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와 오바마>, <돼지발정제와 마약>?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나는 너에게>, <나는 나에게>. 이게 중요한 거다!

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온 국민의 눈과 귀가 바쁘다. 밖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상태에, 안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 안팎으로 떠들썩하지 않나. 어제는 심상정 후보의 캠프에 갑자기 후원금이 몰린다는 기사를 보았다. 4차 TV토론 이후 그녀는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게 된 것이다. 박찬욱 감독 역시 심 후보를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반면 문재인 후보와 양강구도이던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했다. 아, 생각보다 더 흥미롭게 흘러간다. …….그럴 줄 알았다. 첫 TV토론에서의 홍준표 후보의 발언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얼마 뒤, SNS에서 난 정말 말로만 듣던 ‘알바’들이 있는 줄 알았다. ‘돼지흥분제’라니? 정말 저런 얘기를 자서전에 썼을 리가? 홍 후보를 싫어하는 알바들이 지어낸 얘긴 줄 알았다. 홍 후보의 발언을 들으며 나랑은 굉장히 다른 뇌구조를 가지고 있구나, 생각은 했다만 저건 진짜 아니잖아, 했는데 아, 사실이었구나……. 근데 이런 그를 옹호하고 나선 이가 있었으니, 정갑윤 의원이다. 그는 홍 후보를 감싸며 이렇게 말했다더라.
‘오바마도 고등학교 시절, 마약에 빠졌었다고. 그가 이것을 이겨냈듯이, 홍 후보도 그럴 거라고!’
아니 난 이 얘길 들으면서 저 정갑윤 의원이라는 분이 어찌 저렇게 생각하는 지 굉장히 놀랐다! 국회의원은 다양한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아닌가? 아 그래, 다각도적인 이해가 필요한 국회의원이시니, 서로의 관점이 다를 순 있다고 치자. 아니 근데, ‘뭣이 중헌지’ 정도는 알아야하는 거 아니야? 묻고 싶다.
“정 의원님! 뭣이 중헌지, 진짜 몰라서 저렇게 말하신 겁니까?”

아마도 정 의원의 발언을 듣고, ‘아, 그렇구나. 오바마도 그런 시절이 있었구나’하며 홍 후보의 철없던(?) 시절 행동에 관대해진 분들도 아마 조금(...) 있으실 수 있겠지.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이건 오바마의 마약 투약과 전혀 다른 개념이다.
오바마는 부모의 이혼, 인종에 대한 정체성 혼란 등을 겪으며 한 때 마약에 빠졌었다고 고백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인기가 있던 정치인의 이런 고백에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연하다. 그가 한 마약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가 약물을 오용한 건 사실이다. 홍 후보가 젊은 시절 친구와 구하려던 돼지발정제는 사실 양돈 업계에서 쓰이는 거다. 이것 역시 약물 오용이다. 근데 봐라, 오바마는 약물을 저 스스로에게 투약했다. 홍 후보는? 그 친구의 ‘먹잇감’이 되었으면 하고 노리던 여학생에게 투약하고자 구하려 던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그녀를 가해하기 위해서, 그것도 심지어 성적으로.

정 의원님, 그리고 여러분. 뭣이 중허냐고? 이게 중요한 것이다.
오바마가 투약한 마약은 ‘자신’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행위였을 수 있다. 그러나
홍 후보가 구하고자 했던 약물은 ‘제 3자’를 파멸로 몰고 갈 행위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오바마의 마약> ↔ <홍준표의 돼지발정제> 가 아니라,
<나는 나에게> ↔ <나는 에게>라는 거다.

까놓고 말해서 제 인생가지고 모험을 하든 말아먹든 별로 상관이 없을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소중한 인생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건 대통령의 자질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에 뭐라고 나오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나온다.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이념이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낙태, 안락사, 자살,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이 늘 뜨거운 게 아닌가.

(영화 <크로닉> 중에서)

중간 즈음 하나 짚고 넘어가겠는데, 사실 이 글은 홍 후보를 비판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저 정갑윤 의원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을 좀 설득하고 싶어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다.

