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초월한 뜨거운 열정

[공감신문] '감옥'하면 무엇이 연상되는가? 기자는 사회와의 단절, 폐쇄적 공간, 규칙적인 생활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다른 걸 떠올리는 이들도 존재하겠지만, ‘절대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간속에도 빛나는 열정으로 세계를 바꾼 사람은 존재한다. 열악함 마저 무력화 시킨 그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통해 담아 소개해본다.

∎ 데이비드 마샬 윌리엄스(1900~1975, 미국)

'M1 카빈'발명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마샬 윌리엄스는 자동소총을 발명한 장본인으로, loating chamber와 short-stroke piston을 디자인한 미국 총기 디자이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컴벌랜드 카운티에서 태어나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하던 중, 17세의 나이로 해군에 입대하게 된다. 이후 철도 부설 작업을 하며 불법 증류소를 운영하다 밀주 제조 작업을 보안관에게 발각되고 만다. 그는 총기를 난사해 현장에서 보안관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고, 사건 다음날 살인 혐의로 체포되며 30년 실형을 받게 된다.

수감생활을 하던 그는 감옥의 머신 숍에 놓인 기계장기에 흥미를 갖게 된다. 화기의 개발을 위해 밤늦게까지 종이와 연필로 아이디어 구상하고, 그는 어머니에게 부탁해 기계 공작 키트를 보내달라고 하는 등 열정을 쏟아 부었다. 몇 년 후, 그는 4개의 반자동 소총을 개발하게 되는데, 당시 수동이었던 총에 압축한 가스를 넣어 자동화는 물론 연속으로 발사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획기적인 총의 설계자가 죄수라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자 사회에 큰 파장이 일어나는데, 이를 계기로 윌리엄스는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석방하게 된다. 이후 그는 윈체스터 사에 입사해 M1 카빈의 개발 및 개량과 제2차 세계 대전부터 베트남 전쟁 등 무기 설계에 참여해 꾸준히 역량을 펼칠 수 있었다. 그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1952년 <카빈 윌리엄스>로도 제작됐다.

∎ 윌리엄 아디스(1734~1808, 영국)

충치의 고통에서 무게를 덜어준 칫솔 발명가 윌리엄 아디스는 1770년에 폭동을 일으켜 투옥되고 만다. 그러던 중, 감옥에서 바닥을 청소하는 빗자루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칫솔개발에 돌입하게 되는데, 당시 영국인들은 소금이나 그을음을 문질러 치아를 닦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충치로 인한 치통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는 사람들까지 있었다고.

이 닦는 방법이 부족하다 생각했던 그는 전날 먹은 음식에서 나온 작은 동물 뼈에 구멍을 파고 경비원에게 뻣뻣한 빗자루 털을 얻어 접착제로 봉인해 최초의 칫솔을 만들어 냈다. 석방 후 칫솔을 제조하는 회사를 설립해 판매했는데, 그야말로 대박이나 백만장자가 되었다. 그의 회사 ADDIS는 현재 영국에서 연간 7천만 개의 칫솔을 제조하고 있다.

∎ 로버트 프랭클린 스트로우드(1890-1963, 미국)

작은 새의 논문을 작성해 세계적으로 권위를 얻은 로버트 프랭클린 스트로우드. 1909년 알래스카에서 포주로 일하는 그는 매춘여성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은 바텐더를 잔인하게 살해했다. 바텐더를 총살 한 후 스트로우드는 그 남자의 지갑을 가져다가 매춘 여성이 자신의 서비스에 대한 보상 받을 수 있도록 했다.

1911년 스트로우드는 과실 치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워싱턴 주 연방 교도소인 맥네일 섬에서 형을 선고 받게된다. 맥네일의 기록엔 “그가 폭력적이고 관리하기 어렵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한때 스트로우드는 마약을 조달하려다 적발되었고 수감생활 중 동료 수감자를 찔렀다고 알려져 있다.

적대적 행동으로 6개월 형을 추가로 선고받은 스트로우드는 캔자스의 리븐워스 연방 교도소로 옮겨진다. 그러나 그는 100여명의 수감자 앞에서 경비병을 찔러버려 종신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는데, 30년의 징역 기간 동안 교도소 정원의 나무에서 부상당한 새를 발견한 후 카나리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3마리의 새가 부쩍 커져 성인이 되어 자립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그는 완전히 작은 새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서 작은 새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영화 <버드맨 오브 알카트라즈> 포스터

이후 1943년에 작은 새의 질병에 대해 작성한 논문이 발표되자 학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 후에도 독방에서 작은 새의 연구를 계속해 또 높은 평가를 받았고, 감옥에 있으면서 작은 새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되어 버렸다. 그의 생애는 1962년에 <버드맨 오브 알카트라즈> 라는 이름으로 영화화 되어 제3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에 노미네이터되었다.

∎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1547-1616, 스페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 <돈키호테>를 집필한 소설가 미구엘 드 세르반테스. 돈키호테는기사도 책에 푹 빠진 남자가 스스로 기사 돈키호테라 칭하며 시종 산초와 말을 타고 기상천외한 기행을 펼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는 나를 위해 태어났고, 나는 돈키호테를 위해 태어났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그의 일생이 담긴 소설과도 같다.

젊은 나이에 나폴리로 가서 스페인 해군에 입대한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에 참전하게 되는데, 오스만 해군에게 총상을 입어 평생 왼손을 쓸 수 없게 된다. 그 후, 북아프리카의 해적에 납치되어 기독교 자선 단체에 몸값을 갚아달라고 하기까지 5년간의 포로 생활을 보내고 고국으로 돌아가 식량조달과 세금 징수 업무를 맡았지만, 돈을 맡겨 놓은 은행이 파탄하고 채무자가 되어 세비야 왕실감옥에 갇히게 된다.

원래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세르반테스는 한가한 옥중생활에 작품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1605년에 돈키호테를 발표한다.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세르반테스지만 돈과는 평생 인연이 없었던지 재산 같은 재산은 남기지 않고 1616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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