으니까.

20대 초반에 압구정동에선 볼링 열풍이었다! 학동 사거리와 한남동에 있는 볼링장에선 유명 연예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거의 매일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재미를 붙인 이들은 아예 자기 장비까지 구비해서 가지고 다녔었다. 당시엔 정말 다들 밥 먹고 나서 할 게 없으면, 카페를 가거나 볼링 한 게임 치러 가자고 했었다. 난 지금도 그렇지만 볼링을 진짜 못 치는 편인데, 당시엔 하도 다들 볼링장에 가자고 해서 누구한테 좀 배워야겠다 싶었었다. 다행히도(?) 그 유행은 1-2년 정도에 불과했지만.

나를 둘러싼 사회 안에서, 그 사람들 사이에 끼기 위하여 우린 이런 것에 돈과 시간을 투자한다. 펌프, 미니홈피, 볼링뿐만이 아니다. 누구는 인맥 관리를 위하여 골프를 배운다. 또 부모님 세대들 사이에서는 값 비싼 등산복이나 장비를 가진 게 자랑 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게임은 왜 안 되냐는 거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게임만 즐길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 버린 건 어른들이다. 심지어 자기 용돈으로 과외비를 낸 다는 데 뭐가 문제라는 건지.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고 생각해서, 혹은 우리가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학생의 본분은 공부가 맞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하루 종일 공부‘만’ 해야 되는 건 아니다. 다른 활동도 할 수 있다. 게임이 부정적인 영향만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입견이다. ‘중독’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게임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우린 중독될 수 있다. 그리고 우선 게임을 과외 받는 다는 아이는, 아마 중독과는 거리가 먼 부류일 것이다. 그저 친구들의 사회 안에 끼기 위하여 어느 정도까지 수준을 올려놓고 싶은 것일 테니까. 그리고 그 아이가 게임 과외를 안 받는 다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할까? 글쎄,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무언가를 또 찾으려 할 것 같은데.

인정해주어야 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10대들의 사회에서는 게임이 펌프이자, 미니홈피이자, 볼링이자, 골프이자, 등산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것 역시 인정해주어야 한다. 학생은 공부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나라 학생들의 하루 평균 공부 시간이 9시간이라고들 한다. 맙소사. 생각해보면 어릴 때 어떻게 그렇게 학교를 다녔었나 싶다. 8교시 수업에 학원은 물론이요, 0교시니, 야간 자율 학습이니 이런 것들까지 있었다. 더 경악스러웠던 건, ‘9시간’이라고 뜬 인터넷 포스트 댓글들이었다. 그 인터넷 커뮤니티는 1-20대들이 많이 보는 페이지였는데, ‘겨우 9시간이라고?’, ‘평균이라 저 정도인 듯’이라는 댓글들이 수두룩했다. 하루 10시간 넘게 공부하는 청소년들도 많다는 얘기다.

10대 청소년들도 알고 있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무한의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것을! 현실이 아주 냉혹하다는 걸 말이다. 그런 인식을 심어준 것 역시 우리들이 아닌가? 그렇기에 많은 청소년들이 일찌감치 공무원을 꿈꾸지 않나. 꿈을 꿀 나이에 벌써부터 현실을 직시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경쟁하니 다들 힘들 수밖에.
무슨 돈을 내면서까지 게임 과외를 받느냐. 아, 이런 걸 가르쳐 준 것도 우리 어른들이다. 그들은 현실적인 시장 경제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 이 게임 실력을 갖추기 위하여 쏟아 부은 노력이 얼만데, 공짜로 가르쳐줄 순 없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중에서)

뜨겁고 혈기 왕성한 시간들, 예민함이 극에 달한 나이다. 그 어느 때보다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세상을 다 얻은 듯 기쁘다가도 어쩔 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처럼 이소룡에,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처럼 서태지에 모두 다 같이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듯이 지금의 이들에게도 오버워치나 롤, 엑소나 방탄소년단이 있는 거다.
어린 것들이, 라며 무시하지 말고 그들만의 사회, 그들만의 리그가 있음을 인정해주자. 다만 청소년이 즐기기에 적절한 게임들을 즐기기를 권장하고, 인터넷 게임 과외로 발생할 수 있는 사기 피해에 대하여 미리 알려주어야 한다.
아, 제일 중요한 게 빠졌는데……. ‘뭐든 적당한 게 좋다’는 것을 우리 모두 10대 때 머리로 안 것 같은데, 왜 커서도 그게 잘 실천이 되지 않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OEDC 국가들 중 청소년의 행복지수가 거의 꼴찌에 자살률이 1위인 대한민국이다. 원래 그 나이 땐 다 힘든 거야, 라고 말할 게 아니라 위로를 건네야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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