오바마의 마약 투약 고백 이후, 당시 충격을 받은 미국인들이었겠지만 그 후폭풍이 오래가진 않았다. 그건 미국 사회에서 ‘마약’에 대한 정보가 비교적 알려져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오해들은 적지 않나 싶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마약에 대하여 굉장히 폐쇄적이며 오해하는 부분들이 많다. 나 역시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에 당연히 그랬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 이야기, 심지어 네덜란드 국적의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놀랐다. 미국은 주마다 법이 다르지만 대마초가 합법인 곳들이 있다. 의료용 목적으로 처방해주기도 한단다. 네덜란드는 카페에서 대마초를 일정량 판다. 다른 유럽 국가 친구들은 나에게 갖가지 약물을 해본 이야기를 해주었다. 물론 그 것들은 자기들 국가에서도 불법이라고 했다. 국내 유명인들이 투약하다가 검거되어 뉴스에 언급되었던 약물만 들어 본 나는, 쟤네들이 무슨 암호명을 말하나 싶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외국 힙합 가사를 들으니 그 약물들 이름이 종종 등장하더라. 그렇다. 알만한 가수가 마약을 했다고 가사에 써내려가고, 옆 동네에서는 약을 빤다.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 윌리엄 버로우즈는 유명한 약쟁이로, <정키>라는 소설도 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대통령이 한때 마약을 했다고 했을 때? 그 나라 국민들은 지나치게 열을 낼 필요가 없던 거다. 마약이 종류에 따라 파급력이 천차만별이며, 또 어떤 것은 그리 폭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약물에 빠지는 이들의 멘탈이 좀 약할 수도 있다. 어쨌든 거기에 의존적이 될 확률이 높으니까. 약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떤 약물은 중독성이 있다. 바꿔 말하면, 어떤 약물은 중독성이 없다는 뜻이다. 국내 뉴스에서 어떤 약물 상습 투약자가 사고 쳤다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모든 마약 투약자가 이런 식으로 사고를 치는 건 아니다. ‘약쟁이’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이거다, ‘나 혼자’ 마약을 하고 집에서 물건을 깨부수면 그 뿐이지만, 밖에 나가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혹은 그런 마음을 먹으면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한 판결을 들으면 종종 헛웃음이 날 때가 있다. 이젠 초등학생들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단어를 꽤 많이 들어봤을 거라 생각한다. 참 쓸데없는 것들에 한 없이 관대하다. 이런 말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건 단연 성범죄, 특히 아동 성범죄다. 성적으로 가해를 당한 여성은 ‘죽고 싶다’는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성폭행을 당하면 정신과 치료를 필수적으로 받아야한다. 그 트라우마는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심지어 어린 시절 이런 일을 당한 다면? 그/그녀가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도 전에, 자기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이런 범죄에 대하여 우리는 절대 관대해서는 안 된다. 음주운전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물론이요, 누군가와 그의 가족들에게 말로 표현 못 할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평생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야할 수도 있다. 물론 음주운전으로 인하여 사고가 발생할 경우다. 그런 불행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하지마라’고 하는 것이다.
반면 성매매나 약물 오용에 대하여 살펴보자. 이들은 대부분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그것들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수동적으로 당하는 게 아니라, 제 손 제 발로 그것을 한다. 이로 인하여 그들의 인생이 파멸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걸 알면서도 한다. 어느 정도 위험과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게 아니겠나. 그래서 검거되면 비교적 인정도 빠르다.
대부분의 약쟁이들은 거의 대부분 저 혼자, 혹은 저들끼리 일들 벌인다. 그 자체가 불법이기에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성매매는 성을 파는 사람과 성을 사는 사람들 간에 이루어지는 거래다. 그들은 그저 그 순간 즐기는 것에 집중할 뿐이다. 오히려 타인에게 관심이 없고 눈에 띄는 걸 극도로 꺼린다.
만취로 음주 운전하는 사람이나, 날 주시하던 돼지발정제를 손에 쥔 남자애보다야 차라리 그들이 덜 위험하지 않을까.

홍준표 후보가 한 때 자서전을 집필 하셨을 정도로 글쓰기와 독서를 좋아하셨나. 그래서 한 때 무라카미 류의 거의 자전적 소설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감명 깊게 읽으셨던가. 마치 거기 나오는 약물, 음악, 사랑, 문학에 열광하던 젊은이들처럼 불안하고, 깨어질듯하고, 아름답고, 서늘한 청춘을 자서전에 녹이고 싶으셨던가? (그것도 아니면 도대체 왜 저 얘길 쓴 건지) 혹시 그랬던 거였다면....! 무라카미 류처럼 도어스나 롤링스톤즈, 레드제플린에 심취했던 과거가 떠올라서 막 그렇게 투영하고 싶던 거였다면....! 아, 근데 죄송하지만 하나도 안 아름답습니다요. 거기 나오는 청춘들은 들끓는 피 속에 견딜 수 없던 무언가 때문에, 저 스스로의 시퍼런 핏줄에 주사기를 꽂았던 거다. 누군가를 괴롭히려고 그런 게 아니라, 오바마도 그렇고!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나 스스로였지, <나는 너에게>, 심지어 <너에게만>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 논란에 대하여 사과를 하다가 또 이 와중에, 얼마나 본인을 비난할 게 없으면 저런 옛일까지 들추겠냐고 하는 그 분의 멘탈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하긴, 그런 강인한 멘탈이라면 절대 자기 핏줄에 주삿바늘을 꽂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강철 같은 멘탈!
그러니 ‘한 때 오바마도~’라며 홍 후보를 옹호한다는 정갑윤 의원 역시 굉장히 강철 같은 멘탈을 가진, 혹은 지향하는 사람이 아닐까. ‘유연성’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강철 같은 멘탈의 소유자!

하루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들이 쏟아진다. 중요한 건 키워드가 아니다. 깊이 있고 심도 있게, 정말 뭣이 중헌지 보고 판단하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래야 우리의 소중한 권리가 더 가치 있어 지지 않을까 싶다.

* 위 칼럼은 본지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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