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용 차량의 무분별한 세제 혜택

▲ 김종훈 의원(새누리당, 서울 강남을)

시장에서 재화의 가격이 오르면 수요는 줄어드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일부 재화의 경우 가격이 오르는 데도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을 보이는데 이를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베블런 효과가 극명하게 나타나는 품목들이 있다. 핸드백으로 대표되는 여성용 수입 명품과 자동차이다. 여성용 수입 명품은 기호품으로서 그 순수한 기능이나 가치보다는 과시의 수단으로 고가의 비용을 들여 장만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러한 명품 소비량이 높게 나타나는 것은 합리적인 소비자의 관점에서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리적인 소비문화가 정착되면 고쳐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자동차의 경우에는 명품 자체에 대한 선호 현상 외에도 제도상의 이유가 있다. 바로 업무용 자동차에 대한 무분별한 세제 혜택이다. 현행 소득세법 및 법인세법에 따르면 법인·개인사업자가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차량의 경우 구입비는 물론 유지비에 대해서도 전액 소득공제가 가능하다. 특히 차량 가격이 비쌀수록 공제 금액이 커지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업무용 자동차로 고급 승용차를 선호하게 된다. 다시 말해 절세의 좋은 방편이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수입차의 경우 같은 브랜드 내에서 상위 모델이 하위 모델에 비해 더 잘 팔리는 경향을 보인다. 예컨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BMW 5시리즈는 하위 모델인 3시리즈에 비해 평균 2.3배, 벤츠 E클래스는 하위 모델인 C클래스에 비해 2.9배, 아우디 A6는 하위 모델인 A4에 비해 1.9배 많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미국·독일·영국·일본 등에서는 가격이 싼 하위 모델의 판매 대수가 상위 모델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세계 11번째 자동차시장인 우리나라는 유독 고급 자동차 판매 순위에서는 수위권을 달린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BMW 최고급 세단인 7시리즈 판매 순위에서 세계 4위를 기록했고, 벤츠의 최고 모델인 S클래스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이탈리아 고급 스포츠카인 마세라티의 경우 7위를 차지했고, 서울은 평균 판매가격 2억원을 훌쩍 넘는 벤틀리가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팔리는 도시로 기록됐다.
  그런데 업무용 차량에 한해서만 전액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조세 형평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다. 또한 법인 명의로 구입한 고가 스포츠카를 자녀의 통학용으로 사용하는 등 개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아 공사(公私)의 구분에 대한 윤리의식도 크게 흐려져 있다. 따라서 업무용 자동차에 대한 무분별한 세제 혜택은 물론 그 사용에 있어서 공사의 구분이 흐트러지는 것은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본다.
  이와 달리 외국의 경우 업무용 차량에 대해 제한적인 세제 혜택만을 부여하고 있다. 우선 캐나다나 호주의 경우 세제 혜택이 가능한 일정 액수를 정해놓고 이를 넘는 경우 공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예컨대 캐나다는 3만 캐나다달러(약 2,684만원)를 기준으로 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경비처리를 하지 못하도록 한다. 독일의 경우 업무용차량 구입비에 대해 동종 업계 평균 차량 수준과 비교하여 이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세제 혜택을 부여하지 않는다. 싱가포르의 경우는 업무용 차량에 대한 세제 혜택 자체가 없다.
  우리도 업무용 차량이라고 해서 무제한적으로 세제 혜택을 부여할 이유는 없다. 일반 서민들의 입장에서 사업자들의 업무용 차량, 특히 고급 승용차에 대한 무분별한 세제 혜택은 조세 형평에 반하는 것으로 비춰질 여지가 크고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또한 업무용 차량의 개인적 사용으로 인한 탈법행위의 근절을 위해서도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가 캐나다 수준으로 경비 처리 제한 시 매년 정부 세수가 1조5,288억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모로 관련 제도의 보완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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